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가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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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곽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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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슈베르트(Schubert, Franz Peter, 작곡가, 1797-1828)

  
** 유투브 감상/
겨울 나그네 전곡
http://www.youtube.com/watch?feature=player_detailpage&v=jvBtm6GKjP0

1814년 10월 15일, 슈베르트는 눈코 뜰새없을만큼 분주했다. 합창단도 오케스
트라도 그 동안 열심히 연습을 시켜 왔지만 정작 연주 당일이 되자 스물두 살
의 경험 적은 슈베르트로서는 허둥대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날은 슈베
르트가 8살 때부터 사사했던 스승이자 자기를 친자식처럼 사랑하고 훈육했던
미하엘 홀쯔(리히텐탈 교회 지휘자로 오래 활동했다)의 80회 탄신 기념 연주회
가 열리는 날이었다. 연주회 장소는 그가 오랫동안 봉직했던 리히텐탈 교회였
다.

땀을 뻘뻘 흘리며 합창단과 오케스트라에게 연주 준비를 완료시키고 나자 이
번엔 독창자가 나타나지 않아 슈베르트의 애를 태웠다. 이날 연주될 축하작품
은 '미사 F장조'였는데 독창은 마리네 여사가 맡도록 되어 있었다. 연주시간
이 임박해질 무렵 마리네 여사가 갑자기 열이 나서 도저히 나올 수 없다는 전
갈이 왔다. 미사곡에서 독창자가 없으면 연주는 불가능한 법. 슈베르트는 아연
실색이었다. 이때 "슈베르트씨! 저에게 노래할 기회를 주실 수 없으신지요"하
는 여성의 목소리가 등뒤에서 들려왔다. 몸을 돌려 목소리의 주인공을 찾은 슈
베르트는 "아니? 당신은 테레제 아가씨 아닙니까?"라며 놀라는 표정이 됐다.

그녀는 슈베르트와 기묘한 인연이 있었다. 몇 년 전 그가 관비 학교인 콘빅트
에 다닐 무렵, 어떤 일이 있어도 작곡 공부만은 안된다는 아버지의 명령을 어
기고 작곡을 했다가 "아버지와 아들의 인연을 끊겠다"는 엄청난 통첩을 받고
집근처 숲길을 거닐다가 우연히 만난 소녀 테레제로부터 꽃다발과 함께 그의
음악적 재능에 대한 격려의 말을 받은 일이 있었는데 그때의 바로 그 소녀가
이제는 어엿한 숙녀의 모습으로 나타나 대역(代役)을 자청하고 나섰으니 슈베
르트의 놀람은 당연한 것이었다. 테레제는 슈베르트가 새로운 미사곡을 쓰고
연습에 들어갔다는 사실을 알고나서부터 남몰래 연습장에 들어와서 지켜보아
왔기 때문에 대역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말을 했다. 테레제의 말에 또 한번
놀란 슈베르트는 실제로 어느 만큼 그녀가 노래할 수 있을지를 시험하게 되는
데 놀랍게도 마리네여사보다도 월등한 솜씨였고 주위 사람들을 감동시킬 만
큼 너무도 아름다운 음성을 갖고 있었다.

물론 그날의 축하 연주회는 테레제의 출현으로 눈부신 음악적 성과를 거뒀고
노은사(老恩師) 홀쯔는 제자를 껴안고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아울러 슈베르트
와 테레제의 운명적 만남이 이로써 시작되기도 하였다.

6백곡이 넘는 주옥같은 가곡을 남겨 {가곡의 왕}으로 불려지는 프란츠 페터 슈
베르트는 1797년 1월 31일, 오스트리아 빈(Wien) 교외 리히텐탈에서 가난한
초등 학교 교장의 12번째 자녀로 태어났다. 이때 아버지의 나이는 34세였고
그 슬하에서 태어난 14명의 아이들중 불과 넷만 살아서 성장했다. 슈베르트 위
로 누이동생이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빠듯한 교원의 봉급으로는 4명의 자식
도 많은 형편이어서 늘 가난을 면치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부친은 천성적으
로 쾌활하고 음악을 좋아한 딜레탕트였고 그래서 자녀들에게 친히 음악 가르
치기를 즐겨했다. 슈베르트 역시 아버지의 열망에 따라 음악수업을 받았지만
두살 때 앓은 폐렴이 원인이 되어 늘 병약한 상태였기 때문에 본격적인 음악수
업은 8살 때 비로소 시작될 수 있었다.

음악수업이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아 놀라운 음악적 감수성을 보이게 되자 부
친은 아들을 리히텐탈 교회의 지휘자로 있던 미하엘 홀쯔에게 맡기게 됐고, 홀
쯔 역시 비범한 슈베르트의 재주에 매료되어 혼신의 노력으로 어린 제자를 훈
도했다. 그는 제자에게 성악을 비롯하여 피아노, 바이얼린, 화성법을 가르쳤
고 교회 성가대의 오르간 반주와 합창단의 독창자로 기용하는 등 각별한 사랑
을 쏟았다. 이로써 슈베르트는 리히텐탈의 화제의 주인공이 됐고 그가 독창자
로 나서는 날은 교회에 빈 좌석이 없을 정도였다. 이때부터 그는 작곡에 천부
적인 재능을 나타내기 시작해 주목을 받았는데, 아들이 교사가 되기를 원했던
부친은 절대로 작곡은 안 된다는 엄명을 내리곤 하여 어린 슈베르트를 난처하
게 했다.

슈베르트는 11살이 되었을 때 홀쯔 선생의 제안으로 국립 콘빅트에 입학하게
되었는데 이 학교는 일체의 학비와 기숙사 비용을 관비로 충당했고, 음악과 일
반 학과를 가르쳤다. 이 학교에서 그의 작곡기능은 일취월장의 발전을 보이게
되고 시파운이라는 평생의 친구도 사귀기도 한다. 콘빅트라는 곳이 절대적으
로 필요한 최소한의 경비만을 지급하기 때문에 집으로부터 별도의 학자금이
나 생활비를 받을 수 없었던 슈베르트는 늘 배고픔과 추위로 혹독한 시련을 겪
어야 했고 이 무렵 그의 가장 큰 소원은 실컷 먹어보는 일이었다.

또 한가지 고통은 쉴새없이 쏟아져 나오는 악상을 담을 오선지가 없는 현실이
었다. 이토록 어려운 세월을 보내면서 공부를 계속하던 중 16세가 되었을 때
그에게도 변성기가 찾아왔다. 변성기가 되면 콘빅트를 떠나야 하는 것이 법칙
이었다. 그는 아버지의 권유를 받아 들여 17세에 초등 학교 교사가 되었다.

슈베르트가 18세가 된 어느 날, 그날도 그는 학교 근무를 마치고 테레제를 방
문했다. 둘은 최근에 슈베르트가 작곡한 가곡 <끝없는 사랑>과 <아베마리아>
에 관한 얘기를 하던 중 서로가 상대를 갈망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됐
고, 며칠 뒤 <들장미>라는 테레제에게 바치는 가곡을 선물하자 감격한 그녀
는 "저와 결혼해 주시겠어요"라고 외치며 슈베르트의 품으로 뛰어 들었다. 두
사람은 굳게 장래를 약속하며 뜨거운 포옹을 나눴다.

이 무렵 슈베르트에겐 프란츠 폰 쇼버라는 귀족 가문의 친구가 생겼다. 쇼버
는 슈베르트의 천재적인 작곡재능이 초등 학교 교사라는 업무로 희석되어서
는 안 된다는 지론으로 밀어붙여 그를 학교에서 그만두게 하고 자기 하숙에서
오로지 작곡에만 전념하도록 배려하는 따뜻한 우정을 베풀었다. 이 일에는 시
파운도 열심이어서 어떻게 해서든 친구가 세상의 인정을 받는 대작곡가가 되
도록 갖은 지혜를 동원했다. 당시 대문호 괴테는 추밀원 고문관으로 있었는데
그의 시(詩)에 곡을 붙인 <마왕>의 악보를 괴테에게 보냈다. 만일 그가 이 가
곡의 가치를 인정해 준다면 슈베르트의 출세가 빨라질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
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무로 너무도 바빴던 괴테는 그 악보를 살펴볼 시간이
없었기 때문에 친구이자 음악가였던 라이하르트에게 맡겨 검토를 부탁했다.

라이하르트는 낡은 음악수법을 신봉했던 인물이었기 때문에 혁신적인 화성법
으로 작곡된<마왕>을 이해할리 없었고 그 결과 이 악보는 쓰레기통에 처박히
고 말았다. 만일 괴테 자신이 피아노로 마왕을 읽어보았다면 사정은 달라졌을
텐데... 이를 일러 천재들의 어긋난 조우라고 할까? 훨씬 훗날 괴테는 82세 생
신축하연에서 빌헬미네 데레린트라는 가수가 <마왕>을 노래하자 "그 곡 누가
지은 것이오? 내가 음악가라면 아마 꼭 그렇게 작곡했을 것이오. 내 감정을 그
렇게도 쏙 빼낸 듯이 알고있는 그 사람은 대체 누구요?" 라고 가수에게 감격하
여 물었다. "이 곡은 슈베르트라는 음악가가 지었습니다만 그 사람은 이미 세
상을 떠났습니다." "알겠구먼. 천재는 요절한다더니 나 같은 늙은이만 공연히
오래 사는구먼."

변치 않는 사랑과 결혼을 약속한 테레제와 슈베르트는 그로부터 5년이 흘렀지
만 여전히 결혼하지 못한 채 있었다. 테레제의 어머니 그로프 부인이 내건 "생
활이 안정돼야만 우리 딸과 결혼할 수 있다"는 조건을 아직도 슈베르트가 충족
시킬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 무렵 빈에서 음악애호 가문으로 유명한 에스테르
하지 백작으로부터 자기 딸의 피아노 교육을 맡아 달라는 제의를 받았다. 백작
은 매우 후한 사례를 약속했다. 슈베르트는 이 기회야말로 테레제와 결혼할
수 있는 최선의 시기라고 생각하고 오래간만에 즐거운 기분이 됐다. 그리곤 느
긋한 마음으로 산책에 나섰다.

산책에서 돌아와 방문을 열자 책상 위에 흰 봉투 한 장이 있었다. 이상한 예감
으로 봉투를 뜯어보자 테레제의 결혼 청첩장이 들어 있었다. 초대글 말미
엔 "피로연에 꼭 참석해 주세요. 그리고 저를 위해서 노래 한 곡을 들려주시길
간절히 빕니다"라는 부탁이 테레제의 친필로 쓰여 있었다.

절망감과 배신감으로 며칠을 지새운 슈베르트는 테레제의 결혼 피로연에 참석
했다. 그녀의 부탁대로 새로 그녀를 위해 쓴 피아노 소나타 가 단조를 직접 연
주했다. 사랑을 잃은 애절한 마음이 악절마다 절절히 스며든 소나타였다. 피로
연이 끝난 뒤 문을 나서는 슈베르트에게 테레제가 달려왔다. "용서해 주세요.
저는 당신을 영원히 사랑해요. 제 결혼은 어머니를 위해서...." 그녀는 말끝을
맺지 못했다.

슈베르트가 늘 계속되는 가난과 병 가운데서도 용기를 잃지 않았던 것은 쇼
버, 시파운, 포글 등 슈베르트 후원자들의 후원과 격려가 있었기 때문이었지
만 테레제가 결혼할 무렵 친구들 마저 개인사정으로 뿔뿔이 흩어지고 만다. 새
삼 외로움의 늪에 빠진 그는 에스테르하지백작의 딸들을 가르치는 일에 몰두
하게 된다. 그러나 이 일도 4개월만에 끝나고 말았다.

그로부터 8년 후 슈베르트의 나이는 26세가 됐다. 이 무렵 사랑하던 친구이자
시인인 마이어호퍼가 유서를 써 놓고 자살하는 사건이 벌어지자 이에 큰 충격
을 받아 건강이 급격하게 쇠약해지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거리에서 뜻밖
에도 8년전에 잠시 음악을 가르쳤던 에스테르하지 백작의 딸 카롤리네를 만나
게 된다. 이러한 우연한 조우가 두 사람을 급격히 가깝게 만드는 계기가 됐고,
얼마 뒤 카롤리네는 슈베르트에게 사랑을 고백하기에 이른다. "선생님을 위해
서라면 신분도 재산도 다 버려도 후회하지 않겠어요. 그토록 선생님을 사랑하
고 있습니다" 카롤리네의 사랑은 매우 결연한 것이었다. 사랑의 아픈 상처를
갖고있는 슈베르트로서는 카롤리네의 고백은 구원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그러
나 이 젊은이들의 사랑은 곧 백작에게도 알려졌다. 어느 날 카롤리네가 슈베르
트의 집을 방문했을 때 텅빈 방에 그녀에게 보낸 짧은 편지가 있었다.

"우리가 진정으로 서로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한때의 정열에 사로잡히지 않
는 냉철한 이성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언젠가 비극의 주인공이 되느니보다는
차라리 상처가 더 커지기전에 나는 떠납니다. [잊는 일이 곧 행복에의 길이
다] 라는 말이 진정으로 당신을 사랑하는 방도임을 홀연히 깨달았습니다. 내
내 행복하시길 빕니다."

슈베르트는 다시 한번 사랑의 열병으로 신음하면서도 미친 듯이 작곡에 매달
렸다. 그러나 그의 건강은 날로 기울어져 갔다. 이 무렵 그의 일기엔 "다시는
깨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절망이 기록된다. 1828년 11월 17일. 의사는 장
티프스라는 진단을 내렸다. 새어머니와 형이 급히 달려왔다. 눈물로 가족을 만
난 슈베르트는 벽을 향해 돌아누우면서 "여기야! 여기가 나의 마지막 길이
야!"라고 말했다. 그리곤 눈을 감았다. 11월 19일 하오 3시 그의 나이 31살. 그
의 유해는 벨링크 묘지, 베토벤의 바로 옆에 안장됐다. 그의 소망대로.

** 유투브 감상/
겨울 나그네 전곡
http://www.youtube.com/watch?feature=player_detailpage&v=jvBtm6GKjP0

** 퍼 가는 것은 좋습니다. 그러나 반드시 출처를 밝히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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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를리오즈(Hector Berlioz, 작곡가, 1803-1869)

곽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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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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