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가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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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곽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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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띠엔 니콜라 메훌 (Etienne-Nicolas Mehul, 작곡가, 1763–1817)


◈ 유튜브 듣기
코미크 오페라 <톨레도의 두 장님> 서곡
Orchestre de Bretagne
지휘 : Stefan Sanderling
http://youtu.be/x5wqFe3S7i8

Etienne-Nicolas Méhul : Sinfonie Nr.1 g-moll (1809)
카를 술루에 공과대학 오케스트라
http://youtu.be/tbe7EmuTBbg

에띠엔 니콜라 메훌은 18세기말과 19세기 초의 중요한 클래식 작곡가이고, 특히 프랑스 혁명기
에 오페라 발전에 크게 기여했던 극음악 작곡가였다. 아울러 <로맨틱>이라는 표현으로 불려진 최
초의 작곡가였다.

<오페오와 에우리디체>의 작곡가 글루크나 오페라에 어마어마한 기여를 했던 모차르에 비견되는
오페라의 개혁가로 평가된다. 따라서 고전주의 시대 동년배 작곡가 중에서 그 중요성이 재인식되
고 있는 작곡가이기도 하다.

베토벤이 편지에서 그의 죽음을 안타까워했던 것과
자신의 오페라 <피델리오>를 작곡할 때 메윌의 오페라 <요셉, Joseph>을 참고했다.

메훌은 프랑스 혁명 당시 <출정의 노래, Chant du départ>를 작곡한 인물이기도 하다.

1763년 프랑스 지베(Giver)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와인 상인 장 프랑소와였고, 어머니는 마리
세실이었다. 어린 메훌은 고향의 프란체스코 수도원에서 오르간을 공부했다.

아르덴의 라발 디유 수도원(Abbey of Lavaidieu)의 보조 오르가니스트로 채용됐는데 당시 오르
가니스트는 빌헬름 한서(Whilelm Hanser)였다.

1779년(혹은 1778년), 파리로 가서 당시 스트라스부르 궁정 작곡가이자 하프시코디스트였고 저
명한 오페라 작곡가 글루크의 친구였던 장 프레데릭 에델만(Jean Frederic Edelmann)에게 작
곡을 배우면서 보조 키보디스트로 일했다.

메훌은 1782년 루소의 대본에 <칸타타>를 작곡해서 사순대제 기간에 열리는 대중음악회 콩세르
스피리튀엘에서 연주했다.

1790년, 프랑소와 베노아 호프만의 대본에 곡을 붙인
오페라 코미크 <에우프로시네 Euphrosine>가 코미크 이탈리아(이 극장은 곧 오페라 코미크로
개명됐다)에서 상연되어 크게 성공했다. 특히 극 중 이중창이 인기를 얻었다. 프랑스 혁명 당시의
어지러운 상황에도 불구하고 그는 극장을 위한 오페라 코미크 작품을 오랫동안 계속 썼다.

메훌은 1787년 이후 40여 곡 이상의 오페라를 작곡했는데, 주로 오페라 코미크 극장에서 공연했
다. 이 극장에서 공연된 그의 오페라는
<외프로진과 코라댕 또는 교화된 폭군>(1790)이었고,
성공한 작품은
<젊은 앙리, Le Jeune Henri>(1797),
<톨레도의 두 장님, Les Deux Aveugles de Tolède>(1806),
<우탈, Uthal>(1806),
<요셉, Joseph>(1807) 등이 있다.

그는 대규모 합창과 관현악을 필요로 하는 애국적인 작품도 많이 작곡해 프랑스 혁명 축하행사에
서 공연했는데,
<이성의 찬가, Hymne à la raison>(1793),
<출정의 노래, Chant du départ>(1794) 등이 그 예이다.

1793년 혁명세력에 의해 설립된 국립 음악원 교수가 되었고, 1795년엔 역시 최초로 생긴 프랑
스 학술원 멤버가 되었다. 이런 이유로 메훌은 나폴레옹과 가까운 관계를 유지했고 직접 정치에
도 간여했다. 1793년에 발표한 <출정의 노래>외에도 혁명과 나폴레옹을 칭송하는 합창음악도 그
래서 썼다.

메훌의 오페라 작품들은 당시 프랑스에서 이탈리아 일색이던 대중들의 오페라 취향을 변화시키는
데 크게 기여했다. 특히 1807년에 쓴 오페라 <요셉, Joseph>은 19세기의 가장 중요한 오페라
레퍼토리로 많은 작곡가들에게 영향을 끼쳤다. 베버는 변주곡을 썼고, 베토벤은 오페라 <피델리
오> 작곡 때 이 오페라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메훌은 베를리오즈의 스승 르 쉬에르(Le Sueur)와 함께 주제 선택이나 오페라의 기술적인 발전
측면에서 오페라 영역을 확장시켰다는 평가도 받는다. 오케스트레이션의 변화에 여러 가지 실험
을 했고, 특히 라이트모티프(Leitmotif : 주요 인물 등장 때 깔리는 주요 동기)를 사용한 선구자
였다.

메훌은 뛰어난 대본작가를 만나지는 못했지만 대담한 화성감각을 가졌고, 극적 요소와 관현악을
다루는 천부적 재능을 지녔다. 오페라에서 오케스트라의 역할을 강조해 주제를 극 내용 전개에
따라 교향악적으로 발전시켰다.

프랑스 혁명의 결과 탄생된 새로운 음악적 정신에 큰 영향을 끼쳤고, 베를리오즈는 물론 슈베르
트, 베버, 베토벤도 그의 개혁정신을 높이 평가했다.

메훌의 오페라 <요셉>과 같은 오페라 작품이 국외, 특히 독일에서도 유명해졌지만 19세기 첫 10
년 동안 그의 인기는 1790년대만큼 잘 나가지 못했다. 거기에 더해 1811년 그의 오페라 <아마
조네스>의 실패는 심각한 타격이었고 극장 작곡가로서의 그의 경력이 끝장날 정도였다.

메훌은 심각한 결핵으로 1817년 12월 24일에 사망했다. 그의 무덤은 작곡가 고세크의 무덤 근
처에 있는 페르 라셰즈 공동묘지에 있다.

◈ 주요 작품
▶ 피아노곡
3 Sonates for Piano op.1 (1783), op. 2 (1788)

▶ 오케스트라 곡
Ouverture burlesque 벌레스크 서곡 (1794)
Ouverture pour instruments à vent 관악기를 위한 서곡 (1794)
교향곡 다장조 (1797, 악보의 일분만 잔존)
교향곡 제1번 사단조 (1808/09)
교향곡 제2번 라장조  (1808/09)
교향곡 제3번 다장조 (1809)
교향곡 제4번 마장조 (1810)
교향곡 제5번 (1810, 악보의 일분만 잔존)

▶ 성악곡
Chant du départ 출발의 노래 (1794)
Chant des Victoires 승리의 노래 (1794)
Messe Solennelle pour soli, chœurs et orgue 장엄미사 (1804)
Chant du retour pour la Grande Armée 대 육군 귀환의 노래 (1808)
나폴레옹 동상 기공식을 위한 서정가  (1811)

▶ 발레곡
Le Jugement de Pâris 파리의 심판 (1793)
La Dansomanie 댄스 마니아 (1800)
              
▶ 오페라 작품 리스트
http://en.wikipedia.org/wiki/List_of_operas_by_%C3%89tienne_M%C3%A9h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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