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반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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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곽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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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므라빈스키(Evgeny Mravinsky) / 차이코프스키

  
현과 관의 절묘한 대비

차이코프스키 / 교향곡 제5번 마 단조 작품 64            
지휘 : 예프게니 므라빈스키            
악단 : 레닌그라드 필하모닉 오키스트라            
제작 : 東芝 EMI, WVO-3510            
컬러, 모노, 1982년 녹음(실황)            
CD / Elatus

http://youtu.be/f8sSlPmVM78 (1957년 녹음)

[러시아의 거인]으로 불려지는 예프게니 므라빈스키(Evgeny Mravinsky,
1903. 6. 4∼1988. 1. 19). 차이코프스키와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해석에 있어
서 최고의 권위를 지니고 있는 인물이며, 러시아와 소련 음악의 영광의 시대
를 이루어낸 최대의 지휘자라는 칭송을 받고있는 음악가 이기도하다. 1988년 1
월, 므라빈스키의 부음이 세계에 타전되면서 신문들은 "큰 별이 떨어졌다"고
표현했다. 흔히 정치적 거물들의 사망기사에 인용되었던 이 표현이 므라빈스
키에게 적용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의 예술적 위상은 충분히 설명되는 것이
리라. 실제로 므라빈스키의 죽음은 {한 시대의 종언(終焉)}을 의미하는 것으
로 받아들여진다.

공산혁명이 발발하기 14년전인 1903년에 태어나 약관 35세의 젊은 나이로 소
련 최고의 교향악단인 레닌그라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정지휘자로 발탁되
어 85년간의 향년을 이어가면서 세계 음악의 거인으로 자신을 성장시킨 그의
음악생애야말로 20세기의 전형(典型)이라 할만한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
의 음악을 통해서 20세기의 기초를 다진 토스카니니의 격렬한 힘을 느끼게 되
며, 또한 그의 예술을 접촉하면서 슬라브적 기질의 진수(眞髓)를 실감하게 된
다. 최근의 국가연합(구, 소련)의 음악이 다분히 서구적 취향으로의 경도(傾
倒)를 들려주는 현상을 대비시킨다면, 므라빈스키의 죽음이 왜 한 시대의 종언
이 되는가를 새삼 확인하게 되는 것이다.

므라빈스키는 페테르부르크 태생이다. 17세 때, 레닌그라드 대학에 입학하였
으나 2년뒤에 중퇴하고 마린스키 극장(지금의 국립 페테르부르크 아카데미 오
페라와 발레 극장의 전신)에 입단하여 단역으로 출연하게 된다. 그러던 중에
레닌그라드 발레 학교의 피아니스트로 채용된다. 그는 이런 생활을 통해서 새
삼 예술세계에 눈뜨게 된다. 극장에서는 당시의 명가수인 샬리아핀, 알체프스
키, 에르쇼프의 뛰어난 노래를 들었고, 학교에서는 유명한 지휘자들이 무용수
들과 함께 연습하는 모습을 보았던 것이다. 본격적인 음악공부를 해야만 하겠
다는 결심이 서게 된다. 그 결과 레닌그라드 음악원에 입학하여 체르노프에게
서 작곡을, 가우크와 마르코에게서 지휘법을 배우게 된다. 이 학교에서 거둔
또 하나의 귀중한 결실은 쇼스타코비치를 알게 됐다는 사실이다.

1938년, 모스크바에서 열린 全소련 지휘자 콩쿠르에 응모해서 우승을 차지했
다. 소련 정부는 전격적으로 콩쿠르의 우승자를 레닌그라드 필하모닉의 지휘
자로 발탁한다. 그야말로 파격적인 기용이었다. 고참 단원들은 젊은 이 지휘자
를 [오케스트라의 학생]이라고 빈정거렸다. 그러나 므라빈스키가 이 악단을
맡았을 때, 그들의 연주 수준은 밑바닥을 기고 있었다. 단원들은 의욕마저도
갖고 있지 않았다. 므라빈스키의 조련 스타일은 혹독했다. 물론 악단의 연주기
량은 놀라운 속도로 향상되었다.

1946년, 소련 정부는 그에게 {레닌 상}을 수여했다. 잇달아서 {사회주의 노동
영웅} {소련연방 인민 예술가} {레닌그라드 음악원장} 등의 칭호와 영예가 그
에게 쏟아졌다. 므라빈스키의 존재는 소련 음악계의 살아있는 국보였다.

지휘자 므라빈스키는 아주 독특한 면모를 갖고있다. 다른 지휘자들과는 달리
교향곡을 비롯한 관혁악곡 부문에만 치중했다. 협주곡 디스크가 매우 적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그런 가운데도 딱 한가지 예외가 있다. 다비드 오이스
트라프와 스비아토슬라브 리히터와는 협주곡을 함께 연주했다. 같은 핏줄을
나눈 동족이라는 특별한 유대의식의 결과이기도 하겠지만, 두 사람의 위대한
예술가들과의 음악적 교감이 각별했던 때문이리라.

이 디스크에 수록된 연주는 1982년, 레닌그라드 필하모니 대연주 홀에서 모스
크바 국영방송 프로그램을 위해서 시행된 연주실황이다. TV 프로그램의 오디
오 사정에 맞춘 탓인지 錄音源은 모노럴이다.

그림에서 확인할 수 있겠지만 이 디스크는 두 가지 이색적인 모습을 보여준
다. 하나는 철저하게 므라빈스키 중심의 연출 의도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다
른 하나는 지휘봉 없이 시종 맨손으로 지휘하는 색다른 모습이다. 카메라는 일
관해서 지휘자의 표정과 손을 따라 다니고 있다. 어떤 경우에도 이처럼 철저하
게 지휘자만을 좇는 연출은 없었다. 므라빈스키의 표정은 제 3악장에서 잠시
가느다란 미소를 띄었을 뿐 거의 무표정으로 일관하고 있다. 그러나 지휘봉을
들지 않은 그의 두 손은 다양한 표정으로 감상자를 압도한다. 그 풍부하고도
예리한 표정의 손을 통해서 오케스트라는 신통하게도 통제되고 있는 것이다.
풍부한 표정을 유지하면서도 그의 손은 과장법이 없다. [운명의 주제]로 불려
지는 제 1악장의 주제에서나, 용장한 모습으로 등장하여 1, 2악장의 비애를 일
순에 씻어내는 제 4악장의 저 유명한 개선(凱旋)의 주제에서도 그의 손 표정
은 중용의 설정을 무너뜨림이 없다. 현과 관의 절묘한 대비에서도 그의 손은
미묘한 표정으로 일관할 뿐 호사스러운 과민을 배격하고 있다. 참으로 찬탄을
금할 수 없는 지휘가 아닌가!

1973년, 일본 연주여행을 가면서 비행기를 피하고 나호트카港에서 배를 타고
일본에 상륙한 므라빈스키의 일화는 그가 무대에서 얼마나 강한 지휘자인가
를 극적으로 보여준다. 레닌그라드에서 나호트카항 까지의 긴 여행만 해도 지
쳐 떨어질 지경인데 다시 배를 타고 요꼬하마(橫兵)까지 건너가서 또다시 자동
차로 도쿄(東京)까지 달려가 곧장 무대에 나섰으니 그 피로는 상상을 뛰어넘
는 것이었을 터다. 그러나 그 누구도 그가 그렇게 긴 여행 끝에 무대에 선 것
을 알지 못했다. 그의 지휘가 너무도 역동적이었기 때문이다.

이 디스크에서 우리가 만나는 므라빈스키는 79세의 노인이다. 평상복의 므라
빈스키는 의자에 앉아서 지휘한다. 그러나 그의 손이 보여주는 표정이나 음악
에서는 나이가 느껴지지 않는다. 우리가 보고 듣는 것은 그의 늙지 않는 예술
혼이다.

차이코프스키와 도스토예프스키가 잠들어 있는 페테르부르크. 일찍이 표토르
大帝에 의해서 러시아 예술의 요람지로서 조성된 그곳. 모스크바의 레닌그라
드 역에서 한밤에 출발한 특급 침대열차 {붉은 화살}이 이튿날 이른 아침 레닌
그라드의 모스크바 역에 도착하면 흰눈으로 덮인 넓은 대로와 털외투와 모자
로 겨울을 덮은 행인들, 안나 카레리나가 오르내린 네바江의 다정한 모습들이
차례로 등장한다. 어디 그뿐인가? 女帝 에카테리나의 겨울궁에 진열된 화려한
컬렉션들, 저 유명한 문화의 거리인 {예프게니 오네긴}과 {라스코리니코프
街} 들 --. 이러한 모습들을 연상시키는 레닌그라드 필하모닉과 므라빈스키.

이 디스크는 평생토록 차이코프스키와 쇼스타코비치에 봉사한 위대한 지휘자
예프게니 므라빈스키의 만년의 모습을 꾸밈없는 화면으로 보여주고 들려준
다. 오리지널 사운드는 모노럴이지만 디지털 음향으로 재녹음되고 있다. 색상
이나 음향이 만족스럽지 못한 구석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므라빈스키의 풍부
한 손 표정과 차이코프스키의 [운명]과 [개선]이 이를 충분히 보상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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