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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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곽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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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핫세(Johann Adolph Hasse) / 레퀴엠(Requiem)

  
◈ 유투브 감상
Sequentia / 연주 : Il Fondamento
http://www.youtube.com/watch?feature=player_detailpage&list=PLB60F6FAB72348598&v=etrJ1DLnqJk

http://youtu.be/01jQKpLTwg0

이탈리아계 독일인 핫세(Johann Adolph Hasse 1699-1783)는 1699년 함부르
크 근교 베르게돌프(Bergedolf)에서 태어나 1783년 베네치아에서 세상을 떠
난 바로크시대와 고전시대에 걸친 저명한 오페라 작곡가이며 성악가로 활동
한 인물이다. 1718년에 테너 가수로서 함부르크 가극장에서 데뷔하여 활동하
던 중 1721년에 브룬스비크(Brunswick)로 옮겨 그의 최초의 오페라 [안티오
코(Antioco)]를 작곡했다. 1722년, 나폴리로 가서 당대의 저명한 오페라 작곡
가였던 포르폴라(Porpola)와 알렉산드로 스카를랏티(A.Scarlatti)에게 작곡을
사사했다. 이 무렵 핫세는 [아스탈테(Astarte)] [세소스트라타(Sesostrata)]
[티그레네(Tigrene)] 등의 오페라를 잇달아 발표하였고, 이로써 이탈리아를
비롯한 전 유럽에 그의 이름이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1727년, 베네치아로 가서 음악원의 악장(樂長)이 되었고, 1730년엔 유명한 메
조 소프라노 파우스티나 보르도니(Faustina Bordoni, 1700-1781)를 만나서 결
혼했다. 파우스티나는 헨델의 오페라에서 프리 마돈나로 이름을 떨치고 있었
고 그녀의 남편인 핫세의 오페라에서도 물론 수많은 주역을 맡아 이름을 떨쳤
다. [아타세르세(Ataserse)]를 상연한 뒤에 드레스덴 선제후(選帝候)의 악장
으로 자리를 옮겼고, 아내는 그곳 오페라 극장의 여성 합창단을 지도하는 직책
을 맡았다.

1733년에 런던에 건너가서 헨델과 포르폴라의 강력한 라이벌 작곡가로서 활약
하기도 하다가 17343년에 드레스덴으로 돌아왔다. 1740년부터 10여 년 간 드레
스덴에서 작곡가와 악장의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하였고, 1750년엔 대악장의
자리에 올랐다.

핫세는 여행을 많이 한 음악인으로도 유명한데 1734년에 이탈리아, 1746년에
런던과 뮨헨, 파리엔 1750년, 바르샤바, 베를린, 베네치아엔 1757년부터 1760
년까지, 비엔나엔 1760년, 1762년엔 유럽을 여행했다. 그러나 그의 만년은 어
려움이 많았던 것으로 기록되고 있다. 궁정에서는 그를 모함하는 무리들이 많
았고, 군대에서도 그에 대한 거부감을 노골적으로 나타내 편안한 날이 없었다.

핫세의 작품은 드레스덴이 포격(砲擊)을 받았던 1760년에 모두 불타버리고 말
았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1763년에 작곡한 레퀴엠만은 보존되었다.

전쟁에서 승리한 프러시아는 새로운 선제후 프레데릭 크리스티안
(F.Christian)을 세웠는데 그는 재정상의 이유를 들어서 가극장을 폐쇄하고 궁
정의 실내악도 없에 버렸다. 이에 따라서 핫세와 그의 아내는 일자리를 잃게
된다. 1764년, 빈(Wien)으로 옮겨가서 황실 가극장을 위한 새로운 오페라를 썼
고, 1768년엔 스비텐 남작의 저택에서 젊은 모차르트를 만났다. 이 만남을 계
기로 모차르트는 핫세의 교회음악에서 깊은 영향을 받게 되는데 [미사 다 단
조 K.139] 중에서 교차화성과 대위법적 경과구에서 핫세의 영향이 구체적으
로 발견된다. 두 사람의 인연은 이것으로 끝나지 않고 3년 뒤인 1771년에 다시
연결되는데, 공교롭게도 두 사람이 쓴 오페라가 1771년 10월, 밀라노에서 거
의 동시에 상연되기에 이른다. 본의 아닌 경연(競演)의 형국이 마련된 것이다.
그러나 두 사람은 상대를 라이벌로 의식하지는 않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모차
르트가 핫세와의 사이를 "따뜻한 관계"라고 표현하고 있는 것이 이를 증명한
다. 핫세의 작품은 [루지에로]였고, 모차르트의 작품은 [알바의 아스카니오]
였다. 두 작품 모두 대공(大公)의 결혼식을 경축하기 위한 목적으로 상연되었
다. 공연의 결과는 모차르트의 작품이 핫세 보다는 인기가 있었던 것으로 기록
되고 있다. 1773년부터 베네치아에서 살기 시작한 핫세는 10년 뒤 그곳에서 생
애를 마감했다.

핫세의 작품은 65개의 오페라, 12곡의 오라토리오, 14곡의 간주곡, 10곡의 미
사, 3곡의 레퀴엠, 4곡의 테 데움, 9곡의 시편송(詩篇頌), 100곡의 칸타타, 그
밖의 수많은 모테트, 실내악, 소나타, 협주곡들이 있다. 실로 엄청난 창작의 태
산을 이룩한 것이다.

핫세는 18세기의 가장 성공한 작곡가였다. 그러나 역설적일 만큼 그가 세상을
떠나자말자 그의 작품들은 거의 무시되기에 이르고 말았다. 그러한 현상은 오
늘날에도 변함이 없다. 핫세가 생존해 있을 때 그로부터 실로 많은 음악가들
이 영향을 받았다. 그러한 사실을 증거 하는 것으로 레오폴드 모차르트의 증언
이 있다. "핫세는 음악의 아버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이토록 잊혀진
인물이 되고 있는 것은 과거의 바흐, 파이지에로, 베를리오즈의 경우를 상기하
게 만든다. 멘델스존의 노력이 없었다면 바흐는 어쩌면 영원히 잊혀진 작곡가
로 전락했을 것이다. 따라서 핫세에 대한 오늘의 재조명은 매우 값진 의미를
수반하는 것이다.

***  레퀴엠 다 장조
삭소니(Saxony)의 선제후이며 폴란드의 왕인 아우구스트 3세(August Ⅲ,
1696-1763)의 장례식이 열린 1763년 11월 22일에 처음 연주된 핫세의 레퀴엠
은 독창자, 합창단, 오케스트라를 위한 작품이다. 이 때 핫세와 그의 아내는 이
미 아우구스트에 의해서 실직된 상태였지만 그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드레스
덴을 떠날 계획이 상당 기간 지연되기도 했고, 레퀴엠의 작곡과 연주로 1천 탈
러스(thalers)의 사례를 받았다. 그들의 연봉은 6천 탈러스 였다.

레퀴엠의 연주 구성은 5명의 독창자, 혼성 합창, 오케스트라로 되어 있다. 이
작품의 악보는 파리 국립 도서관의 19세기관(館)에 완벽하게 보관된 필사본의
형태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 작품은 모차르트나 살리에리(Salieri)의 레퀴엠과는 현저하게 다른 모습을
보여 준다. 클라리넷, 바셋트 혼, 트럼본이 편성되어 있지 않으며, 플루트, 오
보, 바순, 혼, 트럼펫, 팀파니, 오르간으로 관현악 구성이 되어 있다. 그런가하
면 성악에 있어서도 합창에서나 독창자들의 앙상블에서 공(共)히 메조 소프라
노의 비중이 큰 것을 발견하게 된다. 아내 파우스티나의 영향인 것일까?

악곡의 구조에서도 몇가지 개성적 시도를 발견하게 되는데, [주여, 나를 찾기
위해서 피로해지신 분이여] (Quaerens Me)는 8개의 악기들이 앙상블을 하
는 사이에 배치되어 있고, [하늘과 땅에 가득한 그 영광](Pleni sunt coeli)은
기악군(器樂群)의 휴지(休止) 속에서 홀로 연주되며, [레퀴엠]은 독창과 합창
이 분리된 가운데 연주되고 있다. 이러한 구성은 대칭적 효과를 나타내는데 탁
월한 기능을 하고 있다.

**  악곡의 구성
입당송
주여, 그들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 합창과 관현악
천주여, 시온에서 찬미함이 진정 마땅하오니 / 테너, 베이스, 여성합창
주여, 내 기도를 들어주소서 / 메조, 관현악
연민의 찬가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 합창, 관현악
그리스도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 합창, 관현악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 합창, 관현악
부속가 (진노의 날)
진노의 날 그날이 오면 / 메조, 합창, 관현악
나팔 소리 사람 불러 / 합창, 관현악
죽음 만물 혼겁하리 / 테너, 현
모든 선악 기록한 책 / 메조, 알토, 테너, 베이스, 합창, 관현악
착한 예수 기억하사 / 메조, 관현악
나를 찾아 기진 하고 십자가로 나를 구한 / 테너, 관현악
공의로운 심판주여 심판하실 그날 전에 / 합창, 관현악
산양에서 나를 가려 면양 중에 자리 주고 / 메조, 관현악
눈물겨운 그날 오면 심판 받을 죄인들이 / 소프라노, 메조, 합창, 관현악
봉헌송
영광의 왕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여 / 메조, 알토, 테너, 베이스, 합창, 관현악
성체여 / 소프라노, 메조, 알토, 현
일찍이 아브라함과 그 후손에게 언약하신 / 합창, 관현악
쌍투스
거룩하시다 / 소프라노, 메조, 합창, 관현악
하늘과 땅에 가득한 그 영광 / 소프라노, 합창, 관현악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 메조, 관현악
높은 데에 호산나! / 소프라노, 메조, 테너, 베이스, 합창, 관현악
하느님의 어린양
하느님의 어린 양 / 메조, 알토, 관현악
부속가
주여, 영원한 빛을 그들에게 비추소서 / 테너, 베이스, 합창, 관현악
주여, 그들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 소프라노, 알토, 테너, 베이스, 합창,
관현악

*** 음반
미레유 파트로와(소),엘리자베스 멕코맥(메), 방상 달라(알토), 질르 라공
(테), 장 클로드 사라고스(베)            
파리 소르본느 합창단과 관현악단            
지휘 : 쟈크 그랑베르            
녹음 : 1991년 3월 10일-12일, 파리 * 세계 최초 녹음            
제작 : ADDA社            
음반 번호 : ADDA 590069 CD   ** 사진

** 쟈크 그랑베르(Jacques Grinberg, 지휘자)
프랑스 리유 음악원을 플루트 부문 1등으로 졸업한 뒤 파리 국립음악원에서 메
시앙(Messiaen), 미요(D.Milhaud), 마뉴엘 로젠탈 등 후일 세계 음악계를 이
끌어 갈 우수한 학생들과 함께 수업했다. 지휘자로 나선 이후 수많은 저명한
지휘자들(번스타인, 첼리비다케, 마젤, 메타, 오자와, 솔티)과 협동 연주를 하
였고, 프랑스와 국제무대에서 많은 악단을 지휘했다. 또한 많은 음악단체를 설
립하고 지휘했다. 프랑스 국립 합창단(1966년), 파리 플로리레기움 무지쿰, 앙
상블 아르스 에우로파, 파리 종교음악 축전 등이 그가 설립한 단체이다.

1976년부터 파리 소르본느 대학의 음악감독으로 일하면서 이 대학 소속의 합
창단과 관현악단을 설립했다. 지금까지 오라토리오와 합창부문에서 많은 음반
을 발표했는데, 퍼셀의 [아더 왕], 글룩의 [이프게니에],  [올페오와 에우리디
체], 헨델의 [테 데움], 고섹의 [테 데움] 등은 그 중에서도 주목받은 음반들이
다.

Johann Adolf Hasse / Requiem
Martin Gester, Jennifer Lane, Susanna Moncayo von Hase,  
Strasbourg Parlement of Music
제작 : teteatete

Conductor: Hermann Max
Performer: Klaus Mertens, Kleine Konzert, Maria Zadori, Hans-Jorg Mammel
Audio CD (January 25, 2000)
Label: Capriccio

Conductor: Hans-Christoph Rademann
Performer: Gotthold Schwarz, Simona Saturova, Eric Stokloßa
Orchestra: Dresdner Barockorchester
Label: Carus

Performer: Ian Honeyman, Greta de Reyghere, Dirk Snellings
Audio CD (December 28, 1993)
Label: Opus 111

** 퍼 가는 것은 좋습니다. 그러나 반드시 출처를 밝히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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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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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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