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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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곽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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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랏소(Orlando di Lasso) / 바로크 음악의 예비자


** 감상 / Ave,Regina Caelorum
             http://youtu.be/40nCdo3kAes

랏소를 일러서 일반적으로 "플랑드르 악파의 마지막 위대한 작곡가"라고 부르
고 있기는 하지만, 꼭 그런 식으로 고정시킬 수 없는 음악인이다. 왜냐하면 그
의 작품에선 네델란드 악파의 대위법, 이탈리아 스타일의 화성, 베네치아 악파
의 풍요함, 프랑스풍의 활발함, 독일 경향의 무거움, 이러한 다양한 요소들이
발견되기 때문이다. 그의 작품세계는 가히 코스모폴리턴的이다. 때문에 단지
음악적인 측면에서만 랏소를 관찰하면 그가 네델란드人인지, 이탈리아 사람인
지, 프랑스 혹은 독일인인지 정확하게 구별지어 판단하기가 용이하지 않다.

그의 미사곡이나 모테트를 살펴보면 그는 확실히 순수한 네델란드인의 체취
를 풍긴다. 그의 작품에서 죠스캥 데 프레 (Josquin des Pres, 1440?∼1521,
프랑드르 악파의 대작곡가로서 회화에 있어서 레오나르도 다 빈치에 견줄 수
있는 위치의 인물)의 후계자라는 인상을 찾게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랏소의 작
품 속엔 同시대에 활동했던 로마의 팔레스트리나와 베네치아의 안드레아 가브
리엘리 (Andrea Gabrieli, 1510경∼1586, 베네치아 악파를 대표하는 인물이며
랏소와 교분을 맺고 있었다. 그의 음악은 당시로서는 매우 진취적이었다)의 작
품과 밀접한 유사성도 녹아있다. 그런가하면 그가 쓴 상당수의 마드리갈에서
는 어떤 이탈리아 작곡가보다도 순수한 이탈리아的 스타일을 채용하고 있다.
어디 그뿐인가? 생기와 재기에 넘쳐있는 그의 프랑스풍 샹송에서는 토박이 프
랑스인의 몸냄새가 물씬 풍겨 나온다. 또한 그의 독일풍 리트에서는 원기왕성
한 아르메니언(독일) 유모어와 독일적 신중함, 무거움, 야성적 명랑성이 진짜
독일인처럼 농도짙게 표현된다.

그가 쓴 작품의 가사도 라틴어, 이탈리아어, 플랑드르어, 독일어, 프랑스어등 5
개국어로 쓰여있다. 랏소의 음악이 이토록 코스포폴리턴的인 다양성과 국제성
을 띠게 된 것이 그가 젊은시대는 네델란드와 이탈리아에서, 성년시절의 초기
는 빠리에서, 만년은 독일의 뮨헨에서 보냈다는 사실을 상기하면 "아! 그랬구
나!"할테지만, 랏소처럼 여러 지방을 옮겨 다니면서 활동했으면서도 편협한 경
향에만 매달렸던 많은 예술가들과 비교할때 그가 얼마나 다재다능한 천재형
의 음악가인가를 재삼 인식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오를란도 디 랏소(Orlando di Lasso, 로마식 표기는 Orlandus Lassus)는
1532년경 몽(Mons, 벨기에)에서 출생했다. 어려서부터 고향의 성(聖)니콜라
스 대성당의 소년 성가대원으로 활동했는데 그 음성이 얼마나 아름다웠던지
인근 합창단에 세번이나 납치 당할 정도였다고 한다. 12세 무렵 이탈리아로 가
서 궁정 소년가수등의 일을 시칠리아, 나폴리, 밀라노, 만토바 등지에서 했고,
23살때 앤트워프에 있으면서 최초의 작품집을 발표했다. 이듬해에 뮨헨으로
옮겼고, 32세때 바이에른公 알브레히트 5세의 악장이 됐다. 이무렵 그의 이름
은 유럽의 주요 도시에서 유명해졌고, 사람들은 그를 [음악의 왕] [벨기에의
올폐우스]라고 불렀다.

45세때 빠리를 방문하여 샤를르 9세의 융숭한 대접을 받고 황제 막시밀리안 1
세로 부터 귀족의 작위를 받았는가하면 교황 그레고리우스 13세(1572∼85)로
부터는 "황금박차의 기사" 칭호를 받았다. 이후 그의 여생을 뮨헨 궁정악장으
로 보냈고 1594년 6월 14일에 별세했다.

팔레스트리나가 미사곡의 거장(巨匠)인데 비해 랏소의 종교음악은 모테트
(Motet)에서 영광을 나타내고 있다. 그가 세상을 떠난지 10년 후에 출판된 "大
音樂全潗(Magnum opus musicum)"에 담긴 방대한 분량의 모테트는 실로 경
이로운 종교음악의 보고(寶庫)라 해야 할 것이다. 모테트 이외에도 랏소는 수
많은 마드리갈(Madrigal)과 샹송, 리트를 썼는데 그의 작품 수효는 2천곡을 헤
아린다. 랏소의 사망원인이 우울증으로 전해지고 있는데 지나친 多作으로 말
미암은 정신적 피로에서 우울증이 왔다는 설(說)이 있을 정도이다. 랏소와 팔
레스트리나가 같은 시대의 인물일뿐 아니라 이들이 남긴 종교음악에서의 영향
력이 너무도 크기 때문에 왕왕 서로 비교되기도 한다. 팔레스트리나는 생각이
깊고 신중하고 고전적인 스타일데 비해 랏소는 충동적이고 감정적이고 정력적
인 기질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그의 개성은 특히 모테트에서 선명하
게 들어나고 있는데, 선율의 진행이 자주 도약하는 점, 악구의 길이가 한결같
지 않은 점, 전체적인 작품의 구조가 가사의 정서적인 암시나 회화적인 암시
에 맞도록 자유롭게 변화하는 사실, 화성적 리듬이 불규칙적인 것등이 감정적
이고 충동적이고 정력적인 그의 기질을 반영하는 증거가 될 것이다.

랏소의 모테트는 700년 모테트 역사(모테트의 역사는 12세기에 기원한다)의
최고봉이다. 종교음악의 구원자로 불려지는 팔레스트리나 조차도 랏소의 모테
트엔 미치지 못한다. 때문에 모테트 부문에서 랏소의 음악적 업적을 충분히 알
지 않고서 모테트의 세계는 열려지지 않는다. 그것은 마치 200여곡이 넘는 바
하의 칸타타를 충분히 알지 않고서 칸타타를 논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인
것이다. 음악사학자 후고 라이히텐트리트(Hugo Leichtentritt, 1874∼1951, 獨)
는 그의 저서 "모테트史(1908)"에서 랏소와 그의 음악적 가치에 대해서 이렇게
쓰고있다. "오를란도 디 랏소는 장려한 작품의 풍요함에 있어서 위대한 팔레스
트리나보다 상위(上位)에 둔다해도 아마 지나친 과장은 아닐 것이다. 그는 미
켈란젤로나 루벤스와 같은 제 1급의 화가들에 비유되는 작곡가이며 확실히 음
악역사 가운데서 가장 위대한 천재의 한 사람이다. 그의 작품은 현재 매우 풍
부한 교양을 가지는 음악가들 사이에서도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그러나 교양
있는 현대의 청중은 뛰어난 표현력과 정열적인 스타일, 회화적인 섬세함과 고
귀한 시적 향기로써 놀라게 할만한 모테트나 마드리갈을 골라서 여남은개의
음악회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은 극히 손쉬운 일이다. 팔레스트리나는 가톨릭
교회음악의 대가, 나아가서 교회음악의 구원자라고까지 숭앙되고 머리에는 광
륜(光輪)을 얹고 가톨릭 종교감정의 음악적 화신(化身)으로서 높은 명성을 떨
쳐왔다. 그러나, 사실인즉 사람들은 그의 레테르에만 만족하고 33권의 그의 음
악은 대개 큰 도서관의 서가에 방치된채 있다. 한편, 오를란도 디 랏소는 그의
음악이나 명성을 세상에 퍼뜨릴만한 이런 종류의 레테르를 현재로서는 아무것
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러나 팔레스트리나와 오를란도 디 랏소와 같은 비범
한 천재는 오늘의 세계가 그들의 음악적인 본질인 깊은 종교적 감정과 예술적
탁월성, 불후의 인간성과 정신성을 이해하게 되기까지 50년이나 100년동안쯤
은 기다려 줄 것이다."

랏소의 작품을 부문별로 구분하면, 미사곡 60여곡, 수난곡 4곡, 마니피카트 약
100곡, 모테트 약540곡, 이탈리아어로 쓴 마드리갈 세속곡 약200곡, 프랑스어
로 쓴 샹송 약150곡, 도위치 리트 약90곡 등이다. 미사곡은 2/3이상이 이미 썼
거나 발표된 기성곡을 소재로 하여 재구성한 페러디 미사(Parody Mass / 타
인, 또는 자기가 쓴 악곡의 고정선율, 구성법을 베껴서 작곡하는 것. 15∼6세기
에 이런 수법이 크게 유행했다)이다. 페러디 소재 약 절반은 모테트에서 가져
온 것이다. 물론 랏소 자신의 모테트들이다. 나머지 절반은 샹송이나 마드리갈
이 채용됐다. 이토록 랏소의 미사 거의 대부분이 페러디 미사라는 사실은 미사
를 가볍게 여겼던 그의 태도가 반영된 것일뿐 아니라 일종의 만네리즘의 결과
이기도 하다. 따라서 그의 미사에서는 모테트와 같은 치열한 종교성과 예술성
이 찾아지기 어려운 것이다.

약100여곡의 마니피카트(Magnificat)중 60곡은 전통적인 그레고리오 성가의
각 선법(旋法)에 따라 작곡됐고, 나머지 40여곡은 페러디 마니피카트들이다.
페러디 소재의 절반이상이 세속작품이란 점도 흥미롭다. 역시 랏소의 종교음
악은 모테트에서 강렬한 기원(祈願)과 노래로 빛난다.

약 540곡이나 되는 그의 모테트는 르네상스 정신의 반영이라고 정의될 수 있
다. 언어와 음악은 굳건하게 결합되고 있고, 때문에 가사의 의미는 음악속에
서 회화적인 모습으로 강렬하게 구체화 되어 있고, 여기에 새로운 감각의 화성
진행, 현대적 감각의 불규칙한 리듬이 가세하여 당시로서는 전향적이고 전위
적인 스타일을 갖추고 있었다. 이러한 새로움은 후일 그의 제자 가브리엘리를
비롯한 베네치아 악파에 큰 영향을 주었고 나아가서는 바로크 음악의 열림을
예비하기도 했다. 특히, 베네치아 악파가 즐겨 사용했던 이중합창 技法과 색채
적 효과의 중시는 랏소의 영향이 결정적인 것이다.

*** 랏소의 주요 작품들

* 모테트 '오늘은 성신강림일이다' (6성)
  모테트 '하늘의 여왕이여 기뻐하소서' (7성)
  에레미아의 哀歌(5성)
  부활절을 위한 모테트와 마니피카트
  모테트 '음악은 하느님의 선물'(6성)
  모테트 '시온아! 구주를 보아라' (6성)
  모테트 '주는 나의 주님이십니다'(6성)
  모테트 '가장 좋은 때' (5성)
  모테트 '당신을 향한 나의 눈'(6성)
  테 데움(Te Deum) (6성)
  모테트 '나의 뼈와 살갗과 살과' (4성)
  모테트 '죽은 자 중에서 부활하신 그리스도' (5성)
  마니피카트 "자연의 섭리에 거역하여"(6성)
  레퀴엠 (4성)
  스타바트 마테르(성모애가) (8성)
  올리브 산에(6성)

*** 음반들

1) 참회 시편가 (Bu psalmen) '주여 나를 자유롭게 하소서'
     모테트 '경배하나이다, 하늘의 여왕이여'
     지 휘 : 브루노 터너 함부르크 고대음악 관악합주단
     프로 칸티오네 안티콰 제 작 : Archiv, (주) 성음 2533 290
     제작년도 : 1975년

2) '聖베드로의 눈물'(Le Lagrimd di San Pietro, 7성부)
   지 휘 : 안소니 룰리 (Anthony Rooley)
   The Consort of Musicke
   독 창 : 엠마 커크비 (Sop)등
   제 작 : L'oiseau-lyre (주) 성음 SEL-RD 544 제작년도 : 1982년

3) 레퀴엠(5성) 등
    지휘 : 보 홀덴 아르스 노바(덴마트 합주단) 1985년 녹음,
    MT-Contrafunkt

4) 레퀴엠(4성)
   지휘 : 마크 브라운 프로 칸티오네 안티콰
   1981년 녹음, Teldec

5) 종교적 마드리갈집 '성 베드로의 눈물'
    지휘 : 이스트판 베르카이
    프란츠 리스트 음악원 합창단
    녹음 1976년, Art & Electronics

6) 모테트 '음악은 하는님이 주신 선물'
     지휘 : 브루노 터너
     프로 칸티오네 안티콰 1975년 녹음,
      Harmonia Mundi

7) 종교 가곡집 '테 데움' 등 13곡 수록
     킹스 싱어즈 1960년 녹음, Angel

8) 모테트 '오늘은 성신 강림의 날' 등
    지휘 : 피터 필립스 탈리스 스콜라스 1986년 녹음, Gimer


** 감상 메모

모테트는 "말"이라는 의미를 갖는 프랑스어 "모트(mot)"에서 왔으며, 클라우술
라 , 두플룸 에 부가 되었던 프랑스어 가사에 처음으로 모테트라는 말이 사용
되었다. 후일 모테트는 곡 전체를 이르게 되었다. 이런 연유로 해서 모테트는
13세기에 프랑스에서 가장 많이 작곡되었고 점차 서유럽으로 번져 나갔다. 이
무렵의 모테트는 대부분 작곡가 미상이며, 어떤 작곡자나 가수들도 마음데로
편리하도록 개조하는 풍조도 유행했다.

모테트는 교회의 전례 이외의 세속적인 경우에도 불려질 수 있도록 작곡 되었
다. 때문에 미사곡과는 달리 반드시 라틴어로 불려지지 않아도 좋았고, 그 결
과 모국어로 노래되는 경우가 많았다. 악곡의 형식은 정선율(定旋律 ; 테너)의
지배와 多歌詞性 (Polytextuality)을 특성으로 하는 다성적(多聲的) 구조를 갖
고있다. 때문에 모테트는 다성음악의 발전에 큰 공헌을 하게된다.

15세기, 즉 르네상스 시대에 와서 모테트는 종교적인 가사로 변모하게 된다.
이것은 13-14세기의 세속적 내용에 비하면 실로 커다란 변화가 아닐 수 없는
것이다. 부르고뉴 악파에서는 4성부를 典型으로 하고 가사는 각성부에 걸쳐 통
일시켰다. 중세의 다가사성과 정선율 지배가 사라진 것이다. 한편, 플랑드르
악파에서는 라틴어 가사에 의거하는 4-6성부의 합창형식을 발전시켜 미사와
거의 대등한 비중의 교회음악으로 끌어올렸다. 아울러 각 성부가 평등하게 모
방에 참가하는 이른바 통모방양식(通模倣樣式 / durchimitierender Stil)을 성
립시켰다. 이 양식은 오케겜(Johannes Ockeghem, 1450년경∼1495 혹은 96
년), 오브레하트(Jacob Obrecht, 1450년경∼1505년), 죠스캥 데 프레
(Josquin des Pres, 1440년경∼1521년), 이자크(Heinrich Issac, 1450년경∼
1517년) 등에 의해 계승되고 죠스캥은 가사의 단락마다 새로운 동기나 주제가
모방되는 다성부 모테트의 형태를 확립했다.

오늘날 우리가 모테트라고 이르는 것은 바로 이러한 모방대위법에 의한 다성
부 합창곡 양식인 것이다. 물론 이 양식은 랏소에 의해 가장 풍요하게 가꾸어
지게 되었다.

*** 시범 감상

모테트 / '아베 레지나 첼로룸 (Ave Regina Caelorum)'
'경배하나이다. 하늘의 여왕이여' 라는 의미의 모테트로서 4성부의 훌륭한 작
품이다. 섬세하고도 운율적이며 매우 신비로운 느낌을 주는데, 그것은 멜리스
마(1음절에 대하여 다수의 음표가 주어지는 장식적인 성악양식)를 제한적으
로 사용한 탓이리라. 리듬은 활력에 넘쳐있고 화려하고 세련된 기쁨이 악곡 전
체에 담겨져 있다.

** 음반
지휘 : Nies Karl-Ludwig
Capella Cathedralis München
제작 : Christophorus CHR 77196 ; published 1997-02-01

** 퍼 가는 것은 좋습니다. 그러나 반드시 출처를 밝히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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