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반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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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곽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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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를린의 베토벤(Beethoven in Berlin)



지휘 : 클라우디오 아바도
독창 : 세릴 스투더(소), 크리스티나 크레멘츠(소), 까뮤 카파소(메), 존 알러,
히로시 오시마(테), 프리드리히 몰스베르거(베)            
독주 : 예프게니 키신            
네레이터 : 브루노 간츠(Bruno Ganz)
합창 : RIAS 합창단
베를린 필하모니커            
제작 : 도위치 그라모폰, 435 617-2GH            
1991년 12월 31일 베를린 샤우스필하우스 신년음악회 실황 LD DIGITAL,
연주시간 78분 30초            

베토벤이 작곡한 장대한 규모의 합창과 오케스트라를 위한 작품들의 상당한
부분은 어떤 특별한 상황이나 사건에서 자극을 받은 나머지 탄생된 경우에 해
당된다. 따라서 그의 작품에서 일관되게 발견되는 [표준구(標準句, locus
classicus)] --- "고난에서 영광으로" "정의의 구현을 위한 싸움" --- 를 이해
하기 위해서는 순전히 음악적인 관점으로 접근하는 방법보다는 오히려 음악외
적(音樂外的)인 접근방법을 사용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특히, 그가 작곡한 대
규모의 관현악곡이나 성악곡이 지니고 있는 실용성과 대본(臺本)에의 충실성
을 규명하기 위해서는 음악외적인 접근이 더욱 필요한 것이다.

음악외적인 접근에서 규명의 단서를 제공하는 가장 손쉬운 자료는 베토벤에
대한 문헌들일 것이다. 베토벤의 전기(傳記), 일화집, 작품 연구논문 등이 자료
로 등장하게 되는데, 그 중에서도 전기와 일화집에 대한 기대가 상대적으로 증
대된다. 그러나, 이러한 문헌들의 상당한 부분들이 작가의 상상력이 동원되거
나 억지로 꿰어 맞춘 내용들이 많아서 사실과 상당한 거리가 있는 일종의 전
설 같은 이야기를 만드는 경우가 많은 것이 장애가 되고 있다.

안톤 신틀러(Anton Schindler, 1795∼1864)가 쓴 {베토벤의 전기}는 베토벤
의 필담첩(筆談帖) 등의 자료를 바탕으로 썼다고는 하지만 상당한 부분들이 조
작되었거나 그의 상상력에 의한 것들이어서 과연 어떤 것이 사실이고 어떤 것
이 꾸며진 것인지를 가려내는 일이 쉽지 않다는 사실을 하나의 예로 들 수 있
을 것이다. 그러나 다행스러운 것은 베토벤의 생애에 있어서 흔히 [영웅적 10
년(Heroic Decade)]이라고(어떤 사람들은 이 시대를 [황금의 시대]로 부르기
도 한다)  불려지는 1802년부터 1813년까지의 기록들은 비교적 진실과 가깝게
기술되고 있어서 그의 생애와 작품을 연구하는데 매우 소중한 단서를 제공하
고 있다는 사실이다.

1802년, 베토벤은 악화되는 중이염과 그로 인해서 외부의 소리와 점차 단절되
어 가는 불행에 몹시 시달리고 있었다. 사람들과의 교제도 소원해지고 그에 따
라 성격마저 더 괴팍스럽게 변해가고 있었다. 이 해에도 그는 하일리겐스타트
로 갔다. 1800년부터 매년 여름이면 찾았던 휴양지 였다. 그러나, 이 때의 그
의 심경은 참으로 암담한 것이었다. 이렇게 살아갈 바에야 죽는 것이 나을 것
이라고 생각했다. 베토벤은 10월 6일, 비통한 심정으로 유서를 썼다.

"나의 아우 카를과 요한 베토벤에게 나의 사후(死後)에 읽혀져 이행되기 위하
여 ----. 내가 심술궂고 고집이 세고 또한 사람을 멀리 한다고 너희들은 생각
하고 말하기도 하지만 무슨 그런 잘못을 범하고 있는가. 내가 그런 인간으로
보이는 숨은 원인을 너희들은 모르고 있다. 어릴 적부터 나의 마음과 정신은
친절하고 다정한 감정으로 넘쳐 있었고 훌륭한 행위를 행하고자 원하고 있었
다. 그런데 지금 와서 돌아보니 6년간이나 절망적인 병에 걸린 데다 무식한 의
사 때문에 더 한층 병이 악화하여 다음 해야, 또 다음 해야 낳겠지 하는 희망
에 현혹되어 왔으나 마침내 불치의 병이라는 단안을 내리지 않을 수 없게 되었
다.(이를 고치려면 몇 년이 더 걸리던가 혹은 그래도 고칠 수 없게 될는지 모른
다). 열렬하고 쾌활한 천성으로 태어나 사교도 좋아하는 성질이었어. 나 일찍
부터 고독을 강요받아 쓸쓸한 생활을 보내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래서 때로
는 이런 생각을 깡그리 잊어버리려 하였으나  자기의 귀가 나쁘다는 이중의 슬
픈 경험으로 해서 언제나 무참하게 좌절당하지 않으면 안되었던 것이다. 나는
귀머거리이니 좀더 큰 소리를 해달라거나 외쳐달라거나 하는 말을 남에게 할
수는 없었다. 아아! 나의 경우 남보다 더 완전해야 할 하나의 감각이 병들어 있
다는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말인가. 옛날의 나는 가장 완전한 상태
로서 그 감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나와 같은 직업을 가진 사람에게서도
좀체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완전한 것 이었다.

아아! 나는 견딜 수가 없기 때문에 기꺼이 너희들과 어울려야 할 때에도 그냥
망설이기만 했던 것을 용서해다오. 그 때문에 내가 오해를 받고 있을지도 모르
므로 나의 불행은 이중으로 슬픈 것이 되고 말았다. 왜냐하면 남들과 어울려
서 기분전환을 한다던가 세련된 교제나 사상의 교환 같은 것을 할 수 없기 때
문인 것이다. 꼭 필요한 때 이외에는 될 수 있는 대로 사람들 앞에 나가지 않으
려 하고 있다. 나는 유형(流刑)을 당하고 있는 사람처럼 살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사람들이 모인 곳에 나갈 때는 나 자신의 불구가 발각되지나 않을까
하는 두려움 때문에 이상한 공포에 사로잡히게 되는 것이다. 이 때문에 나는
이 반년 동안을 시골에서 보내며 될 수 있는 대로 귀를 사용하지 말라는 현명
한 의사의 지시에 따르고 있다. 이 일은 현재의 나의 기분과도 잘 조화되어 있
다. 그러나 사교를 원하는 마음에 쫓겨 의사의 지시를 어긴 적이 없었던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내 곁에 서 있는 사람은 멀리서 연주하는 플루트를 듣고 있
는데 내게는 아무 것도 들리지 않는다던가 또 목동의 노래를 듣고 있는데 그것
마저 내게는 전혀 들리지 않을 때는 이보다 더한 굴욕은 없는 것이다. 이런 사
정으로 해서 나는 거의 절망 상태에 빠진 채 하마터면 자살을 기도할 뻔한 일
까지 있었다.

-- 나를 만류한 것은 예술뿐이었다. 자신에게 부과돼 있다고 생각되는 모든 창
작을 완성하기 전에는 이 세상을 떠날 수 없다고 생각했었다. 이 때문에 나는
이 비참한 생존을 견뎌낼 수 있었던 것이다. -- 나는 너무나도 비참하여 뭔가
급격한 변화를 만나기만해도 최상의 상태에서 최악의 상태로 떨어지는, 자극
받기 쉬운 몸인 것이다. 인내를 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때문에 나는
그대로 실천해 왔었다. 냉혹한 운명의 실을 끊어버리는 순간까지 이 결심에 변
화를 가져오지 않도록 끝까지 버틸 것을 원하고 있다. 지금보다  아질는지도
모르고 혹은 그렇지 않을지도 모르겠으나 각오는 되어 있다.

28세에 벌써 철학자가 되지 않을 수가 없다는 것은  아아! 수월한 일이 아니
다. 다른 어느 누구보다도 예술가에 있어서는 더한층 쉬운 일이 아니다. 신은
내 마음 속 깊은 곳까지 어람(御覽)하시고, 그것을 알고 계시고, 인간애와 선행
을 구하는 원망(願望)이 거기에 깃들어 있는 것을 알고 계신다. 아아! 사람들
은 언젠가 여기에 기록된 말을 읽고 얼마나 나를 냉대했던가를 깨닫게 될 것이
다. 또 자연의 모든 장해를 받으면서도 거룩한 예술가와 인간의 행렬에 들기
위하여 최선을 다한 자가 있었다는 것을 알고, 불행한 자는 스스로를 위로하면
서 자기와 동류의 사람이 한 사람 존재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너희들, 나의 카를과 요한이여, 내가 죽거든 곧, 만약 슈미트 박사가 건재한다
면 나의 이름 아래 나의 병상에 대한 설명을 요구하여 그 서류를 나의 병력서
(病歷書)에 첨부해다오. 그렇게 하면 나의 사후에 적어도 나 아닌 다른 사람과
나와는 할 수 있을 때까지 화해를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와 동시에 너희들
두 사람이 나의 얼마 안 되는 재산(재산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상속자
라는 것을 선언한다. 그것을 공평하게 나누어 가지고 서로 도와다오. 너희들
이 나를 거역한데 대해서는 이미 알고 있듯이 오랜 옛날에 용서했다. 아우 카
를에게는 특히 최근 나에게 대해준 친절에 감사한다. 내가 바라는 것은 너희들
이 나보다 훨씬 행복하게 번거러움 없는 생활을 보내 달라는 것이다. 너희들
의 아이들에게는 덕행을 권한다. 행복을 가져오게 하는 것은 오직 그것뿐이
다. 금전이 아니다. 역경에 있는 나를 고무한 것은 덕행이었다고 나는 경험을
통해 말하고자 한다. 자살을 가지고 내 생애를 끝내지 않았던 것은 나의 예술
의 덕분이었을 뿐 아니라 덕행의 덕분이었다.

다들 잘 있거라. 서로들 사랑해가며 살아가 다오. --- 모든 우인, 특히 리히노
프스키公과 슈미트 박사에게 감사를 드린다.--- 公에게서 얻은 악기는 너희들
중의 어느 누군가가 잘 보관하고 그 때문에 다투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무
슨 유익한 일에 도움이 될 때는 곧 팔아버려도 좋다. 무덤 밑에 있다 하더라도
너희들에게 도움이 되어줄 수 있다면 이 이상 기쁜 일이 없다. --- 기꺼이 나
는 죽음을 향해 걸음을 재촉하리라. --- 나의 예술적 전능력을 발휘할 기회가
아직도 있는 동안에 죽음이 닥쳐온다면 나의 운명이 아무리 무자비하다 할지
라도 그 죽음은 아직도 이른 죽음이 될 것이다. 좀더 죽음이 늦게 닥쳐올 것을
원하고 있다. ---- 그러나, 그 경우에 있어서도 나는 만족 할 수가 있다. 한없
는 고통 상태로부터 죽음이 나를 해방시켜주는 것이 될 터이니까. 언제든지 오
라. 나는 용감하게 그를 맞이하리라. 잘들 있거라. 내가 죽은 뒤도 나를 잊지말
아다오. 너희들이 행복해 지기를 빌어온 나이기에 잊지말아 달라고 부탁할 자
격이 있는 것이다. 그렇게 돼 주기를 바란다.
                                                                루드비히 판 베토벤

그러나, 베토벤은 자살을 결행하지는 않았다. 신(神)이 자기에게 베풀어 준 예
술적 재능에 대한 반역을 할 수 없음이었다. 그리하여, 그는 심기일전한다. 그
리고, 그의 {영웅시대}를 여는 것이다. 베토벤의 영웅시대는 프랑스 혁명의 발
발로 온 유럽이 새로운 의식에 눈을 뜨는 역사의 대전환이 이루어지는 시대였
다. 이러한 시대상황의 변화는 기존의 철학과 예술에 대한 강렬한 반발을 불러
일으키게 되었다. 이 무렵, 베토벤의 이름은 유럽 전역에 서서히 알려지기 시
작하고 있었다. 또한 그의 작품 속에는 과거의 음악에서 발견되지 않았던 새로
운 메시지(Message)가 등장하기 시작한다. 이를테면 그의 [표준구]의 등장
인 것인데, 그것은 "자유와 정의를 위한 투쟁" 이었던 것이다.

한바탕 휘몰아친 정치적 변혁의 폭풍이 사그라지자 유럽에서는 [훌륭한 통치
자]에 대한 이상형(理想型)이 부각되기 시작했다. 그것은 초기 계몽시대에 싹
텄던 지도자상과 유사한 것이었는데, {프레데릭 대왕, Frederick The
Great)}, 러시아의 {에카테리나 女帝}, 오스트리아의 {프란츠 요제프 2세} 같
은 인물이 이 시대의 계몽전제군주(啓蒙專制君主)였던 것이다.

베토벤의 작품에 등장하는 [에그몬트]나 [플로레스탄]은 이러한 시대적 배경
과 깊은 관련을 맺고 있다. 그들은 한결같이 불의에 대항해서 싸우는 투사의
모습을 갖추고 있다. 베토벤이 그가 생각한 이상적인 지배자에게 바친 첫 번째
의 작품은 오스트리아의 요제프 2세 황제를 추모하기 위해 본(Bonn)에서 쓴
칸타타였다(요제프 2세 장송 칸타타). 그리고, 20년 뒤, 괴테의 희곡 [에그몬
트]를 위한 음악을 썼는데 이것은 순전히 애국적인 아이디어에서 만들어진 작
품이었다.

**  에그몬트
시대적 배경은 스페인의 압정에서 벗어나 독립을 찾으려는 16세기의 네덜란드
이다. 플랑드르의 영주 에그몬트 백작은 네덜란드 독립운동의 지도자인데, 그
의 투쟁을 저지하기 위해 스페인 국왕은 알바公을 네덜란드에 파견한다. 에그
몬트는 알바공에게 잡히고 사형 선고를 받는다. 한편, 에그몬트의 애인 클레르
헨은 필사적인 노력으로 그를 구출하려고 하지만 끝내 실패로 돌아가자 극약
을 마시고 자결한다. 그런 뒤, 클레르헨의 환영(幻影)이 옥에 갇힌 에그몬트에
게 나타나 용기를 북돋아 준다. 이에 힘을 얻은 에그몬트는 당당한 걸음으로
형장으로 나아간다.

에그몬트는 역사상 실존했던 인물이다. 라모랄 에그몬트(Lamoral Egmont)
는 1522년 11월 18일에 출생하여 1568년 6월 5일에 처형된 네덜란드 귀족 출신
의 군인이며 정치가 였다. 1557년부터 1558년에 걸친 프랑스와 스페인간의 전
쟁에 참가하여 용맹을 떨쳤고, 그후 네덜란드에서의 개신교의 포교와 네덜란
드 독립투쟁에 나서 1561년부터 1564년에 걸쳐서 빌헬름 1세, 호른 등과 함께
스페인 군에 항거했다. 그러나, 1567년, 알바공이 네덜란드 총독으로 오자 에
그몬트는 호른과 함께 체포되어 다음 해 처형됐다.

이 작품의 마지막 막에서 에그몬트 백작은 클레르헨의 환영으로부터 격려를
받고 [명예로운 죽음]을 맞기 위해 형장으로 걸어가는 장면이 등장한다. 바로
이 대목에서 베토벤은 장송 행진곡이 아닌 위대한 [승리의 교향곡]을 쓰고 있
다. 정의에 대한, 그리고 불의에 항거하는 영웅에게 바치는 그의 찬가였던 것
이다. 또한, 이 작품의 배경엔 프랑스군이 빈(Wien)에 두 번째로 침공한 1809
년의 시대적 상황이 존재한다. 베토벤이 에그몬트의 죽음을 [승리]로 표현함
으로써 당시 빈에 진주해 있는 프랑스군에 대한 오스트리아 국민의 사기를 북
돋아 주었던 것이다.

** 레오노레 서곡 제 3번
조국의 독립을 위해서 싸우다 압제자의 손에 의해서 처형되는 에그몬트 스토
리는 베토벤의 유일한 오페라 {피델리오}와도 일맥상통한다. 피델리오
(Fidelio) 주제 역시 "자유를 위해 압제자에게 항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피
델리오는 대본이 극적 긴장이라는 측면에서 상당한 취약성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베토벤이 에그몬트와 피델리오를 선택한 이유는 이들 대본 속에 그
가 원했던 도덕률(道德律)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자유를 위한 투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무대는 18세기 중엽의 스페인, 세빌리아 근처의 국립 감옥이다. 이 감옥의 전
옥(典獄) 피짜로에 의해서 억울하게 갇혀있는 플로레스탄을 구출하기 위해서
그의 아내인 피델리오가 남장을 하고 간수(看守)를 하고 있다. 어느 날 국무장
관이 시찰을 오게되자 피짜로는 플로레스탄을 죽이기로 작정한다. 피짜로가
플로레스탄을 처형하려고 할 때 피델리오가 권총을 들고 이를 제지하는데 이
순간 국무장관의 도착을 알리는 신호나팔 소리가 들린다. 그리하여 플로레스
탄은 아내의 힘으로 구출되고 국무장관은 피델리오의 용기를 찬양한다.

베토벤은 이 오페라를 위해서 4곡의 서곡을 썼다.(베토벤 연구가 노테봄은 5곡
이라고 주장). 그런데 이들 작품의 작곡 순서가 다소 상이하다.

** 아! 불실한 사람이여(Ah! Perpido)
베토벤이 고향을 떠나 빈에 도착한 직후 당시 빈 궁정악장이었던 살리에리
(Antonio Salieri)에게 사사하게 되는데, 이 때 살리에리는 베토벤에게 이탈리
아 오페라와 성악곡에 관해서 가르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배움의 결과로
나타난 것이 [아! 불실한 사람이여]이다(1796년). 시는 대본작가의 거장인 메
타스타시오(Pietro Metastasio)의 것인데, 끊임없이 불평하고 비난하기만 하
는 실망스러운 연인으로부터 해방되거나 아니면 화해하게 되기를 간절하게 기
원하는 내용이다. 베토벤의 고전적 양식미(樣式美)가 돋보이는 성악곡으로 평
가된다. 악곡의 구성은 세나 scena)와 아리아의 2부 구성이다.
  
<세나>
아, 믿을 수 없고, 마음이 뒤틀리고, 냉혹한 배반자 당신이여.
이것이 진정 당신의 마지막 작별인가요?
그보다 더 참혹한 횡포가 어디 있겠어요.
가시오! 악인이여! 가시오! 나에게서 떠나시오!
허지만, 당신은 神의 격노에선 도망가지 못할 것이오.
하늘에 정의와 자비가 있다면 당신을 응징 할 것이오.
당신이 어디에 있든지 유령처럼 당신을 좇을 것이오.
그리고, 나의 복수를 보기 위해 나도 거기에 있을 것이고
그리고 얼마나 내가 기뻐할는지!
아! 안되오! 오! 안되오! 복수의 신이시여,
그의 영혼을 구원해 주시고 대신 나를 치십시요.
나는 그를 위해서 살았고, 그를 위해서 죽겠습니다.

<아리아>
제발 나에게 작별을 고하지 마세요.
당신을 여의고 내가 무슨 일인들 하겠소.
내가 얼마나 당신을 사랑하는지 당신은 잘 알고 있지요.
나는 슬픔으로 죽을 것이오.
너 배반자! 내가 죽기를 원하는가?
나를 위한 얼마의 자비도 없단 말이오.
무엇 때문에 당신을 이토록 열애하는 나를 거칠게 대하오.
그토록 비탄에 젖은 나에게 자비를 줄 수 없나요.

**  합창 환상곡(Choral Fantasy)
1808년에 작곡된 매우 특이한 형식의 작품이다. 독주 피아노로 연주되는 환상
곡, 1794년에 쓴 가곡 [사랑의 대답]을 주제로 삼은 변주곡의 연속, 피아노 협
주곡, 피아노·합창·관현악을 위한 칸타타로 조합되어 있으니 과연 특이한 형식
의 작품인 것이다. 베토벤은 이 작품에서 후일 탄생 될 [합창 교향곡]을 예고
하고 있는 것이다. 이 작품은 1808년 12월 22일에 초연 됐는데, 초연 당일까지
도 모두(冒頭)의 피아노 환상곡을 쓰지 않고 있다가 연주직전에 공연장에서 썼
다고 전해진다. 이날 밤 연주 된 그의 작품은 교향곡 제 5번과 6번, 미사 다 장
조의 3개 악장, 코리올란 서곡, 피아노 협주곡 제 4번, 합창 환상곡 등 매머드
프로그램이었다. 합창에 붙여진 시는 곡이 완성 된 이후에 결정된 것인데 쿠프
너(Christoph Kuffner, 1780∼1846)의 것이라고 베토벤의 제자 체르니가 주장
했지만 확인 할 길은 없다. 앞에서도 기술한 것처럼 이 작품과 제 9번 교향곡
은 조성(調性)이나 주제의 성격, 주제와 변주, 행진곡 풍의 악구 삽입이라는 측
면에서 밀접한 연관성을 보여준다.
       서로 껴안으라,
       겸손과 사랑스러움은 우리들 삶의 화음처럼 울린다.
       아름다운 분별력은 봄꽃들을 영원히 피워 올린다.

       평화와 기쁨이 물결의 유희처럼 즐겁게 흐르고
       그리하여 갈등과 적의는 의기양양함으로 변하리라.

       이상한 소리가 흔들리고, 그것이 영감을 불러 올 때,
       어둠과 혼란은 광명으로 변하고, 영광이 나타나리라.

       행복한 사람은 더없는 기쁨과 환희를 누리리라.
       그리하여 봄날에 예술의 아들은 환희의 빛을 뿌리리라.

      마음속에는 새롭고 사랑스러운 것들이 꽃피워져 위대함으로 가득 차리라,
      우리들 영혼이 높이높이 솟아오를 때, 영혼의 합창은 영원히 울리리라.

       그리하여, 너 사랑스러운 영혼이여,
       저 아름다운 예술의 선물을 기쁘게 받으라.
       사랑과 힘이 서로 손을 잡을 때, 신의 은총이 우리에게 내리리라.

이 디스크에 수록된 연주 실황은 베를린 필이 전통적으로 시행하고 있는 [新
年 前夜 음악회(NEW YEAR'S EVE CONCERT)]의 1991년版 이다. 아바도가
베를린 필하모니커의 예술감독으로 취임하고 첫 번째의 공식 연주를 1989년
12월 16일에 했으니 그로서는 이 악단에 와서 두 번으로 지휘한 신년 음악회
인 셈이다. 베토벤의 작품들만을 이 음악회의 레퍼토리로 삼은 점이 이채롭
고 "자유와 정의를 위한 투쟁"을 주제로 삼은 에그몬트, 피델리오, "사랑의
힘"을 주제로 삼은 아! 불실한 사람이여와 합창 환상곡을 선곡한 아이디어가
예사롭지 않게 느껴진다. 1989년에 서독과 동독이 하나의 독일로 재통일되고 2
년이 지난 싯점인 1991년 12월 31일의 이 음악회에서 이러한 작품이 연주된 것
은 깊은 의미가 있는 것일 게다. 게다가 공연장도 베를린 필하모니커 홀이 아
닌 과거의 동독에 있었던 샤우스필하우스를 택하고 있는 사실도 역시 상징성
이 크다 하겠다. 독일 통일 비용의 엄청난 부담으로 독일 경제가 휘청거리는
상황에서 열린 이 음악회는 뚜렷한 주제를 설정 할 필요가 있었을 것이고, 그
결과 베토벤의 이 같은 작품들이 선정되었다고 보아지는 것이다.

클라우디오 아바도는 시종일관 암보(暗譜)로 지휘하고 있다. 레오노레 서곡
제 3번과 합창 환상곡의 경우는 그렇다 하더라도 [에그몬트 극음악](연주 시
간 31분 27초)과 [아! 불실한 사람이여](18분 44초)를 모두 암보로 지휘한다
는 사실은 경이롭다. 결과적으로 총 연주시간 78분 30초를 암보로 지휘했으니
그의 비범한 재능에 대한 찬탄(讚嘆)은 물론이고, 매 연주에 대한 그의 성실하
고 치밀한 연구와 준비에 대하여 존경의 염(念)을 갖지 않을 수 없다. 그는 민
주적인 행정력을 통해 단원들의 사랑을 받고 있고, 이처럼 성실하고도 천재적
인 재능을 통해서 청중의 사랑을 받고 있으니 정녕 {뮤즈의 아들}인 셈이다.

** 프로필
클라우디오 아바도(CLAUDIO ABBADO)
1933년, 밀라노에서  출생했다. 밀라노와 빈에서 공부하였고, 1960년, 스칼라
콘서트에서 지휘자로 데뷔하였다. 1963년, 미트로폴로스 지휘자 콩쿠르에서
우승했고, 빈 필하모니커(Wiener Philharmoniker) 지휘자, 스칼라 가극장 음
악감독, 1986년, 빈 국립 가극장 음악감독, 그리고 1989년, 카라얀의 후임으로
베를린 필하모니커의 음악감독에 취임하여  1990년을 가장 화려하게 장식했
던 지휘자였다. 아바도와 카라얀이 서로 다른 점 가운데, 카라얀이 대중성(大
衆性)확보에서 놀라운 적응력을 보인데 비해 아바도는 대중성이 결여된 지휘
자라는 평을 받고 있다. 그의 레퍼터리가 대단히 보수적이라는 것이 이를 증명
한다. 그러나 최근에 와서 그의 레퍼토리 선택이 청중을 많이 의식하고 있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그에 대한 인상은 "냉철하고 지적(知的)이
고, 비(非)대중적 지휘자"라는 것이라는 것에 머물고 있는 인상이다. 게다가 아
바도는 빈 국립 가극장의 음악감독도 계속할 계획으로 있어서 베를린 필하모
니커에만 몰두 할 수 없는 형편이다. 그런데도 베를린·필이 그를 음악 감독으
로 영입(迎入)한 것은 그가 대단히 뛰어난 오케스트라 조련사(Orchestra
Trainer)라는 사실이다. 역대(歷代) 베를린·필의 지휘자 중 프루트벵글러
(W.Frutw ngler)는 신격화(神格化) 되었고, 카라얀은 자신의 연출에서 뛰어난
기량을 발휘했는데, 아바도는 과연 어떤 스타일로 자신을 형상화시킬는지 세
계 음악계는 그에게 시선을 당분간 집중시킬 것으로 보인다. 그가 베를린·필
에 취임한 이후 발표된 2장의 CD와 LD, 즉 [아바도의 베를린 원년(元年)]과
여기에 소개하는 [1991년 신년 음악회]는 이런 의미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 음반인 것이다.

베를린·필과의 디스크 중에서 컴펙트 디스크는(CD) 다음과 같다.
◆ 셀로모 민츠와 공연(共演)한 브람스의 바이얼린 협주곡 라장조
◆ 야나체크의 가곡집 {잃어버린 남자의 일기}
◆ 베를린의 베토벤  DG 435 617-2GH
◆ 말러 / 교향곡 제 1번 POLG-1202

** 세릴 스투더(Cheryl Studer)
미국 미시간주 미들랜드(Midland)에서 출생했다. 어린 시절엔 피아노와 비올
라를 공부했고, 12세 때 성악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탱글우드의 버크셔 음악
센터(Berkshire Music Center)에서는 장학금을 받고 3년간 공부했다. 1978
년, 메트로폴리탄 경연대회에서 우승했고, 이 때 빈(Wien)으로 유학하여 빈 국
립 음악원에서 공부했다. 이어서 그녀는 슈베르트 협회 경연대회의 가곡 연주
와 가곡 해설 부문에서 우승의 영광을 안았다. 이를 계기로 그의 스승이자 저
명한 성악가인 한스 호터(Hans Hotter)와 이름가르트 지프리트(Irmgard
Seefried)는 그녀가 유럽에 남아서 활동하기를 권유한다. 그리하여 그녀는
1980년대에 다름스타트와 바바리아 국립 오페라에서 노래했고, 1984년부터
1986년까지는 베를린의 도이치 오페라의 정단원으로 활약했다. 그리고 1985년
부터 바이로이트에 정기적으로 출연했으며, 주제페 시노폴리의 지휘로 상연
된 바이로이트의 [탄호이저]에서 엘리자베스역(役)을 맡아 센세이셔널한 반응
을 불러 일으켰다.

한편, 콘서트와 리사이틀 가수로서의 활약도 눈부신데, 잘츠부르크 음악제 등
에서 갈채를 받았고, 메트로폴리탄에는 1988년에 [카르멘]의 미카엘라역으로
데뷔하였다.

스투더의 주요 음반들
◆ 바그너 : 탄호이저. 지휘 / 주제페 시노폴리  DG 427 625-2
◆ 슈베르트 : 필라브라스. 지휘 / 클라우디오 아바도  DG 427 341-2
◆ 바그너 : 신들의 멸망.  지휘 / 제임스 레바인  DG 429 385-2
◆ 슈베르트 : 가곡집  피아노 / 어윈 게이지(Irwin Gage)  DG 431 7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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