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반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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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곽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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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클라우디오 아바도의 베를린 원년(元年)



*** DVD
베를린의 아바도 / 원년(元年) Abado in Berlin / The First Year            
수록 작품 : 볼프강 림 / 황혼(黃昏) * 발췌, 리스트 / 연주회용 연습곡 제 2
번  * 발췌, 브람스 / 교향곡 제2번  * 발췌, 브람스 / 교향곡 제1번 * 발췌, 차
이코프스키 / 피아노 협주곡 제1번의 제1악장, 모차르트 / 피아노 협주곡 다단
조 K.491 * 발췌, 말러 / 교향곡 제1번 라장조 [巨人]  * 전곡            
제작 : Cami Video 1991년  발매 : 도위치 그라모폰            
연주시간 : 115분 18초

"카라얀이 서거했다"

이 디스크는 카라얀의 사망을 전했던 당시 신문의 헤드라인과 TV 뉴스를 보여
주면서 시작된다. 짙은 구름이 낮게 깔린 잘츠부르크의 낮 12시. 금세기의 가
장 위대한 지휘자 중의 한 사람인 카라얀이 그의 죽음과 투쟁하고 있던 시각이
었다. 그는 심장경련으로 고생해 왔었다. 부인 엘리에테가 주치의 스페히틀러
를 잘츠부르크 근교 아니프의 카라얀 별장으로 급히 불렀으나 모든 일이 허사
였다. 하오 1시 30분께 지휘자의 심장은 완전히 멈추었다. 곧 통신사의 보도가
세상으로 타전됐다.

모차르트와 같은 고향 잘츠부르크에서 태어나 모차르트에 버금가는 명예를 누
린 지휘의 제왕 카라얀은 1989년 7월 16일, 81년의 생애를 마감했다. 누구와도
비견될 수 없을 정도로 고전음악을 형상화시킨 뛰어난 지휘자, 언론 매체의 스
타 연출자, 축제의 창설자와 감독, 음악 사업가, 스피드狂, 엄청난 부(富)의 축
적자(蓄積者) 등등 수많은 이름으로 불려진 카라얀이 별세함으로서 세계의 이
목은 "과연 누가 그의 후임이 될 것인가?"에 쏠리게 되었다.

1989년 10월 8일, 카라얀이 별세한지 약 3개월이 지난 이날,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단원 총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 카라얀의 후임이자 베를린·필의
제 5대 수석지휘자(首席指揮者)로 이탈리아 출신의 지휘자 클라우디오 아라우
(Claudio Arrau)가 선출되었다. 이는 107년간에 걸친 베를린·필 역사상 최초
로 민주적인 방법으로 지휘자가 선임되는 순간이었다. 당시, 아라우는 빈 국
립 가극장의 예술감독으로 있었다.

이어서, 화면은 낙서 투성이의 베를린 장벽(障壁)을 보여주고 그 장벽이 1989
년 11월에 철폐되는 모습이 또한 뒤를 잇는다. 아바도의 베를린 취임과 베를
린 장벽의 붕괴, 이 두 가지 사건은 한 시대에서 다른 한 시대로 옮겨가는 [시
대의 전환]을 상징하는 것으로 클로즈업된다.

베를린에 도착한 첫날, 장차 그가 머물게될 지휘자 저택에 안내된다. 저택의 2
층에서 내려다보이는 전망은 길게 늘어선 베를린 장벽이고 그것을 징으로 쪼
는 젊은이들이 가득 하다. 아바도의 취임과 장벽의 붕괴가 한번 더 오버 랩
(over-lap) 됨으로서 달라진 시대를 또다시 강조한다.

첫 리허설(rehearsal)이 끝나고 단원들의 반응이 체크된다. "지휘자와 단원은
사랑에 빠진 관계와 같다. 좋아하는 지휘자와 연주를 함께하게되니 행복하
다."  "카라얀과 아바도는 180도 다르다. 우리가 과연 그를 잘 선택했는지는 더
시간을 두고 보아야 할 것이다." 반응은 이렇게 적극파와 신중파로 갈린다. 그
림은 기자회견장의 아바도로 바뀐다. '카라얀의 후임으로 결정됐다는 통보를
받았을 때의 소감은?' "베를린·필의 수석지휘자로 선임됐다는 전화를 받고 2분
간이나 숨을 쉴 수 없었다."

'지휘자는 오케스트라에서 제 1의 권력자라고 생각하는가?' "아니다. 나는 뛰
어난 주자(奏者)들과 연주를 하는 것이 기쁠 뿐이다. 세계 최고의 베를린·필과
빈·필을 지휘하는 것은 영예로운 일이다. 나는 {위대한 지휘자} {거장적 지휘
자}라는 표현을 좋아하지 않는다." "베를린 장벽이 붕괴된 때 내가 지휘자로 선
임된 것은 행운이다." "단원 한 사람 한 사람과는 연인과 같은 특별한 관계가
필요하다. 베를린·필은 솔리스트로서의 역량을 갖춘 주자들이 대부분이므로
그들과의 협력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아바도의 기자회견을 통해서 [군림하
는 지휘자상]으로부터의 자유가 선언된 셈이다.

다시 단원들의 의견이 편집돼서 등장한다. '이제 갈등의 시대는 지나갔다.' '나
는 카라얀의 반대파 였다. 그러나, 그는 사람을 끄는 독특한 힘이 있었다. 그러
던 그가 자비네 마이어 사건으로 힘을 잃기 시작하였다.' 여기서 화면은 카라
얀의 시대를 점검(點檢)하기 시작한다. [카라얀과 단원들의 불화는 1980년대
부터 시작됐다. 젊은 클라리넷 주자 자비네 마이어양을 입단시키려는 카라얀
의 시도를 단원들이 거절함으로써 불화는 시작되었다. 전통적으로 베를린·필
의 신입단원은 기존단원들의 민주적 결정에 의해서 입단 여부가 결정되어 왔
는데 이러한 단원들의 권리를 카라얀이 침해했기 때문이다. 단원들의 이 권리
는 나치 치하에서도 침해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이 일로 카라얀은 격노
(激怒)하였고 그의 사퇴가 고려되기에 이를 정도로 사태가 험악했었다.]

필하모니 홀 무대에서 제리 슈츠양(東베를린 출신 소녀 피아니스트, 프라하 콩
쿠르 1위)의 오디션을 치르는 장면이 보여진다. 그의 첫 연주회의 협연자가 동
베를린 출신이라는 사실도 매우 상징적이다. 한편, 아라우는 리허설을 끝낸
뒤 "베를린·필은 하나의 거대한 혼(魂)이다. 나는 그들에게서 프루트벵글러의
힘을 느낀다"고 토로한다. 오늘의 베를린·필이 있기까지 이들을 조련한 앞 지
휘자들을 아라우는 의식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이어서 한 음악평론가는 "오
케스트라는 때때로 독재자를 필요로 한다. 그러나, 이제 프루트벵글러나 카라
얀 같은 독재의 시대는 지나갔다."고 단언한다.

이윽고 그림은 아바도의 첫 연주회가 열리는 필하모니 홀의 전면을 보여주면
서 미쳐 회원권을 구하지 못한 사람들이 '표를 파세요'라고 쓴 쪽지를 들고 서
성거리는 모습을 일별 한다. 그러나 곧 그림이 바뀌면서 동베를린에 있는 제리
의 집이다. 제리의 선생은 "동독에서는 젊은 연주가들이 오케스트라와 협연하
는 기회가 좀처럼 주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제리가 아바도와 협연함으로써 동
독에서도 상황이 달라질 것이다. 모든 장애가 갑자기 사라졌다."고 말한다.

[아침의 클라식]이라는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하여 인터뷰하는 모습으로 바
뀐다. "5년전 런던에서 브람스의 교향곡 전곡을 베를린·필과 녹음했다. 그것이
이 악단이 내게 관심을 보인 최초의 일이었다." "7살 때, 형을 따라서 스칼라 극
장에 가서 지휘자 과르넬리의 지휘를 보고 감명 받고 장차 지휘자가 되기로 결
심했다. 그후, 밀라노 음악학교에서 공부했고, 빈 아카데미에서는 주빈 메타
와 함께 공부했다. 졸업후 잠시 [빈 악우협회 합창단]에 들어간 일이 있었는
데 지휘의 거장들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미국 탱글우드에서 [쿠세비츠키 상]
을 받았다." "음악적 영향을 가장 크게 받은 것은 가족들로부터인데, 나의 어머
니는 피아노를 연주하셨고 창작력이 매우 풍부한 분이었다. 아버지는 음악학
에 뛰어난 분이었다."

화면이 바뀌면서 26년만에 철수되는 동서냉전의 상징인 베를린 검문소
(CHECK POINT CHARLIE)를 보여준다. 동서독일이 통일을 성취한 것이다.
여기에 제리의 연주를 지도하는 아바도의 모습이 오버랩 된다.

취임한지 1개월 된 아바도가 계약서에 정식으로 사인했다는 TV뉴스가 인서트
된다. 이 계약서엔 수석지휘자와 단원의 예술적 권리가 동등하다는 평등조항
이 명문화 됐다는 사실이 단원들에게 통보된다. 음악 저널리스트 볼프강 브르
데와 단원들이 과거와 현재를 비교하는 대담을 벌인다. '카라얀은 많은 것을
요구했고 연습은 매우 엄격했다. 그는 작품 모두를 설명했으며 단원들에게 압
박을 가했다. 그는 단원들이 자기에게 반항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사실은
그 반대였다. 그의 반항은 나이가 들면서 더욱 심해졌다. 그것은 비극이었다.
아바도는 단원들이 이미 음악을 알고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해서 연습을 하기 때
문에 단원들에게 무리한 것을 주문하지 않는다. 그것이 단원들에게 상당한 친
화력으로 작용한다. 연습은 온건 하지만 실제 연주는 환상적이다.' <한스 예르
그 슈렌베르거, 오보이스트> '그는 결코 소리를 지르거나 무리한 요구를 하지
않는다. 그는 대단한 외유내강(外柔內剛)의 인물이다.'

제1면에 수록된 다큐멘터리는 이제 종장(終章)을 향한다. 7년간의 수석지휘자
로서 계약서에 서명하는 당시의 TV뉴스가 인서트 되고, 아바도의 다짐이 결연
하게 토로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음악을 사랑하는 마음을 지속시키는 것이
다. 사소한 잡음은 무시할 것이다. 음악의 깊이를 탐구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
요하다. 누가 무어라 하든 결과가 나를 보여줄 것이다."

1989년 12월 16일과 17일에 열린 아바도와의 첫 연주회를 끝낸 한 주자(奏者)
는 이렇게 말한다. '매번의 연주에서 마음이 통했다. 세계의 음악 앞에 밝은 미
래가 열렸다.'

제1면의 에필로그는 다음과 같은 역사적 사실의 아나운스먼트로 장식된다.
[1990년 10월, 동독(東獨)은 사라졌다. 45년만에 두개의 나라가 하나의 국기
아래 하나의 나라로 뭉쳤다.] 12월 16일과 17일의 연주회는 원래 로린 마젤
(Lorin Maazel)이 지휘하기로 예정되어 있었던 것이었다. 그러나 카라얀의 후
임으로 아바도가 선정됐다는 통고를 받은 마젤은 일방적으로 이 연주회의 지
휘를 취소해 버렸다.(마젤은 이외에도 일체의 베를린·필과의 연주 및 녹음을
일방적으로 취소했다.) 외견상의 이유는 "아바도가 베를린·필과 접촉한 기회
가 적었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더 기회를 주기 위해서"라는 것이었지만 실제로
는 자신이 카라얀의 후임이 될 것으로 기대했던 것이 무너지자 이러한 행동이
나왔던 것이다. 아무튼 이러한 마젤의 갑작스러운 행동 때문에 베를린·필과 아
바도의 상견례가 예정보다 훨씬 앞당겨졌다. 또한, 말러의 교향곡 제 1번도
(이 작품도 마젤이 선곡했던 것이다) 평소 아바도가 장기로 삼는 작품이어서
시종 암보로 지휘했다. 결과적으로 이날의 연주는 아바도의 베를린 입성(入城)
을 일찌감치 성공적인 것으로 만들었던 것이다.

아바도의 취임 첫 해를 다큐멘터리로 엮은 제1면은 3개의 주제를 설정하여 이
를 제시·발전·재현·종결시키는 한편의 소나타라고 할만하다. 제1주제는 아바도
이다. 그의 베를린 착임(着任), 단원들이 베푼 환영 파티, 기자회견, 리허설을
거쳐 실제 연주회로 가는 과정, 다양한 보도(신문, TV) 인서트, 인터뷰, 아바도
의 인간상과 음악상(音樂像), 아바도의 수업시대, 카라얀과 아바도의 개성차
비교, 단원들의 반응 체크 등이 제 1주제를 구성하는 주요 동기(動機)로 사용
되었다.

제2주제는 제리 슈츠(동베를린 출신의 소녀 피아니스트)이다. 리스트의 '연주
회용 연습곡'을 오디션 하면서 아바도는 그녀를 격려하고, 제리는 모차르트의
협주곡을 베를린·필과 협연한다. 화면 여기저기에 베를린 장벽의 붕괴를 보여
주면서 여기에 제리를 오버랩 시키는 것은 그녀를 [베를린 장벽 붕괴의 상징]
으로 삼겠다는 메시지를 부각시키려는 의도인 것이다.

제3주제는 세대교체(世代交替)이다. 카라얀과 아바도를 지속적으로 비교하면
서 카라얀은 독재자로, 아바도는 민주주의의 상징으로 규정해 나간다. 즉, 카
라얀의 독재체제가 붕괴되고 아바도의 민주주의 체제로 전환되는 과정을 동
독 사회주의의 일당독재 체제로부터 민주화로의 전환과 대비시켜 아바도의 등
장을 [역사적 사건]이며 [역사적 전환점]으로 삼고있는 것이다.

** 곡목해설
말러(Gustav Mahler) / 교향곡 제 1번 라장조 {거인(巨人)}
말러(1860∼1911)는 캇셀 시립가극장의 지휘자로 있었던 1884년 무렵에 이 교
향곡의 작곡에 들어갔다. 그후 4년만인 1888년에 완성을 보고 헝가리의 수도
부다페스트에서 1889년 11월 20일에 작곡자 자신의 지휘와 부다페스트 필하모
니아 관현악단의 연주로 초연하였다. 이때 말러는 부다페스트 왕립가극장의
지휘자로 있었다. 초연시엔 [2부로 구성된 교향시]라는 제명(題名)으로 프로
그램에 밝혔는데 그후 여러 번의 개정을 거쳐서 1899년에 오늘날의 형태로 확
정되었다. [거인]이라는 표제는 작품의 성격을 보다 뚜렷하게 부각시키기 위
한 의도에서 붙인 것인데 친구의 권유가 있었다는 말도 전해진다. 독일 낭만
파 작가인 잔 파울의 [거인]이라는 소설에서 이름을 가져오고 각 악장에도 부
제를 붙였다. 즉, 제1부는 [젊은이, 미덕, 결실, 고뇌의 날에서], 제 2부엔 [인
간적인 희극] 이라는 부제를 붙였다. 그러나 1896년에 베를린에서 이 곡을 연
주할 때는 표제를 모두 떼어버렸다. 표제를 의식하고 음악을 듣는 것보다 순수
하게 음악적인 기준으로 듣는 것이 옳다는 달러의 의도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
러나, 잔 파울의 소설 [거인]이 유머, 환상적 감각, 감미로운 도취감 등을 전편
에 담으면서 짙은 로맨티시즘을 나타내고 있는 사실과 말러의 이 교향곡이 갖
고 있는 개성이 너무도 흡사해서 두 작품의 밀접한 관련성을 무조건 무시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말러의 친구 <나탈리에 바워-레히너>에 따르면 말러가 자기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는 것이다. 이 교향곡의 주인공으로 한 영웅을 설정하고 그가 겪는
삶과 고뇌, 운명과의 치열한 싸움과 패배(敗北)를 묘사했다. 고뇌하는 거인은
삶의 험한 파도 위에 머리를 내놓았다가 강타 당하고, 재삼 또 그렇게 하다 운
명의 철권에 강타 당한다. 그리하여 그는 죽음을 맞게되고  비로소 승리에 이
르게 된다.

[거인]이라는 표제는 결과적으로 이 작품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단초를 마련
해 주는 셈이다. 제1 교향곡의 제1악장과 3악장의 주제는 말러의 가곡집 [방황
하는 젊은이의 노래]에서 주요 소재를 가져 왔다. 제1악장에서 첼로가 노래하
는 제1주제는 [방황하는 젊은이의 노래]의 두 번째 곡의 선율을 그대로 가져
온 것이고, 제 3악장에서 바이얼린이 노래하는 선율은 제 4곡의 것이다.

제1악장 / 서주가 붙은 소나타 악장이다. '자연의 소리와 같이'라는 지시가 붙
은 서주는 현악기의 배음주법(倍音奏法)에 의한 신비스러운 음향을 인상적으
로 들려주며, 멀리서 들려오는 나팔소리, 뻐꾸기의 울음은 상큼한 아침의 산책
을 강렬하게 느끼게 한다.

제2악장 / 강렬한 움직임이 있는 3부형식의 스케르조 악곡이다. 주부(主部)는
야성적인데 트리오 부분은 우아한 왈츠 음악이다. 이 둘의 대비가 신선하다.

제3악장  완만하지 않게 장중한 위엄을 갖고 연주되는 3부형식의 특이한 장송
행진곡이다. '사냥꾼의 관을 동물들이 묘지로 운반하는 풍'이다. 콘트라베이스
가 주제를 내면 여기에 다른 악기들이 카논풍으로 가세하는 전개법이 괴이한
장송행진곡의 분위기엔 안성맞춤이다.

제4악장  폭풍우 같은 움직임으로 연주되는 소나타 악장이다. 무서운 절규로
시작되어 투쟁적인 분위기를 고조시키다가 갑자기 서정적인 선율이 등장한
다. 운명과의 처절한 사투(死鬪)를 벌이는 거인의 싸움, 그러나 결국은 운명의
철권을 맞고 죽는 거인의 모습이 바로 이러한 2개의 상반된 주제로 묘사되는
것이다. 그러나, 거인은 죽음으로서 승리를 거둔다.

** 이 글을 퍼 가는 것은 좋습니다. 그러나 반드시 출처를 밝히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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