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반이야기

0
 197   10   5
  View Articles

Name  
   곽근수 
File #1  
   41vGKBLLmTL._SL500_[1].jpg (69.3 KB)   Download : 60
Subject  
   핀커스 주커만(Pinchas Zukerman) / 음악을 만들기 위해 여기에 왔습니다

  

핀커스 주커만 ... 음악을 만들기 위해 여기에 왔습니다 'Here To Make
Music'
출연 : 핀커스 주커만, 다니엘 바렌보임, 자클린느 뒤 프레 등
제작 : 크리스토퍼 뉴펜, TELDEK, LC 3706
DVD, DIGITAL SOUND, ADD MONO

"집어쳐라!" "우리는 음악을 만들기 위해 여기에 왔다. 당신의 입장료를 돌려
줄테니 당장 나가시오!" "돈은 돌려 받지 않겠다" "당신은 참으로 되먹지 못한
취미를 가졌다. 지금까지 몇 번이나 음악회에 참석했는가? 나는 수 없이 많은
곳에서 연주했다. 독일을 포함해서. 그러나 내 생애를 통해서 당신 같은 청중
은 처음이다." 청중들의 박수 ----.

핀커스 주커만이 영국 실내 관현악단(The English Chamber Orchestra)의 지
휘자로서 처음 독일 연주에 나섰을 때, 어느 연주회장에서 일어난 청중과 주커
만의 가시 돋친 대화 내용이다. 당시의 상황은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지휘자
겸 독주자로서 주커만이 무대에 등장하여 단원들과 튜닝을 하고 있을 때, 한
청중이 "집어쳐라!"고 고함을 친다. 순간 주커만이 객석을 향해 돌아서서 입장
료를 돌려 줄테니 당장 나가라고 맞대응을 한다. 단원들도 성이 나서 그 청중
에게 퇴장할 것을 손짓으로 요구하고 대부분의 청중들은 문제의 사나이에게
조용히 할 것을 요구하고 주커만에게는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음악회 실황을 담은 DVD들이 지금까지 수 없이 발표됐지만, 주커만과 청중 사
이에서 벌어진 이 설전(舌戰) 장면은 충격적이고, 게다가 처음이다. 좋은 장면
들만을 보여주기 위한 편집 태도를 과감하게 버림으로서 이런 화면을 시청자
들이 보게 됐는데, 결과적으로는 이러한 시도가 주커만에 대한 인상을 보다 강
렬한 것으로 만들고 있다. 고도의 계산이 깔린 연출의도가 시청자를 사로잡고
있는 것이다.

"음악을 만들기(연주하기) 위해 여기에 왔습니다"고 외친 주커만의 말이 이 디
스크의 타이틀로 되어 있다. 타이틀일 뿐 아니라, 제작자가 시청자를 향해서
던지는 이 디스크의 메시지(Message)이기도 하며, 이의 반영을 위해 주커만
의 예술인생을 음악을 만들어 가는 과정으로 그려 가고 있다. 제작자 뉴펜
(Christopher Nupen)은 다큐멘터리 방식을 통해서 음악을 만드는 작업(과정)
에 대한 일종의 경외(敬畏)를 담고 있다.

25세의 주커만(1973년)이 어느 당구장에서 당구를 치는 장면으로 이 디스크의
이야기는 시작된다. 카메라는 바다를 눈앞에 두고 있는 중세의 원형극장 유적
지(遺跡地)로 옮겨지고 바하의 무반주 바이얼린 소나타를 켜는 주커만의 모습
을 잡는다. 여기서부터 자료화면과 나레이터의 설명과 주커만 자신의 회고담,
관련인사들 -- 쟈크린느 뒤 프레, 다니엘 바렌보임, 월터 트렘플러(Walter
Trampler), 유제니아 주커만(Eugenia Zukerman), 레너드 번스타인
(Leonard Bernstein), 이차크 펄만, 마크 나이크루그(Marc Neikrug), 로렌스
스미스(Laqrence Smith), 영국실내관현악단 - 의 인터뷰가 다큐멘터리의 정
석(定石)대로 엮어진다.

제일 먼저 등장하는 관련인사는 주커만의 아버지 예후다 주커만이다. 이 사람
과 그의 아내는 저 악명 높은 아유슈비츠 유태인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몇명 안
되는 천운(天運)의 유태인이다. 이 부부는 폴란드 태생으로 2차대전(二次大戰)
이 끝난 직후인 1946년에 이스라엘로 이주했고, 1948년 7월 16일에 핀커스 주
커만(Pinchas Zukerman)을 낳았다. 예후다도 바이얼린을 켰으며, 어린 아들
에게 바이얼린을 가르치기도 했던 인물이다.

주커만의 바이얼린 레슨은 7살 때 시작됐는데, 10살 때는 이미 스튜디오에서
독주곡을 녹음할 정도로 빠른 진전을 보인다. 여기서 이 디스크는 그가 10살
때 녹음한 비에니아브스키의 마주르카(Mazurka)를 들려주고, 한편으로는 당
시의 사진 자료, 당시의 바이얼린 교사 등의 모습을 보여 준다. 이어서 들려주
는 연주는 12살 때 녹음한 모차르트의 협주곡 제 4번 제 1악장의 카덴자이다.
12세 소년의 것으로 믿어지지 않을 만큼 뛰어난 테크닉을 들려주는 대목인데,
여기에 오버 랩되는 음악과 그림은 12년 뒤(24세), 같은 곡의 제2악장이다. 주
커만이 영국 실내 관현악단과 협연(지휘 겸)하는 장면이다. 여기에 잇대어지
는 그림은 주커만의 생가가 있는 텔아비브의 주택촌이다. 모처럼 어린 시절로
돌아가 회고담을 펼친다. 주커만의 영어는 속도가 빠르고 발음의 명료도(明瞭
度)가 떨어져서 그의 음악처럼 명쾌하지는 않지만, 그가 매우 겸손한 성품의
소유자일 것이라는 믿음을 갖게 한다.

주커만이 美·이스라엘 문화기금(文化基金)으로 부터 장학금을 받고 미국 유학
을 떠난 것은 12세 때 였다. 뉴욕 공항에 마중 나온 사람들과 찍은 사진에서 발
견되는 그의 앳띈 모습이 인상적이다. 영어를 모르는 이 소년은 뉴욕의 마천루
(摩天樓)에 기가 질리고, 줄리아드 음악원의 치열한 학습 분위기에 당황한다.
그의 담당 교수는 천재 제조기로 유명한 이반 갈라미언 이었다. 물론, 그녀의
모습이 등장한다.

18살 때인 1966년, 주커만은 카네기홀에서 열린 [레벤트리트 국제 콩쿠르]에
도전한다. 그 결과 줄리아드의 동문(同門) 정경화와 공동 우승했다. 경연 과정
에서 정경화와 주커만의 우열(優劣)을 가릴 수 없어 두 번이나 연주를 시키는
이변을 일으켜서 큰 화제가 되었던 콩쿠르 였다. 같은 해에 그는 미국 순회 연
주회를 가졌고 그리고 이듬해, 주커만은 [스폴렛토 음악제]에 초대된다. 직업
적인 연주가로서 처음 나서는 연주 였으며, 아울러 그로서는 최초의 유럽 연
주 였다. 이 음악제는 저명한 작곡가 메노티가 주제(主宰)했는데, 음악제 기간
중 생일을 맞은 주커만을 위해서 연주자와 청중들이 [Happy birth day]를 부
르며 축하하는 장면이 인서트 된다. 서구 사람들의 여유와 인간미를 실감케 하
는 장면이다. 우리 나라의 무대 위에서 이런 상황을 기대할 수 있을는지 ----.

20세 때인  1968년, 푸에리토리코의 카잘스 음악제에 출연했다. 이어서 베네주
엘라 음악제와 BBC 방송에서 연주하고, 1969년엔 아이작 스턴의 대역(代役)
으로 뉴욕·필의 정기 연주회에 출연했다. 이 연주회에서 그는 레너드 번스타인
의 지휘로 멘델스존의 마 단조 협주곡을 연주했는데, 큰 성공을 거둬 명성은
더욱 높아 졌다. 같은 해 카네기 홀에서 다니엘 바렌보임이 지휘하는 영국실내
관현악단과 처음으로 공연(共演)했고, 이어서 로얄 페스티발 홀에 출연함으로
써 영국에 성공적으로 데뷔했다. 이것이 인연이 되어 바렌보임과의 깊은 우정
이 형성된다. 주커만은 이 때부터 런던을 주거지로 하면서 연주와 레코딩 활동
을 하게되며, 1971에 영국 실내 관현악단의 지휘대에 서게되어 지휘 활동에도
뛰어 들게 된다.

화면은  주커만과 그의 아내가 만나는 모습으로 옮겨진다. 아내의 이름은 [디
니 리치]. 그녀는 플루티스트로서 스폴렛타 음악제에서 주커만과 텔레만의
[플루트와 비올라를 위한 소나타]를 연주했다. 그리고, 사랑에 빠졌고, 1968년
에 결혼한다. 디니 리치는 그들이 처음 만난 스폴렛타의 여름을 즐겁게 회상한
다.

1969년, 주커만은 CBS 스튜디오에서 생애 첫 녹음에 들어간다(그라모폰, 멘델
스존의 협주곡 마 단조). 레너드 번스타인과 스튜디오에서 녹음결과를 모니터
하는 모습이 보이는데, 젊은 시절의 번스타인은 여전히 줄담배 모습이다.(번스
타인은 흡연이 원인이 된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다시 주커만의 회고담이 연결된다. 그는 자기의 음악에 커다란 영향을 끼친 사
람을 하이페츠(Heifetz), 아이작 스턴(Issac Stern), 파블로 카잘스(Pablo
Casals), 다니엘 바렌보임(Daniel Barenboim), 쟈클린느 뒤 프레(Jacquline
du Pre) 등이라고 소개한다. 특히, 스턴과 카잘스의 영향이 컸다고 설명한다.
여기서 화면은 주커만이 가장 절친하게 지낸 바렌보임(Daniel Barenboim),
뒤 프레와 더불어서 트리오(Trio)를 연습하는 장면을 보여 준다. 이 장면에서
젊은 대가들의 인간적·예술적 유대가 그들을 얼마나 행복하게 만들고 있는가
를 발견하게 된다.

1969년 8월, 주커만은 영국에서 개최된 South Bank Summer Music Festival
에 그의 절친한 동료들과 실내악을 연주한다. 이차크 펄만(Izhak Perlman),
주빈 메타(Zubin Metha), 뒤 프레, 바렌보임과 더불어 슈베르트의 [송어 5중
주곡]을 즐겁게 연습하는 장면을 보여 준다.(송어의 실황은 이미 DVD로 발표
된바 있다)

주로 실내악과 협주곡의 솔로이스트로 활약하던 주커만이 최초로 뉴욕에서 리
사이틀을 연다. 1971년 4월 3일, 장소는 뉴욕의 헌터 대학 어셈브리 홀(Hunter
University Assembly Hall)이었다. 주커만은 이 때를 회고하면서 "그 때는 너
무 긴장했었다. 그렇지만 않으면 더 잘 할 수 있었을 텐데 ---"라는 아쉬움을
토로한다. 주커만은 이 때의 경험에서 연주자에겐 정신적·신체적 상태가 모두
중요하다는 진실을 깨닫게 되었다고 술회한다. 여기에서 당시의 연주 실황
중, 비에니아브스키(Wieniawsky)의 [폴로네이즈 라장조]가 소개된다. 땀을
비오듯 흘리고 있지만 그의 연주는 일품이다.

1971년 5월, 코펜하겐에 연주여행을 위해 도착한다. 영국 실내 관현악단(The
English Chamber Orchestra)과 동행했다. 연주여행은 눈부신 성공을 거두었
다. 여기서 비발디의 [바다의 폭풍우] 실황이 소개된다.

코펜하겐에서 돌아 온 주커만은 멘델스존의 [8중주곡]을 연주하기 위해 연주
자들과 합류한다. 그 중의 한 연주자는 주커만을 이런 말로 평가하고 있다. "그
는 실내악 연주자로서, 독주자로서, 지휘자로서 태어난 위대한 재능을 가진 예
술가입니다." 주커만은 음악에 대한 자신의 철학을 이 다큐멘터리의 에필로그
로 토로한다. "음악은 만국(萬國)의 언어입니다. 또한, 음악은 어떤 언어보다
도 아름답습니다. 문자를 모르는 사람에게도 말할 수 있는 문자, 그것이 음악
입니다."

주커만은 오랫동안 스트라디바리우스를 빌려서 썼는데, 지금은 그가 구입한
[과르넬리(Guarneri)]를 사용하고 있다.

이 디스크는 다큐멘터리의 말미에 보너스를 제공한다. 주커만, 뒤 프레, 바렌
보임이 연주하는 베토벤의 걸작 피아노 3중주곡 [라장조 작품 70의 제1번, 유
령(幽靈)]의 전악장(全樂章)을 싣고 있는 것이다. 새삼스레, 40대의 나이에 몹
쓸 병으로  타계한 자크린느 뒤 프레에 대한 연민의 추억도 이 실황은 부른다.
화질, 음질, 모두가 무난하다. 꼭! 권하고 싶은 영상이며, 음악이다.

** 수록된 작품들
바흐 / 바이얼린 소나타 사 단조 BWV.1001 중 ADAGIO
비에니아브스키 / 마주르카
모차르트 / 바이얼린 협주곡 라장조 K.218 중 제1악장과 제2악장
코렐리 / 라 폴리아
베토벤 / 세레나데 라 장조 작품 25 중 제1악장
텔레만 / 플루트와 비올라를 위한 소나타
멘델스존 / 바이얼린 협주곡 마단조 작품 64 중 제1악장
멘델스존 / 8중주곡 내림 마장조 작품 20 중 제 1악장(발췌)
비에니아브스키 / 폴로네이즈 라장조
비에니아브스키 / 폴로네이즈 가장조
모차르트 / 교향곡 제 29번 K.201
슈만 / 소나타
비발디 / 바다의 폭풍우
베토벤 / 피아노 3중주 제7번 라장조 작품 70의1 [유령]

** 이 글을 퍼 가는 것은 좋습니다. 그러나 반드시 출처를 밝히시기 바랍니다


필뮤직
 ::: 감사합니다.  

Name
Memo
Password
 
     
Prev
   오페라 전문가들이 연주한 종교음악 Rossini-Stabat Mater

곽근수
Next
   본 윌리엄스의 교향곡 제5번

곽근수


Copyright 1999-2020 Zeroboard / skin by Zety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