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제(精製)된 비탄의 미학
◈ 음반
타이틀 / Thomas Tallis (ca. 1505-1585) : The Lamentations of Jeremiah
William Byrd (ca. 1543-1623) : Mass for Three Voices
독창 : 폴 에스우드, 케이트 데이비스, 지오프리 미첼, 존 엘위스, 제임스 그리페트, 제임스 레윙턴,
마크 브라운, 브라이언 에덜리지
지휘 : 브루노 터너 (Bruno Turner)
프로 안티콰 무지카 (Pro Antiqua Musica)
제작 / Archiv, 1972년 4월 녹음 (함부르크), ADD
연주시간 : 43분 54초
영국 음악사에서 15세기 중반기와 후반기, 17세기 중반기는 암흑의 시대이자 수난의 시대로 설명된
다. <장미전쟁>이 1445년부터 1485년까지 있었고, 크롬웰 시대에 일어난 청교도 혁명이 1642년부터
1646년까지 있었다. <백년전쟁>(1337-1453)에 이어서 발발한 장미전쟁은 영국 사회를 극도로 피폐한
상황으로 몰아갔고, 크롬웰의 공화정치 역시 문화를 생각할 여유를 갖지 못했으니 당연히 모든 문화적
기능은 정지되거나 침채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 두 시대 사이에 낀 약 50여년의 세월은 마치 반짝거리는 보석처럼 찬연하게 빛나는 문화
의 시대였다. 역사가들은 이 시대를 <영국 음악의 황금시대>라고 부른다. 이 시대는 영국사에서 튜더
왕조(1553-1603)에 해당되는 시기이다.
튜더왕조 시대에 활약한 음악가로는
토마스 탈리스(Thomas Tallis, 1505?-1585),
윌리엄 버드(William Byrd, 1542/3-1623),
존 불(John Bull, 1562/3-1628),
오를란도 기본스(Orlando Gibbons, 1583-1625),
토마스 윌크스(Thomas Weelkes, 1576-1623),
존 테버너(John Taverner, 1495-1545) 등이 있다.
이들을 <튜더 왕조악파>로 부른다. 엄밀히 말하자면 이들의 활동 시기는 튜더왕조에만 국한된 것은 아
니고, 그 이전의 헨리 8세(재위 1509-1547)에서 제임스1세(재위 1603-1625)까지 약 100여 년에 이
른다.
유럽 대륙에서는 이미 15세기에 르네상스가 일어나 문화의 꽃이 활짝 피어오르고 있을 때 영국은 전
쟁의 소용돌이에 말려들고 있어서 오히려 문화의 퇴보를 겪고 있었다. 그러나 16세기에 들어서면서
대륙의 르네상스 열풍이 영국에 밀어 닥쳤고, 헨리 8세 치하에서 서서히 그 영향이 나타나기 시작했
다. 물론 음악 활동도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이 시대의 영국음악을 이끈 양두마차를 탈리스와 테버너
로 지목한다.
토마스 탈리스는 1505년 무렵, 캔트(Kent)에서 태어나 1585년에 그린위치(Greenwich)에서 세상을
떠났다. 당시 음악가로서 드물게 80년의 장수를 누리면서 무려 다섯 왕(헨리 7세로부터 엘리자베드 1
세까지)의 통치를 겪었다. 이 시대는 영국 국교회 성공회(聖公會)가 헨리 8세에 의해서 세워졌다가 메
리여왕(재위 1553-1558)에 의해서 다시 로마 가톨릭으로 돌아가는 등 종교적인 변화가 급격 했던 이
른바 <영국의 종교개혁> 시대여서 탈리스 역시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다. 그가 교회 음악가였기 때문
이다.
젊은 시절엔 여기저기에서 일정치 않은 직업을 가졌고, 35살 때 캔터베리 대주교의 주교좌 성당 오르
가니스트라는 요직에 임명 되었다. 이때부터 교회음악가로서의 생애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2년 뒤
엔 왕실 교회의 젠틀맨(Gentleman)이 되어 세상 떠날 때까지 약 40여 년 그 자리를 지켰다. 그의 음
악적 재능이 비범한 이유도 있었겠지만 인간적인 신임이 그의 명예를 지켜주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탈리스가 활동하던 시기가 영국의 종교적 파동기와 맞물려 있기 때문에 그의 종교음악은 라틴어 가사
로 된 것과 영어 가사로 된 것이 공존한다. 로마 가톨릭 전례용은 라틴어로, 성공회 전례용으로 작곡
된 것은 영어 가사를 사용했다.
라틴어 종교음악은
2곡의 미사,
39곡의 모테트,
2곡의 마니피카토,
예레미아 애가(哀歌),
영어 가사에 의한 작품은
성공회 미사곡 2곡,
18곡의 찬가(讚歌),
1곡의 찬미가(讚美歌),
1곡의 탄원곡,
3곡의 시편가(詩篇歌) 등이다. 이 가운데 5성부 합창단 8개가 동원되어 결과적으로는 40성부로 노래되
는 장대한 대위법이 구사된 모테트 <Spem in alium 그대 외에 바람 없도다>같은 장대한 작품이 있
어서 그가 16세기의 가장 뛰어난 작곡가임을 실감케 한다.
◈ 예레미아
예레미아가 젊은 나이로 선지자의 소명을 받았을 때 이스라엘은 역사상 가장 비참한 시대를 겪고 있
었다. 유대(당시 이스라엘의 국명)는 강대국 바빌론의 침공을 받아 예루살렘 성이 무너지고 수많은 유
대인들이 폐허가 된 예루살렘을 뒤로한 채 바빌론에 포로로 끌려갔다.
예레미아는 젊은 시절부터 조국의 운명을 예언하고 바빌론의 지배에서 유대인들이 목숨을 부지할 수
있도록 바빌론에 항복할 것을 유대 왕들에게 충고했지만 왕들은 모두 그의 충고를 듣지 않고 결국 바
빌론과 전쟁을 벌이고 말았다. 그는 오히려 국수주의자들로부터 반역자로 낙인이 찍혀 배척을 당하고
생명의 위협을 받기도 했다. 예루살렘이 함락된 뒤 친 이집트 세력이 내란을 일으켜 바빌론에서 임명
한 꼭두각시 왕을 암살했는데, 예레미아도 그들에 의해 이집트로 끌려가 그곳에서 생를 마쳤다.
올바른 신앙으로 돌아올 것을 권하는 <예레미아의 애가>는 가톨릭교회의 성주간 전례에 사용하기 위
해 작곡되는 것이 전통이다. 구약성서의 예레미아 애가에서 가사를 취하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슬프다 이 성이여 본래는 거민이 많더니
이제는 어찌 그리 적막히 앉았는고,
본래는 열국 중에 크던 자가
이제는 과부 같고 본래는 열방 중에 공주되었던 자가
이제는 조공 드리는 자가 되었도다.
밤새도록 애곡하니 눈물이 뺨에 흐름이여
사랑하던 자 중에 위로하는 자가 없고
친구도 다 배반하여 원수가 되었도다.
예루살렘, 예루살렘아 주께 돌아오라”.
<예레미아의 애가>는 가톨릭 전례음악 대가 팔레스트리나(Palestrina)와 오케겜(Ockegem)도 애가를
썼을 정도로 많은 교회음악가들이 즐겨 선택한 소재였다. 따라서 1506년에 <예레미아 애가집>이라는
컬랙션이 출판될 만큼 작품의 수효가 많았다.
전통적으로 예레미아 애가는 성주간 중에서도 목․금․토요일, 즉
‘성목요일’
‘성금요일’
‘부활망일’의
조과(朝課)에서 불려졌다. 그러나 탈리스의 이 작품은 이례적으로 월요일과 화요일에 연주 되도록 되어
있고, 초연은 신도들의 개인적 모임에서 행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작품은 2부작이다.
제1부는 월요일, 제2부는 화요일의 조과에서 연주하도록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 된다. 각각 5성부의
합창으로 노래되는데, 제1부는 “예언자 예레미아 애가의 시작”, 제2부는 “예언자 예레미아의 애가에
서”라는 도입구로 시작된다. 제1부와 제2부의 제2절에서 마지막 절까지(1부는 3절까지, 2부는 4절까
지 이다)가사는 애가의 각 절(節)의 첫머리에 있는 히브리어의 알파벳을 나열하고 있다. 이것은 단순한
순서의 의미이며 본래의 가사는 그 뒤에 노래된다.
▶ 제1부
제2절 : 알레프(Alef)
제3절 : 베트(Beth)
▶ 제2부
제2절 : 기멜(Ghimel)
제3절 : 다레트(Daleth)
제4절 : 헤트(Heth)
기본적인 구상은 전통적 모테트의 예를 따르고 있다. 즉, 텍스트를 우선 몇 개로 갈라서 그것을 음악
과 종교적 메시지의 구분으로 삼았고, 각 구분마다 음악적으로 새로운 모티브를 가져와서 다양한 작곡
기술을 응용하는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
예를 들면, 제1부의 시작인 제1절 “예언자 예레미아 애가의 시작”은 디스칸투스(정선율(定旋律) 위에
서 독창자가 즉흥적으로 장식적인 선율을 붙이는 방법)로 노래되는 첫머리의 동기를 다른 성부(聲
部)들이 모방하면서 들어오게 된다. 이렇게 해서 한 동기에 의한 노래가 완전하게 종결되면 또 다시
새로운 동기를 소재로 해서 히브리어 알파벳인 아레프(alef)가 노래되고, 이것이 종결되면 애가의 텍스
트인
“아아, 슬프도다. 옛날엔 사람이 차 있던 이 도시,
지금은 쓸쓸한 모습으로 앉아서 과부처럼 되었도다”가 또 다른 새로운 동기로 등장하는 식이다. 이러
한 수법은 통모방(通模倣) 기법이라고 부르는데, 텍스트를 세밀하게 구분하고 각 절마다 새로운 동기를
각 성부가 모방해 가는 작곡법이다.
최상성(最上聲)은 음역이 알토 범위여서 카운터 테너(counter tenor)가 노래한 것으로 추정된다. 다른
성부도 대체로 음역이 낮아서 작곡자가 의도하는 침통하게 가라앉은 분위기를 효과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드라마의 주인공이 최고조의 슬픔을 표현할 때 지나치게 눈물을 흘리거나 감정의 발로가 과도하면 관
객은 오히려 김이 빠진다. 관객의 몫이 하나도 남아있지 않기 때문이다. 탈리스의 이 작품에서 우리가
경탄해마지 않는 것은 감정의 과다한 이입(移入)이 전혀 없다는 사실이다. 오히려 전체적인 음역을 낮
게 낮게 설정하고, 일체의 격렬한 움직임을 배제(排除) 시킴으로써 그가 나타내고자 하는 깊은 슬픔이
아주 자연스럽게 청중에게 전달되고 있다.
<애가>는 기원전 586년의 예루살렘 함락과 유다 사람들이 바빌론 정복자들에게 당한 수난을 탄식한
5편의 애가를 모은 것이다. 전반적인 주제는 하느님께 버림받은 민족의 고통과 이스라엘이 겸허하게
뉘우치면 하느님께서 다시 옛 영광을 회복시켜 주시리라는 희망이다.
◉ 가사
제1부
제1곡 예언자 예레미아의 애가의 시작.
제2곡 알페,
사람들이 붐비던 이 도성이 얼마나 쓸쓸해 졌는가!
뭇 나라 위에 군림하던 그가 어쩌면 이런 과부 꼴이 되었는가!
여러 도성 가운데 군림하던 공주가 이제 계집종이 되었구나.
제3곡 베트
두 볼에 눈물을 흘리며 밤마다 우는구나. 사랑을 속삭이던
그 많던 연인들 중에 그를 위로할 자 아무도 없구나.
친구가 모두 원수가 되었도다.
예루살렘, 예루살렘, 주 하느님 우리에게 돌아 오소서.
제2부
제1곡 예언자 예레미아의 애가에서
제2곡 기멜.
유다는 포로가 되어 끌려가니, 편히 쉴곳이 없구나
추적자들이 곤경에 빠진 그의 뒷덜미를 잡았도다.
제3곡 다레트
시온으로 가는 길은 통곡뿐이로다.
아무도 약속한 축제에 오지 않는구나.
그 문들은 모두 황폐하고 사제들의 입에서는 나오느니
신음 소리뿐이로다. 처녀들은 모두 끌려가 버렸고
이스라엘은 신음을 낼 뿐이로다.
제4곡 헤트
이스라엘이 하느님을 배반했으므로 적들은 승리자가 되었고
적들은 지배자가 되었다. 이스라엘의 아이들은 그들 앞에서
적에게 끌려갔도다.
예루살렘, 예루살렘, 주 하느님 우리에게 돌아 오소서.
* 퍼 가는 것은 좋습니다. 그러나 반드시 출처를 밝히시기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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