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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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곽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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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로테스탄트의 교회음악



◈ 사진 : 마틴 루터

◈ 유투브 감상
내 주는 강한 성이요
Mormon Tabernacle Choir
http://youtu.be/G42xwWoUS-0


16세기 초엽, 로마 가톨릭 교회는 대형 성당의 건립과 이에 수반되는 엄청난
분량의 성화(聖畵)와 성물(聖物) 등 교회 장식품의 제작 등에 막대한 재정을
쏱아 부어야 했다. 게다가 막강한 신권을 구사하던 교회 지도자들의 사적 공적
인 문제도 세상에 그대로 들어나는 세태였다. 급기야 가톨릭 교회 지도부는 대
사(大赦, letter of indulgence)”를 발행하는 고육지책을 쓰기에 이르렀다. 막대
한 재정수요를 충당하려는 정책이었다. 그러나 이 제도는 상상 이상의 부작용
을 불러 일으켰다. 그로써 교회는 부패의 온상처럼 인식되는 위기상황에 몰리
는 형국이 되었다. 따라서 교회의 부패상과 타락을 혁신하여야 한다는 인식이
자연스럽게 확산되기 시작하였다.

독일의 마틴 루터는 그러한 개혁인사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1517년, 당시 로
마 가톨릭 교회의 성직자였던 마틴 루터(Martin Luther, 1483∼1546)는 96개항
에 달하는 항의문을 자신이 시무하던 비텐베르크의 실로스키르헤 교회 문에
게시하고 교회가 저지르고있는 잘못이 시정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발표했다.
내친걸음으로 이듬해엔 교황 레오 10세에게 문서를 보냄으로서 당시 막강한
힘을 지니고 있었던 로마교회를 향해 도전장을 던졌다. 이러한 도전은 목숨을
건 무모한 짓으로 일부에게 받아들여지기는 했으나, 비텐베르크의 희랍어 교
수 멜란흐톤 같은 유능한 협력자를 얻음으로써 로마 당국이 루터를 힘으로만
밀어붙일 수 없는 상황을 만드는 데 성공할 수 있었다.

로마 가톨릭교회를 향한 개혁운동이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게되자 루터는
1521년부터 성서의 독일어 번역이라는 방대한 작업을 위해 아이제나하의 바
르트부르크城에 들어앉는다. 마틴 루터에 의해서 이룩된 성서의 독일어 번역
은  독일의 종교는 물론 문학과 음악에 엄청난 변혁을 가져다 주었고, 결과적
으로 루터는 이 하나의 위업만으로도 독일 문학사와 음악사에 있어서 가장 위
대한 인물로 기록될 정도로 평가된다. 독일어로 쓰여진 성서는 지금까지 400
수십년을 지내오면서 수많은 작곡가와 작가들의 창작의 샘(泉)이 되어왔다. 팔
레스트리나를 정점으로 하는 가톨릭 교회음악과 더불어 종교음악의 양대 산맥
으로 자리잡고 있는 프로테스탄트 교회음악이 만일 루터의 독일어 성서번역
이 없었다면 전혀 다른 양상으로 생성(生成)되어 왔을지도 모르겠다는 가정이
가능할만큼 루터는 결정적인 공헌을 이룩했던 것이다.

비교적 완전한 형식을 갖춘 프로테스탄트 교회음악이 등장한 연대는 1524년
이다. 이 해에 요한 발터(J.Walther, 1490∼1570)에 의해서 '비텐베르크성가집
(Wittenbergisch-Gesangk-B chlein)'이 출판됐기 때문이다. 발터는 작센 선
제후(選帝候) 예배당 가수를 지냈으며, 1548년부터는 드레스덴 궁정 오르가니
스트 겸 악장으로 활동하였고, 특히 루터의 음악적인 협력자이자 친구, 조언자
로써 초창기 종교개혁 운동에 지대한 공헌을 이룩했던 인물이다. 이 성가집엔
프로테스탄트 교회의 예배용 성가는 물론 모테트(Motet)들이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발터의 비텐베르크 성가집보다는 루터가 작곡한 것으로 알
려져있는 일련의 독일 코랄(Chorale)들이 프로테스탄트 교회음악에서 더 큰
비중으로 취급되고 있다. 루터의 독일 코랄은 독일어 성서 번역과 더불어 그
의 불멸의 공적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런데, 루터가 생각하고 있었던 새로운
교회음악은 누구든지 쉽게 노래할 수 있는 평이성(平易性)과 종교적 감정을 한
껏 높일 수 있는 힘찬 느낌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는데 이러한 그의 의지가
반영된 것이 바로 코랄(Chorale)인 것이다.

코랄은 독일인의 기질과 새로운 교회를 지향하는 신학적 이념에 너무도 어울
리는 음악이었다. 그것은 새롭게 등장한 독일적 종교민요라고 부를만 했다. 지
금까지 알려진 자료들에 따르면 루터가 직접 작곡한 코랄은 약 30여곡에 이른
다. '내 주는 강한 성이요, Ein feste Burg ist unser Gott'가 그의 대표적인 코
랄로 알려져 있고, 이것은 바흐를 비롯한 수많은 작곡가들에 의해 여러 가지
형태의 종교음악의 재료로 쓰인바가 있듯이 그의 코랄의 의도는 교회예배에
서 일반 신도들도 함께 노래할 수 있도록 하는데 있음을 알게 한다.

'내 주는 강한 성이요'는 무서운 세력으로 페스트가 유럽 대륙을 휩쓸고 있었
던 1528년에 작곡됐는데 시편 46편을 루터式으로 번안하여 텍스트가 만들어
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루터의 코랄 가사는 거의가 1523∼24년 사이
에 작성됐고, 그가 붙인 선율은 새롭게 창작된 것은 거의 없고 대부분은 독일
민요, 암브로시우스 성가, 중세시대의 독송(讀頌), 그레고리우스 성가 등에서
가져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러한 재료들을 단순 모방한 것은 아니
고 그가 의도한 새로운 교회상과 신학적 이상에 알맞도록 뛰어난 솜씨로 변용
시켰다. 루터의 코랄은 다음과 같은 음악적 특징을 지니고 있다.
       1) 노래하기 쉬운 단순한 선율
       2) 명쾌한 조형성
       3) 힘차고 신선한 리듬
       4) 아름다운 선율

이러한 특성을 갖고있는 코랄은 교회음악 사상 처음으로 3화음을 채택하여 단
순하고 호모포닉한 오르간 반주로 연주되었다. 이것은 음악사상 전혀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나 루터가 세상을 떠나자 코랄에 위기가 닥쳐온다. 그것은 16세기 후반에
닥쳐 왔다. 하나는 베네치아 악파의 복합창양식(複合唱樣式, Polychoral
style)이고, 또 하나는 17세기의 이탈리아의 협주양식(協奏樣式,
Concertizing style)이었다. 특히 후자의 경우는 현저하게 코랄에 위협적인 존
재가 됐는데, 협주양식이 만들어 낸 오페라, 오라토리오, 칸타타 등의 극 음악
형식과 소나타, 협주곡, 칸조네, 리체르카레(ricercare) 등 새로운 음악양식의
등장과 눈부신 발전이 코랄의 발전에 커다란 장애가 되었다. 이들 새로운 양식
의 출현으로 독일의 많은 작곡가들의 관심은 코랄로부터 떠나게 되었고, 어느
새 코랄은 낡아빠진 음악으로 전락할 위기를 맞게되었던 것이다. 그 결과 프로
테스탄트 음악은 이탈리아 스타일을 도입하기 시작하였다. 당연히 프로테스탄
트 음악은 세속주의에 물들게 되었고 신선하고 기품 있었던 선율이 있어야 할
자리에 천박한 음악이 대신 들어오는 형국이 되고 말았다.

한편, 프로테스탄트의 종교개혁에 대항하여 반종교개혁 운동을 벌이고 있었
던 로마측은 이러한 이탈리아 음악의 유행을 교묘하게 이용하게 된다. 특히 예
수회 교단은 다양한 방법을 동원하여 이탈리아의 미술과 음악을 독일에 보급
하는데 앞장섰다. 따라서 17세기는 독일에 있어서 이탈리아적인 경향과 독일
적인 전통의 치열한 각축의 시대라고 규정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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