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
위 : 베를리오즈
아래 : 알제리 전투에서 전사한 샤를 마리 당레몽 장군,
그의 장례미사에서 이 곡의 초연이 있었다.
◈ 원제
Grande Messe des morts op.5
◈ 유투브 감상
지휘 : Jukka-Pekka Saraste
Tenor: Andrew Staples
체코, 브르노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합창단
쾰른 서부독일 방송교향악단
쾰른 대성당 공연실황, 2017년 5월
http://youtu.be/6cFwAcKxAvQ
<격정의 로맨티스트>라고 불리는 베를리오즈(Louis Hector Berlioz, 1803∼1869)는
상식만으로는 상상하기 어려운 기이한 행동을 예사로 했던 인물이었고, 경천지동 하는
관현악 용법으로 당시의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했었던 별종으로 인식되었다. 그런 인
물이 이 같은 심오한 종교성과 위대한 음악적 완성도와 성공한 종교음악을 썼다는 사
실이 경이롭다.
그런데 그가 가톨릭교회의 모태교인이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해답의 실마리가 풀어지
기 시작한다. 그는 회상록에서 이렇게 썼다.
"나는 교황 직속의 로마 가톨릭교도로서 자라났다. 이 매력 있는 종교는 전처럼 사람들
을 열광시킬 수는 없었지만 꼬박 7년간 나의 행복을 만들어 주었다. 이미 이전부터 이
종교는 나에게 매우 그리운 추억으로 남아있다. 설령 내가 루터파나 칼뱅파 집안에서
태어났어도 개신교하고는 아무 연관도 맺지 않고 아름다운 로마교회를 마음속으로 사
랑했을 것이다."
베를리오즈는 로마 가톨릭교회의 특별한 종교적 분위기를 "사람을 흥분 시키는 대상“으
로 생각했다. 개신교회에서는 찾을 수 없는 화려한 미사 의식, 신비로운 성당의 여러
장식들이 아름답고, 그래서 이것들로 부터 감동받고 열광했다. 이미 <환상 교향곡>을
통해서 엄청나게 크게 키운 관현악 편성과 극적 표현이라는 새로운 음악을 시도했던
베를리오즈가 레퀴엠을 통해서 또 한 번의 획기적인 놀라움을 이 작품 속에 담았다.
한 여인을 짝사랑하는 젊은이가 사랑을 받아주지 않는 여인을 살해하고 법정에서 사형
언도를 받고 형장에서 사망한 그 영혼이 마녀의 연회에 초대된다는 대단히 기괴한 사
건을 교향곡의 프로그램으로 설정한 인물이 베를리오즈라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
다. 이 프로그램은 바로 자신의 체험을 반영한 것이니, 이것만 보더라도 베를리오즈가
얼마나 충동적이고, 한편으로는 순진무구하고, 열광적이고, 심지어는 자신이 겪고 있는
괴로움이나 절망조차도 남에게 과시해 보이고자 했던 인물인 지를 상상할 수 있다.
베를리오즈의 작품목록을 보면 의외로 종교음악의이 많다.
<종교 재판관>
<미사>
<그리스도의 어린 시절> 등,
그의 종교음악은 어느 것 하나 화제가 되지 않은 것이 없다. 그중에서도 이 작품은 환
상 교향곡 못지않게 음악사적 비중이 대단히 높은 작품으로 평가되었다.
1837년, 프랑스 정부는 1830년 7월 혁명과 1835년에 발생한 루이 필립 왕 암살미수
사건의 희생자들을 위한 추모식을 계획했는데 이 추모식에 쓰일 음악을 베를리오즈에
게 의뢰했다. 당대 최고의 음악가들을 제치고 33세의 젊은 베를리오즈에게 이런 대규
모 프로젝트를 의뢰한 것은 베를리오즈에게 호감을 갖고 있었던 당시 내무장관 아드리
앙 드 가스파랑(Adrien de Gasparin)이었다. 베를리오즈는 가스파랑에게 이 곡을 헌
정했다.
회상록에 이때의 상황이 다음과 같이 기록되고 있다.
"나는 일종의 노여움 비슷한 기분으로 일에 착수했다. 내 머리 속은 끓어오르는 사색의
힘으로 찢어지는 것 같았다. 곡의 구도를 위한 스케치도 미리 하지 않았다. 생각처럼
빨리 써지지 않았기 때문에 속기술 기호를 이용하기로 했다. 특히, <눈물겨운 그날>에
서는 그것이 크게 도움이 되었다. 이런 노력이 계속되어서 나는 빠른 시일 내에 작품
을 완성시켰다."
그러나 추모식의 규모가 대폭 축소되는 바람에 앵발리드(Les Invalides) 대성당에서 초
연될 예정이던 이곡의 연주가 취소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열심히 곡을 쓰고 초대형 편
성의 오케스트라 등을 구성하느라고 빚까지 낸 베를리오즈에겐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었다.
그런데, 그해(1837년)에 프랑스 식민지 알제리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샤를 마리 당레몽
(Charles-Marie Denys, comte de Damrémont, 1783–1837)장군이 전사하자 당레몽 장군
과 전몰장병들을 위한 추도식이 계획 중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베를리오즈는 이 추도식
에서 이 곡을 초연시키기를 원했다. 결국 이것이 성사되어서 1837년 12월 5일,앵발리드
대성당에서 육군 주도의 전몰장병 추도식에서 초연이 이루어졌다.
초연이 행해진 교회엔 저명인사들이 다수 참석했다. 연주는 크게 성공했고, 시인 알프
레드 드 비니(Alfred de Vigny)는 “기이하면서도 매우 아름다우며, 거칠고 충동적이면
서도 애처러운 음악”이라 평가했다.
모든 언론과 정부기관은 극찬을 쏟아냈다. 수년 뒤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나의 모든 작품을 파괴하라고 위협받는다면 나는 이 레퀴엠만은 살려주기를 간구할
것이다”라고 기록했듯 작곡가 자신도 이곡에 대한 지극한 애착심을 갖고 있었다. 이후
1852년과 1867년에 개정판본이 출판되었다.
이 작품을 비난하는 사람들은 제2곡 <진노의날>과 제6곡 <눈물겨운 그날>이 사용하고
있는 대편성의 경천지동(驚天地動)하는 관현악법을 "중심 잃은 사나이의 광태"라고 공격
했다. 그러나 이 작품 중에서 그 같은 대편성의 관현악이 사용되고 있는 부분은 제2곡
과 제6곡뿐이고,
제3곡 <불쌍한 나>의 청순한 선율,
제5곡 <나를 찾아>의 무반주 합창,
제7곡 <봉헌송>의 지극한 아름다움은 어떠한 레퀴엠과 비교해도 월등하게 서정적인 악
곡이다.
초연 이후 평론가들이 비난했던 제2곡과 6곡이 이후엔 오히려 가장 도드라지게 들어난
특징이자 큰 매력으로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는 것이 오늘날 이 작품이 차지하고 있는
대단한 존재감이다. 아무튼, 이 작품은 가장 파괴적이자 동시에 가장 고전적이라는 상
반된 얼굴을 갖고 있는 개성적인 레퀴엠이다.
◈ 악곡의 구성
제1곡 : 입당송과 키리에, 소프라노·테너·베이스의 혼성합창
"주여, 그들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영원한 빛을 그들에게 비추소서.
모든 사람이 당신에게 오리이다.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
그리스도님, 자비를 베푸소서"
간절하게, 혹은 강렬하고, 때로는 공포에 가득 찬 느낌으로 노래한다.
제2곡 : 진노의 날
전곡 중 어마어마한 압권을 들려주는 악곡이다. 베를리오즈는 이 곡의 효과를 위해 4
개의 브라스 밴드를 별도로 연주장 네 코너에 배치시켜서 최후심판 날의 공포를 표현
하고 있다. 거대한 관현악 편성(특히 팀파니와 금관악기들)이 포효하듯 토해내는 음량
은 전율과 공포를 느끼게 한다.
제3곡 : 불쌍한 나
전곡 중, 가장 짤막한 부분으로 앞의 악곡의 축소판 같은 느낌을 준다.
제4곡 : 지엄 대왕
"지엄 대왕 자비로워 사람 거저 구하시니 나도 함께 구하소서.
착한 예수 기억하사 나의 기도 부당하나 주의 인자 베푸시어
영원한 화염 꺼 주소서."
소프라노· 테너·베이스 각 2부의 혼성합창과 관현악으로 연주된다.
제5곡 : 나를 찾아
베를리오즈의 재능이 관현악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살아있는 증거가 바로 이 부분이
다. "마지막 심판 때에 나를 오른쪽에 세워달라"는 간절한 기원이 무반주 합창으로 아
름답고 청순하게 무반주 혼성합창으로 불려진다.
제6곡 : 눈물겨운 그날
제5곡에서 침묵했던 오케스트라는 여기서 다시 맹렬하게 포효한다. <진노의 날>과 함
께 대편성의 관현악 용법이 엄청난 위력을 발휘한다.
제7곡 : 봉헌송
슈만이 크게 감탄했다고 전해지는 악곡이다. 죄의 두려움과 마지막 심판의 공포를 갖
는 사람들을 위로하는 아름답고 신성한 악곡이다.
제8곡 : 찬미의 제물(祭物)
몇 부분을 제외하면 거의 무반주로 연주되는 악곡이다.
"주여, 찬미의 제물과 기도를 드리오니 오늘 우리가 추도하는 영혼들을 위하여 받아들
이시어"라고 간절하게 노래한다.
제9곡 : 하느님의 어린양
조종(弔鍾)을 닮은 여섯 번의 관현 화음 뒤에 테너 독창이 “거룩하시다”라고 노래하면
여성 3부 합창이 모방적인 응답으로 노래한다. 후반의 ”호산나“는 강렬한 포르테로 장
식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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