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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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곽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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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황과 카라얀의 만남


  
◆ 음악듣기
모차르트 대관식(戴冠式) 미사 다 장조 K.317
독창 :  Kathleen Battle, Ferruccio Furlanetto, Trudeliese Schmidt, Gosta Winbergh
지휘 : 카라얀, 빈 필하모니커와 합창단
http://youtu.be/UfkyR6Nfeo0

카라얀과 만나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http://www.youtube.com/watch?feature=player_detailpage&v=2c3mSgNLeL0


요한 바오로II세 교황 집전 미사 실황 음반        
지휘 /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빈 필하모닉 관현악단. 빈 樂友協會 합창단.        
수록곡 / 모차르트의 ‘대관식 미사’ 등        
제작 / 도위치 그라모폰(LP) SEL-RG913(성음)        
텔레몬디얼(LD) Sony classical SLV 46 382        
디지틀 스테레오 녹음, 58분 31초        

짙은 구름이 낮게 깔린 잘츠부르크의 낮 12시. 금세기의 가장 위대한 지휘자 중의 한 사람인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이 그의 죽음과 투쟁하고 있던 시각이었다. 그는 심장경련으로 고생해 왔
었다. 부인 엘리에테가 주치의 스페히틀러를 잘츠부르크 근교 아니프의 카라얀 별장으로 급히
불렀으나 모든 일이 허사였다. 하오 1시 30분께 지휘자의 심장은 완전히 멈추었다. 곧 통신사
의 보도가 세상으로 타전됐다. “제왕(帝王)이 죽었다.”

모차르트와 같은 고향 잘츠부르크에서 태어나 모차르트에 버금가는 명예를 누린 지휘의 제왕 카
라얀은 1989년 7월 16일, 81년의 생애를 마감했다. 누구와도 비견될 수 없을 정도로 고전음악
을 형상화시킨 뛰어난 지휘자, 언론 매체의 스타 연출자, 축제의 창설자와 감독, 음악 사업가,
스피드광, 엄청난 부(富)의 축재자 등등 수많은 이름으로 불려졌다.

가톨릭 신자인 카라얀은 교황이 집전하는 미사에서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것이 오랜 염원이었
다. 1983년, 교황이 오스트리아를 방문했을 때 카라얀은 이러한 평소의 소망을 교황에게 직접
전달한 일이 있었다. 그의 꿈이 교황의 허락으로 1985년 6월 29일 바티칸 시티의 성 베드로
성당에서 올려진 <베드로와 바오로의 축일을 위한 장엄미사>에서 현실로 이루어 졌다.

이 미사에서 카라얀이 오케스트라를 지휘한 사실은 몇 가지 역사적 의미에서 매우 중요한 이벤
트로 기록되고 있다. 하나는 70년 전 교황 비오 10세에 의해 성당에서 오케스트라의 연주가 일
절 금지된 이래 최초의 연주라는 사실, 또 하나는 바티칸과 프리메이슨이 근 200년 만에 해후
를 했다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이날 모차르트의 <대관식 미사>가 연주 됐는데, 모차르트는 비밀
결사인 프리메이슨 단원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하나는, 카라얀으로서는 15년 만에 이루어
진 이탈리아 방문이라는 사실이다. 모차르트의 다 장조 미사곡이 대관식으로 불려진 이유를 설
명하는 통설은 다음과 같은 것이다.

잘츠부르크 북쪽 교외(郊外) 언덕 위에 마리아 프라인 순례 교회가 있는데, 이 교회의 주제단(主
祭壇)에 모셔진 성모 마리아의 대관상(戴冠像, 왕관을 머리에 쓴 마리아 상)은 화재를 당한 어떤
다른 교회에 모셔져 있었는데, 기적적으로 불에 타지 않아 마리아 프라인 순례 교회로 옮겨졌
고, 1744년에 잘츠부르크 교우들에 의해서 대관 되었다. 그후 1751년 성신강림 대축일 후 제
5 일요일(6월 4일)에 로마 교황 베네딕투스 14세에 의해서 다시 대관식 의식이 거행되었고 이
를 기념하기 위해 해마다 이날 특별 미사를 봉헌하게 되었다.

모차르트는 1779년의 봉헌일(6월 27일)을 위해서 미사곡을 썼는데, 이때부터 대관식이라는 이
름으로 불려 지게 됐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이야기는 사실과는 다르다는 것이 밝혀졌다.
첫째 이유인즉, 모차르트가 이 미사곡을 완성한 날자가 1779년 3월 23일, 그러니까 연주 예정
일로부터 3개월 전에 썼는데 그의 작곡 습관으로 보아서 말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는 발등에
불이 떨어져야 비로소 곡을 쓰는 버릇이 있었기 때문에 석달이나 앞서서 곡을 썼다는 사실은
믿기 어렵다는 것이다.

둘째 이유는, 이 작품의 악기 편성을 보면 현악 4부, 오보에 2, 혼 2, 트럼펫 2, 트럼본 3, 팀
파니, 오르간 등 상당히 큰 규모인데, 이러한 편성은 마리아 프라인 교회의 크기엔 도저히 맞지
않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미사곡은 1779년 4월 4일-5일에 있었던 부활절 미사를 위해서 쓴
것이고, 마리아 프라인 교회가 아닌 잘츠부르크 대성당에서 초연 됐을 것이라는 주장이 거의 정
설로 굳혀지고 있다. 단지 이 작품이 1790년에 유럽 각지에서 거행된 레오폴드 2세의 대관식
기념미사에 사용됐기 때문에 대관식이라는 이름이 붙여졌을 것으로 추측될 뿐이다.

앞에서도 기술한 것처럼 이 작품은 종전의 미사곡에 비해서 악기 편성이 대규모로 확대되어 있
고 전체적인 악상이 상당한 다이네믹스를 바탕으로 삼고 있기 때문에 활기차고 장대한 느낌을
준다. 흥미로운 것은 <아뉴스 데이> 중 소프라노 독창에서 노래되는 선율이 <휘가로의 결혼> 제
3막에서 백작부인이 노래하는 아리아의 첫 머리와 닮아있고 여러 곳에서 기악적인 비중이 큰
것을 발견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이 작품은 K.337로 분류되고 있는 다 장조의 장엄미사곡과 더
불어 가장 중요한 모차르트의 미사곡으로 평가되고 있다. 편성은 독창과 합창 4부에 관현악기들
인데 당시 잘츠브르크의 전통에 따라 비올라가 제외되고 있다.

◆ 악곡의 구성
제1곡 키리에(Kyrie)
제2곡 글로리아(Gloria)
제3곡 크레도(Credo)
제4곡 쌍투스(Sanctus)
제5곡 베네딕투스(Benedictus)
제6곡 아뉴스 데이(Agnus Dei)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Herbert von Karajan, 1908-1989). 20세기에 활약한 지휘자들 가운데
매체의 위력을 누구보다도 정확하게 파악하고 이를 충분히 활용한 인물이다. 그의 사후에 발표
되고 있는 레이저 디스크들 가운데 세계적인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대부분의 것들이 바로
그가 생전에 직․간접으로 제작에 관여한 영상 작품들이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소니(SONY)
레이블로 발표되고 있는 레이저 디스크들(베토벤/바이올린 협주곡, 모차르트/대관식 미사, 모차
르트/레퀴엠 등)에 대한 관심과 인기는 오히려 그의 생전의 정도를 능가하는 것으로 보여질 정
도다. 여기에 소개하는 디스크도 이러한 범주에 넣을 수 있는 것인 동시에 연주의 질에 있어서
나 스타일에서 또한 음질과 영상미학 이라는 기준에서도 기념할만한 뛰어난 작품이다. 단지 흠
이 있다면 네 사람의 독창자를 잡고 있는 망원 카메라의 위치 선정의 잘못으로 베틀과 쉬미트
를 제외한 나머지 두 남성 독창자의 바스트 샤트(Bust Shot, 가슴 부위에 근접시키는 카메라
앵글) 영상이 시종(始終) 포커스 아웃(Focus out)되는 것인데, 시각에 따라서는 이를 예술적 어
프로치로 수용할 수도 있으리라.

카라얀이 최초로 레코딩은 1938년이다. 그해 9월과 10월, 베를린 국립 가극장에서 지휘자로 데
뷔한 카라얀에게는 <기적의 카라얀>이라는 별호가 붙여졌다. 그의 데뷔에 대한 반응이 그만큼
대단했다는 것이다. 도이치 그라모폰(DG)이 녹음을 제의했다. 12월 9일, 베를린의 DG 스튜디
오에서 그의 첫 녹음이 진행되었다. 파트너는 베를린 국립 오페라 관현악단이었고, 작품은 모차
르트의 오페라 <마술 피리> 서곡이었다. 이 녹음 이후 카라얀은 음반역사의 숱한 신기록들을 세
워 나갔다. 차이코프스키의 <비창>을 7번이나 녹음했고, 요한 스트라우스의 <박쥐> 서곡과 <집
시 남작> 서곡을 각각 7번씩 녹음했다. 베토벤의 교향곡 전집을 네 번에 걸쳐서 녹음했는데, 모
노로 1번, 스테레오로 2번, CD로 1번이었다. 이러한 기록은 카라얀流의 완전주의를 실증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카라얀이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종신 상임 지휘자로 취임한 것은 1955년이다. 프루트
뱅글러의 바톤을 이어 받은 그로서는 전임자의 음악적 체취를 없애는 작업에 매어 달렸고, 이러
한 작업이 어느 정도의 성과를 거두게 되자 비로소 본격적인 레코딩에 나섰다. 베를린 필의 지
휘자가 되고나서 3년 뒤인 1958년에야 비로소 DG와 장기 계약을 맺은 사실이 그간의 사정을
설명한다.

1958년이라는 해는 또 하나의 역사적인 의미를 갖는다. 이 해에 스테레오가 처음으로 상업화됐
기 때문이다. 따라서 카라얀과 베를린 필의 시대를 레코드史와 연결시켜보면 LP 스테레오, LP
디지털, 컴펙트 디스크, 비디오 카세트, 레이저 디스크의 시대가 되는 것이다. 게다가 카라얀은
레코드라는 매체를 수동적으로 수용하는 입장이 아니었고 오히려 이를 능동적으로 이용하였던
인물이라는 점에서 다른 지휘자들과 구분된다. 새로운 기술이나 매체가 개발됐을 때 이를 가장
먼저 활용했고 그리고 성공했다. 스테레오가 개발되자 리하르트 스트라우스의 <영웅의 생애>를
녹음했다.

영상에도 남달리 일찍 눈을 떠서 1948년에 에른스트 마리쉬카 감독과 공동으로 <마태 수난곡>
을 영화로 제작했고, 1960년엔 <장미의 기사>가 잘츠부르크 대극장의 낙성 기념 작품으로 상연
될 때 이를 다큐멘터리 영화로 제작하여 경험을 쌓았다. 프랑스의 명감독 앙리 조르주 크르조와
베토벤의 운명 교향곡, 슈만의 교향곡 제 4번을 콘서트 필름으로 제작하기도 했다.

텔레비전이 등장하자 1965년에 TV 영화회사 <코스모텔>을 설립하고 비제의 <카르멘>을 TV영
화로 제작하여 성공을 거두었다. 이때만 해도 TV의 기술 수준이 초보 단계여서 시행착오와 이
에 따른 위험부담이 컸음에도 불구하고 TV영화 제작에 나선 것만 보더라도 그가 얼마나 첨단
매체에 큰 관심을 갖고 있는지를 짐작하게 한다. 이에 머물지 않고 1983년엔 영상 컨텐츠 회사
텔레몬디알(Telemondial)을 설립하고 그가 운명할 때까지 모두 50개 타이틀을 제작하는 의욕
을 보였다. 이러한 그의 태도에 대해서 비판적 시각을 갖고 있었던 사람들은 카라얀이 지나치게  
매체적 효과에만 매달려 있다는 비난을 퍼부어 댔다. 그러나 매체의 속성과 그 파급 효과에 대
한 철저한 신봉자로 자임한 그의 입장에서 현대 전자문명은 그의 예술적 성과를 가장 확실하고
효과적으로 대중에게 보여주고 들려주는 갖장 확실한 길이었다. 또한 이를 통해서 그는 현대의
우상으로서 자신을 형상화시킬 수 있었다. 일본의 전문 월간지 <레코드 예술>은 1989년 3월 현
재 카라얀의 음반 판매량을 1억 1,550만장으로 집계한바 있었다. 그의 생애를 통해서 3개의 메
이저 메이커와 몇 개의 마이너 레이블과 녹음을 했는데, DG가 53%, EMI가 41%, LONDON
및 기타가 6%로 분석됐다.

2시간에 걸친 교황 집전의 미사는 TV로 35개국에 방송됐고 교황은 수많은 언어로 이 미사를
집전했다.  이러한 역사적 미사 실황을 발췌하여 담은 이 음반엔 미사 예문과 모든 그레고리오
예전(禮典)음악들이 포함되어 있다.

종교음악은 모차르트의 대관식 미사가 중심이 되어 미사 순서에 따라 연주 됐으며, 일부 시편송
은 바르톨루치의 작품이 연주됐다. 카라얀은 독창자로 케틀린 베틀(Kathleen Battle, 소프라
노), 트루델리제 시미트(Trudeliese Schmidt, 알토), 귀스타 빈버그(Gösta Winbergh, 테너),
페루치오 푸르라네토(Ferruccio Furlanetto, 베이스)를 기용했는데, 그들의 여비를 전액 부담하
는 등 각별한 배려를 했고, 음반의 수익금은 칼티아스 인터네셔날(Cartias International) 자선
단체에 희사했다.

종교계의 최고 지도자와 음악의 귀재(鬼才)가 이처럼 예배 의식을 통해 서로의 탤런트(Talent)를
神에게 바치는 기회는 흔치 않을 것이라는 점에서 이 음반은 보기 드문 역사의 기록이자 레코드
사상 희귀한 앨범으로 기록될 것이다.

◆ 음반 제원
요한 바오로II세 교황 집전 미사 실황 음반
Herbert von Karajan, Conductor
Wiener Philharmoniker
Trudelese Schmidt, Alto / Gosta Winbergh, Tenor
Kathleen Battle, Soprano / Ferruccio Furlaneto, Bass
Vienna Singverein
Pope John Paul II, Speaker
제작 : Sony calssical DVD 46382

◆ 퍼 가는 것은 좋습니다. 그러나 반드시 출처를 밝히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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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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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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