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가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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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곽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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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한 슈트라우스 1세(Johann Strauss Sr. 작곡가, 1804-1849)


◈ 유튜브 감상
Radetzky March 라데츠키 행진곡
Vienna Philharmonic, 2011 신년음악회 실황 중
지휘 Franz Welser-Mös
http://youtu.be/pYYTdtRrg8M

<왈츠의 아버지>라고 불려지는 인물이다.

부모를 일찍 여읜 탓에 그의 후견인이 된 뮐러(Anton Müller)가 슈트라우스를 제본공으로 키우
기로 작정하고 제본장인에게 도제수업을 받게 했다. 그렇게 제본 훈련을 받는 틈틈이 바이올린과
비올라를 요한 폴리샨스키에게 배웠다.

제본공 도제 생활 중에 우연히 미하엘 팔머 오케스트라의 비올라 주자로 입단하면서 직업음악가
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1819년엔 빈 왈츠를 주로 연주하는 <요제프 라너 콰르텟> 멤버가 되었
고, 1824년에 라너와 규모가 좀 더 큰 악단을 결성해서 활동하다가 1년 후엔 자기 이름을 내건
악단을 만들어 활동하기 시작하고, 악단의 레퍼토리 확대를 위해서 자작곡을 써서 연주했다. 이
런 과정을 통해서 악단이 인기를 얻게 되자 여러 나라에 연주여행을 다녔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는 음악동지였던 요제프 라너와 심각한 라이벌 상황을 만들기도 했다.

특히 1826년 사육제 기간 동안 그의 신작 왈츠들과 폴카, 행진곡 등이 폭발적인 인기몰이를 했
다. 1833년 유럽에서 가진 연주여행은 그의 명성을 확고한 것으로 만들었다. 1834년에는 제1
빈 시민연대 악장으로 활동하고, 1835년에는 궁정무도회의 지휘자로 취임하는 등 빈 지역의 대
중음악을 지배했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했지만, 1849년 증후열이 원인이
되어 세상을 떠났다. 아들 요한, 요제프, 에두아르트도 유명한 음악가로 성장했다.

초기에는 유명한 기악곡을 편곡해서 연주하다가 점차 자신의 스타일을 확실하게 표현한 서주, 몇
개의 왈츠, 코다로 이루어진 이른바 <빈 왈츠>의 원형을 요제프 라너와 함께 만들었다. 그는 제2
박, 제3박의 독특한 리듬의 연주와 더불어 세련된 오락음악의 보급에 공헌했다. 또한 그는 프랑
스 무곡 <카드리유>를 빈 스타일로 개조해서 보급해 독일어권에서 이 음악이 높은 인기를 끌게
되었다. 그의 음악은 프랑스와 영국에서도 대중적인 환영을 받았다. 특히 1838년에 런던서 거행
된 빅토리아 여왕 대관식 기간에 슈트라우스 연주회가 개최된 것이 영국에서 그의 인기를 가늠케
한다.

◈ 사생활
슈트라우스 1세는 1825년, 빈의 리히텐탈 대성당에서 마리아 안나 스트림(1801~1870)과 결혼
했다. 그러나 그의 잦은 해외여행으로 부부가 함께 지낸 기간이 상대적으로 길지 못한데다 무려
8명의 아이를 낳은 에밀리 트람푸시(Emilie Trampusch)라는 연인을 몰래 감춰두고 있다가 들
켜서 그들의 결혼이 결국 파탄으로 끝났다. 결과적으로 슈트라우스는 안나에게서 여섯, 에밀리에
게서 8명의 자녀를 봤으니 무려 14명의 자식을 낳았다.

◈ 디스코그래피
257종의 음반 리스트, Discog 카탈로그
http://www.discogs.com/artist/2025291-Johann-Strauss-S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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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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