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음반
베를리오즈 : 환상 교향곡 DVD, CD
지휘 : 존 엘리엇 가디너
혁명기와 낭만주의 시대의 오케스트라
녹음 : 1991년 9월, 파리 음악원
제작 : 필립스, 디지틀
◈ 유튜브 듣기
Berlioz : Symphonie Fantastique
지휘 : John Eliot Gardiner
Orchestre Révolutionnaire et Romantique
http://youtu.be/oLj6MGBcpRw?si=FwBhOicJGxMH9TdG
◉ 존 엘리엇 가디너(John Eliot Gardiner)의 독특한 해석으로 재현된 연주
가디너는 1943년 4월 20일, 영국 도세트 주 폰트멜 마그너에서 태어났다.
캠브리지 대학교 왕립대학(King's College)에서 역사와 아라비아語로 학위를 받았고,
런던 왕립음악대학에서도 공부했다. 2년간의 프랑스 유학 장학금을 받고 파리에 가서
나디아 브랑슈 교수의 문하에서 공부하는 한편 안탈 도라티(Antal Dorati)와 조지 허
스트(George Hust)에게 지휘법을 배웠다.
가디너는 이미 15세 때부터 지휘에 관심을 갖고 있었고, 캠브리지 시절엔 스스로 자신
의 합창단을 조직해서 지휘했다.
1966년, 위그모어 홀에서 <몬테베르디 합창단>을 지휘하면서 공식적으로 데뷔했다. 파
리 유학에서 그가 지휘 공부에 힘썼던 것은 이미 자신의 음악적 진로를 결정했기 때문
이었다.
1967년, 몬테베르디 탄생 4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그가 직접 교정한 악보로 몬테베
르디의 <베스페레 Vespere, wjsurrleh>를 연주해서 주목을 받았다. 이 작품은 이듬해
에 런던 프롬네이드 콘서트(Promnade Concert)에서 재연(再演)되어 크게 성공했다.
이 연주회 지휘로 가디너는 프롬네이드 사상 최연소 지휘자로 기록되었다. 내친걸음에
가디너는 <몬테베르디 오케스트라>를 조직했다.
1973년, 라모(Ramau)의 여러 오페라를 집중적으로 소개하여 센세이셔널한 반응을 불
러 일으켰고, 1976년엔 런던 코번트 가든 로열 오페라에 데뷔해서 글루크(Gluck)의
<아울리스의 이피게니아>를 지휘했다. 이로써 그는 바로크 시대의 합창음악과 오페라
지휘자로 부동의 명성을 굳혔고, 이후 고악기(古樂器)의 재현, 연주법 연구와 연주에 몰
두해서 시대연주의 거장으로 나아갔다.
음반은
퍼셀(H, Purcell)의 <메리 여왕의 탄생일을 위한 찬가(讚歌)>,
헨델의 종교음악 <딕시트 도미누스 Dixit Dominus,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Erato),
바흐의 <브란덴부르크 협주곡>등이 그의 초기의 것들이고,
이후 모차르트의 교향곡들, <레퀴엠> <大미사>,
베토벤의 교향곡들, 미사 다장조, <고요한 바다와 즐거운 항해>,
베를리오즈의 <환상 교향곡>등 고악기만을 사용하는 시대연주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베토벤의 교향곡 전곡 녹음에 도전해서 고악기를 전문으로 하는 지휘자로 연주곡목의
확대를 놀라울 만큼 확대한 가디너가 1991년, 베를리오즈의 환상 교향곡을 녹음한다는
소식은 상당한 충격이었다.
이 작업을 위해서 가디너는 잉글리시 바로크 솔로이스츠 Eglish Baroque Soloists(몬
테베르디 오케스트라의 바뀐 이름)를 모태로 삼아서 <혁명과 낭만주의 시대 오케스트
라(Orchestre Revolutionanaire et Romantique, 이하 ORR로 표기>를 조직했다.
이 악단은 19세기 초기 오케스트라 악기를 주축으로 구성했는데, 모차르트의 교향곡
전집 녹음에서 이미 놀라운 앙상블을 들려준 악단이다. 가디너가 이 악단을 설립한 동
기는 시대에 따라서 변화하는 오케스트라 악기 편성에 철저하게 대응하겠다는 시대연
주 정신의 발로라 할 수 있겠다.
어느 인터뷰에서 가디너는 "몬테베르디와 라모, 에마뉴엘 바흐 시대는 혁명적인 시대에
속하며, 모차르트의 <이도메네오>는 로맨티시즘의 음악"이라고 설명했었다. 모차르트의
이도메네오를 로맨티시즘에 속하는 작품이라고 거론한 것으로 보아서 가디너의 생각은
개개의 작품에 속하는 악기의 원형을 찾아서 대응하겠다는 의지로 이해된다.
고전주의의 전형으로 이해되어 온 모차르트의 작품을 두고 "로맨티시즘"이라고 말한 지
휘자는 아마도 가디너가 최초일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이에 따라서 그는 ORR의 악기
종류와 편성의 규모를 19세기 전반기 형태에 맞추고 있다.
그러나 베를리오즈의 경우는 좀 특수한 편에 속한다. 그가 활동한 시대는 음악의 교차
점에 해당되기 때문에 과거의 악기와 새로운 악기들이 혼재하는 실정이었다. 특히 베
를리오즈는 새로운 악기를 자신의 작품에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결
과적으로 그의 관현악 편성은 과거와 새것이 공존하는 형국이었다.
베를리오즈의 환상 교향곡을 오리지널 악기를 사용해서 녹음한 최초의 인물은 로져 노
링턴(Rogedr Norington)이다.
1988년 3월, 런던에서 노링턴은 The London Classical Players를 지휘해서 이 작품
을 녹음했고, 그 무렵 이 앨범은 엄청나게 놀라운 반응을 일으켰다(EMI 레이블). 당시
로서는 대단한 시도였기 때문이다. 노링턴은 이에 그치지 않고 17세기 초엽의 바로크
음악에서 베토벤에 이르기까지 매우 광범위한 레퍼토리를 녹음하는 의욕을 보였다.
그러나 가디너와 노링턴의 오케스트라 편성은 달랐다. 베를리오즈의 <환상 교향곡>이
작곡된 1828년은 베토벤이 세상을 떠나고 3년이 경과한 시기였고, 또한 그의 작품이
파리에 널리 알려져 있었던 시기였다. 그런가하면 환상 교향곡이 완성된 1830년은 슈
베르트가 세상을 떠난 지 3년이 흐른 무렵이었다. 이것은 베를리오즈가 서 있었던 역
사적 위상과 그의 좌표를 알려 주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이러한 측면에서 본다면 노링턴의 <환상 교향곡>은 로맨티시즘에 경도된 느낌을 강하
게 주는 것이 사실이다. 그의 팀파니가 극적인 효과를 극대화시키는데 주력하고 있는
점이 이를 시사한다. 뿐만 아니라 노링턴은 현악기와 관악기의 배치에서 그의 독창성
을 살려서 독특한 균형감을 느끼도록 했는데, 그 중에서도 현의 음량을 극도로 절제하
고 있는 것은 놀랍다.
제4악장 행진곡에서 금관악기 오피클레이드(Ophicleide)의 음향과 제5악장의 종결 직
전의 콜 레뇨(col legno) 주법에서 그가 의도하고 있는 청징함과 그에 대치되는 이질
적 효과는 매우 인상적인 것이다.
가디너의 연주에서 베를리오즈가 의도한 효과를 극적인 것으로 형상화하려는 시도를
강하게 느끼게 한다. 그해서 종래 The English Baroque Soloists와 판이한 개념으로
가디너가 해석하고 있다는 인상을 강하게 느꼈다.
가장 두드러진 것이 뒤나믹(dynamik)의 설정인데, 제1악장 서주의 종결구에서 울리는
정숙과 악장 후반에서 울리는 격정의 압도적인 대비가 이 지휘자의 기본적인 해석 개
념이라는 사실을 일러주고 있다. 신구 악기의 혼재라는 편성의 틀을 지키면서도 울림
의 투명성을 강조하려는 것이 그의 의도로 보인다.
그러나 제2악장에서 그의 해석은 또 다르다. 베를리오즈가 채용한 당시의 새 악기 코
넷(cornet)을 그대로 쓰고 있고, 현악기의 텍스처(texture)에서도 현의 울림을 선명하
게 우리게 하는 등 오히려 악기 간의 균형을 의도적으로 깨뜨리는 의도를 보인다. 이
를테면 <무도회장의 왈츠>에서 저현부를 유별나게 강조해서 이 작품의 주인공인 젊은
예술가의 불안한 심기를 선명하게 부각시키고 있는 부분이다. 놀라운 표현 컨셉이다.
제3악장에서 잉글리시 혼과 오보에의 교차 연주는 매우 선명한 원근감(遠近感)을 느끼
게 하는데, 가디너 특유의 악기 배치법에서 이러한 효과가 연출되고 있다. 여기서 울리
는 원근감은 음악의 깊이를 극도로 심화시키는 놀라운 효과를 가져 온다. 바로 이 부
분에서 우리는 가디너가 중시하고 있는 고전적 구조미를 발견하게 된다.
한편, 제4악장에서 가디너는 가속도를 붙인 <단두대로의 행진>을 들려준다. 따라서 팀
파니의 역할도 행진곡의 인상을 강조하는 마르카토와 스타카토 주법을 써서 그 몫을
다한다. 그런가하면 오피클레이드의 음색도 한껏 강조해서 역동적 느낌을 강조하고 있
다.
제5악장에서 가디너는 현대악기의 역할을 축소시키고 고악기의 기능을 증대시키고 있
다. 그로써 고악기만이 갖고 있는 특유의 음색이 강하게 울린다. 그래서 역설적일 만큼
<마녀의 연회>라는 이 악장의 주제가 참으로 기괴하게 표출되고 있다.
한마디로, 이 앨범은 베를리오즈의 혁명적인 로맨티시즘을 바로 그 시대의 악기를 사
용해서 그 시대의 모습으로 현대에 소생시킨 기록적인 연주라고 보아진다. 가디너는
원형대로의 부활을 위해 녹음 장소도 이 작품이 초연 되었던 옛 파리 음악원 연주홀을
선택하고 있다. 시대연주의 표본을 보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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