음반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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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곽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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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덜랜드와 파바로티가 있는 저녁


** 유투브 감상 /
'Parigi, o cara' Verdi's La traviata
http://www.youtube.com/watch?v=5r4XJJYvnZE&feature=player_detailpage
  
           지휘 : 리처드 보닝        
           출연 : 조안 서덜랜드, 루치아노 파바로티        
           관현악 :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오케스트라        
           합창 :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합창단        
           영상 감독 : 커크 브라우닝(Kirk Browning)        
           제작 : DG, 1988년, 115분        
           레코드 제원 : 번호 072 220-1, digital stereo        
        
영국의 여배우 주디 덴크(Judi Dench)는 1959년 2월 17일, 코벤트 가든 왕립
가극장에서 발생한 일을 다음과 같이 생생하게 증언하고 있다. “아름답고 긴
빨간 머리의 젊은 아가씨가 안개를 헤치고 아름다운 스코틀랜드 호수에 등장
하는 모습을 잊을 수 없다. 또한 그 아가씨가 피 뭍은 나이트가운을 입고 회색
빛 성채의 계단을 내려오는 모습도 잊을 수 없다.”

주디가 말하고 있는 젊은 아가씨란 현존하는 모든 오페라 배역 가운데서 가
장 잔인하고도 어려운 역으로 알려져 있는 도니제티의 ‘람메르무어의 루치아’
에서 루치아 역을 이 오페라 극장의 데뷔 무대에서 완벽하게 정복한 당시 33세
의 조안 서덜랜드이다. 이로써 또 하나의 오페라 여신이 탄생했던 것이다.

사실, 서덜랜드의 등장이 있기까지는 이 배역은 마리아 칼라스의 전유물이나
다름없었다. 감히 누구도 여기에 도전하지 못하는 형편이었던 것이다. 광란에
빠지고 끝내는 살인까지 저지르게 되는 루치아 역은 그만큼 소화하기 어려운
배역이었다. 그러던 차에 호주에서 건너온 무명의 신인(적어도 영국에서는 서
덜랜드는 무명의 신인이었다)이 루치아 역을 맡았다는 소식을 칼라스가 들었
다. 첫 번째 드레스 리허설이 열리던 날 칼라스가 나타났다. 또 한명의 여신
(DIVA)인 엘리자베스 쉬발츠코프도 이미 와 있었다. “우린 둘 다 어안이 벙벙
해졌다. 칼라스는 꼿꼿이 앉아서 놀라움으로 그녀의 노래를 들었다. 칼라스는
자신의 목소리가 쇠퇴기에 접어들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는데 지금 무대
위에서 루치아를 노래하는 저 여인이 자신이 했듯 환상적으로 그 역을 노래하
는 유일한 가수라는 것에 놀랐던 것이다.” 쉬발츠코프의 회고담이다. 리허설
이 끝나자 칼라스는 서덜랜드의 분장실을 찾아 아낌없는 축하를 했다. “아주
훌륭했어요!”. 인터넷의 서덜랜드 홈 페이지에서 인용.

소프라노 레지에로(leggiero)와 콜로라투라(coloratula) 부문에서 20세기 최고
의 명인(名人)으로 평가되는 조안 서덜랜드(Joan Sutherland)는 1926년 11월
7일, 오스트렐리아의 시드니 교외(郊外) 포인트 파이퍼에서 태어났다. 어머니
가 미성(美聲)의 메조 소프라노였고 어린 서덜랜드도 노래하기를 좋아해서 일
찍부터 성악 레슨을 받기 시작했다. 물론 어머니가 스승이었다.

학부 시절은 시드니 음악원에서 지냈고 1947년에 연주회 형식으로 열린 헨리
퍼셀(H.Purcell)의 작품 「디도와 에네아스」에서 노래해 연주활동을 공식적으
로 시작한다. 1951년엔 유진 굿센스(Eugene .Goosens)의 「주디스(Judish)」
의 타이틀 롤을 노래해 주목을 받았고, 그 해에 열린 석유회사 주최의 경연대
회에서 입상해 장학금을 받고 런던 왕립 음악원에 진학하게 된다. 유학 다음
해인 1952년, 코벤트 가든에서 상연된 모차르트의 오페라 「요술피리(The
magic flute)」의 제1 시녀(侍女)역을 노래해 처음으로 영국 오페라 무대에 오
른다.

코벤트 가든 데뷔를 신호로 그녀는 세계 각처의 오페라 무대를 밟게 되는데,
그가 노래한 배역은 베르디의 「가면 무도회」에서 아멜리아․ 모차르트의 「휘가
로의 결혼」에서 백작부인․ 베버의 「마탄의 사수」 중에서 아가테․오펜바흐의
「호프만의 이야기」에서 소프라노 3역․ 비제의 「카르멘」 중에서 미카엘라․ 모차
르트의 「요술피리」 중에서 파미나․ 바그너의 「뉘른베르크의 마이스터징거」 중
에서 에바․ 베르디의 「오텔로」에서 데스데모나 등 비교적 드라마틱한 역이 중
심을 이루고 있었다.

1954년, 서덜랜드는 그의 음악적 인생에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 오도록 만드는
운명적 만남을 갖는다. 저명한 오페라 지휘자이자 18세기와 19세기에 쓰여진
오페라 작품의 가창법(歌唱法) 연구가인 리처드 보닝(Richard Bonynge,1930
년생)을 만나 결혼 하였던 것이다. 서덜랜드는 남편의 가창법 지도를 받은 끝
에 종래의 드라마티코에서 레지에로 소프라노로 새롭게 태어난다. 그리하여
1958년에 헨델의 「삼손」에서 이스라엘 소녀 역을 노래하여 그녀의 달라진 가창
법을 과시 하였고, 33년만에 코벤트 가든에서 부활 상연된 도니제티의 「람메르
무어의 루치아」에서 타이틀 롤을 맡아 일약 명성을 드높이는 계기를 마련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루치아」의 성공을 계기로 왕년의 명가수로서 전세계를 풍
미 했었던 오스트랄리아 출신의 전설적인 가수 넬리 멜바(Nellie Melba,1861
~1931)가 서덜랜드를 통해 부활 했다는 최대의 찬사를 받기도 하였다.

1961년, 「루치아」로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가극장과 밀라노 라 스칼라 가극장
에 데뷔 하였고, 전 세계의 가극장에서 그 누구도 추종할 수 없는 완벽한 코로
라투라 창법의 달인(達人), 청중의 심금을 울리는 너무도 아름다운 레지에로
소프라노로서 군림하기에 이른다.

남편의 지휘로 녹음된 음반들이 그녀의 디스코그라피를 거의 메우고 있는데,
그중에서도 헨델, 벨리니, 도니제티, 롯시니의 오페라 전집 음반들은 역사적
인 명연(名演)으로 평가되고 있다. 또한 많은 오페라 아리아집이 있는데 1960
년대에 녹음된 것들이 그녀의 황금시대를 실감하게 만들어 준다. 현재, CD로
발매되고 있는 서덜랜드의 옴니버스 레코드는 18종이 있다.

한편, 루치아노 파바로티(Luciano Pavarotti)는 1935년 10월 12일 이탈리아
의 모데나에서 태어났다. 아버지가 참가하고 있던 합창단에서 노래하다 명 테
너 아리고 폴라의 눈에 띄어 그에게 성악 레슨을 받았고, 이어서 스칼라 가극
장에서 가수를 가르치고 있던 에토레 깜보가리아니에게도 성악을 사사했다.
1961년(26세)에 렛죠 에밀리아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했고 이 해에 모데나 시
립 가극장에서 푸치니의 「라 보엠」의 로돌포를 노래해 처음으로 오페라 무대
에 섰다. 이때부터 이탈리아 각지의 오페라 극장에 섰고, 1963년엔 처음으로
외국에 나가 암스텔담에서 도니제티의 「람메르무어의 루치아」에서 에드가르
도 역을 노래해 성공을 거두었다. 여세를 몰아서 뷘, 함부르크, 취리히의 무대
에 섰고, 런던의 코벤트 가든 왕립 가극장에서는 스테파노의 대역(代役)으로
라 보엠의 로돌포를 노래하며 데뷔했다. 이듬 해 그라인드본 음악제에서 모차
르트의 「이도메네오」의 이타만데 역을 노래해 주목을 받은 것도 그의 초기 활
동에서는 중요한 공연 기록으로 여겨진다.

1965년, 조안 서덜랜드와 함께 오스트렐리아에서 「루치아」를 공연(共演) 했는
데 이때가 두 사람의 첫 만남이었고 이후 그들은 명콤비로 무대에 오르는 일
이 많게 된다. 오페라 가수의 선망의 무대인 라 스칼라엔  「리골레토」의 만토
바 공작 역으로 데뷔 했다. 이무렵까지의 파바로티의 명성은 평범한 수준이었
다고 보아진다. 드디어 그에게 행운의 결정적 시기가 찾아온다.

1967년은 위대한 지휘자 토스카니니의 탄생 100년과 별세 10주기에 해당되는
해였다. 이를 기념하는 연주회가 마련되는데 그중에서도 세계 음악계의 주목
을 받았던 행사는 카라얀이 지휘한 베르디의 「레퀴엠」 공연 이었다. 이 공연에
서 파바로티가 독창을 맡았는데 그야말로 절창의 경지를 들려주었다. 눈부신
성공과 명성이 그에게 쏟아졌다. 이 성공으로 파바로티는 비로서 세계적인 주
목을 받기 시작했고 1968년엔 「루치아」와 「연대의 아가씨」를 통해서 미국 샌프
란시스코 가극장에 진출했고, 같은 해 11월 23일엔 대망의 메트로폴리탄 가극
장에 서게 된다. 파바로티가 맡은 역은 「라 보엠」의 로돌포였고 상대역은 같은
고향 출신인 미렐라 프레니였다. 물론 그는 이 무대도 성공으로 이끌었다.

1971년, 이탈리아 가극단의 일원으로 일본에서 「리골레토」의 만토바 공작을
노래 했는데 제3막에서 ‘여자의 마음’을 노래하는 순간 흥분한 음대생(音大生)
하나가 무대에 뛰어올라 파바로티를 포옹하는 헤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파바로티의 소리는 섬세하고 감미로운가하면 지중해의 물빛만큼이나 밝고 빛
나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특히 그의 초기 시대의 발성은 릴리코 레지에로
(lirico leggiero)의 전형(典型)을 들려 주었고, 세월이 흐르면서 드라마틱한 발
성 쪽으로 옮겨 가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결과적으로 파바로티는 릴리코와 드
라마티코 모두에서 벨 칸토 창법의 놀라운 매력을 들려주었다.

평론가들은 그를 <High C 의 왕>이라고 부른다. 테너라면 높은 C음을 물론
발성할 수 있어야 하겠지만 파바로티는 그야말로 놀라운 여유를 갖고 높은 C
음을 노래하기 때문에 그에게 이러한 애칭(愛稱)이 붙여진 것이다.

레코드는 오페라 전집과 가곡, 또는 아리아, 이중창 등의 옴니버스로 나누게
되는데, 전집(全集)으로는 서덜랜드와 녹음한 벨리니(Bellini), 도니제티
(Donizetti)의 오페라 전곡이 기념비적 가치를 인정 받고 있다.

서덜랜드와 파바로티가 처음 만난 것은 1965년이었다. 호주(濠洲)에서 도니제
티의 「람메르무어의 루치아」를 공연하기 위해서 였다. 이미 서덜랜드는 세계적
인 프리마 돈나였지만 파바로티는 이제 막 스타로서 발돋음 하기 위한 길목에
들어 서 있는 신인 이었다. 파바로티를 호주에 부른 것은 보닝의 제안 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파바로티의 범상치 않은 재능을 간파 했던 것이다. 아무튼 이
만남을 시작으로 두 사람은 명콤비가 된다. 앞에서도 기술한 것처럼 두 사람
은 도니제티와 벨리니의 오페라 전곡(全曲)을 레코딩 하는 위업을 달성 했고,
무대에서도 완벽한 호흡으로 관객을 매료 시키는 스타였다. 파바로티는 고향
의 동갑나기인 미렐라 프레니와 공연 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서덜랜드와의 공
연도 그에 못지않은 것으로 여겨진다.

이 LD에 담겨진 실황은 두 사람만을 위한 특별 공연으로 메트로폴리탄 가극
장에서 마련된 내용이다. 연주회 형식이 아닌 실제의 오페라 무대를 만들어서
이들을 출연 시켰던 것이다. 물론 흔치 않은 기획이고, 그래서 커다란 주목을
끌었던 공연 이었다. 두 사람은 베르디의 「라 트라바아타」 제3막, 도니제티의
「루치아」 제1막 2장과 제3막 3장, 베르디의 「리골레토」 제3막을 노래하고 연기
했다. 62세의 서덜랜드와 53세의 파바로티, 그러나 그들의 나이를 따질 여유
를 주지 않을 만큼 여기에 담겨진 노래와 연기는 감동의 연속이다. 듣기에 따
라서는 서덜랜드의 소리가 역시 나이를 속일 수 없는 것으로 여겨지겠지만 그
녀의 기가 막힌 코로라투라 발성과 피아니시모의 매력은 왕년의 그것에 전혀
손색없는 것으로 시청자에게 다가 선다.

게다가 파바로티의 완숙한 연기와 시원스레 뻗어 나가는 발성은 또 얼마나 감
동적인가? 특히 리골레토와 라 트라비아타에서 보여 주는 그의 노래와 연기는
두고두고 기억에 남을만한 달인(達人)의 경지였다. 오래간만에 만나는 두 거장
들의 완벽한 오페라 음악과 보닝이 지휘하는 메트로폴리탄 오케스트라의 반주
는 흔치 않은 감동을 제공하고 있다.

** 이 글을 퍼 가는 것은 좋습니다. 그러나 반드시 출처를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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