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가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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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곽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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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를리오즈(Hector Berlioz, 작곡가, 1803-1869)


◆ 유투브 감상 /
Fantastic Symphony" mov.5 „Dreams of a Witches' Sabbath"
http://www.youtube.com/watch?feature=player_detailpage&v=_9YYyL2ybzA

1827년 9월 어느 날, 파리의 오데옹 극장, 불같은 격정과 산 같은 오만으로 장차 위대한 음악
가로서의 청사진을 그리고 있었던 23살의 이름 없는 음악도 베를리오즈에겐 이날 이 장소는
운명의 시공(時空)이 되고 말았다. 이날 오데옹 극장에선 영국에서 건너온 셰익스피어 극단의
연극 <햄릿>이 공연됐다. 이 공연엔 빅토르 위고, 알렉상드르 뒤마, 조르주 상드, 프로스퍼 메
리메, 발자크 등 프랑스 예술계의 저명인사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 명사들 틈바구니에
베를리오즈 학생도 자리 하나를 차지하고 있었다.

<햄릿>의 히로인 오필리아 역(役)은 아일랜드 출신의 뛰어난 미녀 해리엇 스미슨이었다. 스미
슨은 오필리아의 <광란의 장면(제 4막5장)>을 연기하던 도중 갑자기 대사를 잊어버리게 됐는
데 이를 임기응변으로 멋지게 대처해 오히려 원래의 대사보다도 월등한 극적 효과를 거뒀다.
이 멋진 연기로 그녀는 하룻밤 사이에 일약 파리의 최고 인기스타가 됐다. 관객들의 열광하는
모습은 장관이었다. 특히 베를리오즈는 완전히 그녀의 포로가 되고 말았다. 영어를 몰랐던 베
를리오즈에게 스미슨이 연기하는 오필리아의 영어대사에 대한 이해여부는 문제가 되지 않았
다. 그는 타고난 감수성과 예지로 극의 흐름에 휘말려 들었고, 그녀에게 미쳤다.

스미슨에 대한 열광과 흠모는 곧 연모로 발전했다. 11세의 소년시절에 뒤브프라는 7년 연상의
소녀를 짝사랑했던 풋내기 베를리오즈에게 해리엇의 출현은 엄청난 충격이었다. 그의 정신은
그녀에 대한 연모의 사무침으로 서서히 앓기 시작했다. 이때의 심리상태를 그는 <회상록>에
이렇게 쓰고 있다. "나는 셰익스피어와 영감에 찬 여배우에게 파리 사람 모두가 열광해 있는
기막히게 멋진 오필리아를 생각하며 찬란한 그녀의 영광에 대한 나의 이름 없음을 비교해 보
았다. 그리고 마침내 나는 나섰다. 그녀에 대해서 알려져 있지 않은 나의 이름을 불같은 노력
으로 빛내겠다고 결심한 것이다."

이러한 단단한 결심에도 불구하고 2년의 세월이 흘러가도록 베를리오즈는 유명해지지 못했고
깜짝 놀랄만한 작품도 쓰지 못했다. 다시 1년이 흘렀을 때 그는 자신의 연모를 인정하지 않고
수용하기를 거부한 스미슨에 대해 일종의 보복적 성격을 갖는 <환상교향곡>을 발표했다. 정상
인의 안목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복수극, 환상 교향곡은 다음과 같은 서문을 갖고 있다. 이
서문은 이 악곡의 줄거리(프로그램)를 대신 하기도 한다.

"병적인 감수성을 지닌 어떤 젊은 음악가가 절망적인 사랑의 상처를 참을 길 없어 자살하기
위해 다량의 아편을 먹었다. 그러나 죽음에는 이르지 못하고 환상 속에 빠지게 된다. 그 환상
속에 예전의 사랑의 추억이, 영혼의 떨림과 열정의 파도들이 우수와 함께 나타나 마침내 화산
처럼 폭발하고 만다. 그 미칠 듯한 고뇌, 미치광이 같은 질투, 그리고선 부드럽고 종교적인 위
로에의 복귀, 그리고 무도회, 여름저녁 나절의 산책, 이르는 곳마다 연인의 환영이 나타나 동
경을 불러일으킨다. 마침내 환상 속에서 그는 연인을 죽이고 그 죄로 인해 형장으로 향한다.
형장에 다시 그녀의 환영이 나타나는 순간 운명의 일격이 그의 목을 습격한다. 그의 영혼은
지옥에서 마녀의 향연에 초대된다. 그리고 최후의 심판 나팔이 울린다." 베를리오즈의 환상 교
향곡은 교향곡 역사의 혁명이었다. 이뤄지지 않는 사랑에 대한 복수로 치닫고 있는 이 교향곡
은 대단한 반향을 불러 일으겼다. 그러나 정작 이 곡을 들려주고 싶었던 스미슨은 이미 영국
으로 돌아간 뒤였다. 그녀를 무대에서 처음 본 때로부터 3년이나 흘렀지만 그의 연모의 정은
여전했다.  

1830년, 베를리오즈는 <사르다나팔루스의 최후의 밤>이라는 작품으로 그토록 갈망하던 로마대상
을 받았다. 이 무렵 그는 쇼팽의 친구이자 저명한 피아니스트인 페르디난트 힐러의 연인 마리
모크(Marie Moke)와 가까이 지내고 있었는데, 둘의 사이는 급격히 가까와져 약혼하기에 이르
렀다. 카뮈 모크는 리스트와 비견되어 평가될 정도로 뛰어난 피아니스트였는데 힐러는 자기의
연인을 미련 없이 양보했다. 따라서 로마대상의 부상으로 얻은 로마여행이 베를리오즈에겐 여
간 상쾌한 게 아니었다. 그러나 그가 로마에 있는 동안 모크는 또다시 변절해 피아노 제작업
자인 카뮈 플레이엘과 결혼하고 말았다.

로마에서 이 소식을 들은 베를리오즈는 화가 머리끝까지 올라 두 자루 권총과 독약을 휴대하
고 마차를 타고 파리로 달렸다. 그로서는 두 번째 복수가 되는 셈이었다. 그의 회상록은 이렇
게 적고 있다." 플레이엘의 집에 들어가서 한 발로는 그녀의 가슴을, 또 한 발로는 그의 남편
을, 또 한발로는 배반에 가담한 그녀의 모친을, 남는 한 발로는 나의 양미간을, 만일 권총이
고장이면 그 독약이 든 작은 병으로.....". 그러나 그의 복수여행은 중도에서 포기된다. 그의
회상록에서는, 마차 안에서 자기가 경련을 일으키며(화가치민 나머지) 쓰러지자 마부가 도망치
는 바람에 포기했다고 쓰고 있지만, 어찌됐든 그는 평온을 되찾고 로마로 돌아갔다.

베를리오즈와 스미슨의 운명의 끈은 2년 뒤에 신기할 만큼 다시 이어졌다. 1832년 12월에 있
었던 환상교향곡의 재연(再演)이 있었을 때 스미슨이 우연히 객석에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
때의 스미슨의 사정은 옛날과 전혀 다른 것이었다. 영국에서 다시 프랑스에 온 그녀는 상당기
간 여러 지방에서 영어연극을 공연했지만 실패를 거듭한 나머지 인기 하락은 물론 빚만 잔뜩
짊어진 딱한 지경에 있는 중년의 배우였다. 반면, 베를리오즈는 환상 교향곡의 성공으로 일약
유명한 작곡가로 변신해 있었고 사교계의 총아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에게 있어서 스미슨의
딱한 처지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녀 역시 베를리오즈의 변신에 놀라면서 그의 구애를 또다
시 밀쳐낼 생각은 없었다. 오히려 그녀 쪽에서 더 베를리오즈를 원하는 심정이었을 것이다.
베를리오즈는 청혼했다. 스미슨은 받아 들였다. 그러나 양가에선 모두 이 결혼을 반대했다. 특
히 아버지의 반대가 극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833년 10월, 둘은 결혼 했다.

베를리오즈의 창작력은 스미슨과의 결혼과 더불어 더욱 정열적으로 타올랐다. 결혼한 지 1년
만에 작곡한 <이탈리아의 해롤드>의 초연을 본 파가니니는 베토벤의 뒤를 잇는 천재라고 평
가했다. 그는 심지어 찬사를 되풀이한 편지와 더불어 베를리오즈에게 2만 프랑을 주기까지 했
다. 해리엇이 아들 루이를 낳으면서 이들 가정의 행복은 절정에 오르는 듯했다. 그러나 예민
하고 고집 센 음악가와 아름다움을 잃고 열등감에 사로잡힌 중년 여배우의 혼인은 길게 유지
되기 어려웠다.

이들의 결혼은 이후 20여년에 걸쳐 숱한 상처를 남기게 된다. 아들 루이가 생긴 후 스미슨은
무대에 복귀하려는 강렬한 소망을 갖게 됐고, 이미 유명인사가 된 베를리오즈는 작곡, 연구,
평론으로 분망했다. 결혼 2년간은 파리 교외 몽마르트에서 함께 살았지만 활동 근거지가 파리
시내였던 베를리오즈는 2년 뒤 시내에 하숙을 정하게 됐다. 당시 그는 평론가로도 상당한 권
위를 갖고 있어서 신인들의 내방이 잦았는데 그중에 마리 레치오라는 여가수가 있었다. 목소
리도 음악적 재질도 볼품없는 인물이었지만 어떻게 해서든 오페라 무대에 서기 위해 유력한
평론가 베를리오즈에게 매달린 것이다. 스미스는 남편이 하숙을 얻는다는 사실도 이해할 수
없었지만 특히 마리에 대해서 엄청난 질투심을 보였다.

음악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는 아내에 대해 언짢은 생각을 갖고 있던 그는 마리에 대한 그녀
의 격렬한 반응으로 더욱 더 아내를 피곤한 존재로 인식하게 됐다. 설상가상으로 신작 <벤베
누토 첼리니>를 1838년에 상연했지만 실패에 부딪쳐 그로서는 절실하게 새로운 변신이 필요
한 시기이기도 했다. 이때부터 그는 몽마르트의 자택에 가는 일이 거의 없어지게 됐고 마리와
동거에 들어갔다. 아내와는 이혼하지 않은 상태에서 그의 이중생활이 시작된 것이다.

베를리오즈는 마리와 동거하면서 평론보다는 연주에서 변신을 꾀하게 된다. 그러다보니 외국
의 여러 지역으로 연주여행을 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이때마다 마리는 동행했고 남들 앞에서
베를리오즈의 아내 노릇을 했다. 환상교향곡을 쓸 만큼 스미슨에게 쏟았던 그의 열광은 이제
찾아 볼 수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마리를 사랑한 것도 아니었다. 그녀와의 동거는 일종
의 습관 같은 것이었다. 남편이 보내주는 생활비로 아들 루이와 외롭게 생활한 스미슨은
1848년에 뇌일혈로 쓰러져 5년간이나 투병하다 세상을 떠났다. 그녀의 결혼 생활은 단지 2년
에 그쳤고 그 후 죽기까지 남편의 철저한 무관심 속에서 버려지는 처지가 됐다. 아내가 죽자
베를리오즈는 슬픔을 가득 담은 편지를 그들의 결혼식 입회인이었던 리스트에게 보냈다.

베를리오즈는 마리 레치오와 재혼했지만, 해리엇에 대한 감정을 완전히 정리하지 못했었다.
스미슨이 병으로 쓰러졌다는 소식을 듣고 그녀의 침대 옆을 지키며 헌신적으로 간호하고 임종
을 지켜보았다. 스미슨의 죽음은 베를리오즈가 이후 차례로 겪을 이별의 전주였다. 그녀를 잃
은 지 8년 만에 두 번째 아내 마리도 갑자기 사망했고, 아들 루이마저도 아바나에서 황열병으
로 사망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사랑하는 이들의 연이은 죽음은 베를리오즈를 무력하게 만들
었다.

베를리오즈는 스미슨에게나 마리에게 같은 실망과 좌절을 겪었다. 스미슨이 비록 음악에 대한
관심은 없었다 해도 가정주부로서는 손색이 없었다는 것이 각종 자료들의 증언이다. 마리 역
시 음악에 소질이 없는데다 무서운 질투의 화신이긴 했어도 남편에겐 철저한 부덕을 제공하려
고 애썼다. 그러나 두 사람 모두 남편의 버림을 받았다. 베를리오즈는 스미슨이 아닌 오필리
아의 환영으로 첫 아내를, 마리가 아닌 정열적인 스페인의 화신으로 둘째 아내를 맞았기 때문
이었다. 그는 음악에서와 마찬가지로 사랑도 환상으로 자기류의 색채를 칠했다. 그러나 환상
이 깨어지고 색채가 벗겨지면 드러나는 실체를 믿으려 하지 않았다. 그래서 두 아내를 외면했
다.

1869년 3월 8일. 그는 최초로 사랑을 느꼈던 에스테르 포르니에가 자기의 임종을 지켜주기를
희망했다. 죽음을 준비하면서조차 그는 환영을 고집했다. 그러나 그의 소원은 이뤄지지 않았
다. 제자와 몇몇 친구들만이 그의 임종 옆에 있었다.

베를리오즈가 음악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것은, 프랑스에서 유일한 교향곡 작곡가였
고, <표제음악>이라는 새로운 극적인 관현악곡 스타일을 창시한 데 있다. 그리고 이 음악과
더불어 그의 새로운 관현악법은 이후의 많은 작곡가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또한 문장에도 뛰
어나 바그너와 더불어 명문가로 명성이 높으며, 자서전 <회상록>은 음악가가 쓴 전기문학 분
야에서 걸작 중의 하나로 손꼽힌다.

레퀴엠의 경우에는 4관 편성에 바순 8대, 호른 12대, 튜바 4-6대로 쓸 것을 명시하고, 타악기
도 팀파니 10대, 거기에 210명의 합창단과 테너 독창까지, 이것과는 별도로 금관악기로 이루
어진 4-8명의 주자가 동서남북으로 배치된다. 이 때문에 연주자가 부족해 다른 오케스트라의
단원이나 객원 연주자를 쓰고 특수 악기를 대여해야하니 비용이 많이 든다. 때문에 연주 횟수
도 적고 그나마도 편성을 줄여서 연주하는 경우가 많다.

◆ 주요 작품
Messe Solennelle, 1824-7
Waverley, 1827-8
Symphonie Fantastique, 1830
King Lear, 1831
Rob Roy, 1831-2
Le Corsair, 1831-44-55
Lélio, 1832
Harold in Italy, 1834
Benvenuto Cellini, 1834-8,1852,1856
Requiem (Messe des Morts), 1837
Romeo and Juliet, 1839
Roman Carnival, 1843-4
Damnation of Faust, 1846
The Childhood of Christ, 1854
Te Deum, 1855
The Trojans, 1856-63
Beatrice and Benedict, 1860-2

◆  관련 사이트 /
http://www.hberlioz.com/

◆ 유투브 감상 /
Fantastic Symphony" mov.5 „Dreams of a Witches' Sabbath"
http://www.youtube.com/watch?feature=player_detailpage&v=_9YYyL2ybzA

◆ 퍼 가는 것은 좋습니다. 그러나 반드시 출처를 밝히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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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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