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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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곽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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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벤자민 브리튼(B. Britten) / 전쟁 레퀴엠(War Requiem)

  
** 유투브 감상
John Eliot Gardiner, NDR-Sinfonieorchester
http://www.youtube.com/watch?feature=player_detailpage&v=GHNgfF19CTY


그레고리우스 1세에 의해서 제정된 그레고리오 성가가 영국 캔터베리 초대 대
주교인 아우구스티누스의 손으로 소개되면서 비로소 영국의 음악 역사는 시작
된다. 10세기엔 윈체스터 대성당에 대형 파이프 오르간이 설치되었고, 15세기
의 작곡가 존 턴스터블은 유럽에까지(특히 프랑스에) 영향을 미칠 정도로 뛰어
난 창작 활동을 했다. 16세기와 17세기엔 윌리엄 버드·존 다울런드·기번스·토머
스 몰리 같은 재능 있는 작곡가들이 영국의 음악을 빛냈다. 그러나 이무렵까지
만해도 국제적인 인정을 받았다고 여겨지는 작곡가는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비로소 나타난 최초의 국제적 작곡가는 헨리 퍼셀(H.Purcell,1659∼
1695)이었다. 그러나 퍼셀은 40세도 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영국
의 작곡계는 오랜 공백기를 거쳐야 했다.

영국의 바로크 음악은 독일인인 헨델이 메꿔 준 셈이다. 오히려 이 시대부터
영국 음악계는 유럽 대륙에서 건너 온 작곡가들의 시장으로 터를 잡는 형세를
보이기 시작한다. 웬일인지 영국 음악계는 창작 부문의 결핍상태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었고 어느덧 이러한 현상은 영국의 전통처럼 굳혀 지는가 싶었다. 그
러던 가운데 20세기에 들어와서 일단의 재능 있는 작곡가들이 등장하게 되는
데 엘가·델리어스·홀스트 등 세 사람이다. 그러나 이들에 대한 평가도 제한적
인 국제성을 가졌기 때문에 명실상부하게 국제적으로 영국 음악의 거장으로
대접받을 수 있는 인물이 등장하기를 영국 음악계는 간절하게 소망하고 있었
다.

그 소망을 성취시킨 인물이 벤자민 브리튼(Benjamin Britten)이다. 헨리 퍼셀
이후 실로 3세기만에 등장해서 영국 작곡계의 위상을 한껏 끌어올리는 눈부신
역할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브리튼은 작곡가이자 뛰어난 피아니스트 였으며
또한 저명한 지휘자이고 음악제의 관리자이기도 하였다. 참으로 다재다능한
인물이었던 것이다.

브리튼은 12살 때부터 브릿지(F.Bridge)에게서 작곡을 사사했다. 9살의 어린
소년이 현악4중주곡을 작곡할 정도로 놀라운 재능을 보인데 탄복하고 브릿지
자신이 브리튼을 가르치겠다고 자청했던 것이다. 그의 지도법은 대단히 엄격
한 것이어서 후일 브리튼이 위대한 작곡가로 성장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
다고 평가되고 있다. 16살 때, 장학금을 받고 왕립음악대학에 진학하여 작곡
과 피아노를 연마하고 이 무렵 [단순 교향곡(Simple Symphony)]을 썼다.
1934년에 대학을 졸업했는데 부친이 별세했기 때문에 당장의 집안 경제문제
를 해결하기 위해 영화 스튜디오에서 음악을 담당하는 세월을 보내게 되었다.
당장의 호구를 위해서 시작한 일이긴 했으나 이때의 경험이 후일 그의 창작에
큰 보탬이 되었을 뿐 아니라, 시인 오든(W.Hugh Auden)을 알게된 것은 그로
서는 커다란 행운이었다. 그를 통해서 영시(英詩)가 지니고 있는 아름다움에
눈뜨게되고, 시와 음악의 미학적 관계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했던 것이다. 또
한 오든과의 교우(交友)를 통해서 예술가의 사회적·정치적 책임에 대해서도 새
로운 안목을 가질 수 있었다. 후일, 브리튼이 지금까지의 레퀴엠과는 전혀 형
태를 달리하는 라틴어 전례문(典禮文)과 오웬의 영시(英詩)를 결합 시켜서 전
쟁의 부당성과 민족간의 화해를 모토로 삼는 [전쟁 레퀴엠]을 쓰게된 것도 오
든의 영향이 얼마나 깊었는가를 보여주는 실증(實證)인 셈이다.

벤자민 브리튼(Benjamin Britten)은 이름난 '행동하는 평화주의자'이기도 하
다. 철저한 평화주의자로 그의 생애를 일관하게된데는 어린 시절의 스승이었
던 프랭크 브릿지(Frank Bridge)의 영향이 컸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브릿지
는 세계 제 1차대전을 겪으면서 전쟁이 빚어내는 학살과 엄청난 피해를 목격하
면서 평화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갖게 되었고, 그러한 자신의 사상을 어린 제
자에게 심어 주었던 것이다. 후일, 브리튼은 스승을 일러서 '온화한 평화주의
자'로 불렀는데, 이에 비해서 그 자신은 '행동하는 적극적인 평화주의자'의 입
장이었던 것이다.

평화에 대한 그의 사상을 처음 작품에 반영한 것으로 15세 때인 1915년에 쓴
수필이 있다. 동물들을 죽이는 사냥을 통렬하게 비난하면서 전쟁을 포함한 모
든 종류의 잔혹행위를 공격하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이 수필이 주변의 관심을
끌지 못하자 곧 메어(Walter de la Mare)의 시(詩)를 텍스트로 삼은 가곡을 쓰
기 시작하였다. 그 중의 한 노래는 덫을 놓는 사냥 감시인을 비난하는 내용이
었다. 이어서, 1936년, 그의 최초의 걸작 관현악곡으로 평가되는 작품 [우리들
사냥의 조상들(Our Hunting Fathers)]을 썼다. 새와 짐승들에게는 물론 사람
들에게 잔혹행위를 하는 사람들을 공격하는 오든(W.H.Auden)의 작품을 주제
로 삼은 관현악 곡이었다. 이 작품은 동시에 유태인을 부당하게 취급하는 독일
에 대한 명백한 경고이기도 하였다.

이와 같은 그의 사상과 작품 활동을 상기한다면 1942년, 브리튼과 피터 피어스
(Peter Pears)가 미국에서 3년간을 보내고(1939년, 오든 이 미국으로 귀화하
자 브리튼도 유럽의 불안한 정세를 피해서 피어스와 함께 미국으로 건너갔
다.) 영국에 돌아와서 참전을 거부하고 그 대가로 법정에 서게되는 일련의 사
건은 당연한 귀결이라고 이해되는 것이다. 브리튼이 참전거부의 의사를 명백
하게 밝히자 영국 정부는 그에게 [왕립 공군 음악감독]으로 취임해 줄 것을 제
의하게 되고 브리튼이 이를 수락하자 참전문제로 야기된 이 사건은 자연스럽
게 해결되기에 이른다. 또한 영국 법정은 브리튼과 피어스가 군대를 위한 연주
회를 제공해야 한다는 조건을 붙여서 군복무의  의무를 면제해 주는 결정을 내
리게 되었다.

이러한 일련의 사건에서 우리는 벤자민 브리튼이 '행동하는 평화주의자'라는
사실을 확인하게 되는 것이다. 음악학자 켈러(Hans Keller)는 브리튼을 '적극
적 평화주의자'로 표현하기도 했다. 그의 행동하는 평화주의는 1967년, 이스라
엘과 아랍 사이에 [6일전쟁]이 발발 했을 때 "무기를 드느니 차라리 아랍의 탱
크 앞에 드러눕는 것이 낫다"고 이 전쟁을 비난한데서도 여실하게 나타난다.

오라토리오와 같은 웅대한 규모의 합창음악을 써야 하겠다는 구상은 오랫동
안 브리튼의 머리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러던 중에 1945년, 히로시마에 원
폭(原爆)이 투하된 직후 시인 던컨(Ronald Duncan)의 협력을 얻어서 오라토
리오 [내 탓이로소이다(Mea Culpa)]를 썼다. 이어서 1948년 1월, 라틴어로
된 레퀴엠 미사를 일부 변형시키는 독특한 형태의 진혼곡에 대한 구체적인 구
상에 들어갔다. 이러한 구상의 동기는 거의 성자(聖者)처럼 철저한 무저항 운
동으로 자신의 정치적 목적을 추진하고 있었던 간디(Mahatma Gandhi)가 암
살 당한 충격에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본은 크로짜이어(Eric Crozier)가
맡았는데 가능한 간디의 연설문에서 발췌하여 골격을 삼는다는 계획이었다.

징용 병사이자 시인인 오웬(Wilfred Owen)의 시에 브리튼이 곡을 붙인 최초
의 작품은 1958년에 작곡된 [녹턴(Nocturn)]이었다. 가사는 [친절한 유령
(The Kind Ghost)]에서 취한 것이었다. 같은 해, 그는 BBC에서 역시 오웬의
시 [이상한 만남(Strange Meeting)]을 발표하기도 했다. 브리튼이 레퀴엠을
쓰게된 직접적인 동기는 위에서 밝힌 여러 가지 이유 말고도 공식적인 요청에
서도 찾아 진다. 그 경위는 이러하다.

잉글랜드 중부 와리크샤주(州) 코벤트리에 소재한 코벤트리 대성당은 500년
의 역사를 자랑하는 유서 깊은 성당이었다. 그런데 이 성당이 1941년에 독일기
의 폭격으로 파괴되고 말았다. 그후 오랜 세월 복원이 되지 못하고 있다가
1962년 5월에 드디어 새로 지은 대성당의 헌당식(獻堂式)을 갖게 되었다. 이
역사적인 헌당식을 위한 축제도 함께 마련 됐는데, 그 중의 한 작품을 작곡해
주기를 브리튼에게 의뢰했던 것이다. 의뢰를 받은 브리튼은 이 축제야말로 평
소 자신이 품고 있었던 평화주의를 표현하는 대규모의 합창음악을 발표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했을 뿐 아니라 인류의 화해를 위한 의미를 강조하
기 위해서 독창자의 선정을 2차대전의 당사국들인 영국, 러시아, 독일인으로
구성한다는 계획을 세우게 되었다. 그 결과 러시아의 소프라노 가리나 비쉬네
프스카야(Galina Vichnevskaya), 영국의 피터 피어스(Peter Pears), 독일의
핏셔 디스카우(D.F.Dieskau)가 독창자로 선정되었다. 그러나 가리나의 출연
을 러시아 정부가 반대했기 때문에 그 대신 영국의 소프라노 히더 하퍼
(Heather Harper)가 초연의 영광을 누리게 되었다.

앞에서도 기술한 것처럼 군대에 입대하기를 거절할 만큼 철저한 평화주의자
인 브리튼이 오웬의 시중에서도 그가 휴전 1주일 전까지(오웬은 휴전 1주일 전
에 27세의 나이로 전사했다) 실제로 겪었던 전쟁의 적라나한 상황들과 전장(戰
場)의 소리들(총알이 나는 소리, 총신이 서로 부딪치는 소리, 신호 나팔 소리
등)을 마치 그림을 그리듯 상세하게 묘사하고 있는 사실은 일견 납득하기 어려
운 설정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러한 소재들과 표현들은 그가 전달하고자 했
던 메시지의 의미를 강조하기 위해서는 필수적인 것이었던 것이다. 브리튼은
[전쟁 레퀴엠]의 모토를 악보에 다음과 같이 쓰고 있는데 이 역시 오웬의 시에
서 가져온 것이다."나의 주제는 전쟁과 전쟁의 슬픔이다. 시는 전쟁의 슬픔 속
에 있다.시인이 할 수 있는 오늘의 모든 일은 경고하는 것이다."My subject is
War and the pity of War. The poetry is in the pity. ---All a poet can do
today is warn.)

라틴어 전례문과 오웬의 영시는 대단히 교묘하게 융합되어 있는데, 라틴어 전
례문은 어린이 합창, 소프라노 독창, 합창, 관현악, 오르간에 의해서 표현되고
있고, 오웬의 영시는 테너와 바리톤의 독창과 실내악에 의해서 표현되기 때문
에 일견(一見) 확연한 구분이 되고 있기도 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영시의 표
현 도중에 오르간을 동반하는 어린이 합창이 라틴어 전례문을 노래하는 등 양
자(兩者)의 교묘한 혼합을 꾀하기도 한다. 이러한 혼합의 효과는 실로 절묘한
음악적 효과를 연출하게 된다.

편성은 오케스트라, 실내악, 3명의 독창자(소프라노·테너·바리톤), 합창과 어
린이 합창, 오르간이다.

1962년 5월 30일, 코벤트리 대성당에서 데이비스(Meredith Davis)의 지휘로
거행된 초연은(버밍검 교향악단·멜로스 앙상블·코벤트리 축제 합창단·스트레트
포오드 성삼위 교회 어린이 합창단) 강렬한 정서적 반응을 불러 일으켰는데,
현장에 있었던 청중 보다는 라디오 중계방송을 들었던 청취자의 경우가 더 강
렬한 반응을 보였다고 전해진다. 브리튼이 의도했던 데로 음악이 갖는 강렬한
치료효과를 통해서 인류의 화해를 성취 시켰던 것이다.

** 악곡의 구성
전체는 6개의 악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편의상 오웬의 영시(英詩) 부분만을 발
췌하여 가사를 소개한다. 라틴어 전례문은 여타의 레퀴엠과 동일하기 때문이
다. 오웬의 영시 번역은 [세계명곡해설대사전(국민음악연구회)]제17권에서 인
용함.

제1악장 <레퀴엠>
5개의 부분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①합창과 관현악에 의한 '레퀴엠 에테르남(영원의 안식을 --- )'
  ②어린이 합창
  ③합창과 관현악에 의한 첫머리와 같은 부분
  ④테너 독창과 실내악에 의한 오웬의 시. "가축과 같이 죽어 가는 사람들을
애도하는 종소리는 괴물의 노여움 같은 총소리 울림인가. 포탄들의 미친 합
창, 슬픔에 닫혀진 여러 사람들의 고향에서 나팔 소리 그들에게 호소하고 있
다. 도대체 어떠한 촛불이 그들을 빌기 위해 켜질 것인가."
  ⑤합창

제2악장 <진노의 날>
매우 복잡한 구성을 보이는 악장이다. 금관에 의한 도입부, 합창이 라틴어로
디에스 이레(dies irae,진노의 날)를 노래하고, 이것에 이어서 오웬의 영시가
바리톤에 의해서 몇 차례 나타나고, 또 다시 처음의 디에스 이레로 돌아온다.
"나팔 소리가 저녁놀 대기 속에 슬픔을 깊이해서 울려 퍼졌다. 그러면 다른 나
팔 소리가 이에 답하여 듣기에도 슬프게 노래하였다. 냇가에서는 소년의 노래
소리가 들려, 졸음이 어머니와 같이 그를 감싸고,  황혼의 슬픔이 주위에 남았
다. 이윽고 새벽의 기운이 차오기 시작하였다. 새벽의 그림자에 안겨 머리를
숙이면서 잠자고 있다." "우리들은 죽음을 향하여 어디에도 비길 데 없이 친밀
한 감정으로 나아가서 침착하고 느릿하게 죽음과 함께 앉아서 식사를 하였다.
죽음이 큰 낫으로 우리를 베고있는 동안에도 우리들은 휘파람을 불었다. 오,
죽음은 결코 우리들의 적은 아니었다." "우리들은 비웃었다. 가장 뛰어난 사람
들과 보다 큰 전쟁이 닥쳐옴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긍지 높은 전사들 한 사람
한 사람이 자만할 때,그는 죽음과 싸우고 있다. 생을 위해서이다. 누구도 깃발
을 위해서가 아니다." "그대의 길고 검은 팔이 느릿하게 쳐들어진다. 하늘을 향
해서 병립(竝立)하고 있는 거포(巨砲)는 이제부터 저주를 하려고 한다.

 그러나 그대의 마력이 완전히, 그리고 모두 투입된다면, 하느님이여, 그대에
게 저주 있어라! 그리고 그대를 우리들의 영혼에서 떼어버리소서." "그를 움직
여라! 태양을 향해서 그를 움직여라! 고향에서는 아직 씨뿌리기가 끝나지 않
은 밭의 부슬부슬한 소리가 언제나 그를 깨게 했던 것이다. 도대체 어떻게 씨
앗이 자라나는가를 생각해 보라."

제3악장 <봉헌송>
어린이 합창과 바리톤과 테너의 독창이 활약하는 악장인데, 아브라함이 하느
님의 명령으로 자기의 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치려는 구약성서를 소재로 삼고
있다. 물론 이 성서 이야기는 오웬의 시에 등장하는 것이다.

제4악장 <거룩하시다>
도입부·라틴어 부분·영시의 부분 등 3부로 나누어지는 악장이다. 라틴어 부분
에서는 소프라노 독창과  합창의 활약이 두드러지고, 영시 부분에서는 바리톤
독창이 "동쪽으로부터 한 가닥 빛이 내리비친 다음 하늘 가득히 구름이 솟아나
고, 아름다운 수레를 탄 옥좌가 나타났다. 그때 하느님이 울리시고 북소리가
나고 그것이 그친 뒤에 청동색의 서풍에 실려서 퇴각의 신호 소리가 울려 퍼진
다." "이들 육체에 생명은 또 다시 소생할 것인가. 하느님은 모든 죽음을 취소
하고 모든 눈물을 진정 시킬 수 있을 것인가." "나는 백발의 나이를 소망하는
데 하느님은 그를 허락하지 않으셨다." 등 전쟁이 몰아 온 죽음에 대해서 담담
하게 노래하고 이를 실내악이 받침 한다.

제5악장 <하느님의 어린 양>
가장 짧은 악장으로, 테너 독창은 영시, 합창은 라틴어 전례문을 노래한다.
테너는 "이 전쟁에서 주도 손발을 잃었다. 그러나 주의 사도들은 떨어진 곳에
숨어 있다. 그리하여 이제 병사들은 주와 함께 견뎌내지 않으면 안 된다."고 노
래한다. 합창은 테너의 악상을 좇아 "하느님의 어린 양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주여"라고 노래한다. 다시 테너는 "골고다 부근을 배회하는 많은 사제들, 그리
고 그 얼굴은 온화한 그리스도를 부정한 적으로 말미암아 새하얗게 새겨진 자
랑이 있다"고 노래한다.

제6악장 <풀어 주소서>
가장 긴 악장이다. 전체는 3개의 부분으로 구분된다.
①행진곡 풍의 합창 음악과 소프라노 독창
②실내악과 독창의 부분. 테너가 "나는 싸움터에서 도망쳐 어떤 깊고 어두운
터널 속에 숨었다. 그러나  거기에도 다 죽어 가는 자들이 장소를 메우고 신음
하고 있었다" "이는 말할 수 없는 진실을 뜻하고 있다. 전쟁의 비애를, 전쟁이
만든 비애를!" 이라고 노래한다. 이어서 바리톤은 "그들은 암호랑이 같이 재빠
른 동작으로 움직일 것이다. 나는 네가 죽인 적이다, 친구여! 그러나 나의 손
은 더러워서 식어 버리고 말았다."고 노래하면 이어서 "자, 잠자지 않으려나 --
--- "라고 테와 바리톤은 죽음을 받아 들이는 체념을 노래한다. 여기서 소프라
노가 "영원한 안식을"이라고 노래하면 테너와 바리톤은 "잠자지 않으련가"라
고 화답하여 3중창이 진행된다.
③합창이 "평화 속에 쉬게 하소서. 아멘"이라고 노래하며 전곡은 끝난다.

** 음반들

1. Decca 414 382-2(사진)
    Vishnevskaya, Pears, Fischer Dieskau,
    Bach Choir, London Sym. Orch. Choir Hihggate School Choir,
    지휘 : B.Britten
1963년에 녹음된 이 음반은 아나로그 시대의 가장 뛰어난 작품의 하나로 평가
되고 있다. 특기할만한 것은 초연에 초빙되었다가 러시아 당국의 반대로 무대
에 서지 못했던 비쉬네프스카야를 기용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그녀의
연주는 샨도스의 히터 하퍼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는 평을 듣고 있다. 작곡자
자신의 지휘와 초연 당시의 연주팀이 상당수 포함되어 있다는 측면에서 이 음
반은 높은 역사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2. EMI Dig. CDS7 47034-8,
     R.Tear, T.Allen,
     Trebles of christ Church Cathedral choir,
     Oxford, CBS Chamber, CBS Orch.
     지휘 : 사이몬 레틀
라틴어 전례문과 오웬의 시를 표현하는데 있어서 근본적으로 브리튼의 해석
과 다르다는 사실이 이 음반의 두드러진 특징일 게다. 쉐더스트륌의 표현은 비
쉬네프스카야에 비해 훨씬 따뜻한 정감을 지니고 있고, 토머스 알렌의 독창은
디스카우에 비해 관용적 수용력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가하면 로버트 티어의
노래는 피어스에 필적할만한 감동을 자아낸다. 전반적으로 레틀의 해석은 드
라마틱한 쪽에 경도되고 있는 편이긴 해도 바탕은 따뜻한 휴머니티로 느껴진
다.

3. Chandos Dig. CHAN 8983/4, DBTD 2032,
     Harper, Langridge, Shirley-Quirk,(Hill, DBTD판),
     ST.Paul's Cathedral Choristers, London Sym. Orch.
     지휘 : Richard Hickox
이 음반에 대한 평가가 일반적으로 작곡자 자신의 지휘로 녹음된 Decca의 음
반보다 높은 것이 사실이다. 샨도스 녹음이 비교적 중후하다는 평을 듣고 있는
데 히콕스의 다이내믹한 해석과 샨도스의 박력이 어울려서 압도적인 극적 감
동을 불러일으키는 명연(名演)이다. 게다가 브리튼의 음반에서 지적되는 히스
(HISS)노이즈도 샨도스의 디스크에서는 일체 들리지 않는다.

성 바우로 대성당 어린이 합창의 사운드는 청순하기 그지없으며, 초연 때의 영
광을 입었던 히터 하퍼의 연주는 문자 그대로 금빛 같은 영롱함을 지니고 있
다. 필립 랭그릿지와 존 셜리 쿼크의 독창도  비길 데 없는 명연이다.

** 퍼 가는 것은 좋습니다. 그러나 반드시 출처를 밝히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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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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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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