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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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곽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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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윌리엄스(Vaughn Williams) / 미사 사단조

      
** 감상 /
Canterbury Cathedral Choristers
http://youtu.be/Wtaa1LqGNqo

일반적으로 유럽의 음악지도(音樂地圖)를 그릴 때, 대륙은 생산지(生産地)로,
섬나라인 영국은 소비지(消費地)로 그리는 경우를 많이 본다. 그만큼 영국이
대륙에 비해서 창작부문이 열세 하다는 보편적 인식이 널리 퍼져 있는 셈이다.
영국의 음악문화는 가톨릭의 전례음악인 그레고리우스 성가가 그레고리우스 1
세 교황 생전(生前)에 켄터베리 대주교(大主敎)에게 소개됨으로써 시작 되었
다. 10세기에는 거대한 파이프 오르간이 윈체스터 대성당에 설치 되었고, 11세
기엔 [자유 오르가눔 수법] 을 발전 시켰다.

14세기엔 존 던스테이블(John Dunstable, 1390?∼1453?) 같은 뛰어난 작곡가
가 등장했다. 르네상스 음악 양식의 창시자로 존경받고 있는 던스테이블은 프
랑스를 비롯한 유럽 대륙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종교개혁 무렵에 활동했던 인
물로는 토머스 탤리스(Thomas Tallis, 1505∼1585)와 크리스토퍼 타이
(Christopher Tye, 1500∼1572)가 있는데 그들의 종교음악은 당시 최고의 수
준 이었다.

영국문화의 황금시대로 일컬어지는 엘리자베스 1세(재위 1560∼1603)와 제임
스 1세(재위 1603∼1625) 시대엔 윌리엄 버드(William Byrd, 1542?∼1623), 올
랜도 기번스(Orlando Gibbons, 1583∼1625), 토머스 몰리(Thomas Morley,
1557?∼1602), 존 다울런드(John Dowland, 1563∼1626), 자일스 파너비
(Giles Farnaby, 1563∼1640) 같은 뛰어난 작곡가들이 등장하여 가장 영국다
운 음악을 만들었다. 특히 다울런드의 감미롭고도 우아한 류트 송(Lute Song)
은 세련미의 극치를 보여 당시 영국음악의 성세(盛勢)를 알게한다. 그러나, 이
들이 17세기 초·중반기에 모두 사망하게되자 그 화려한 전통은 당분간 맥이 끊
어지고 말았다.

핸리 퍼셀은 영국음악의 전통을 이어 가게한 인물인 동시에 이 나라가 배출시
킨 가장 뛰어난 작곡의 천재였다. 1659년에 태어나서 1695년에 사망한 퍼셀
(Henry Purcell)은 영국 최초로 오페라를 쓸 만큼 대단한 재능의 소유자였지
만 불과 36년밖에 살지못한 박명(薄命)의 작곡가 였다. 따라서 그가 세상을 떠
나자 영국은 오랜 세월 작곡가다운 작곡가를 갖지 못하는 옹색한 처지에 빠지
고 말았다.

헨델이 영국의 바로크 음악을 화려하게 장식하기는 했지만 그는 어디까지나
대륙 출신 이었다. 18세기는 이렇게 우물쭈물 지나갔다. 존 게이(John Gay,
1685∼1732)의 '거지 오페라', 윌리엄 보이스(William Boyce, 1711∼1779)
의 '교회음악 선집(Cathedral Music)'이 18세기에 거둔 최대의 수확이었을 뿐
이다.

영국의 낭만주의는 존 필드(John Field, 1782∼1837)와 윌리엄 베네트
(William Sterndale Bennett, 1816∼1875)에 의해서 간신히 체면치례가 되었
고, 1879년에 [그로브 음악사전(Grov's Dictionary of Music and
Mosician)] 초판 제 1권이 출판 되었다.

20세기의 영국음악은 엘가(Edward Elgar, 1857∼1934)를 비롯한 세 사람의 뛰
어난 작곡가에 의해서 부흥의 시기를 맞았다. 홀스트(Gustav Holst, 1874∼
1934)는 신비주의적 작풍(作風)으로 영국을 빛냈고, 델리어스(Frederick
Delius, 1862∼1934)는 절묘한 관현악법으로 저물어가는 세기말의 황혼을 묘
사하여 역시 영국 근대음악의 면모를 일신하는데 단단히 한몫을 차지했다. 그
런데 이들 세 작곡가는 공교롭게도 한결같이 1934년 같은 해에 세상을 떠났
다. 만일, 본 윌리엄스가 없었다면 영국음악은 또한번 침체의 늪에 가라 앉았
을 것이다.

아놀드 백스(Arnold Bax, 1883∼1953)와 더불어 영국 민속음악을 토양으로 삼
아 가장 영국적인 음악을 만든 작곡가, 홀스트(Holst)와 더불어 20세기 영국음
악의 르네상스를 이룩한 인물, 그가 본 윌리엄스(Ralph Vaughn Williams)이
다. 1872년 10월 12일, 다운 안푸니에서 태어나 유년시대엔 피아노를 배웠고, 6
살 때 최초로 작곡을 시도 하였다. 1888년, 16세에 피아노 3중주곡을 발표했
고, 1890년에 런던의 왕립 음악 아카데미에 입학하여 본격적으로 작곡 수업을
받았다. 이렇게 시작된 그의 작곡수업은 유난히도 길었다.

1890년∼'92년, 1894년∼'99년엔 왕립 음악 칼레지, 빠리, 스탠포드 등에서 공
부하였고, 1892년∼'94년엔 캠브리지 대학에서 음악연구에 몰두 하였다. 1897
년엔 베를린으로 가서 블로흐(Bloch)에게, 1908년엔 빠리에서 라벨(Ravel)에
게 사사 하였다. 이러한 긴 수업기간 동안 간간히 직업을 갖기도 했는데, 남
(南)람베트교회의 오르가니스트, 오키스트라의 트럼본 주자(奏者) 등으로 일
했다.

1904년, 민요협회(民謠協會)에 가입해서 민요채집에 나섰고, [영국 찬미가집,
The English Hymnal](1906년), 헨리 퍼셀의 [어서 오라, 노래여!, Welcome
Songs](1905년, 1910년 刊)의 편집에 참여했다.

본 윌리엄스는 무척 보기드문 대기만성형의 작곡가로서 35세때 데뷔했으며,
51세에 최초의 발레 음악을 썼고, 68세에 처음으로 영화음악을 썼다. 81세에
재혼했고, 만년의 10년간 4곡의 교향곡을 썼다. 그의 마지막 교향곡인 제 9번
은 85세때의 작품이다.

그의 작곡은 가곡(歌曲)으로 시작 되었다. 영국민요를 기초로 한 오키스트라
곡 [노포크 광시곡](1906년에 3곡으로 쓰여졌는데 제 1곡 마 단조만 남겨두고
나머지는 작곡자가 폐기 시켰다), 하우즈먼의 시(詩)를 대본 삼은 연가곡(連歌
曲) [웬로크 엣지에서, On Wenlock Edge](1909년), 월트 화이트맨의 텍스트
에 곡을 붙인 교향곡 제 1번 [바다 교향곡](1910년)] 등이 그의 초기시대의 작
품들 이다.

한편, 1910년 9월에 초연된 [현악 4중주와 오키스트라를 위한 토마스 탤리스
의 주제에 의한 환타지아], 1914년, 런던에서 초연된 제 2번 교향곡 [런던] 등
뛰어난 두곡의 발표로 본 윌리엄스의 이름은 비로서 영국에 널리 알려지게 되
었다.

제1차대전이 발발(勃發)하자 종군하게 되는데 간호병과 포병으로 프랑스 전선
(戰線)에 참전했다. 대전 후 그의 모교(母校)인 런던 왕립 음악 아카데미의 교
수로 취임한다. 이후 그는 세상을 떠날 때까지 모교에서 작곡을 가르친다.

본 윌리엄스의 활동영역은 매우 넓어서, {바흐합창단} 지휘자, 찬미가집의 편
집과 출판, 리즈 힐(Reed's Hill) 음악제의 지휘자와 주제자, 세번에 걸친 미국
여행 등 대단히 분망(奔忙)한 세월을 보냈다.

만년엔 난청(難聽)으로 고통을 받았지만 그의 천성적 기질인 타인에 대한 관용
과 친절을 결코 잃지 않았고, 작곡에 대한 정열과 집념도 식지 않았다. 훌륭한
인간과 위대한 예술가가 한 인간안에서 일치한 희귀한 예를 그의 인생과 예술
이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 본 윌리엄스와 절친하였던 지휘자 존
발비롤리(John Barbirolli)는 이렇게 증언 하고 있다."그는 일을 사랑했다. 그
는 인생을 사랑했다. 또한 그는 맛있는 음식과 술을 사랑하였다. 이와같은 그
의 성격에서 아마도 그의 위대한 휴매니티와 인간적 완성이 이루어졌을 것이
다."

본 윌리엄스는 엘가(Elgar)의 사망 이후 문자 그대로 영국 음악계의 지도적 작
곡가로 활동했다. 그는 어느 작곡가에 못지않게 다양한 양식의 작품을 썼는
데, 그 대부분의 작품들은 늘 영국의 17-8세기 음악, 전통적인 영국민요, 영국
찬미가(讚美歌)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그의 선율은 아주 친밀한 성격이
고, 특히 영국민요에 새로운 옷을 입혀 새롭게 태어나게 하는 경이를 이룩한
인물이기도 하다.

***  미사 사 단조(Mass in g minor)
홀스트에게 헌정된 이 미사곡은 전형적인 전례용(典禮用) 으로서 무반주로 연
주되는 작품이다. 1922년, 버밍검 시립 합창단에 의해 초연 되었는데, 철저하
리만큼 미사예전을 보조하는 기능을 하도록 배려된 음악이다. 그것은 마치 윌
리엄 버드(William Byrd)와 같은 엘리자베스朝 시대의 미사음악을 재현
(Reminiscent) 하는 느낌을 준다. 때문에 구성에 있어서는 바흐나 베토벤의
미사와 같은 치밀성이 찾아지지 않으며, 느낌에 있어서도 그리 엄격하지 않다.
이중(二重) 합창과 4명의 독창자, 2개의 현악합주과 현악 4중주로 연주된다.
풍부한 다성적 구조미와 드라마틱한 음악성 때문에 이 작품은 연주홀 보다는
교회에서 연주될 때 더 큰 효과를 나타낸다.

키리에(Kyrie)는 옛스러움과 단호함을 갖춘 악곡으로 전형적인 전례적 상징성
을 나타낸다.

글로리아(Gloria)는 이중합창에 의한 8성화음과 교창(交唱)으로 빛나게 노래
된다.

크레도(Credo)는 처음과 끝 부분이 같은 주제로 노래되는 빛나는 악곡이다.

쌍투스(Sanctus)와 베네딕투스(Benedictus)는 마치 천천히 흔들리는 향로(香
爐)와 같은 신비로운 기원(祈願)의 음악이다.

*** 음반
Conductor: Stephen Darlington
Performer: Thomas Waddington, Colin Lilley, Margareth Campbell, Audrey Douglas, Maurice Bourgue
Audio CD (February 23, 1999)
Label: Nimbus Records
님버스(Nimbus) 레이블로 발표된 컴펙트 디스크(NI 5083)를 추천한다(사진).
지휘는 스테픈 달링톤(Sthephen Darlington)이며, 합창은 [그리스도 교회 대
성당 성가대, Christ Church Cathedral Choir]가 연주했다. 옥스포드 대학의
[그리스도 교회 대성당 성가대]는 영국에서도 가장 오랜 역사와 특별한 전통
을 갖고 있는 유서깊은 합창단 이다. 1526년, 튜더(Tudor) 교회음악 황금기의
위대한 작곡가인 존 테버너(John Taverner)를 초대 지휘자로 초빙한 가운데
창설 되었다. 16명의 소년들과 12명의 성인 남성들로 합창단은 구성 되었다.
지금도 이러한 구성은 변함이 없다. 수많은 음반과 방송 출연으로 유명한 이
합창단은 그리스도 교회의 성가대로 의무적인 성무(聖務)에 종사하고 있다.

지휘자 스테픈 달링톤은 1985년 9월부터 이 합창단을 이끌고 있다. 1952년생이
며, 왕립학교(King's School)에서 공부하고, 캔터베리 대성당의 어시스턴트
오르가니스트로 4년간 일하다가 1978년엔 [국제 오르간 축제]의 예술감독을
역임했다. 종교음악 지휘계의 주목할만한 새로운 인물이다.

Conductor: Hilary Davan Wetton
Holst Singers
Audio CD (July 9, 2003)
Label: Regis Records

Conductor: Anders Eby
Audio CD (March 10, 1998)
Label: Proprius Records

** 퍼 가는 것은 좋습니다. 그러나 반드시 출처를 밝히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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