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가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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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곽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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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한 슈트라우스 2세 (Johann Strauss Jr. 작곡가, 1825-1899)


◈ 유튜브 듣기
The Blue Danube Vienna
Philharmonic Orchestra
지휘 Daniel Barenboim
http://youtu.be/Ex2M1_R35cs

빈 왈츠로 유명한 음악 가문 슈트라우스가의 한 사람이다.

요한 슈트라우스 1세의 장남으로 <왈츠의 왕>이라 불린다. 6세 때 36마디로 된 왈츠를 작곡할
정도로 음악적 재능을 보였지만, 아들이 음악가가 되는 것을 극구 반대한 아버지 때문에 처음에
는 은행원이 되기 위한 공부를 했지만, 어머니의 이해로 아버지 모르게 바이올린을 배우고 성 슈
테판 대성당 합창대장이었던 요제프 드레히슬러에게서 작곡을 배웠다.

1844년 18세 때 공개연주 공인 허가증을 받고 15명으로 구성된 악단을 구성해서 최초의 무도회
를 열었는데 대단히 평판이 좋았다. 처음에는 아버지의 악단과 경쟁하는 등 부자 관계가 험악해
졌다가 2년 즘 지나서 화해했다. 1849년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두 악단을 통합해서 유럽 각지
를 순회했다.

1848년 3월 혁명 때 공화파를 위해서 행진곡을 작곡한 것 때문에 궁정에서 연주하는 기회가 늦
어졌다가 프란츠 요제프가 황제로 즉위하면서 1863년부터 1870년까지 궁정무도회의 지휘를 맡
았다. 1856 이후 10여 년간 러시아를 포함한 유럽 여러 나라에서 연주하면서 <왈츠의 왕> 지위
를 확고하게 다졌다.

1872년, 미국을 방문해서 프로이센-프랑스간의 종전을 축하하기 위해 보스턴에서 1만 명의 오케
스트라, 2만 명의 합창단, 100명의 부지휘자를 동원할 정도로 어마어마한 규모의 음악회를 지휘
했다.

1878년 아내 트레프츠가 세상을 떠나자 30세 연하의 성악 지망생 릴리 디트리히와 재혼했지만
순탄한 생활을 하지 못하고 1887년 아델레 도이치와 세 번째 결혼을하고서 비로소 만년에 행복
한 생활을 하다가 1899년에 폐렴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초기작품은 기성의 춤곡이나 다른 작곡가의 작품을 편곡해서 연주하는 일이 많았지만, 이후
에 사교적인 단순한 춤곡에서 탈피해서 감미로운 선율과 뛰어난 관현악법을 사용한 순수 감상용
왈츠 작품을 남겼다.

1858년 오펜바흐의 오페라부파가 빈에 소개되고, 주페가 가볍고 화려한 빈 스타일 오페라를 작
곡해서 성공하자 극장의 의뢰를 받아 오페레타 《박쥐》 《집시 남작》등 16곡의 오페레타를 작곡했
는데, 이 빈 오페레타의 전통은 R.호이베르거, K.첼러 등을 거쳐 레하르에게 계승되었다.

◈ 디스코그래피
2,338종의 음반 리스트, Discog 카탈로그
http://www.discogs.com/artist/1259101-Johann-Strauss-J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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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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