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 The Edison Standard Model C, 에디슨
영원히 사라질 것 같았던 LP가 화려하게 부활했다. 놀라운 반전이다. 디지틀이 지배하는 세상에
아날로그가 보란 듯 돌아왔다. 그래서 뒤를 돌아보기로 했다. 음반의 역사를 °°°°°°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에게 의사를 전달하기 위해 발명된 전화기. 방금 이 자리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대화나 연주를 담아 두었다가 언제든 원할 때 몇 번이고 되풀이 그때의 소리를 재생시킬
수 있도록 발명된 축음기와 레코드. 소리를 공간적 시간적 한계를 넘어 전달하게 한 이 위대한
발명들은 불과 1년 10개월 10일의 차이를 두고 잇달아 첫 소리를 냈다.
전화는 벨(Alexander Graham Bell, 1847~1922)이 1876년 2월 14일에 특허신청을 했고, 축
음기(포노그라프)는 이듬해 1877년 12월 24일에 에디슨(Thomas Alva Edison, 1847~1931)이
특허 출원했다.
이로써 13세기에 알베르투스 마그누스에 의해 시도되었던 소리의 재생장치 원리와 6백년 뒤인
1667년에 런던에서 로버트 후크가 두개의 공명상자 사이에 실을 팽팽하게 연결해서 음성 전달을
시도했던 실험은 209년 만에 각각 현실로 성취됐다.
특히 우리의 흥미를 끄는 것은 에디슨의 포노그라프 발명이 순전히 벨의 전화기에서 출발했다는
사실이다. "내가 전화기의 송화구에 입을 대고 노래를 부르니까 전선이 진동하면서 가느다란 강
철 바늘이 내 손가락을 찔렀다. 그래서 나는 생각했다. 이 바늘 끝의 움직임을 기록해 두었다가
나중에 그 표면을 다시 그 바늘로 재생시킬 수만 있다면 그 장치가 말을 하지 않을 수 없을 것
이다.
나는 처음에 가늘고 긴 한 장의 왁스로 코팅된 전신지로 실험을 했고, 바늘 끝이 진동하면서 그
진동이 전신지를 두드리는 것을 보았다. 그래서 나는 송화구에다 대고 “여보세요, 여보세요”라고
소리치면서 종이 위에 바늘 끝을 다시 얹어 보았더니 희미하게 “여보세요, 여보세요”라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정확하게 움직일 수 있는 기계를 만들 결심을 하고 조력자들에게 나의 발견을 설명
했다.“
이 발견의 모티브는 바늘이 진동하면서 손가락을 찔렀다는 사실에 있었다. 축음기와 레코드의 역
사는 이 작은 우연에서 착상되어 “여보세요”로 시작되었다. 아울러 새로운 차원의 연주역사도 곧
시작 된다.
1878년 1월 24일, 에디슨은 뉴욕 브로드웨이 203번지에 <에디슨 스피킹 포노그라프 컴퍼니>를
설립했다. 회사 문을 열고 제일 먼저 했던 판촉행사는 사람들 앞에서 자기가 노래해서 녹음한 "
메리에겐 어린 양이 있었네 Mary had a little lamb"를 재생해서 들려준 일이었고, 당연히 사
람들은 많이 놀라워하고 신기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 용어
포노그라프(phonograph)라는 용어는 그리스어 phonē(소리 또는 음성)와 graphē(글쓰기)를 합
성했다고 여겨진다. 19세기에 이미 photograph(빛 쓰기 light writing, 사진), telegraph(멀리
쓰기 distant writing, 전신), telephone(먼 소리 distant sound, 전화)이라는 용어들이 널리
사용되고 있어서 소리를 녹음해두었다가 언제든 다시 재생시켜 듣는다는 의미에서 <소리 쓰기>,
즉 포노그라프라는 명명은 자연스럽고 시대 상황을 잘 반영한 것으로 평가한다. 이 이름이 시대
적 상황을 잘 반영했다는 또 하나의 증거는 그 무렵에 속기(速記)를 포노그라픽(phonographic)
또는 포노그라피(phonography)라고 표기했는데, 새로운 기록기기의 이름을 지으면서 우선적으
로 고려됐을 터. 그러던 것이 1940년대에 이르러 레코드 플레이어(record player) 또는 턴테이
블(turntable)이라는 용어로 대체되었다.
에디슨은 녹음용 실린더(실린더에 얇은 주석 필름을 입혔다)를 얹은 축음기(Edison tin foil
phonograph 1877)를 출시했다. 그는 이 발명품의 보급을 위해 녹음 용도를 다양하게 확대했는
데, 편지 대용, 스피치의 기록, 맹인을 위한 소리 나는 책, 웅변술 지도용, 연주 녹음, 저명인사
들의 연설 녹음, 교사 또는 교수의 강의 녹음 등 각가지 아이디어를 냈다. 그러나 그 어떤 것보
다 연주를 담는 것이 포노그라프의 상업적 성공을 위한 최선의 방책이라는 사실이 곧 인식되기에
이른다.
최초의 음악 녹음은 1878년 뉴욕에서 행해진 코넷주자 쥴스 레뷔의 연주 <양키 두들>이었다. 그
리고 같은 해에 미국의 헤이즈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짤막한 스피치를 녹음했다.
클래식 음악의 최초 녹음은 1888년에 행해졌다. 당시 12살의 천재 소년 피아니스트 요제프 호프
만(1876-1957)이 에디슨 연구실을 방문해서 수록시간 2분짜리 실린더를 몇 개 녹음했다.
영국에서는 구로오드 대령이 런던의 수정궁(크리스탈 펠리스)기자석에 포노그라프를 설치하고 헨
델 페스티벌의 일환으로 공연된 헨델의 오라토리오 <이집트의 이스라엘인>의 일부를 녹음했는데
(1888년 6월 29일)이것이 세계 최초의 실황녹음이었다. 기자석은 무대에서 약 100야드 떨어진
지점이었다.
작곡가 중 최초로 녹음에 나섰던 인물은 브람스였다. 1888년, 에디슨의 독일 대리인이 브람스를
방문하고 그가 직접 연주하는 <헝가리 무곡 제1번>을 녹음했다. 이 역사적인 에디슨 실린더는
1935년에 발견되어 한바탕 소동이 일어나기도 했지만 재생상태는 극히 좋지 않다. 포노그라프를
피아노 바로 밑에 두고 녹음했기 때문이라고 분석됐다. 그래도 한번쯤은 들어볼 가치는 있는 듯
해서 ---
최초의 오케스트라 녹음과 교향곡 전곡 녹음은 포노그라프 발명 12년 후, 1889년 뉴욕 메트로폴
리탄 오페라 무대에서 이루어졌다. 에디슨은 두 대의 포노그라프를 무대 위에 설치했다. 지휘자
는 한스 폰 뷜로였고, 연주곡목은 바그너의 <뉘른베르크의 마이스터징거> 전주곡과 하이든의 내
림 D장조 교향곡, 베토벤의 <영웅> 교향곡이었다. 물론 실황녹음 이었다.
포노그라프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녹음된 실린더의 레퍼토리도 늘어나게 되자 1888
년에 coin in the slot (주크박스)가 개발되었다. 이어서 상업적인 실린더 생산이 시작됐다. 이
무렵 알프 암레인이라는 바이올리니스트의 연주로 녹음된 오베르의 오페라 <왕관의 다이아몬드>
서곡이 상업용 실린더로 발매되었다. 그러나 이때까지만 해도 한번 녹음에 1개의 실린더 밖에 제
작되지 않아 본격적인 상업화 시도는 매우 어려운 상태였다.
1889년 6월 3일, 드디어 최초의 복수 녹음이 시도됐다. 프랑크 게데의 연주를 7대의 기계로 동
시 녹음하는데 성공하였고 이로써 소량이긴 하지만 대량생산을 향한 길이 열리게 됐다.
오케스트라를 비롯한 기악에 비해 성악은 녹음하기도 쉬웠고 재생 음질도 제일 양호해서 이 분야
의 기대가 높았다. 남성 가수로서 최초 녹음의 영광을 안은 인물은 흑인 가수 조지 존슨(George
Washington Johnson)이었다. 존슨은 1891년 6월 1일에 역사적인 녹음을 했는데 그가 부른 노
래는 The Laughing Song과 The Whistling Coon이었다.
1892년 3월 18일, 최초로 녹음 복사가 행해져 마스터에서 더빙하는 방법으로 150개의 카피가
생산됐다. 초기 레코드史에서 획기적인 전환점이 만들어진 것이다. 같은 해 4월부터는 가정용 실
린더가 판매되기 시작했고 곧이어 사상 최초의 레코드 캐털로그를 워싱턴의 콜롬비아 포노그라프
사가 발행했는데 10쪽짜리였다. 이 캐털로그에 소개된 실린더는 다음과 같다.
21곡의 행진곡(필립 수자의 행진곡 포함)
13곡의 폴카
34종의 각종 녹음(다수의 국가 포함)
36개의 휘파람(존 에틀리)
13곡의 클라리넷과 피아노 연주 녹음(연주자 불명)
32곡의 여러 가지 노래
1893년에 카탈로그가 32쪽으로 불어났고, 이듬해엔 토마스 맥도널드가 세계 최초로 발명한 태엽
으로 작동되는 실린더 플레이어가 75불에 판매되기 시작했다. 상표는 콜롬비아였다. 이에 긴장한
에디슨은 콜롬비아에 못지않은 플레이어 개발에 나선 결과 1896년에 역시 태엽식 플레이어를
40달러에 내 놓았다. 이때부터 에디슨의 내셔날 포노그라프와 콜롬비아의 가격전쟁이 불붙게 되
는데 1897년엔 10불짜리 <이글스>(콜롬비아)라는 제품이 나오기에 이르렀다.
값싼 플레이어의 대량 보급과 날로 인기가 높아지는 실린더에 대한 관심으로 포노그라프 산업은
대형화되고 있었다. 그러던 가운데 1887년 9월 26일, 에밀 베를리너(Emile Berliner)라는 독일
에서 이민 온 발명 천재에 의해서 레코드의 역사는 일대 혁명을 맞게 된다. 이날 베르리너가 신
청한 특허는 에디슨의 실린더형이 아닌 평평하고 둥근 원반형의 디스크였다.
이 엄청난 발명을 처음부터 미국에 공개하지 않고 자신의 고향 독일 하노버로 먼저 가서 장난감
공장 경영자 캄멀러(Kammerer)와 라인하르트(Reinhardt)에게 자신의 아이디어를 설명하고 그
들로부터 소형 디스크와 그걸 돌릴 수 있는 핸들이 달린 장난감을 받았다. 이렇게 해서 5인치짜
리 디스크를 얹은 그라모폰을 만들고 이를 영국에 수출했고, 반응이 좋게 나타나자 비로소 미국
으로 돌아가서 1894년에 미국 그라모폰을 설립했다. 그리고 이듬해부터 사업영역을 전세계로 확
대하기 시작했다.
이 디스크는 하나의 마스터에서 여러 개의 복사가 가능한 강점을 가져 에디슨의 실린더보다 유리
했고, 나아가서는 예술가들에게 인세라는 새로운 수입을 가져다주는 계기가 됐다. 베를리너는 자
기 상표를 <그라모폰>이라고 이름 짓고 독일, 영국, 미국에 각각 상표 등록을 마쳤다. 디스크의
재질, 처음엔 셀루로이드(celluloid)를 사용했고, 1913년부터는 딱딱한 고무(hard rubber)를 사
용했다.
디스크가 처음 나왔을 때 에디슨은 자기의 실린더가 휠씬 양호한 음질을 갖고 있다는데 자신을
갖고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얼마 가지 않아서 실린더에 비해 휠씬 저렴한 가격의 디
스크가 무서운 속도로 시장을 잠식하기 시작했고 1903년이 되자 콜롬비아는 디스크만을 제작하
기로 결정했다. 실린더의 종말이 예고되고 있었다.
디스크 최초 녹음은 1895년 10월 29일, 조지 더 커스틴의 노래였다. 또한 이 해에 에드릿지 존
슨의 고안으로 태엽식 그라모폰(축음기)이 최초로 제작됐다. 3년 뒤엔 독일 하노버에 레코드 프
레스 전문 공장이 세워졌고, 여기에서 1908년까지 620만장의 레코드가 생산됐다. 이 공장의 이
름이 <도이치 그라모폰>이다.
1895년 이후의 모든 레코드는 직경이 약 7인치였지만 1901년 1월 3일에 최초로 10인치 레코드
가 발매된 이후 10인치 시대가 오랫동안 지속됐다. 또한 이때부터 오페라 가수 레코드엔 붉은
레이블이 붙여졌다. 1901년 후반에 발매된 바리톤 샬리아핀의 레코드는 붉은 레이블로서는 최초
의 베스트 셀러가 됐다.
이 시절의 명가수 중엔 프란체스코 타마뇨가 있다. 베르디가 그를 위해 <오텔로>를 썼을 만큼 뛰
어난 오페라 가수였다. 런던 그라모폰은 그에게 인세를 지불하고 레코드를 제작했는데 <오텔로>
중 아리아 ‘나를 두려워하랴’는 당시 최고의 인기를 끌었다.
1903년엔 피아니스트 라울 푸뇨와 작곡가 그리그가 피아노 곡을 녹음했고, 이듬해엔 드뷔시가
성악가 메어리 가든의 반주자로 녹음에 나섰다. 오페라 전곡이 최초로 녹음된 것은 1903년이고
작품은 베르디의 <에르나니>였다. 10인치 디스크 40장으로 제작됐다. 이때까지만 해도 디스크
시장은 그라모폰과 빅터가 양분하고 있었지만 1902년에 콜롬비아가 뛰어든다.
콜롬비아 최초 디스크는 워드(Ward)의 <시계포에서>라는 작품이었고 콜롬비아 오케스트라가 연
주했다. 1911년엔 슈베르트의 미완성 교향곡 제1악장, 1912년엔 아르트루 니키쉬가 지휘하는
베를린 필의 연주로 베토벤의 운명교향곡이 녹음됐다. 이 시기에 <레너드 트리오> <프론자레이
사중주단>이 수많은 실내악곡을 녹음해서 바야흐로 레코드 음악은 가정 취미의 으뜸으로 자리 잡
아가게 되었다.
디스크 녹음의 초창기엔 기묘한 일들이 많았다. 예를 들면, 엠마 칼베가1902년 런던에서 비제의
<카르멘>서 노래되는 ‘세기디야’를 녹음하면서 자신의 노래실력을 뽐내면서 프랑스어로 흥분하며
"자! 들어봐 주세요!"라고 외쳤는데 그게 그대로 녹음됐다. 이와는 반대로 아주 점잖은 경우도 있
다. 69세의 나이로 모차르트의 <나비는 이제 날지 못하리>를 훌륭하게 녹음한 바리톤 찰스 산토
리는 지휘자 랜든 로날드가 끝부분을 지휘하고 있을 무렵에 "이 정도면 성공이겠지"라고 중얼거
리고 있다.
1920년 11월 11일, 레코드 역사는 또 다시 일대 전환기를 맞는다. 이날 조지 윌리엄과 호레이
스 메리만은 (그라모폰 소속 녹음기사) 웨스트민스터 대성당에서 거행된 무명용사 매장식 실황을
녹음했는데 사상 최초로 전기로 작동되는 마이크로폰을 사용했다. 이를 신호로 빅터는 1925년 3
월 중순에, 콜롬비아는 3월 31일에 각각 최초의 전기녹음을 시작했다. 빅터의 첫 녹음은 <비야
비야 신의 아들 이발도>였다.
카루소의 음반들이 전기처리로 리바이블 되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이다. 레코드사상 최초의 복각
이 행해진 셈이다. 전기녹음 초창기의 역사적 명반으로는 꼬르도(Cordot)가 연주한 쇼팽의 즉흥
곡 제2번과 레오폴드 스토코프스키가 지휘한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의 녹음으로 된 생상스의
<죽음의 무도>, 차이콥스키의 <슬라브 행진곡>등을 꼽는다.
전기녹음에 의한 양질의 레코드가 쏟아져 나오자 이에 맞춰 모터를 사용하는 전기식 턴테이블도
선을 보이기 시작했지만 여전히 주인은 태엽식 축음기였다.
1948년 6월 26일, 레코드 역사는 또 한 번의 개혁기를 맞는다. 이날 뉴욕의 윌도프 아스토리아
호텔에서 사상 최초로 33과1/3회전의 장시간 레코드가 보도진에게 공개됐다. 이날이 LP의 수레
바퀴를 굴린 첫 날이었다.
LP는 콜롬비아 단독으로 시작되어 이 회사에 부와 영광을 안겨 주었다. RCA는 이듬해에 45회전
음반(EP)을 내놓아 78, 45, 33과1/3의 공존시대가 펼쳐진다. 그러나 약 1년 뒤 레코드 시장은
서서히 LP의 독주 상황으로 변했다.
기존의 SP가 최종 개량 때까지 30~12000Hz까지의 대역만 녹음과 재생할 수 있었던데 비해,
LP는 15000Hz까지 고음역대를 넓혀 소리의 명료도를 한층 향상시켰다. 게다가 뒤틀림이나 갈라
짐이 적은 신소재 덕에 표면 잡음도 엄청나게 감소해 듣기에도 훨씬 편했다.
SP 시절에는 레코드 한 장에 바늘 하나를 갈아끼어야 했는데, 새로 선보인 LP 턴테이블의 픽업
바늘은 부식의 위험도 있고 내마모성도 떨어지던 종래의 금속 대신 다이아몬드나 사파이어를 가
공한 것이어서 반영구적으로 사용할 수 있었다. 또 오디오 시스템의 발달로 사운드박스가 필요
없게 되자, 손잡이와 지지대만 간단하게 달린 훨씬 가벼운 픽업으로 대체되면서 음반을 눌러대던
압력이 획기적으로 줄었다.
콜럼비아 레코드는 발표회 후인 8월에 바로 시장에 LP를 내보냈고, 동시에 새로운 턴테이블도
필코(Philco)에 위탁해 발매했다. 다만 기존의 SP도 재생할 수 있도록 턴테이블에는 LP의 재생
속도인 33 1/3rpm 외에 78rpm 기능도 그대로 들어갔다. 이 새로운 음반과 턴테이블은 엄청난
속도로 보급되었고, 1년 뒤에는 미국의 거의 모든 음반사가 LP로 음반을 낼 정도가 되었다.
1954년, 영국의 데카는 SP음반 생산을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EMI는 이듬해에 SP에서 손을 뗐
다. 1962년엔 모든 카탈로그에서 SP는 사라졌다. 미국에선 1957년에 SP가 완전히 사라졌다. 우
리나라에서도 1959년까지는 SP가 생산됐지만 1962년에 LP에 밀려 사라졌다.
SP의 역사는 가장 화려한 명연주시대와 때를 같이한다. 오늘에 와서 새삼스레 SP가 LP나 CD로
복각되고 있는 것은 과거의 그 화려했던 연주사를 재조명하는데 의미를 두고 있다. SP를 구시대
의 유물로 방치할 수 없는 이유다.
◉ His Master's Voice
에밀 베를리너는 레코드 산업에 또 하나의 유산을 남겼다. <주인의 목소리>로 번역되는 저 유명
한 상표 His Master's Voice다.
베를리너가 1899년에 런던 사무실을 방문했을 때, 축음기 앞에 웅크리고 앉아있는 작은 개 한
마리 모습을 그린 그림을 발견했다. 테리어 강아지가 나팔(horn)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듣고 있는
그림이었다. 영국 화가 프랜시스 바루드(Francis Barraud)가 자신의 개 니퍼(Nipper)를 모델로
그린 작품이었다.
베를리너는 바루드에게 사본을 만들어달라고 요청했고 그 사본을 미국으로 가져가서 음반의 상표
로 1900년 7월 10일에 특허청에 등록했다. 빅터(Victor) 레코드 캐털로그에 이 상표가 인쇄되기
시작했다. 이후 His Master's Voice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상표 중 하나가 되었다.
그라모폰 컴퍼니 홍보 자료에 따르면 테리어 개(믹스 견) 니퍼는 원래 프랜시스의 형 마크(Mark)
의 소유였는데 그가 죽으면서 프랜시스에게 실린더 축음기와 마크의 음성이 담긴 실린더, 강아지
니퍼를 물려줬다.
프랜시스는 나팔에서 나오는 죽은 주인의 목소리를 듣는 니퍼의 모습에 주목했고, 그 장면을 캔
버스에 그렸다. 그걸 베를리너가 발견하고 상표로 삼아 크게 히트한 것. 그러나 니퍼가 새로운
발명품에서 나오는 소리에 대해서 궁금해 했다는 이야기는 사실이지만, 그가 축음기에서 죽은 주
인의 목소리를 듣고 있었다는 이야기는 그럴듯하게 꾸며진 것으로 나중에 들통 났다.
◈ 이 글을 퍼 가는 것은 좋습니다. 그러나 반드시 출처를 밝히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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