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가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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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곽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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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이든(Haydn, Franz Joseph, 작곡가, 1732-1809)

 
◈ 유투브 감상
Haydn: The Creation, oratorio in three parts, Hob. XXI:2
Gabriel과 Eva / IDA FALK WINLAND Sopran
Uriel / ANDREW STAPLES Tenor, Raphael / DAVID STOUT Bass
Adam / ROBERT DAVIES Bass, MUSICA SAECULORUM
지휘 : PHILIPP VON STEINAECKER
http://youtu.be/l07oRR4u-rk

우리가 기억할 수 있는 위대한 음악가들 중에서도 인생 운영과 음악의 창조와 관리에서 가장
뛰어나고 가장 치밀했으면서도 단 한번, 배우자 선택의 실수로 평생을 불우한 가정생활로 일
관할 수밖에 없었던 인물, 그가 요제프 하이든이다.

하이든은 목수이자 열렬한 음악 애호가인 마티아스 하이든과 궁정 요리사인 안나 마리아 콜러
사이에서 1732년 3월 31일 독일 로라우의 오두막집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에겐 많은 형
제들이 있었는데 그중 여섯째 요한 미하엘은 작곡가로서, 열한 번째 요반 에반겔리스트는 가
수로 성공해서 음악 가족을 이룩했다.

워낙 집안 형편이 어려웠기 때문에 정규 교육을 받을 수 없었던 하이든은 아버지의 고모부이
자 음악가인 마티아스 프랑크로부터 음악적 재질을 인정받아 6세 때 부모 슬하를 떠나 프랑크
의 집에 기숙하면서 일반 교과와 음악 전반에 관한 교육을 받았다. 8세 때 빈(Wien)의 성(聖)
슈테판 대성당 성가대원이 되어 연봉 700플로린을 받았으나 왕성한 식욕의 소유자였던 하이
든은 늘 허기진 생활을 감내해야만 했다. 그러나 이러한 생활조차도 13세 때 변성기가 찾아옴
으로써 단절될 위기에 놓이게 됐으며 결국 17세가 된 1749년 11월 어느 날, 수중에 한 푼도
없는 상태로 겨울의 차가운 거리로 쫒겨났다. 이토록 하이든의 소년 시절은 따뜻한 가정의 정
을 느껴보지 못한 채 지나가 버렸으나, 그래도 그의 마음속엔 장차 뛰어난 음악 가가 되겠다
는 열망이 가득 차 있었다.

슈테판 성당에서 쫒겨난 하이든은 당장 추운 겨울을 지낼 곳이 없어 하릴없이 빈(Wien) 거리
를 방황하던 중 전부터 알고 지내왔던 테너 가수 요한 스펭글러에게 부탁하여 그의 좁은 다락
방 한 구석을 차지할 수 있었다. 우선 잠잘 곳이 해결된 하이든은 세레나데를 전문적으로 연
주하는 <가자> 팀의 일원이 되어 당장의 빵 문제를 해결하는 한편 이 일을 통해서 빈 대중들
의 음악적 취향을 파악하는 성과도 거두게 된다.

그런 가운데 스펭글러에게 둘째 아기가 태어나자 더 이상 그가 머물 방이 없게 되어 또다시
거리로 나오게 됐는데 운 좋게도 안톤 부홀트라는 상인으로부터 조건 없이 150플로린을 빌려
생전 처음으로 형편없는 다락방이긴 했지만 자기 집을 빌릴 수가 있었다. 비가 새고 바람이
드는 낡은 방이긴 해도 그는 행복했고, 이때부터 본격적인 작곡 공부에 들어가는 한편, 같은
건물에 살고 있는 마르티네스의 큰딸 마리안느의 음악교사로 일했다.

마리안느는 당시에 니콜로 포르포라라는 이탈리아 음악가에게 성악 레슨을 받고 있었는데 하
이든은 피아노 반주자의 자격으로 그의 집에 출입하던 중 아무래도 그로부터 작곡수업을 받아
야겠다고 결심하고 포르포라의 몸종과 같은 일을 하면서 레슨을 받았다. 그러나 여전히 그의
경제적인 형편은 말이 아니어서 가자 팀의 일원으로 일을 계속하는 한편, 토운 백작가(家)의
음악교사, 퓌른베르크 남작의 바이올리니스트, 레오폴슈타트 시 교회의 수석 바이올리니스트
로 일하는 등 돈이 되는 일은 무엇이나 닥치는 대로 했다. 그러던 중 1759년(27세), 모르친
백작가의 악장 겸 작곡가로 임명되어 처음으로 안정된 생활을 하게 된다. 하이든이 모르친가
(家)에 있는 동안 크게 세 가지 사건을 일으켰는데, 어느 날 백작을 따라 사냥을 나갔다가 말
에서 떨어지는 변을 당해 이후 다시는 말을 타려고 하지 않았던 사건. 어느 날, 노래를 좋아
하는 백작 부인의 반주를 하기위해 쳄발로를 연주하고 있었는데, 부인이 하이든의 상체에 몸
을 기대고 악보를 보고 있던 중 어깨에 걸쳤던 숄이 바닥에 떨어졌다. 이런 일을 처음 겪은
하이든은 너무도 당황해서 반주하던 손가락이 금방 굳어져 버렸고 그래서 반주가 중단되자 백
작 부인 역시 하이든의 당황하는 모습에 놀라 어쩔줄 몰라 했던 사건도 있었다.

그러나, 위의 두 가지 보다 더욱 큰 사건은 그의 결혼사건이다. 상대는 마리아 안나 알로이지
아 아폴로니아 켈러였다. 하이든의 제자들 중에 가발공으로 일하는 켈러에게 두 딸이 있었는
데 둘째 딸 테레지아에게 깊은 연정을 품고 있던 터였다. 그러나 그런 눈치도 모르고 테레지
아는 어느 날 불쑥 수도원으로 들어가 버렸고 하이든의 실망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이런 낌
새를 알아차린 켈러는 자기의 큰딸 마리아 안나를 어떻게 해서든 하이든에게 시집보내야 겠다
고 생각하게 되는데 하이든도 이 제의를 승락한다.(일설에 의하면 켈러가 하이든을 협박했다
고 하지만 어떤 내용의 협박인지 알려져 있지 않다.)

안나 마리아는 당시 31살의 노처녀로 하이든보다 세살이나 연상이었고 예쁘지도, 쾌활하지도,
상냥하지도 않았을 뿐더러 음악에도 전혀 관심이 없었던 여성이었다. 둘은 1760년 11월 26일
에 결혼식을 올렸는데 이 날이야 말로 하이든의 결혼생활을 파멸의 길로 몰고 간 첫날이 되는
셈이다. 매사를 신중하고 용의주도하게 처리했던 하이든으로서는 씻을 수 없는 실수를 저지른
셈이다. 그는 이 결혼에 대단한 기대를 걸었다고 한다. 이 결혼이 축복과 영광과 아름다운 아
기들을 가져다 줄 것으로 믿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마리아 안나는 축복과 영광을 주기는커녕 아기조차도 낳지 못한 아내가
되고 말았고, 늘 싸움을 걸었고, 질투가 심했고, 낭비가 극에 달했으며, 소갈머리가 좁은 악처
중의 악처였다. 하이든은 만년에 그리징거에게 "내 아내는 어린애를 낳지 못했다. 내가 다른
여성의 매력에 대해 무관심할 수 없었던 것은 이런 이유가 있었다. 아내는 내가 음악가이든
신기료든 상관 않을 여자였다"고 술회했으니 그의 마음고생을 알 듯하다. 그녀는 남편의 악단
에 예쁜 여가수가 있다는 사실을 못견뎌 했고, 한때 남편이 예쁘장한 자기 동생을 사랑했었다
는 사실을 평생 분하게 생각하여 남편을 볶아댔다. 하이든은 아예 가정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그 반동으로 음악에만 집착하게 됐고 그것이 그를  위대한 음악가로 만들었으니 ---.

1761년 5월 1일, 유명한 예술애호 귀족인 에스테르하지 후작 악단의 부악장으로 취임했다. 하
이든은 이후 30년간 이 악단의 악장으로 일하면서 음악사상 불후의 공적인 교향곡의 완성, 소
나타 형식의 확립, 현악4중주의 완비 등 수많은 음악적 성과를 거두게 된다. 하이든이 에스테
르하지가와 체결한 계약서는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는데 그의 계약상의 신분은 <하인>으로 명
시되어 있어 그 시대 음악가의 사회적 신분을 시사한다. 그러나 그는 자기에게 주어진 임무를
충실하게 수행했고 단원들에겐 지극한 인애로 대해 <파파 하이든>이라는 애칭을 얻기도 했다.

아내와의 결혼생활은 참담할 만큼 무미건조했다. 이런 상황에서 그에게 놀랍고 신선한 기쁨을
주는 여성이 등장했다. 루이지아 풀첼리(Luigia Polzelli, 1760-1842)였다. 1779년(47세), 메
조 소프라노 루이지아가 에스테르하지가에서 일하게 됐다. 그녀는 유명한 음악가는 아니었다.
하이든보다 28세나 연하였지만 시원스런 검은 눈동자, 갸름한 얼굴, 올리브 색 살결, 우아하
고 아름다운 모습을 지닌 미녀였고, 그녀의 남편은 나이가 많은데다 폐병까지 앓고 있어 하이
든의 보호본능이 작용하게 됐고 그것이 사랑으로 진전되었다.

둘의 관계는 12년간이나 계속됐고 루이지아가 둘째 아들을 낳자 그 아기가 하이든의 아기라
는 얘기가 공공연히 성안에 떠돌았다(하이든은 이를 부인했다고 한다). 하이든은 새삼 삶의 보
람을 갖고 창작의욕도 더욱 불타올라 작품의 내용이 더욱 성숙되기에 이르렀고 마리아 안나의
존재쯤은 얼마든지 잊을 수도 있었다. 1780년(48세) 5월 23일에 하이든은 루이지아의 요청으
로 다음과 같은 서약서를 썼다. "만일 재혼을 할 경우엔 시뇨라 풀첼리 이외의 여성과는 결혼
하지 않겠으며 만일 여의치 못하다면 일생을 독신으로 지내겠다." 하이든은 진심으로 그녀를
사랑했다. 그러나 그녀는 남편이 죽은 뒤 가수 루이지 프란치(Luigi Franchi)와 재혼해서 슬
로바키아에서 살다가 82세로 사망했다.

1790년 9월 28일, 니콜라우스 에스테르하지 후작이 별세하자 악단이 해산되고 하이든도 비로
소 악장 자리에서 풀려나 자유로운 신분으로 활동하면서 잘로몬의 초청으로 두 번(1791년,
1794년) 영국에 건너가 명성과 부를 듬뿍 누렸고, 1800년 3월 20일엔 아내 마리아 안나가 세
상을 떠났다. 그들은 1797년부터 별거 중이었는데 그녀가 죽음으로써 마침내 아내에게서 풀려
날 수 있었다. 1801년 9월에 <천지창조>가 초연됐고, 1802년엔 지휘자로서는 최후의 연주회
가 된 <하르모니 미사>를 지휘했다. 1803년에 그의 마지막 작품인 현악4중주곡이 2악장까지
만 자곡됐다. 이때부터 그는 완전한 은퇴 생활로 들어갔다. 1809년 5월 12일, 나폴레옹이 빈
(Wien)을 점령했고, 같은 달 31일 새벽1시 하이든은 77세의 생애를 마쳤다.

◈ 하이든 두개골 도난의 전말
1809년(77세)에 하이든이 세상을 떠나자 유족들은 장례식을 간소하게 치루고 그의 유언대로 유
해를 교회가 아닌 가족묘(훈트시 토우르마 묘지)에 안장했다. 그런데 10년 후 이장을 위해 무덤
을 열어보니 그의 머리가 사라졌다. 유족들은 오스트리아 정부에 도난당한 두개골을 찾아달라는
요청을 보냈고 필사적으로 찾는 노력을 했다. 하지만 전혀 진전이 없었다.

에스터하지 가의 서기로 있던 로젠바움(Joseph Carl Rosenbaum)과 당시 형무소장이던 유대인
요한 네포무크 페터가 도굴해서 였다. 그런 엄청난 일을 저지른 것은 골상학(Phrenology)에 대
한 관심 때문이었다. 그들은 하이든의 머리를 해골로 만들어서 연구하기 시작했다. 페터는 “하이
든의 두개골에서 음악과 관련된 융기된 부분이 매우 발달되어 있었다”고 밝혔다. 페터는 연구를
마친 후 하이든의 두개골을 검은 상자에 넣어 잘 보관했다고 한다. 상자에는 작은 유리창을 달아
서 안을 들여다 볼 수 있게 했으며 뚜껑에는 금으로 리라를 조각해서 붙였다.

이장을 추진했던 에스터하지 2세는 즉각적으로 두 사람의 집을 수색하여 하이든의 두개골을 찾
도록 했다. 이에 잽싸게 페터가 하이든의 두개골을 로젠바움에게 전했다. 로젠바움은 하이든의
두개골을 침대의 매트리스 속에 감췄다. 사람들이 로젠바움의 집을 수색할 때 로젠바움의 부인
테레제는 두개골을 숨긴 매트리스를 일부러 깔고 앉아 있었다. 사람들이 테레제에게 일어나라고
하자 테레제는 지금 생리중이기 때문에 일어날 수 없다고 버텼다. 그러나 계속 추궁을 당하자 어
쩔 수 없이 에스터하지 공에게 하이든의 두개골을 전달했다. 그런데 가짜를 주었다.

그로부터 얼마 후 로젠바움은 죽음이 임박하자 유언으로 하이든의 두개골을 페터에게 전해 주라
고 말한다. 그리고 만일 페터도 죽게 되면 두개골을 빈 악우협회에 기증하라고 유언했다. 1895
년 페터는 죽음에 앞서 하이든의 두개골을 빈 악우협회에 기증했다. 그후 한동안 사람들은 빈 악
우협회에 가서 하이든의 두개골을 관람했다.

1932년, 파울 에스터하지는 아이젠슈타트에 있는 베르크키르헨 교회 지하에 대리석 영묘를 만들
고 그곳에 하이든의 유해를 안치할 계획을 세웠다. 1932년은 하이든의 탄생 2백 주년을 기념하
는 뜻 깊은 해였다. 하이든은 이 교회에서 미사곡 여러 편을 초연했기 때문에 의미 있는 장소였
다. 따라서 빈 악우협회에 있는 두개골을 가져와야 했다. 하지만 나치의 오스트리아 합병, 2차
세계대전 등 와중에 두개골 이전은 쉽게 진행되지 못했다. 1954년 6월 마침내 하이든의 머리는
아이젠슈타트로 돌아왔는데 무려 145년만의 일이었다. 엄청난 인파가 다시 돌아온 하이든의 머
리를 맞이했다. 대통령 및 정치인들이 하이든의 미사에 대거 참석해 대 음악가의 안식을 간절히
바라며 이제서야 머리를 찾은 것에 대해 하이든 후손들에게 정식으로 사죄했다.

<교향곡의 아버지>로 불려지는 하이든은 고전주의 시대의 최초의 완성자였으며, 인간적으로는
잘못 선택한 아내로 인해 생애의 2/3를 숱한 외로움 속에서 살았던 고뇌의 운용자였다.

하이든은 젊은 모차르트와 친교가 있었는데 첫 번째 영국 체류 중이던 1791년에 모차르트는
35세로 세상을 떠났다. 런던에서 독일로 돌아가던 1792년, 본에 들렀던 하이든은 거기서 처음
으로 젊은 베토벤을 만났으며 그 후 잠시 빈에서 그에게 음악을 가르쳤고 베토벤이 왕성한 작
곡 활동을 하게 될 무렵에는 은퇴하여 여생을 즐겼다.

하이든의 작품 수는 정확히 전해지지 않고 있다. 하이든과 그의 제자들이 만든 작품 목록이
있지만 불완전하고 믿기 어려운 부분들이 많다. 1919년에 호보켄(Anthony van Hoboken,
1887~1983)이 수집한 유명 작곡가들의 작품 5000개 중 1/5 이상이 하이든의 작품이다. 호보
켄은 이를 제1주제별로 목록을 정리했으나 후에 다른 음악학자들은 장르별로 목록을 작성했
다. 현악 4중주, 교향곡, 건반악기 소나타의 작품 번호는 호보켄의 목록 번호와 일치한다.
◈ 하이든의 주요 작품
▣ 교향곡
하이든의 교향곡들이 인기가 높아지자 다른 작곡가들이 작곡한 교향곡들을 하이든의 작품으로
가장하여 출판한 사례가 많았다. 이로 인해서 하이든이 정확하게 몇 곡의 교향곡을 썼는지 아
직도 명확하게 밝혀져 있지 않으나 대략 106곡 이상으로 추정되고 있다. 하이든의 교향곡은
대부분이 에스테르하지 궁정을 위해서 작곡되었으나 전체적인 작품 목록으로 볼 때 이들 교향
곡들은 세 가지 부류로 나눌 수 있다.
(a) 에스테르하지 궁정에 들어가기 전 모르친 궁정에 있었을 때 작곡된 5개의 교향곡
(b) 에스테르하지 궁정을 위해 작곡된 제6~81번 교향곡
(c) <파리 교향곡>, <런던 교향곡>을 포함하여 개인적으로 위촉받은 교향곡

초기 교향곡들은 일정하게 표준적인 악장 구조를 유지하지 못하였다. 4악장으로 구성된 곡도
몇 곡 있지만 대부분의 초기 교향곡은 전기고전주의 시대의 신포니아에서 유래한 빠름-느림-
빠름의 3악장 구조로 되어 있다.

1761년, 에스테르하지 궁정에 들어가서 작곡한 제6~8번 교향곡들도 고전형식의 4악장 구조이
다. 제6~8번에는 각각 <Le matin(아침)>, <Le midi(정오)>, <Le soir(저녁)>등의 제목이 붙어
있는데, 제목과 같은 표제적인 특성이 음악에서 발견되지는 않는다.

관현악 편성에서는 여전히 하프시코드를 사용하고 있다. 1770년경까지 하프시코드는 하이든
교향곡의 필수적인 악기로 나타난다. 초기 50여 개의 교향곡의 관현악 편성을 보면 일반적으
로 2개의 오보에, 2개의 호른, 현악기와 하프시코드가 있는 콘티누오로 구성된다. 제20번 이
후의 작품부터는 다른 악기들이 간헐적으로 삽입되는데 제20번에는 2개의 트럼펫이, 22번에
는 2개의 잉글리시호른(English horn)이 들어 있다. 제70번을 시작으로 하여 1779년 이후의
작품에는 플루트가 지속적으로 편성되어 있다.

1760년대의 교향곡에는 실험적인 요소들이 많다. 대표적인 예로 제31번(D장조)에는 당시 교
향곡에서 일반적으로 2개의 호른을 사용한 것에 비해 4개의 호른을 사용하고 있고, 첫 악장도
독주 호른으로 시작하기 때문에 'Horn signal'이라는 별명이 붙여졌다. 1760년대 말에 이르
면서 하이든은 보다 내면적인 감정을 표현하기 위하여 단조의 조성으로 된 교향곡을 작곡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단조 교향곡은 구양식을 탈피해서 새로운 질풍노도 양식으로 도입하려는
하이든의 의지가 보여지는 작품들이다. 1768~1773년까지 하이든은 전과 달리 많은 단조 교향
곡들 (제26, 39, 44, 49, 52번)을 썼다.

1771년부터 작곡된 교향곡 제42~48번, 50~52번, 54~56번, 65번은 초기 교향곡들보다 규모가
크다. 화성은 더욱 풍부해졌고 악상 변화가 빈번하며 느린 악장에서는 현악기에 약음기를 사
용할 만큼 감정의 표현을 극대화시키고 있다. 조성의 선택에서도 18세기로서는 예외적이라고
할 수 있는 F#단조(제45번), B장조(제46번), F단조(제49번)등을 사용하였다.

제45번 <고별>교향곡은 제1악장 F#단조, 제2악장 A장조, 제3악장 F#단조로 되어 있는데 이
러한 조성 변화도 흔치 않은 예이다. 마지막 끝부분의 Adagio에서 연주자들은 자신의 연주가
끝나면 악기를 정리하고 보면대 위의 촛불을 끄고 퇴장하고 단지 두 명의 연주자만 남아서 작
품을 끝맺기 때문에 <고별>교향곡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이처럼 악기편성을 축소해 나간 이유
는 휴가 중에 있는 에스테르하지 공작에게 연주단원들이 휴가를 받아 빨리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간청을 전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 작품은 악기 편성뿐만 아니라 제1악장의 발전부에
새로운 주제를 도입시키고 있다. 이것은 하이든의 교향곡 중에서도 유일하게 발견되는 창작기
법이기도 하지만 이 당시의 다른 고전음악에서도 흔하지 않은 일이었다.

이밖에도 1780년대의 교향곡에서 하이든은 때때로 마지막 악장에 론도 소나타(rondo
sonata)형식을 사용하였다. 1782년에 작곡한 제77번의 마지막 악장에 처음으로 론도 소나타
형식을 사용했는데 이는 기본적으로 7개의 부분으로 된 론도(ABACABA)와 유사하다. 처음의
ABA는 제시부, C는 발전부, 마지막 ABA는 재현부로 취급된다. 론도 소나타 형식은 하이든보
다 모차르트의 작품에서 먼저 나타났다.

1785년에서 이듬해까지 파리 연주회를 위해 작곡된 파리 교향곡(제82번~87번)과 1787~1788
년 사이에 작곡한 5개 교향곡(제88~92번)은 하이든의 성숙기를 대표하는 교향곡들로 고전 교
향곡의 모델로 간주되는 작품들이다. 82번과 85번 등 몇 곡은 작품 속의 악구(phase)에 나타
난 특징 때문에 별명을 갖고 있다. 82번은 춤곡같은 마지막 악장에 단조로운 저음반주가 나온
다고 해서 <Lours(곰)>이라는 별명이 붙었고, 85번은 여왕 마리 앙투아네트가 좋아했던 프랑
스 선율의 변주곡이 나온다고 해서 <La Reine(여왕)>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교향곡 제88번~92번은 대부분이 위촉작품으로 그 중 가장 유명한 작품은 옥스퍼드 대학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받을 때 헌정한 제92번 <옥스포드>교향곡이다. 이 기간에 작곡된 교향곡들에
는 첫 악장에 느린 도입부가 나타나고, 마지막 악장에는 소나타 형식이나 론도 소나타 형식을
사용하는데 특별히 대위법적인 기법들이 많이 나타난다. 제88번을 마지막 악장의 카논은 이러
한 예를 반영하여 준다.

교향곡 제93~98번, 99~104번은 두 차례의 런던 방문 때에 작곡된 곡들이다. 12개에 달하는
이들 교향곡은 런던의 청중들을 위해 작곡되었다고 해서 <런던 교향곡>이라 하기도 하고, 음
악 흥행을 주선한 잘로몬(Salomon)의 이름을 따서 <잘로몬 교향곡>이라고도 한다. 이 작품들
은 고전 교향곡의 정수이자 하이든 교향곡 최고의 작품들이다. 오늘날 하이든을 대표하는 교
향곡들은 대부분이 이12개의 교향곡을 가리킨다. 이 교향곡들은 전형적인 고전 소나타 형식으
로 작곡되었지만 대부분이 1악장에 프랑스 서곡에서 유래한 느린 도입부를 사용하였다. 도입
부의 조성은 교향곡 본래의 조성으로 시작되지는 않는다. 104번은 D장조이지만 도입부는 D단
조로 시작한다. 긴 도입부는 코다에서 다시 확대, 발전시키므로 작품의 균형감을 잃지 않게
한다.

하이든은 민속 선율에서 주제를 선택하기도 하였다. 103번의 1, 2악장과 104번의 마지막 악
장은 민속 선율에서 주제를 차용한 것이다. 제99, 100, 103, 104번의 제1주제는 선율적 내용
이 아니라 조성의 변화에 의해 딸림조로 제2주제에서 다시 나온다. 이와 같은 주제의 설정은
전형적인 고전 소나타 형식에 기초한 것이다.

런던 교향곡들 중에는 제2악장의 특징 때문에 별명이 붙여진 교향곡들이 있다. 101번은 2악
장에서 시계소리와 같은 규칙적인 리듬 때문에 <시계>라는 별명이 붙었고, 94번은 2악장에서
조용한 주제가 흐르다가 약박에서 갑자기 포르테(f)가 나오기 때문에 <놀람>이라는 별명이 붙
여졌다. '런던 교향곡'들의 악기 편성은 이전의 교향곡들보다 크고 다양하다. 2개의 트럼펫과
팀파니는 모든 런던 교향곡에 들어 있고, 100번 <군대>교향곡에서는 트라이앵글, 심벌즈, 큰
북이 제2, 제4악장에 삽입된다. 마지막 6개의 '런던 교향곡'에서는 102번만을 제외하고 2개의
클라리넷이 사용된다.

하이든의 교향곡에는 바로크, 전기고전주의, 고전주의에 이르는 다양한 음악적 요소가 전부
들어 있다. 하이든은 초기부터 실험적인 교향곡을 발표하다가 12개의 런던 교향곡에 이르러
고전주의의 완숙한 음악형식을 실현한 교향곡을 탄생시켰다. 악기 편성도 크고 다양해졌을 뿐
만 아니라 주제의 전개에서 호모포니와 대위법을 음악재료에 따라 효과적으로 사용하여 음악
은 색채감이 넘치고 장대하여졌다. 교향곡에 나타난 하이든의 창작기법과 실험정신은 교향곡
을 고전음악의 최고의 위치로 올려놓았고 모차르트, 베토벤을 비롯한 후기의 교향곡 작곡가들
에게도 큰 영향을 미쳤다.

▣ 오라토리오
하이든은 3개의 오라토리오를 작곡했다. <토비아의 귀환(Il ritorno di Tobia, 1775)>은 아리
아와 몇 개의 합창으로 구성된 이탈리아 양식의 오라토리오이다. 나머지 두 편의 오라토리오
는 런던 방문 후에 작곡했다. ‘천지창조(Die Schopfung)’는 밀턴(John Milton)의 <실락원
(Paradise Lost)>을 대본가 슈비텐(Swieten)이 각색한 것에 음악을 붙인 것이다. 헨델의 오라
토리오에서 깊은 영향을 받고 작곡한 이 작품은 독창(S.A.T.B), 4성부 합창, 하프시코드, 3개
의 트롬본, 팀파니가 포함된 오케스트라로 구성된다. 관현악 전주와 간주가 효과적으로 사용
되고, 조성과 악기 편성은 가사의 내용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폭풍과 파도치는 바다를
d단조로, 번개의 번쩍임은 플루트로, 큰 고래나 바다 생물들은 저음부 현악기로 묘사하였다.
천지창조의 조성은 C단조로 시작되지만 혼돈에서 질서로 가면서 C장조로 정착된다. C장조는
영광, 권세, 위엄, 천국, 그리고 인간을 묘사할 때 사용되었다. 작품의 끝 부분에서 아담과 이
브의 멸망을 묘사할 때에는 Bb 단조가 사용되었다.

천지창조는 하이든의 교회음악을 대표할 만큼 뛰어난 작품으로 양식과 형식에서 교향곡, 미
사, 오페라, 오라토리오의 요소를 모두 포함하고 있다. 이 작품은 오늘날에도 몇 편 안되는 걸
작 중의 하나로서 자주 연주되고 있다. <사계(Die Jahreszeiten)>는 시작과 끝 부분은 종교적
이지만 다른 부분은 자연과 인간을 묘사하는 세속적인 작품이다. 이 작품은 선율적이며 아리
아와 웅장한 합창으로 변화하는 계절의 전원을 묘사한 18세기 최고의 표제음악으로 평가되고
있다.

미사와 오라토리오 이외에도 하이든은 세속 칸타타와 무대 작품을 작곡하였으나 대부분이 분
실되었고 일부만 남아 있다.

▣ 건반악기
하이든의 건반악기 작품들로는 대략 50여 곡의 소나타와 몇 곡의 협주곡, 몇 곡의 주제와 변
주곡, ‘카프리치오 G장조’ ‘판타지아 C장조’ 등과 같은 성격적인 작품들이 있다. 50여 곡의 소
나타 가운데 1750~1767년 사이에 작곡된 초기 소나타들은 장조로 되어 있고, 디베르티멘토와
유사한 작품들이 많다.

현존하는 초기 피아노 소나타 가운데 4악장 구성으로 된 제6번과 8번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
두 3악장으로 되어 있다. 또한 1770~1780년 사이에 작곡된 4곡의 소나타인 제20번(C 단조),
제36번(E 단조), 제36번(C# 단조)등은 당시로서는 흔치 않게 단조로 작곡되었다. 이들 작품들
과 제25번(Eb 장조)의 미뉴에트 악장은 전기고전주의 양식, 특히 카를 필립 엠마누엘 바흐의
영향이 뚜렷이 나타난다. 후기에 작곡된 소나타에서는 하이든의 성숙된 고전양식이 발견된다.
소나타 제52번은 고전 소나타 형식으로 된 3악장 구성의 작품으로 하이든의 원숙한 현악 4중
주에 비견할 만하다.  

▣ 실내악
18세기 후반까지도 실내악이라는 음악 장르는 그 범위가 한정되지 않았다. 궁정에서 연주되었
던 작은 합주와 독주곡들은 물론 교향곡이나 기타 관현악 작품들도 실내악이라 하였고, 19세
기에 와서는 각 파트를 한 악기가 연주하는 합주음악을 실내악이라고 하였다. 하이든은 이 두
가지 형태의 음악을 모두 작곡하였다. 그의 실내악으로는 현을 위한 2중주(duo), 3중주(trio),
4중주(quartet), 5중주(quintet), 6중주(sextet), 바이올린과 건반악기를 위한 소나타, 피아노 3
중주, 현과 목관악기의 다양한 혼합으로 된 3, 4, 6, 8, 9중주 음악들이 있다. 이러한 하이든
의 실내악 목록은 실내악의 효시적인 작품들이라고 할 수 있다.

하이든의 초기 4중주(현악4중주)는 디베르티멘토를 편곡한 형태와 유사하다. 실제로 하이든은
이들 작품의 상당수를 디베르티멘토라고 이름 붙였다. 이밖에도 Op.1의 4중주(No.5, in Bb
장조)는 하이든의 첫 교향곡을 인용하였다. 이러한 4중주들은 2부분 형식이고, 빠름-미뉴에트
-느림-미뉴에트-빠름의 5악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하이든의 4중주에 삽입된 미뉴에트의 위치
는 교향곡과는 달리 일정하게 정해져 있지 않다.  1780년대 이전에 쓴 초기 4중주는 고전양
식의 현악 4중주로 한정지을 수 없는데 이는 '현악 4중주'라는 명칭이 1781년에 작곡한 ‘6개
의 4중주 (op.33)’에 처음으로 붙여졌기 때문이다.

1780년대의 현악 4중주들로는 op.33, op.42, op.50, op.54, op.55, op.60 등이 있다. 이 작
품들은 기법과 형식에서 1780년대의 후기 교향곡들과 같다. op.33의 4중주는 러시아의 폴 공
작을 위하여 작곡했기 때문에 ‘러시아 4중주’라고도 하고, 미뉴에트 악장 대신에 스케르초 악
장을 사용한 유일한 현악 4중주이기도 하지만 여러 면에서 하이든의 새롭고 독특한 기법이 나
타나 있는 작품이다. 이 작품 가운데 제2곡의 1악장에서는 호모포니를 바탕으로 하여 대위법
적인 기법을 사용하여 주제를 발전시킨다. Op.33 중에 가장 유명한 4중주인 제3곡은 가볍고
즐거움이 넘치는 작품으로 <새>라는 별명이 붙어 있다.

Op.42의 D 단조 4중주는 하이든의 초기와 중기의 4중주 기법을 보여주고, Op.50인 <프러시
안(Prussian) 4중주>는 뛰어난 첼로 주자였던 빌헬름 2세에게 헌정된 작품이고 1788~1790년
사이에 쓴 12개의 4중주는 부유한 상인이었던 토스트(Johann Tost)에게 헌정되었다. 토스트
는 이 작품들을 Op.54(3개의 4중주, 1788), Op.64(6개의 4중주,1790)로 나누어 출판하였다.

하이든의 말기 현악 4중주들로는 op.71, op.74, op.76, op.77, op.103이 있다. 이들 작품들
은 하이든의 최고의 작품들로 완성된 고전 형식의 현악 4중주 기법을 보여준다. op.71과
op.74는 하이든이 런던을 처음 방문했던 1793년에 작곡되었다. 특히 op.74는 확대된 화성구
조, 조성의 급격한 변화, 재현부 안에서 발전부와 재현부를 혼합하는 기법이 사용되어 낭만주
의의 기법을 느끼게 한다.

op.76에는 원숙한 하이든의 양식이 나타나 있다. 제1곡 1악장에는 제1주제를 대담한 푸가로
전개시킨다. 2개의 바이올린과 비올라, 첼로가 각각 옥타브로 진행되는 2성부 카논의 미뉴에
트(Hexen menuetto, 마법의 미뉴에트)를 사용하고 있고, 제2곡 1악장의 제1주제에는 하행하
는 5도가 사용되어 '4중주를 위한 5도'라는 이름이 붙었다. 제3곡 2악장은 황제찬가 <하느님,
프란츠 황제를 보우하소서(Gott! erhalte Franz den Kaiser)>의 선율을 완전하게 차용한 변
주곡이고, 제5곡은 낭만적인 라르고 악장이 유명하며 제6곡은 반음계와 빈번한 전조로 이루어
지는 판타지아 아다지오(Fantasia Adagio) 악장이 특징이다. op.76의 6개의 작품들은 모두
스케르초의 특징이 나타나는 미뉴에트 악장(제3악장)을 사용하고 있다.

op.77의 제1곡(G장조)과 제2곡(F장조)은 하이든의 현악 4중주 가운데 기법적으로 그 절정을
보여주는 작품들이다. 마지막 현악 4중주 작품은 op.103(1803)은 느린 악장과 미뉴에트 악장
만 작곡된 미완성 작품이다.

◈ 퍼 가는 것은 좋습니다. 그러나 반드시 출처를 밝히시기 바랍니다.



수연
 ::: 퍼갑니다.  

재현
 :::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1800년(48세) 5월 23일에 작성된 하이든의 유언장"은 연도 수정요망합니다.  

곽근수
 ::: 고맙습니다. 년도 표기는 수정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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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차르트(Mozart, Wolfgang Amadeus, 작곡가, 1756-1791) [1]

곽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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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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