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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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곽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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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팔레스트리나(Palestrina) / 축복받은 당신, Benedicta es

 
** 유투브 감상
키리에
http://youtu.be/lneIWuPmBj0

쌍투스, 베네딕투스
http://www.youtube.com/watch?feature=player_detailpage&v=EkTjhnTmxPg

 
그레고리오 성가의 신비가 그대로 녹아있는 미사 음악

팔레스트리나(c1525∼1594). 그의 이름은 그가 태어난 로마 근교의 작은 마을
의 이름이기도 하다. 소년시절은 성가대원으로 로마에 있었고, 1544년엔 고향
의 성당으로부터 오르가니스트와 성가대 지휘자로 임명받아 교회 음악가로서
의 생애를 시작했다. 6년 뒤엔 로마의 성 베드로 성당의 줄리아 성가대의 지휘
자가 됨으로서 그의 음악적 신분은 로마 가톨릭 교회의 심장부에 놓여지게 되
었다. 이때부터 그의 생애는 로마의 베드로 대성당을 중심으로 영위되는데, 한
때는 17년간이나 그곳을 떠나야 했던 시기도 있었다. 가톨릭 교회의 반종교개
혁(反宗敎改革) 때문이었다.

1555년, 당시의 교황 바울4세는 엄하기 그지없는 칙령을 발표했다. 그 칙령은
가톨릭 교회의 권위를 손상시킬 우려가 있는 모든 사물과 사람을 가차없이 추
방하겠다는 의지를 품고 있었다. 그리하여 시스틴 성당에 그려진 미켈란젤로
의 멋진 벽화는 나체(裸體)이기 때문에 신을 모독하는 것이라고 간주되었고,
화가 다니엘 다 볼테르는 미켈란젤로의 그림에 적당한 옷을 입히라는 명령을
받기에 이르렀다. 바울4세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가톨릭 교회의 모든 조직에
서 성직생활의 규율을 회복시키기 위해서 독신생활을 강요하고 교황성당에서
기혼 음악가들을 추방했다. 팔레스트리나는 가족을 거느리고 있었기 때문에
베드로 성당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교황성당에서 추방당한 그는 로마의 聖요
한 대성당, 聖마리아 마지오르(Santa Maria Maggiore)성당, 예수회 신학교
등에서 일했고, 1571년에 다시 교황성당으로 복귀했다. 교황이 바뀌고 그의 음
악이 프로테스탄트에 대항하는 최선의 작품으로 인정됐기 때문이었다. 그는
1594년에 세상을 떠날 때까지 베드로 성당의 지휘자로 일했다.

팔레스트리나는 102곡의 미사곡, 모테트와 기타 예전음악 450곡 정도, 이탈리
아어로 쓴 종교적 마드리갈 56곡 등 주로 종교음악을 썼는데, 그의 작품목록
속에 83곡의 세속적 마드리갈도 있기는 하다. 그러나 그 자신은 만년에 이르
러 불경스러운 사랑을 주제로 음악을 쓴 일에 대해 "부끄러워하고 마음 아파했
다".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 이전의 작곡가로서 팔레스트리나처럼 유명한 인물은 없
을 것이다. 그처럼 양식에서나 기교적인 면에서 연구를 열심히 했던 인물도 흔
하지 않다. 때문에 그를 일러서 {음악의 황태자, The Prince of Music} 라고
했고 그의 작품은 '절대적인 완성'이라고 불려졌다.

팔레스트리나의 음악이 지니고 있는 성격을 몇 가지로 대별하면 다음과 같은
설명이 가능할 것이다. 첫째, 그의 음악은 극도의 객관성을 띠고 있어서 차라
리 차디찬 비인격적 성격으로 거의 일관되어있다. 이러한 성격은 미사 통상문
(미사 항목 참조)의 의식적이고 형식적인 가사에 너무도 잘 어울리고 있다. 그
가 구사하는 양식은 프랑스 플랑드르 악파의 모방적인 대위법인데, 각 聲部는
미사문의 각 구절에 적합한 독립적인 선율적 동기를 갖고 있는가하면, 또한 끊
어지지 않는 유연한 리듬으로 서로 연결되어있다. 때문에 그의 전례음악은 지
극히 보수적이고 반세속적인 특성을 갖는다.

둘째, 팔레스트리나는 네덜란드 악파에 속한 작곡가들의 작품을 철저하게 분
석하여 그들의 작곡양식에 통달했다. 그의 많은 작품에서 네덜란드 악파의 카
논(Kanon) 기법이 대단히 효과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것이 그 증거가 된다.

셋째, 그의 미사곡 102곡 가운데 79곡이 그레고리오 성가에서 차용한 주제에
기초를 두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자. 이는 그의 가톨릭 신앙에 대한 보수적
태도를 반영하는 것으로서 그레고리오 성가가 곧 그의 음악의 토양이라는 사
실을 대변한다. 따라서 그의 미사곡에 대한 정확한 이해의 첩경은 그레고리오
성가에 대한 이해에 있다는 것이다. 그레고리오 성가에 대한 이해 없이 팔레스
트리나의 미사곡은 해석될 수 없는 것이다.

넷째, 팔레스트리나는 당시의 많은 작곡가들이 심취해 있었던 반음계주의
(Chromaticism)를 철저히 외면하고 배척했다는 사실이다. 그는 반음계적 화
성의 도입을 세속적 요소의 침입이라고 믿었고, 따라서 강렬하고도 개성적이
며 육감적인 성격의 반음계를 철저하게 배척했다. 그의 작품에서는 필요 불가
결한 변화음만이 발견될 뿐이다.

다섯째, 팔레스트리나의 음악은 수직적인 조합으로 음들을 체계적으로 쌓아
올리고 배치하고 또 중복시키는 등 음향의 취급방법에서 무한한 아름다움을
나타내고 있다는 사실이다. 음을 쌓아올리는 방법을 바꾸면 같은 화음에서도
미묘하게 변하는 명암과 다양한 음향을 얻을 수 있으니 그 묘미란 참으로 대단
하다.

여섯째, 팔레스트리나의 종교음악은 대부분 대위법적인 양식에 의해 작곡되었
다. 리듬은 독립되어 있고 서로 다른 몇 개의 성부로 구성되어 있다.(그는 주
로 4성부를 썼다). 그러나 그 역시 호모포니적이거나 화현적(和絃的)인 기법
을 이따금 채용하기도 했다. 2중창인 '스타바트 마테르, Stabat Mater, 聖母哀
歌'는 완전히 호모포니적이고 '비탄의 교송, Improperia' 은 화현적인 작품이
다.

팔레스트리나의 음악은 19세기와 20세기 초기에 특히 강조되었던 가톨리시즘
의 몇 가지 면을 이상적으로 구현하는 음악으로 채택되었다. 한편, 그와 동시
대에 활동했던 위대한 종교음악가들(지오반니 마리아 나니노, 페리체 아네리
오, 지오반니 아니무치아 등)의 작품들이 상대적으로 알려져 있지 않았기 때문
에 실제 이상으로 팔레스트리나의 존재가치가 부각되어 온 것도 사실이다. 그
렇기 때문에 그를 그 시대를 대표하는 작곡가라고 생각해서는 안될 것이다. 오
히려 그는 16세기의 음악상황이 만들어 낸 창조적이고도 혁신적인 경향을 의
도적으로 배척함으로서 음악양식을 한 골에만 치중시킨 약점도 지닌 작곡가
일 것이다. 그러나, 그의 음악에서 우리가 느끼는 중세의 신비스러움이나 종교
적 경건은 다른 작곡가의 경우에서 쉽게 찾을 수 없는 최대의 장점이라는 사실
에 유의해야 할 것이다. 더할 나위 없는 순수한 양식, 내용과 형식의 이상적인
결합이야말로 팔레스트리나 음악세계의 참다운 예술적 가치일 것이다. 게다
가 가톨릭 교회는 오늘에 이르기까지도 팔레스트리나의 음악을 능가할만한 종
교적 설득력을 발휘하는 예술적 표현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사실에서 상대적
인 그의 가치의 비중을 알게 한다.

팔레스트리나가 쓴 약 102곡의 미사곡은 대부분 4∼5성부로 노래되는 무반주
합창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특별한 효과를 위해서 간혹 7성부를 사용한 예도
있기는 하지만 그것은 전혀 예외적인 것으로 여겨진다.

최초의 미사가 출판된 1554년부터 그후 40여 년 간 다수의 미사곡집이 발표되
고 있는데, 초기의 작품에서는 플랑드르 악파가 흔히 사용하고 있었던 기교적
인 대위법에 치중하였고, 중기(中期)엔 기교적인 것은 드러나지 않는데 비해
서 가사의 해석이나 악곡의 유기적인 구성에 보다 치중하는 면모를 보여주게
된다.(미사곡집 제 4권부터). 후기에 오면 기교는 오히려 단순화되는 경향을
보이면서 한 음표 대 한 음표라는 호모포닉한 화성 구조를 강조하기에 이른
다. 따라서 그의 후기 미사곡이 공통으로 지니는 특징은 폴리포닉한 것과 호모
포닉한 것의 놀라운 공존(共存)이라고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팔레스트
리나 음악의 본질은 폴리포닉(多聲的)인 것이다.

팔레스트리나 미사의 약 절반에 해당되는 52곡의 미사는 '파로디 미사'라고 알
려져 있다.(팔레스트리나 연구가 리스의 주장에 의함). 즉, 이미 발표된 전례음
악을 빌려와서 그것을 변형하거나 장식시켜서 미사곡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파로디(Parody) 미사는 당시 작곡가들에겐 전혀 어색하지 않았던
일종의 전통적인  관습이었다.

팔레스트리나의 미사 [축복 받으신 당신(Benedicta es)]도 전형적인 파로디
미사의 하나로 알려져 있다. 약 1세기 앞서서 활약했고 팔레스트리나 자신이
많은 영향을 받았던 작곡가 조스캥 데 프레(J.des Pr s,c1440∼1521)의 동명
(同名)의 모테트를 가져와서 쓴 미사라는 것이다.

한편, 조스캥의 모테트는 동명의 그레고리오 성가를 역시 차용한 것이어서 결
과적으로 팔레스트리나의 미사곡은 이중(二重)의 파로디인 셈이다. 재론할 여
지도 없이 팔레스트리나는 종교음악의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인물로 널리 알
려져 있다. 오히려 그에 대한 신비로운 가설(假說)이나 일화가 오히려 그의 정
확한 실체를 파악하는데 방해가될만큼 그의 음악과 생애가 신격화된 느낌마
저 있을 정도인 것이다. 그런데도 이 미사가 오랜 세월 세상에 알려져 있지 않
은 것이 놀랍게 여겨진다. 1981년, 지멜 레코드(Gimell)에 의해서 이 작품이 녹
음되기 전까지만 해도 이 미사곡은 악보로도 음반으로도, 또는 관련 학자의 논
문에서조차 전혀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그의 작품의 출판이 아직도
미완에 그치고 있는 사실을 생각하면 이 작품이 1981년 이전까지 세상에 거의
알려져 있지 않았다는 것이 그리 놀라운 것이 아니라 할지라도 이처럼 아름답
고 중요한 작품이 제대로 소개되지 않았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앞에서 기술한 것처럼 이 작품이 조스캥의 모테트를 가져와서 변형시킨 파로
디 미사였듯이 팔레스트리나의 또 하나의 걸작으로 알려져 있는 [교황 마르켈
리 미사] 역시 그 원형이 조스캥의 동명의 모테트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례
음악의 작곡에서 그가 얼마나 크게 조스캥을 의식하고 있는지를 알려주는 대
목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이 작품과 [교황 마르켈리] 사이엔 서로 닮아있는
부분이 많이 발견되고 있는 것이다. 마르켈리 미사의 글로리아 악장 중에
서 'Qui sades'와 이 작품의 기리에 악장 가운데 'Christe'의 첫 두 소절이 같
은 부분이고(이 부분은 조스캥의 모테트 중에서 제 1부의 마지막 소절과 같
다), 마르켈리 미사의 'Deum de Deo'(크레도 중)와 이 작품의 'Dominus
Deus'(글로리아 중)가 역시 같은 부분이다. 마찬가지로 '아멘' 부분도 조스캥
의 아멘과 팔레스트리나의 2개의 미사가 같다.

이 작품은 소프라노, 알토, 테너, 베이스 등 4성부 합창으로 불려지며 물론 무
반주로 연주된다. 조스캥의 모테트를 빌려온 작품이라는 사실은, 그것이 곧 그
레고리오 찬가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는 의미가 된다. 따라서 이 작품이
지니는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종교적 고전성이 강하는 측면일 것이다. 즉, 그
레고리오 성가가 지니는 신비로운 종교성이 거의 원형의 모습 그대로 이 작품
에 녹아 있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특징이 우리들 영혼에 각별한 느낌으로 다
가서게 하는 것이다.

*** 음반

지휘 : 토마스 탈리스(Thomas Tallis)            
합창 : 탈리스 스콜라스(The Tallis Scholars)            
제작 : Gimell, 1981년 녹음(옥스포드 멜튼대학 교회), 1990년 리마스터            
DGIM 001, AAD, CD            

이 작품을 수록한 최초의 음반이다. 이 작품이 파로디 미사라는 것을 음악적으
로 비교하기 위해 조스캥이 차용한 그레고리오 성가와 조스캥의 모테트를 함
께 수록하고 있다. 탈리스 스콜라스의 연주는 흠잡을 데 없이 완벽하며 이 작
품이 요구하는 종교적 극적 요구에 훌륭하게 응하고 있다. 아날로그 녹음 시
에 노이즈가 많았던 탓인지  디지털로 리마스터 됐음에도 밑에 깔리는 노이즈
는 여전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주의 완점함이 이를 극복하고 있다.

** 퍼 가는 것은 좋습니다. 그러나 반드시 출처를 밝히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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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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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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