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가이야기

0
 1868   94   1
  View Articles

Name  
   곽근수 
File #1  
   johannes_brahms_photo_dark_hair_white_beard[1].jpg (38.7 KB)   Download : 51
Subject  
   브람스(Brahms, Johannes, 작곡가,1833-1897)


** 유투브 감상 /
교향곡 제1 중 제4악장
http://www.youtube.com/watch?feature=player_detailpage&v=MQ8J27BrvhE

"아침마다 제게 문안 전보를 쳐 주시지 않으렵니까? 그렇게만 해 주신다면 저
는 온종일 기쁘게 지낼 것입니다. 부인이 없이는 이젠 더 이상 지탱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아무리 한탄해 보아도 부인이 옆에 계시지 않으니 아무 소용없지
만, 그래도 미칠듯이 안타깝게 기다리고 있는 자의 슬픔은 다소나마 가라앉습
니다"

슈만이 정신착란증을 일으켜 라인강에 투신 자살을 하려다 구출된 것이 1854
년 2월 27일인데, 이편지는 8개월이 지난 10월에 브람스가 클라라 슈만에게 보
낸 편지이다. "부인이 없이는 이젠 더 이상 견딜 수 없을"만큼 클라라를 향한
사랑은 맹렬한 불꽃으로 타오르고 있었던 것이다.

클라라 슈만은 브람스의 나이보다 14세나 많았다. 클라라는 21살 때인 1840년
에 슈만과 결혼하여 남편이 1855년 7월 29일 정신병원에서 별세할 때까지 불과
15년을 함께 살았다. 미망인이 된 그녀에겐 여섯 명의 자녀들이 있었다. 브람
스가 요아힘의 소개로 처음 슈만을 방문했던 것은 1853년 9월 30일이었다. 그
날 슈만과 클라라는 브람스가 지니고 있는 놀라운 작곡 재능에 크게 탄복했
고, 슈만은 그가 관리하고 있는 '신음악신보'에 다음과 같이 브람스 를 소개했
다.

"그리하여 그 사람은 나타났던 것이다. 그 젊은 사람의 요람은 세명의 클라치
(우아한 아름다움을 상징하는 女神)와 영웅들이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
사람의 이름은 요하네스 브람스인데 함브르크에서 온 청년이다. 거기서 은밀
히 창작은 계속하고 있었으나, 이 예술의 가장 어려운 작문법을 어느 우수한
스승(에두아르크 마르크스젠)에게서 배웠고, 얼마 전에 어느 유명한 음악가의
소개를 받고 찾아왔던 것이다. 그는 외모부터 선천적인 소질을 타고났음을 우
리에게 알려주는 모든 표상을 갖고 있었다. 피아노 앞에 앉은 그는 신기한 영
역의 뚜껑을  열기 시작했다. 우리는 감미롭고 신비스런 세계로 끌려갔다."

슈만을 방문한 첫날, 그들의 만남은 이렇게 거의 숙명적이었다. 클라라는 즉석
에서 저녁 식사를 함께 하자고 제의할 정도였다. 슈만이 라인강에 투신한 것
은 그들이 처음 만난 날로부터 불과 5개월 후의 사건이었다. 그 무렵 브람스는
하노버에 있다가 이 소식을 듣고 달려와 스승을 헌신적으로 간호하는 한편, 클
라라와 그녀의 자녀들을 돌보게 되는데 이런 일을 통해 클라라를 향한 사랑이
싹트기 시작했던 것이다.

슈만이 세상을 떠나기 전 브람스와 클라라는 수많은 연서를 교환했다. 다만 클
라라는 그녀의 편지가 남의 눈에 띄는 것이 불안하여 "이 편지는 곧 태워 버리
세요. 그렇지 않으면 저는 앞으로 편지를 드리지 않을 것입니다."(1854년11월)
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슈만이 정신병원에 입원해 있을 무렵부터 그가 세상을
떠난 1855년 이후까지 클라라에게 보낸 브람스의 편지들 가운데 몇가지. "죽도
록 부인을 사랑하고 있다고 글로써만 아니라 오늘 제 자신의 입으로 부인에게
말씀드리는 것을 하느님이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부인에게 저의 눈물
을 전해드릴 수밖에 없습니다."(1854년 11월)  "제가 편지를 드리는 것을 용서
해 주십시요. 그리고 저를 믿어 주십시요. 부인을 생각하고 있을 때에는 글로
도 잘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진지한 것입니다. 부인에게 편지를 쓰고 있을 때 저
는 문득 부인과 이야기를 하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듭니다."(1854년 12월)  "부인
을 생각하고 부인이 보내 주신 편지를 거듭 읽고 부인의 사진을 바라보는 일
이외에는 아무 것도 손에 잡히지 않습니다. 도대체 부인께서는 저를 어떻게 하
신 것일까요? 이 마력을 저에게서 풀어주실 수 없을까요?"(1855년 1월)  "부인
의 편지가 이토록 큰 기쁨을 저에게 주신 것은 드문 일입니다. 아침부터 한 마
음으로 부인을 생각하고 있읍니다. 저의 마음에는 너무나도 강하게 부인의 존
재가 느껴집니다. 얼마나 저 를 행복하게 해 주셨던 것일까요!"(1855년 3
월) "저는 지금 얼마나 부인을 만나 보고 싶어하는지 모릅니다. 무슨 소리만 들
려도 이내 창가에 달려 갑니다. 부인에 대해서만 줄곧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
다. 제발 부탁 합니다. 저를 잊지말아 주십시오." (1855년 5월)  "언제나 부인
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부인은 한사코 제 머리에서 떠나지 않습니다. 부인이
계시지 않으면 저는얼마나 불행하게 될는지 알 수 없습니다. 부인을 진정으로
포옹하게 해 주십시오." (1855년 8월)

브람스의 음악어법(語法)은 당시의 일반적인 경향에 비교하면 비교적 낡은 것
이었다. 바그너의 영향이 거의 모든 음악인들에게 끼쳐진 상태였기 때문에 고
전적 전통을 지키고 있는 브람스의 작곡 태도는 자연히 비난의 대상이 되곤 했
다. 때문에 그에겐 적이 많았다. 그의 작품이 연주되는 곳에 바그너 음악이 추
종자들이 몰려 와서 연주를 방해하는 것은 예사로운 일이 되고 있었다. 그러
나 클라라는 항상 브람스를 옹호하고 나섰다. 어느날 클라라는 친구 루우젤에
게 "그 사람은 거의 모든 음악가들과 등지고 있기는 하지만 그건 브람스가 자
기네들보다 훨씬 우수하다고 그들이 느끼고 있기 때문이에요" 라고 두둔하는
말을 하기도 했다.

브람스는 1892년 12월 23일에 클라라에게 마지막 편지를 썼다. 브람스는 59세
였고 클라라는 73세였다. "저는 벌써 오랫동안 부인의 집에서 성탄절을 같이
보내지 못하고 있군요. 그 무렵에는 크리스마스 트리가 얼마나 아름답게 빛나
고 있었습니까? 젊은이들이나 늙은이들의 눈빛도 그랬었구요. 저는 로베르트
(슈만)의 변주곡을 쉴 새 없이 치고 있습니다. 이것은 마치 봄날의 오후에 꽃
핀 나무 밑에서 졸졸 흘러내리는 냇가를 거닐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곡
입니다" 당신의 요하네스."

그리고 4년 뒤. 1896년 5월 7일, 클라라는 브람스의 생일을 축하하는 짧막한 편
지를 보냈다. 이것이 그녀의 마지막 편지였다. 이틀 후, 클라라의 딸 마리가 어
머니의 부음을 전해 왔다.

브람스가 클라라를 향한 지극한 사랑의 헌신을 하고 있을 무렵, 괴팅겐에 있
는 그림이라는 친구의 집에서 지내고 있었는데 그림의 부인 친구 중에 아가테
폰 지볼트라는 눈부신 미인이 있었다. 어느날 저녁 브람스는 아가테와 산책을
하고 돌아오던 길에 클라라와 우연히 부딪친 일이 있었다. 클라라는 두사람이
서로 사랑하는 사이가 된 줄알고 크게 놀라서 그 이튿날 당장 그곳을 떠나고
말았다. 클라라는 비록 브람스처럼 그의 사랑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일은 드물
었지만 이런 행동이야말로 그녀가 얼마나 깊이 브람스를 사랑하고 있는가를
보여준 것이리라. 브람스는 한때나마 아가테를 사랑한 것 같다. 그러나 결혼
에 이르지 못한 것은 역시 클라라를 향한 사랑이 더 컸기 때문이었으리라. 그
러나 아가테와의 덧없는 사랑에서 <현악6중주곡 제 2번>과 몇 곡의 가곡이 만
들어 지기도 했다.

1896년 5월 6일, 클라라는 뇌출혈로 쓰러졌다. 그런 위험 속에서도 그녀는 브
람스의 생일 (5월 7일)을 축하 하는 짧막한 편지를 보냈다. 글씨는 거의 알아보
기 어려울 정도였다. 클라라는 끝내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클라라의 부음이
브람스에게 너무 늦게 통지된데다 기차도 제때에 타지 못해서 그녀가 묘에 매
장될 시각에 간신히 도착할 수 있었다. 클라라의 장례를 마치고 돌아온 브람스
는 새삼스레 엄습해오는 슬픔을 견디기 힘들어했고 그것은 급기야 그의 마음
속에 한가닥 남아 있었던 삶의 의미마저 거두어 가는듯 했다. 게다가 클라라
의 장례때문에 그는 육체적으로도 몹시 지쳐있었다. 그해 8월 중순에 의사의
진찰을 받았다. 의사는 온천장으로의 전지요양을 권했다. 9월 2일, 브람스는
카를스바트 온천장에 도착했다. 여기서 그는 닥터 그뤈벨거의 정밀 진찰을 받
았다. 병명은 '악성 간장 비대'. 브람스는 마음씨 좋은 브뤼셀 태생 부부가 경
영하는 작은 여관에서 정양에 들어갔다. 이때부터 이 여관은 '요하네스 브람스
관'으로 불려졌다.

10월에 빈(Wien)으로 갔다. 10월 14일엔 브루크너의 장례식에 참석했다. 11월
9일엔 <4개의 엄숙한 노래> 초연에 임석했다. 다음해 1월 2일엔 <현악5중주
곡 사 장조>가 요아힘 4중주단에 의해 연주됐고 브람스는 무대인사를 했다.
1897년 4월 3일, 브람스는 운명했다. 1833년 5월 7일, 독일의 함브르크에서 술
집 악사의 아들로 태어나 어려서부터 뛰어난 재능을 보여 끝내 위대한 예술의
승리는 거둔 브람스. 그의 향년은 64년이었다.

그는 베토벤과 슈베르트가 쉬고있는 뷘의 중앙묘지에 합류했다. 장례가 있었
던 날, 그의 곁엔 마지막 여인 아리스 바르비만이 동행하고 있었다. 클라라는
생전에 다음과 같은 편지를 브람스에게 보낸 일이 있었다. "사람들은 다만 모
든 것을 잃기 위해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무덤에 끌려가는 것입니
다. 그 무덤 위에는 바람이 불지도 모르며 눈이 내릴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 이외에는 모두 그전과 다름없이 매일 지나가는 것입니다" 브람스가 운명한
날, 그의 고향 함부르크 항구에선 모든 선박들이 조기를 걸고 애도했다.

*** 관련 사이트 / http://weihaozhu.tripod.com/

** 유투브 감상 /
교향곡 제1 중 제4악장
http://www.youtube.com/watch?feature=player_detailpage&v=MQ8J27BrvhE

** 퍼 가는 것은 좋습니다. 그러나 반드시 출처를 밝히시기 바랍니다.


Name
Memo
Password
 
     
Prev
   차이콥스키(Tchaikovsky, Peter Ilyich, 작곡가, 1840-1893)

곽근수
Next
   바그너(Wagner, Richard, 작곡가,1813-1883)

곽근수


Copyright 1999-2020 Zeroboard / skin by Zety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