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유투브 감상
1938년에 영화 <로빈후드의 모험>을 위해 작곡한 음악
John Wilson Orchestra, 2013 BBC Proms 연주실황
http://youtu.be/PDyjPB_AEBU
Korngold : Violin Concerto in D major op.35
바이올린 : Hilary Hahn
Deutsche Symphonie Orchester
지휘 : Kent Nagano
http://youtu.be/lcGEGl5bdbk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브륀(Brünn, 현재는 체코 공화국의 브르노, Brno)의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말러는 1909년에 당시 12살의 어린 코른골트가 쓴 칸타타를 듣고 음악천재라고 놀라
워하며 작곡가 젬린스키(Alexander von Zemlinsky)를 스승으로 천거해 주었다. 리하르트 슈트
라우스도 어린 코른골트를 높이 평가했다.
11살 때, 발레곡 <눈사람, Der Schneemann>을 썼고, 이 곡이 프란츠 요제프 황제가 임석한
빈 궁정 오페라극장에서 연주됐을 때 놀라운 반응을 불러 일으켰다. 뿐만 아니라 피아노 소나타
제2번은 당시의 가장 뛰어난 피아니스트 아르투르 슈나벨(Artur Schnabel)이 좋아해서 그의 단
골 레퍼토리가 되었다. 그 무렵의 녹음들이 오늘날까지 전해져서 CD로 복각되어 발매되고 있다.
14살 때, 신포니에타를 썼고, 이어서 첫 오페라 <폴리크라테스의 반지>와 <비올란타>를 완성했
고, 1914년엔 또 다른 오페라 <죽은 도시>를 썼는데, 큰 성공을 거뒀고 그의 이름도 널리 알려
지게 되었다. 그 결과 23살 무렵엔 빈에서 가장 중요한 작곡가로 떠올랐고,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나 푸치니 같은 대작곡가들도 그의 작품을 크게 칭찬했다.
많은 지휘자들, 독주자들, 가수들이 그의 작품을 즐겨 연주하기 시작했다. 이 무렵(1923년) 전쟁
에서 오른 팔을 잃은 오스트리아 피아니스트 파울 비트겐슈타인(Paul Wittgenstein)을 위해서
왼손을 위한 피아노 협주곡을 썼고, 네 번째 오페라 <헬리아네의 기적도 완성했다. 아울러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오페레타를 편곡하는 작업도 시작했고, 빈 국립 음악학교에서 오페라와 작곡법
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오스트리아 정부는 그에게 이 학교의 명예교수 칭호를 주었다.
1934년, 오스트리아 출신의 영화 연출가이자 제작자인 막스 라인하르트(Max Reinhardt)는 코
른골트를 할리우드로 초청했다. 멘델스존의 극음악 <한여름밤의 꿈>을 영화로 만들면서 그 작업
에 참여해 달라는 초청이었다. 이때부터 코른골드는 할리우드에서 영화음악 작곡가로 본격적인
행보를 시작했다. 첫 작품은 워너 브라더스의 <블라드 선장>이었다. 이 음악은 대단한 반향을 일
으켰고, 이후 그에게 영화음악 주문이 줄을 잇게 되었다. 이후 4년간 <엘리자베스와 에섹스의 사
생활> <로빈 후드의 모험> <바다 매>등 영화음악을 작곡하면서 코른골트는 할리우드 영화음악계
의 가장 독보적인 존재가 되었다.
그가 작곡한 영화음악은 20여 편에 이른다. <로빈 후드의 모험>에 등장하는 사랑의 주제는 아직
도 사랑받고 있는 음악이다. <거대한 레보브스키>라는 영화에는 그의 오페라 <죽은 도시>의 주제
곡이 사용되었다. <인간의 굴레> 역시 그의 중요한 작품으로 평가된다.
코른골트의 영화음악은 1940년 이후의 할리우드 영화음악의 교본이 되었다. 거대하고 생동적이
며 모험의 세계로 인도해 주는 테마였고, 정열적이고 감미로우며 낭만적인 요소가 깃들여 있는
음악이었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와 리스트의 교향시가 지니고 있는 풍부한 화성과 영감을 영화
음악에 도입함으로써 그 이전의 영화음악들과는 확연하게 다른 세계를 보여주었고, 코른골드 특
유의 풍부한 서정성이 여기에 더해져서 영화의 예술적 가치를 높이는데 결정적 공헌을 이룩했다.
게다가 그의 영화음악은 가사가 없는 오페라와 같았다. 그는 유럽의 막스 슈타이너와 프란츠 왝
스맨과 함께 막간음악 형식에 머물러 있던 영화음악을 새로운 예술 장르로 격상시켰다. 영화음악
의 페러다임을 바꾼 것이다. 코른골트는 <로빈후드의 모험>으로 베스트 오리지널 스코어 어워드
를 받는 등 모두 네 번의 오스카상을 받았다.
1943년, 미국 시민권을 받았다. 그리고 1945년, 그의 인생의 일대 터닝 포인트가 찾아왔다. 음
악평론가였던 그의 아버지는 한사코 미국에 살기를 원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아들이 영화음악
에 매달려 있는 것을 매우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던 아버지가 오랜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났고, 때마침 전쟁도 종식되면서 코른골트는 콘서트홀과 무대를 위한 작품으로 다시 돌아왔다.
1946년엔 영화음악에서 완전히 손을 놓았다. 코른골트는 나머지 생애 동안 바이올린 협주곡을
비롯해서 후기 낭만주의 양식의 콘서트 음악을 작곡했다. 마지막 영화음악은 바그너의 생애를 다
룬 윌리엄 디테를(William Dieterle)이 연출한 <마술 불꽃>이었다. 그러나 이를 완성 하지 못하
고 1957년 향년 60세로 북부 할리우드에서 세상을 떠났다.
음악경향으로 보아서 그를 후기낭만파에 속한다는 분석을 하고 있지만, 사실 그가 활동하던 시대
는 이런 음악 스타일을 낡은 것으로 치부하고 있었다. 20세기는 예술의 모든 분야에서 아방가르
드 미학을 추구하는 것이 대세였다. 그러나 이런 경향을 따르지 않은 예술가들도 있었다. 코른골
트가 그중 한 사람이었다. 코른골트는 말러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후기 낭만주의 전통을 이어
받은 작품들을 썼다.
작품 자체의 음악적 가치만을 고려한다면 코른골트는 20세기에 활동했던 가장 중요한 작곡가로
존중되어야 할 인물이었다. 그러나 그런 대우를 받지 못했다. 20세기 대부분의 작곡가들이 걸어
갔던 새로운 사조에 동행하지 않았던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게다가 1934년에 미국으로 가서
상당한 기간 할리우드 영화음악에 치중하는 삶을 살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클래식 세계에서는
제대로 된 평가가 없었던 것이 저간의 사정이었다.
그러나 21세기에 들어서면서 그의 작품에 대한 재평가 작업이 시작되었고, 자연스럽게 그의 작
품에 대한 세간의 흥미가 되살아나면서 그에 관한 이야기는 마치 한편의 전설처럼 회자되고 있
다.
◈ 전설의 시작
1972년에 코른골트의 아들이 감수한 음반이 발매되었다. <바다 매>라는 타이틀의 음반인데, 찰
스 게르하르트가 지휘한 내셔널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연주한 그의 영화음악이 수록되었다. 이
어서 그의 오페라와 교향곡, 협주곡 등 콘서트 작품들도 음반으로 출시되었다. 1973년엔 워너
브라더스가 그의 오리지널 사운드 트랙을 LP로 발매했는데, 여기엔 코른골트 자신의 피아노 연
주도 포함되어 있었다.
1975년엔 오페라 <죽은 도시>가 뉴욕에서 리바이벌 되었다. 에리히 라인스돌프가 지휘한 <죽은
도시>가 발매되었고, 1980년엔 CBS Masterworks 레이블에서 오페라 <비올란타>가 발매되었다.
이 앨범은 2009년에 Sony Classical이 재발매 했다.
독일 음반 레이블 CPO는 1996년과 1998년에 오페라 <폴리크라테스의 반지>와 <카트린>을 발
매했다. 아울러 이 회사는 4장의 음반에 북서독일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연주한 콘서트 작품들
을 수록해서 발표했다. 미국 출신의 피아니스트 알렉산더 프레이(Alexander Frey)는 코른골트의
피아노곡 전곡을 Koch International Classics 레이블로 발표했다.
2001년, ArtHaus Musik는 코른골트의 생애를 다룬 다큐를 DVD로 발매했다. 타이틀은 <신동의
모험>이다. 더블 베이시스트 조엘 콰링턴(Joel Quarrington)은 <정원 풍경>이라는 타이틀의 앨
범에 코른골트의 부수음악 작품11을 담았다. 2009년엔 바이올린 협주곡과 부수음악, 드라마를
위한 서곡 등을 담은 음반이 미네리아 오케스트라와 바이올리니스트 필립 퀸트(Philippe Quint)
의 연주로 발매되었다. 앙드레 프레빈은 1970년대에 바이올린 협주곡의 한 악장을 지휘한 일이
있었는데 “황금보다도 가치 있다”는 소감을 피력했다.
◈ 작품목록
http://en.wikipedia.org/wiki/List_of_compositions_by_Erich_Wolfgang_Korngo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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