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음반
모차르트 : 클라리넷 협주곡 가장조, 호른 협주곡 제1, 4번
독주자 : 찰스 네이디츠(Charles Neidich, 바세트 클라리넷),
데이비드 졸리(David Jolley, 호른)
오르페우스 체임버 오케스트라
제작 / 독일 그라모폰
분류번호 / 423377-1GH, 디지털 녹음, CD
음악은 재현의 예술이다. 아무리 훌륭한 작품이 존재한다 해도 그것을 연주해서 들려줄 연
주자가 없다면 음악의 존재 의미는 그만큼 퇴색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서 작곡가와 연
주가는 바늘과 실 같은 각별한 관계를 형성한다. 좋은 작품은 연주가를 자극하고, 훌륭한
연주는 작곡가의 창작의욕을 부추긴다. 이처럼 확실한 상관관계도 찾기가 쉬운 게 아니다.
작곡가가 어떤 작품을 쓰게 된 배경이나 동기는 참으로 다양하다. 그 중에서도 가장 흔한
경우는 매우 뛰어난 재능을 갖고 있는 연주자의 연주에서 자극 받아서 그 연주자가 다루는
악기를 위한 새로운 작품을 쓰는 경우일 것이다.
모차르트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많은 명연주자들이 결과적으로 그의 작품세계를 보다 다양
하고 풍요하게 만드는데 자극이 되고 있는데, 그 대표적 케이스가 이 레코드에 수록되어 있
는 클라리넷 협주곡 가장조와 호른 협주곡들이다.
클라리넷 협주곡은 당대의 명연주자였던 안톤 슈타들러(A. Stadler, 1753∼1812)를 위해서
작곡했다. 슈타들러는 빈 궁정악단의 클라리넷 주자로 활동하던 인물로 당대에 그와 견줄만
한 클라리넷 연주자가 없을 정도로 대단한 솜씨를 지녔다고 알려져 있다. 게다가 프리메이
슨 비밀결사의 일원이기도해서 모차르트가 특별히 이 사람과 가까이 지냈으리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모차르트는 이 협주곡 말고도 클라리넷5중주곡 K.581을 슈타들러를 위해서 쓰기
도 했다. 이 협주곡이 모차르트의 운명을 불과 2개월 앞두고 작곡됐다는 사실을 상기한다면
슈타들러가 얼마나 강렬하게 이 작곡가를 자극시켰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까지 이 작품의 원본이 발견되지 않고 있어서 그에 따른 시비가 끊이질 않는다.
기록에 따르면 모차르트는 처음엔 바세트 호른을 위한 곡으로 시작했다가 나중에 악기를 바
세트 클라리넷으로 바꿔서 작품을 완성시켰다고 한다. 일반 클라리넷에 비해 장3도가 낮은
바세트 클라리넷은 음색은 다소 어둡고 둔중한 편이지만 표현의 폭은 오히려 A 클라리넷보
다도 넓다는 장점을 갖고 있다. 아무튼 이 곡의 원전은 바세트 클라리넷 협주곡이다. 그런
작품이 19세기에 인쇄되는 과정에서 A조의 클라리넷으로 개작이 됐고, 이 개작이 오늘날에
이어져 연주되고 있는 것이다.
클라리넷이 지니는 가장 큰 매력은 저음에서 고음에 이르는 과정에서 아주 미묘하게 변하는
음색의 다양함이라 하겠다. 다른 관악기들이 일률적인 음색을 지니는데 비해서 이 악기만은
저·중·고음에서 음색이 달라지는 것이다. 모차르트가 이런 사실을 놓칠 리 있겠는가? 특히,
저음의 매력을 즐기는 쪽으로 썼다. 그 결과 이 협주곡은 매우 낭만적인 색깔을 지니게 되
었고, 바로 이런 부분이 이 작품의 감상 포인트가 되고 있다.
이 음반에서 독주를 맡고 있는 찰스 네이디츠는 악곡의 제 모습을 찾는데 주력한 연주자로
서 감상자에게 시대연주에 가까운 새로운 음악체험의 기쁨을 주고 있다. 모차르트의 클라리
넷 협주곡을 거의 원전에 가깝게 녹음한 보기 드문 음반이다. 따라서 이 연주의 감상은 A
조 클라리넷과의 비교 차원에 두는 것이 지혜롭다. 네이디츠의 연주는 로맨틱하다. 몇 번을
거푸 들어도 싫어지지 않을 지경이다. 로맨틱한 것은 역시 사람을 즐겁게 한다.
제2면에 수록된 호른 협주곡 두 곡은 모차르트가 쓴 4곡의 호른 협주곡을 대표하는 작품이
다. 이들은 요제프 로이트게브(J. Leutgeb, 1745∼1811)라는 궁정연주가를 위해서 작곡됐
다. 잘츠부르크 궁정악단의 호른 주자였던 로이트게브는 슈타들러 못지않은 모차르트의 막
역한 친구였다. 제1번의 마지막 론도 악장에 "달려라 당나귀야!" "잠깐 숨쉬고" "안 돼! 돼지
야" "이제 여기서 끝장이다" 등 심한 농담조의 메모를 남기고 있는 것을 보면 두 사람이 얼
마나 허물없는 사이였는지 짐작할 수 있으리라. 아무튼 모차르트는 이 사람을 위해서 4곡의
협주곡과 1곡의 호른 5중주곡을 썼으니 그에 대한 애착이 대단했던 모양이다. 4곡 모두가
명랑하고 밝은 성격을 지니고 있는 데다 기술적으로도 평이한 편이어서 많은 연주자들이 이
작품을 연주한다.
물론 이들 작품을 수록한 음반도 아주 많다. 전곡이 수록된 음반만 해도 54종에 이를 정도
다.(Schwann Opus에 등록된 음반들). 알란 시빌(Alan Civil), 베리 터크웰(B.Tuckwell)등
의 음반이 국내에 비교적 널리 알려져 있는데, 쟝 파루(J.Falout)같은 연주자는 무려 7종의
음반을 발표해서 주목 받고 있다.
여기서 소개하는 주자는 데이비드 졸리(David Jolley)이고, 협연 오케스트라는 미국의 싱싱
한 앙상블 오르페우스 체임버다. 졸리의 연주는 부담이 없다. 그만큼 매끄럽다는 느낌이다.
호른을 이렇게 자연스럽게 연주하기가 쉬운 일이 아닌데 말이다. 시원시원하고 당당하고 가
볍다. 그래서 이 작품을 수록하고 있는 음반들 가운데서도 단연 높은 점수를 줄만하다.
오르페우스 체임버 오케스트라는 1972년, 뉴욕에서 26명의 젊은 음악가들로 창단되어 오늘
에 이르고 있다. 단원의 구성은 미국, 일본, 대만, 영국인 등으로 다국적 체취가 강하다.
그들의 연주는 대단히 색체적이고 역동적이다. <이 무지치>나 <이솔리스티 베네티> 같은 고
도의 精華는 비록 찾기 어렵다 해도 이들의 연주는 거침이 없고 생생하고 발랄하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