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가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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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곽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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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쇼팽(Chopin, Frédéric François, 작곡가, 피아니스트, 1810-1849)


** 유투브 감상 /
스케르쪼 제2번
http://www.youtube.com/watch?feature=player_detailpage&v=alGaVou6lfk 

하늘은 온갖 황홀한 빛깔로 채색된 황혼이었고 숲속에선 새들의 아름다운 노
래가 끊이질 않았다. 쇼팽은 마리아의 손을 뜨거운 열정과 간절한 염원으로 잡
았다. "마리아! 나와 결혼해 주시오." 마리아는 대답대신에 그녀의 머리를 쇼팽
의 품에 묻는 것으로 청혼을 받아 들였다.

마리아 보진스키. 쇼팽이 설레는 마음으로 이국(異國)에 와서 처음으로 사랑했
던 여인이다. 지난날 콘스탄티아와 나눴던 밀어를 아직도 기억하고 있기는 했
지만 둘 다 서로의 명확한 거취 표명이 없는 데다 콘스탄티아 글라드코프스카
가 어느 날 갑자기 다른 남자와 결혼함으로써 그들의 첫사랑은 지워져있는 상
태였다. 마리아는 17살. 아름다운 콘트랄토의 기교를 구사하며 노래를 부르는
가하면 피아노와 작곡 솜씨도 여간 아니었고 몇 개의 외국어도 막힘 없이 구사
하는 재색겸비의 귀족 규수였다.

그 무렵(1836, 26세)의 쇼팽은 파리에서 피아니스트와 작곡가, 피아노 교사로
서 명성을 쌓아올려 가던 시절이었고, 5년이나 만나보지 못했던 양친을 만난
후 리스트와 함께 연주회를 갖고 보진스키家가 머물고 있는 마리엔바트에 합
류해 있었다. 마리아와 함께 있는 꿈같은 며칠이 지나고 내일은 드레스덴으로
떠나야 했다. 몇 번을 망설인 끝에 떠나기 전날 황혼 녘에 마리아에게 구혼했
던 것이다.

쇼팽의 구혼을 기쁘게 받아들이긴 했지만 우선 이 사실을 어머니에게 알릴 일
이 마리아에겐 걱정이었다. 쇼팽이 비록 뛰어난 음악가이긴 하지만  귀족은 아
니었던 것이다. 신분에 대한 전통적이고 보수적인 사고 방식을 갖고있는 어머
니를 설득해야할 일이 난감했다. 어찌됐든 쇼팽과 마리아는 그들이 결혼을 약
속했다는 사실을 통고했다. 마리아의 어머니는 심한 치통을 앓고 있어서 늘 찡
그린 표정이었는데 둘의 통고를 받는 표정이 매양 부정적인 것만은 아닌 듯 했
다. 그러나 이 노련한 귀족부인은 한가지 조건을 달았다. 약혼을 하기는 하되
돌아오는 여름에 비밀스럽게 하자는 것이었다. 다음 여름은 1년이나 남아있는
데...

프레데릭 쇼팽은 1810년 2월 22일 폴란드의 바르샤바 교외 젤라조바 볼라
(Zelazowa Wola)에서 태어났다. 6살 때부터 아달베르트 지브니의 문하에서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지만, 천부적으로 갖고있는 피아노에 대한 특별한 감
수성을 발견한 스승은 규칙적인 레슨을 피하고 제자가 하는 대로 방임해두는
독특한 교수법을 택했다. 실제로 쇼팽은 배우지 않고도 얼마든지 피아노를 연
주할 수 있었기 때문에 지브니는 그의 처음이자 마지막 교사였다.

8살이 되자 쇼팽은 대중 앞에서 최초의 연주회를 가졌다. 당시 유명한 작곡가
였던 기로베츠의 협주곡이 연주곡목 이었다. 또한 그해에 폴로네이즈 사 단조
가 최초로 출판됐다. 다음은 이 무렵의 '바르샤바 月報'에 실린 기사의 한 부분
이다. "그는 음악적 관점으로 보더라도 하나의 놀라운 천재이다. 그는 바르샤
바 중학교에서 프랑스어와 문학론을 가르치는 교사 니콜라 쇼팽의 아들이다.
그는 매우 부드럽고 우아한 취미를 갖고 있으며 아주 어려운 곡을 피아노로 연
주할 뿐만 아니라 거기에다 무곡, 변주곡도 몇 곡 작곡했는데 그 곡은 전문가
와 비평가의 경이의 대상이 되고 있다. 만일 그가 독일이나 프랑스에서 태어났
다면 아마도 세계적으로 유명해졌을 것이다. 우리 나라도 천재를 낳을 수 있다
는 사실을 독자들에게 상기시키고자 한다"

이 기사로 미루어본다면 당시 폴란드가 유럽의 다른 나라에 비해 음악문화 분
야에서 후진국의 처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고, 따라서 쇼팽과 같은 천재소
년의 출현이 폴란드의 문화적 자존심을 일으켜 세우는 센세이셔녈한 사건이
되었던 듯 하다.

1828년, 18살의 쇼팽은 아버지의 친구 펠릭스 야로츠키 박사를 따라 베를린에
여행했다. 난생 처음으로 떠난 외국여행은 그를 열광적으로 자극시켰다. 베버
의 '자유의 사수'를 비롯한 여러 편의 오페라와 헨델의 '聖세실리아'공연들을
보면서 쇼팽은 전율했다. 고향에서는 도저히 만날 수 없었던 이러한 새로운 체
험은 그로 하여금 "외국으로 나가야 하겠다"는 생각을 하도록 만들었다. "시골
구석에서 받는 칭찬이 무슨 가치가 있겠는가?"는 생각이 자꾸만 고개를 들었
다. 결국 그는 떠나기로 결심한다. 그러나 경솔한 외국으로의 이주를 염려한
아버지의 권유를 받아들여서 우선 음악의 도시 빈(Wien)으로 가서 자신의 음
악적 역량을 시험받기로 했다.

빈에 도착한 쇼팽은 출판업자 하슬링거를 만나 변주곡의 출판을 약속 받았고,
일종의 시험적 성격이 짙은 음악 아카데미 연주회에 출연해서 열화 같은 앙코
르를 받을 만큼 성공을 거두기도 했다. 두 번째 음악회에선 '제1급의 거장'이라
는 최고의 칭찬을 받기도 했다. 그리고선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다. 시험적 연
습여행은 성공했다. 이제는 그의 인생을 건 모험적 실제 여행을 떠나야 했다.
그러나 떠나기 전에 반드시 매듭을 지어야 할 일이 있었다. 음악원 시절의 연
인 콘스탄티아 글라드코프스카의 문제였다. 만나서 장래를 의논해야 했다. 허
나 두 사람 모두 이 일을 회피했고, 그런 애매한 상태에서 고별(告別) 연주회
를 마친 쇼팽은 친구들이 유리병에 담아준 폴란드 흙과 함께 조국을 떠났다.
모험은 시작됐다.

그의 첫 기착지는 빈이었다. 그러나 별 소득 없는 8개월의 빈 생활을 정리하고
이번엔 파리를 향해 떠났다. 파리에 도착한 쇼팽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라고 일기에 썼다. 여기에 오기전 그의 기분은 가라앉아 있는 편이었지
만 파리의 생생한 분위기가 그의 일상을 크게 변화시켰다. 더군다나 파리의 번
화한 거리에서 우연히 만난 바렌틴 라비빌公의 각별한 후원으로 많은 제자를
갖게 되고 연주회도 갖게 됐다. 그는 삽시간에 파리 사교계의 저명인사가 됐
고 자가용 마차를 소유할 만큼 부자가 됐다. 그리고 그의 주변엔 늘 젊고 아름
다운 여인들이 웃음 짓고 있었다. 그의 연주는 주로 살롱에서 열렸고 극장에서
의 연주는 의외로 적었다. 18년간 파리에 있었지만 홀에서의 연주회는 19회에
불과 했었다.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쇼팽을 '살롱의 음악가' '부인들의 음악
가'라고 비아냥거리기도 했다.

마리아 곁을 떠나 라이프찌히 등지에서 분망한 생활을 보내는 쇼팽에게 어느
날 마리아의 어머니로부터 편지가 도착했다. 요지인즉 신분의 차이는 극복할
수 없는 중대한 문제라는 것이었다. 쇼팽은 마리아를 잃게 됐다는 사실을 그제
야 알게 됐다. 마리아는 결국 오제프 스카르벡 백작과 결혼 했지만 남편의 육
체적 결함이 밝혀져 곧 이혼했고, 두 번째 결혼 역시 남편이 결핵환자여서 불
행했다. 마리아는 이러한 불행 속에서 한 용기 없는 사나이를 늘 생각하며 살
았다.

이 일이 있은 뒤 1837년초 쇼팽은 결핵을 앓기 시작한다. 그러나 때마침 그의
앞에 나타난 강력한 해독제를 통해 좌절하고 상처받은 영혼이 점차 안정을 찾
기 시작했다. 그의 앞에 등장한 해독제는 프랑스 문단의 여걸 죠르조 상드라
는 여인이다.

나이는 쇼팽보다 8년 연상. 상드는 늘 남장을 하고 다녔고 줄담배에다 성격도
강하고 거친 편이었다. 처음, 쇼팽은 "뭐 이런 여자가 다 있나?"라는 부정적인
입장이었다. 상드 역시 쇼팽을 "약하디약한 체격에다 성격도 변변치 못한 남
자"로 첫인상을 가졌다. 그러나 만나는 횟수가 늘어나면서 상드의 의상이 누구
보다도 화려한 여성의상으로 변해갔다. 쇼팽의 마음도 어느덧 그녀에게 끌려
가기 시작했다. 특히 예술에 관한 상드의 해박한 지식에 쇼팽은 크게 이끌렸
다. 이듬해 여름, 파리 사교계에선 상드와 쇼팽의 관계를 모를 사람이 없을만
큼 둘은 늘 함께 있었다.

한가지 곤란한 것은 쇼팽의 병이 날이 갈수록 깊어 가는 것이었다. 백방으로
치료를 했지만 병세가 호전되지 않았다. 둘은 의논 끝에 풍광 좋은 마요르카
섬으로 전지 요양을 떠났다. 그곳의 더운 기후가 오히려 좋지 않다고 상드가
만류했지만..... 일행은 쇼팽과 상드, 그리고 상드의 두 아이였다. 낯선 곳이긴
했지만 아름다운 환경이 쇼팽이 기분을 훨씬 좋게 만들었다. 그러나 얼마가지
않아 쇼팽의 상태는 다시 파리의 그것으로 돌아가는 듯 했다. 어느 비오는 날.
상드는 거리에 나가 식료품을 사 갖고 집으로 돌아왔다. 캄캄한 밤이었는데도
방엔 불빛이 없었고 쇼팽은 어둠 속에서 피아노를 치고 있었다. "프레데릭, 이
캄캄한데서 뭘 하세요?" 상드가 쇼팽을 부르며 들어서자 의자에서 벌떡 일어
난 그는 "오! 유령이구나! 당신은 유령이지!" 라고 마치 실성한 사람처럼 이상
한 눈초리로 상드를 노려봤다. 이때 쇼팽은 처음으로 자기에게 다가오는 죽음
을 느꼈던 것이다.

그들은 1839년 2월, 마요르카를 떠나 마르세이유에 상륙했다. 다행히 여기에
서 몇 달 머무는 동안 쇼팽의 건강은 눈에 띄게 좋아졌다. 그는 파리로 돌아가
길 원했다. 이번에도 상드는 아들을 돌보듯 쇼팽을 보호하며 파리로 갔다가 이
내 노앙으로 거처를 옮겼다. 노앙은 상드의 고향이었다. 맑은 공기, 마음씨 좋
은 주민들 가운데서 쇼팽은 모처럼 활기를 찾았고 건강도 좋아졌다. 그러나 도
시생활에서 성장한 쇼팽에게 노앙은 너무도 한적한 시골이었다. 곧 실증이 왔
다. 그의 마음은 예술가들이 모여 음악을 즐기고 문학을 얘기하는 파리의 화려
한 살롱으로 달리고 있었다. 쇼팽과 상드는 이제는 부부로서 생활하고 있었
다.

노앙에 사는 동안 상드는 상냥하고 충실한 아내가 되기 위해 온갖 정성을 다
기울였다. 더군다나 상드의 음악에 관한 식견이 대단해서 쇼팽의 창작에도 큰
도움이 되고 있었다. 그런데도 파리로만 향하는 그의 충동은 어쩔 수가 없었
다. 그는 파리의 친구 폰타나에게 부탁을 했다. 아파트가 준비됐다는 회신을
받자 그해 10월 파리로 돌아갔다. 상드는 뒤늦게 왔고, 둘은 서로 다른 집에서
기거했다. 단지 식사만은 함께 나누는 기묘한 생활이 시작됐다. 이런 생활은
서로를 간섭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두 사람 모두에게 좋게 받아들여졌다. 그러
나 몇 달 뒤 새로 집을 구해 함께 살기 시작했다. 다시 돌아온 파리에서 쇼팽
은 다시 제자들을 가르쳤고, 궁정음악회를 비롯한 수많은 연주회에서 연주하
고, 창작에서도 새로운 활기를 찾아 소나타 나 단조등 걸작을 잇달아 쓰게됐
다.

이 당시의 쇼팽 연주회가 얼마나 비중이 컸는지 다음과 같은 리스트의 글이 증
언한다. "가장 아름답고 우아한 여성들과 보다 당당한 사람들, 보다 유명한 예
술가들, 그리고 보다 부유한 부자들, 사교계의 엘리트 전부, 가문과 재산과 미
모를 겸비한 귀족들 앞에서 쇼팽은 피아노를 연주했다."

그해 겨울 상드는 소설을 쓰기 위해 노앙으로 돌아갔고 쇼팽은 홀로였다. 별
일 없을 것 같았던 이 별거는 며칠만에 심각한 부작용을 빗기 시작했다. 갑자
기 시중들어줄 사람이 없어진 쇼팽의 건강이 또다시 악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설상가상 그에겐 아버지의 부음이 전해졌다. 쇼팽의 슬픔은 병을 더 나쁘게 만
들어 자리에 눕게 되고 말았다. 상드가 급히 파리로 달려왔다. 그녀의 헌신적
인 간병과 때마침 달려온 누님 루드비카와의 재회 덕분에 그의 건강은 많이 회
복됐다.

쇼팽은 다시 창작에 들어갔고 상드도 문필생활을 재개했다. 둘의 애정은 아무
런 문제가 없는 듯 했다. 그러나 서서히 문제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 중에서
도 가장 심각했던 것은 상드와 전남편 사이에서 출생한 두 자녀들, 집에서 부
리는 일꾼들 같은 문제들이 둘의 감정을 상하게 하여 파국이 오고 만다.

이때가 1847년이다. 그 즈음 쇼팽은 절망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그를 지켜주
고 있었던 상드라는 울타리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이 무렵 제자의 초청으로 영
국에 건너가 약 7개월간 체재하면서 연주회에 출연했지만 어느 것 하나 흥미
를 느낄 수가 없었고 자기를 초청한 제인 스털링과 결혼한다는 소문이 나도는
지경이 되자 서둘러 파리로 돌아오고 말았다. 그는 누구보다도 자기의 병세를
알고있는 모리앙 박사를 만나고 싶었다. 그러나 그가 런던에 있는 동안 모리앙
은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쇼팽은 모리앙의 죽음을 자기의 죽음으로 생각하기
시작했다. 이때 쇼팽은 상드의 딸 소랑주에게 이런 편지를 썼다.

"이제 머지않아 나는 영원한 안식, 평온한 안식을 가질 것이다. 의사들의 신세
를 지지 않더라도 나는 언젠가는 자연스런 나의 안식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아마도 그날이 머지 않다는 것을 나는 믿고 있다"

그의 측근들도 쇼팽의 죽음의 날이 머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누님 루드비
카가 달려와 그를 간병했지만 죽음의 발자국은 멈춰지질 않았다. 그는 상드를
만나보고 싶었지만 실천에 옮기진 않았다. 누님에게 미완성된 작품은 모두 태
워버려 달라는 부탁을 했다. 1849년 10월 16일 밤, 쇼팽을 방문한 첼리스트 프
랑숌이 모차르트의 음악을 연주했다. 쇼팽이 원했기 때문이다. 이튿날 상오 2
시, 쇼팽의 영혼은 그의 육체를 떠났다. 그의 장례식은 10월 20일, 마드렌느 교
회에서 행해졌다. 그의 관 위에는 그가 조국을 떠날 때 가져온 흙 한줌이 뿌려
졌다.

20세 때 고향을 떠난 에트랑제 쇼팽. 그는 그토록 사랑했던 조국을 가지 못한
채 파리에 묻혔다.{피아노의 詩人}이라는 칭호를 받고있는 쇼팽. 그의 삶과,
그의 예술, 그의 사랑은 지금도 그의 작품 속에 살아있는 호흡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 작품
Allegro de Concert, A Major, Op.46, 1841
Ballade, G Minor, Op.23, 1833
Ballade, F Major, Op.38, 1839
Ballade, A flat Major, Op.47, 1841
Ballade, F Minor, Op.52, 1843
Barcarolle, F sharp Major, Op.60, 1846
Berceuse, D flat Major, Op.57, 1844
Bolero, C Major, Op.19, 1833
Cantabile, B flat Major, 1834
Concerto, E Minor, Op.11, piano and orchestra, 1830
Concerto, F Minor, Op.21, piano and orchestra, 1829
Duo Concertant on themes from Meyerbeer's Robert le Diable, E Major,
piano and cello, 1831
Ecossaises (Op.72: no 3, D Major, no 4 G Major, no 5 D flat Major), 1826
or 1830
Etudes Op.10, 1829-1833:
Etudes Op.25, 1835-1837:
Etudes de la Méthode des Méthodes, 1839-1840:
Fantasy on Polish Airs, A Major, Op.13, piano and orchestra,
Fantasy, F Minor, Op.49, 1841
Fugue, A Minor, 1827 or 1841
Funeral March, C Minor, (Op.72 no 2) 1826 or 1827 or 1829
Impromptu, A flat Major, Op.29, 1837
Impromptu, F sharp Major, Op.36, 1839
Impromptu, G flat Major, Op.51, 1842
Impromptu-Fantasie, C sharp Minor, (Op.66), 1834
Largo E flat Major, 1847
Mazurkas Op.6:
Mazurkas Op.7:
Mazurkas Op.17:
Mazurkas Op.24:
Mazurkas Op.30:
Mazurkas Op.33:
Mazurkas Op.41:
Mazurkas Op.50:
Mazurkas Op.56:
Mazurkas Op.59:
Mazurkas Op.63:
Mazurkas (Op.67):
Mazurkas (Op.68):
Mazurka G Major, 1826
Mazurka B flat Major, 1826
Mazurka B flat Major, 1832
Mazurka A flat Major, 1834
Mazurka A Minor, 1840
Mazurka A Minor (Notre Temps), 1841
Moderato E Major (Feuille d'Album), 1843
Nocturnes Op.9: no 1 B flat Minor, no 2 E flat Major, no 3 B Major, 1832
Nocturnes Op.15: no 1 F Major, no 2 F sharp Major, no 3 G Minor, 1833
Nocturnes Op.27: no 1 C sharp Minor, no 2 D flat Major, 1835
Nocturnes Op.32: no 1 B Major, no 2 A flat Major, 1837
Nocturnes Op.37: no 1 G Minor, no 2 G Major, 1838 (no 1), 1839 (no 2)
Nocturnes Op.48: no 1 C Minor, no 2 F sharp Major, 1841
Nocturnes Op.55: no 1 F Minor, no 2 E flat Major, 1842-1844
Nocturnes Op.62: no 1 B Major, no 2 E Major, 1846
Nocturne E Minor, (Op.72 no 1), 1827
Nocturne C sharp Minor (Lento con gran espressione), 1830
Nocturne C Minor, 1847
Polonaise C Major Op.3, piano and cello, 1829, 1830 (Introduction)
Polonaise E flat Major, Op.22, piano and orchestra, 1830-1835
Polonaises Op.26: no 1 C sharp Minor, no 2 E flat Minor, 1835
Polonaises Op.40: no 1 A Major, no 2 C Minor, 1838 (no 1), 1839 (no 2)
Polonaise F sharp Minor, Op.44, 1841
Polonaise A flat Major, Op.53, 1843
Polonaise-fantasie A flat Major, Op.61, 1846
Polonaises (Op.71: no 1 D Minor, no 2 B flat Major, no 3 F Minor), 1827, 828, 1829
Polonaise B flat Major, 1817
Polonaise G Minor, 1817
Polonaise A flat Major, 1821
Polonaise G sharp Minor, 1822 or 1824
Polonaise B flat Minor, 1826
Polonaise G flat Major, 1829
Preludes Op.28 1838-1839:
Prelude C sharp Minor, Op.45, 1841
Prelude A flat Major (Presto con leggerezza), 1834
Rondo C Minor, Op.1, 1825
Rondo a' la Mazur, F Major, Op.5, 1826
Rondo a' la Krakoviak, F Major, Op.14, Piano and orchestra, 1828
Rondo E flat Major, Op.16, 1833
Rondo C Major, (Op.73), for 2 pianos, 1828
Scherzo B Minor, Op.20, 1833
Scherzo B flat Minor, Op. 31, 1837
Scherzo C sharp Minor, Op.39, 1839
Scherzo E Major, Op.54, !843
Sonata C Minor, Op.4, 1828
Sonata B flat Minor, Op.35, 1837 (Funeral March), 1839
Sonata B Minor, Op.57, 1844
Sonata G Minor, Op.65, piano and cello, 1846
Songs (Op.74), voice and piano:
Czary [Witchcraft] D Minor, 1830 (S.Witwicki);
Dumka [Song] A Minor, (B.Zaleski)
Souvenir de Paganini, A Major, 1829
Tarantella, A flat Major, Op.43, 1841
Trio, G Minor, Op.8, Piano, violin, cello, 1829
Variations, B flat Major, Op.2, on La ci darem la mano, piano and orchestra, 1827
Variations brillantes, B flat Major, Op.12, on Je vends des Scapulaires, 1833
Variations E Major, on Steh' auf, steh' auf o du Schweitzer Bub, 1824
Variations D Major, on a theme of Moore, piano 4 hands, 1826
Variation E Major, from Hexameron, 1837
Waltz E flat Major, Op.18, 1833
Waltzes Op.34:
Waltz A flat Major, Op.42, 1840
Waltzes Op.64:
Waltzes (Op.69):
Waltzes (Op.70):
Waltz E Major, 1829 or 1830
Waltz A flat Major, 1830
Waltz E Minor, 1830
Waltz E flat Major, 1840
Waltz A Minor, 1847

** 퍼 가는 것은 좋습니다. 그러나 반드시 출처를 밝히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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