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가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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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러(Gustav Mahler, 작곡가, 지휘자, 1860-1911)


** 유투브 감상 /
Who Is Gustav Mahler - Young People's Concert - Bernstein & NY Philharmonic
http://www.youtube.com/watch?feature=player_detailpage&v=CJeRlfibzcs

"내가 죽으면 당신은 아직도 젊은데다 그런 얼굴과 몸맵시를 갖고 있으니 반드
시 데리고 갈 사람이 많을 테지. 그렇다면 어떤 사람하고 결혼하게 될까?" "아
무도 없으니 그런 말씀 마세요." "하지만 누구하고 할 꺼야?"  그리고선 그는 자
기가 한사람 한사람 꼽아 본다. 그리고 마지막엔 언제나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
다. "아니야, 결국은 내가 살아있는 것이 제일 좋을 것 같아." 나는 눈물을 흘리
며 웃었다. 이 대화는 말러가 사신(死神)과의 처절한 싸움을 벌일 무렵 어렴풋
이 자기의 임종이 가까워졌음을 예감하고 어린 아내 알마를 두고 떠나는 안타
까운 마음을 토로하면서 나눈 내용이다.

말러는 경제력이 풍부한 유태인 상인인 아버지 베른하르트와 어머니 마리에
사이에서 12남매 중 둘째로 태어났다. 오늘날의 체코인 보헤미아의 카리스테
(Kaliste)가 그의 고향이다. 어렸을 때부터 음악적 재능이 풍부해서 2살 때 이
미 수백 곡의 민요를 외울 정도였다고 전해진다. 아버지는 그 자신 한때 음악
가가 되려는 꿈을 가졌던 인물이어서 아들이 재능이 있음을 발견하고 그를 통
해 자신의 못 다 이룬 꿈을 실현시키고자 음악교육에 퍽 열성적이었다.

15세 때 빈 고등음악원에 입학하여 피아노, 작곡, 지휘를 공부하고, 빈 대학에
도 나가서 역사, 철학, 음악사의 강의를 듣는 등 다방면에 걸친 학업에 정진했
다. 그 결과 졸업 때, 피아노 연주와 피아노 5중주곡의 작곡에서 우수상을 받
고 앞날의 축복을 받았다. 그 시절의 음악도들이 거의 그러하듯이 말러의 경우
도 바그너의 음악에 크게 경도되어 자신의 사명이 극음악의 작곡에 있다고 결
심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23살 때(이때 말러는 카셀 시립가극장의 지휘자
로 일하고 있었다), 바이로이트에 직접 가서 '파르지팔'을 듣고 크게 영향을 받
아 훗날 '부활'을 작곡하게 되는 원인(遠因)이 되기도 했다.

말러는 1877년, 대학에서 브루크너(Brucker, 1824-1896)의 강의를 듣고 크게
감명받고, 이것이 계기가 되어 사제 관계를 초월하여 변치 않는 우정을 맺기
도 했다. 음악학교를 졸업한 뒤 아버지로부터 독립한 말러는 늘 궁핍한 생활
로 고생이 말이 아니었다. 어떻게 해서든지 궁지를 벗어나기도 해야겠고, 새로
운 음악 생활의 길도 개척해야겠다고 결심한 그는 1880년에 할레 가극장의 여
름 시즌 지휘자 일을 맡게 됐다. 이로써 그는 향후 세상을 떠날 때까지 줄곧 직
업으로 지휘자의 길을 걷게 됐고 결과적으로는 음악사상 가장 위대한 지휘자
의 한 사람이라는 영광을 안게 되었다.

지휘자로서의 말러의 명성은 이미 라이프치히 시대에 결정적인 것이 되었고
그후 그에 대한 음악계와 애호가들의 평가는 더욱더 높아져 1891년 4월엔 독
일 굴지의 오페라 극장인 함부르크 시립 가극장의 지휘자로 취임하는 영예를
안게된다. 약관 31세 때의 일이다. 함부르크에서 활동하기 시작하고 나서 얼
마 뒤, 그는 안나 폰 밀덴부르크라는 여가수와 사랑에 빠진 일이 있었다. 그들
이 사랑에 빠진 초기, 말러는 천성적인 순진성으로 그녀에게 거의 포로가 되다
시피 빠져 있었다. 그러나 시일이 지나면서 M(말러의 아내 알마는 그녀가 직
접 쓴 남편의 전기에서 밀덴부르크를 M이라고 표기하고 있다)의 이기적인 사
랑과 독점욕에 기가 질려 어떻게 해서든지 도망칠 궁리를 하게 된다.

M은 말러가 연습에서 쌓인 피로를 잔뜩 짊어지고 집에 돌아왔을 때에도 몇 시
간이고 자기 노래의 반주를 시켰다. 물론 처음엔 말러에게 그것이 매우 즐거
운 봉사였다. 그녀의 노래는 아름다웠고 말러는 진심으로 사랑에 빠져 있었
다. 그러나 이러한 즐거움은 곧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끈질긴 그녀의 연습 강
요는 그에게 견딜 수 없는 고통이 되었고 어느덧 그녀를 향한 사랑의 고동도
멈추고 말았다. 그런데 M의 말러에 대한 사랑은 오히려 절정으로 치닫고 있었
다. 말러가 자기를 피하는 기색이 분명해지자, 오페라가 끝나는 시간을 기다렸
다가 말러에게 쫓아가 울고불고 애원하고 무릎을 꿇는 일을 예사로 행했다. 그
녀의 이런 행위에 말러는 수치와 모멸을 느꼈고 그나마 조금 남아있던 애정조
차 달아나 버리고 말았다.

말러가 함부르크를 떠나 빈 궁정 가극장으로 자리를 옮기자 그곳에 이미 M이
와 있었다. 그녀는 말러가 모르는 사이에 아는 사람을 통해 교섭하여 빈 극장
과 출연 계약을 맺고 있었던 것이다. 화가 난 말러가 M을 집으로 불렀다. "이
봐요, 안나. 우리 둘 사이는 이미 끝이 났소. 내가 함부르크를 떠난 이유 중에
제일 큰 이유가 바로 당신으로부터 떠나기 위한 것이었단 말이오! 이제부터 우
리 사이엔 당신이란 호칭도 절대로 쓰지 않기를 바라오. 그리고 내 집에 드나
드는 것도 일체 금해주길 바라오" 말러는 M에게 확실하게 헤어지자는 통고를
했다.

그해 겨울 M은 말러를 유인하는데 꼭 한번 성공한 일이 있었다. 몹시 중한 병
에 걸렸다는 전갈을 보내서 말러를 자기 집에 불러들이는 계략을 짠다. 한편으
로는 오토마르 신부(神父)에게 동석을 부탁하고 "잠시 후 내 애인이 집에 올텐
데 그도 동의했으니 이 자리에서 당장 결혼의 절차를 밟아 달라"고 했다. 신부
는 자세한 사정도 모르는 상태에서 그런 일은 할 수 없다고 거절한다. 결국, 말
러가 오긴 했지만 일이 마음먹은 대로 안 되자 애꿎은 신부에게 행패를 부리기
까지 했다.

후일, 말러가 알마와 결혼한 뒤에도 이따금 불쑥 찾아와 알마의 심사를 뒤집
어 놓는 행동을 하곤 했지만, 이미 남편으로부터 그녀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왔
던 터라 오히려 그녀를 잘 구슬려 결국 스스로 발을 끊게 만들기도 했다.

말러가 20세 연하인 알마와 만나 결혼하기 이전, 오페라 여가수들과의 스캔들
이 한 두 번은 아니었으나 M의 경우는 마치 망령처럼 그의 주변을 맴돌아 알
마조차 남편의 전기에서 여러 번 기술하고 있을 정도였다. 화가의 딸인 알마
신틀러는 뛰어난 미인이자 비범한 재능을 갖춘 음악도였고 자신의 능력에 대
한 자부심이 강한 여성이었다. 1901년 11월 어느 날, 알마는 쭈케르칸틀 부부
의 초청을 받고 그들의 파티에 참석했다. 물론 그 자리에 말러가 참석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녀는 평소 말러에 대해서 성격이 조급하고 오페라 여가
수와 스캔들이나 일으키는 인물이라는 나쁜 인상을 갖고 있었다. 게다가 그해
가을에 발표된 말러의 교향곡 제 1번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었
기 때문에 파티 참석이 영 내키질 않았다. 그러나 초청자가 집안과 가까운 사
이이고 그의 호의를 물리쳐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으로 어정쩡하게 참석하게 됐
다.

그들은 파티에서 처음으로 대면했다. 식탁에서는 서로 엇비슷하게 마주 보고
있는 상태였다. 왠지 말러의 시선이 자기를 샅샅이 살피고 있다는 느낌을 알마
는 받고 있었다. 이런저런 얘기가 오가던 중에 작곡가 째믈린스키가 화제의 대
상이 되었다. 그는 알마의 작곡 선생이었고 저명한 작곡가였다. 어느새 이 화
제가 두 사람을 자연스레 동석하게 했고 알마의 기억에서 말러에 대한 이전의
인상들이 지워지는 현상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말러는 알마를 빈 오페라 사무
실로 초청했다. 이 일로 둘 사이에 우정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알마가 말러를
사무실에서 만난 1901년 11월 10일, 그리고, 그 이튿날, 우편으로 한 편의 아름
다운 시가 알마에게 배달되어 왔다. 발신인의 이름이 겉봉에 없었다. 알마는
그것이 말러가 보낸 것임을 직감했다.

그들이 세 번째 시선을 주고받은 것은 2주일 뒤 '올페우스와 에우리디체'가 상
연되던 오페라 극장이었고, 연주가 끝난 뒤 말러는 알마의 집을 방문하고 싶다
고 청했다. 알마는 이때의 느낌을 "무엇인가 위대한, 그리고 아름다운 것이 우
리의 인생 속에 온 것처럼 느끼면서..."라고 회상록에 쓰고 있다.

한편, 알마가 극장의 감독실에서 말러와 만났다는 이야기를 들은 알마의 계부
카를 몰은 "뭐라고? 세상물정 모르는 처녀를 바람둥이 그 녀석이 방으로 데려
갔단 말이요?"라고 노골적인 비난을 퍼부으며 불쾌한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알마는 말러가 자기에게 관심을 보이는 것은 그녀가 세상물정 모르는 순진한
처녀였기 때문만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목요일에 말러가 알마의 집에 왔다. 둘은 산책에 나섰다. 오랫동안 둘은 침묵
으로 그저 걷기만 했다. 말러가 침묵을 깼다. "나 같은 남자와 결혼하는 것은
간단한 일이 아니오. 난 지금 자유롭고 앞으로도 자유로워야 하오. 한 장소에
머물고 속박 당하는 일을 싫어하오. 나의 오페라 일도 언제까지 계속될지 모르
는 것이고..." 그는 알마의 의견은 들을 생각도 없는 것처럼 보였다. 알마는 가
슴이 미어져 오는 것을 느끼면서 대답했다. "잘 알고 있어요. 저도 예술가의 집
에서 태어났고 예술가들 틈에서 자라났으니까요. 게다가 저도 예술가중의 하
나죠. 말단이긴 하지만, 당신이 말씀하시는 뜻은 이미 잘 알고 있는 일들이
죠." 산책에서 돌아오자 말러는 알마에게 키스했다. 그리고 서둘러 결혼하자
고 정식으로 청혼했다. 그의 말투는 모든 것이 이미 결정된 것처럼 알마에게
들렸다.

그들은 1902년 3월 9일에 결혼했다. 신랑은 42세, 신부는 22세였다. 그날은 비
가 심하게 왔다. 사람들에겐 결혼식을 밤중에 올린다고 알려놓고 오전에 입회
인 한 명과 친구 한 명, 주례 목사만이 참석한 가운데 치러졌다. 신혼여행은 러
시아의 페테르부르크로 결정했다. 말러의 지휘가 예정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때 비로소 알마는 처음으로 아주 가까이서 남편이 지휘하는 모습을 보게 됐
고 일종의 경외심을 갖게 되었다. 그녀는 당시의 결심을 이렇게 회상했다.

"나는 그때, <나의 임무는 이 사람의 인생행로에서 돌을 제거하고, 이 사람만
을 위해서 살아 나가는 것이다> 라고 마음먹었다." 알마와 말러는 정확하게 9
년 2개월 9일간을 부부로 함께 살았다. 그러나 말러가 심장병을 앓아 투병 생
활에 들어간 절망의 세월들을 제외한다면 두 사람의 완벽한 결혼 생활 기간은
불과 6년에 지나지 않았다. 그나마 신혼 초부터 불어닥친 경제적인 어려움, 두
딸의 계속된 죽음, 알마의 일방적인 희생과 봉사를 계산에 넣는다면 알마의 결
혼 기간은 그녀 자신을 위해서는 존재하지 않는 세월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
다.

물론 존경하는 작곡가 브루크너와의 교환(交歡), 요한 슈트라우스와의 유쾌한
교류, 그밖에 수많은 음악가, 미술가, 문학가들이 그녀에게 최상의 찬사를 바
쳤지만 아내로서의 알마는 자신의 존재 자체마저도 부인해야만 했던 한없는
희생의 세월을 보내야 했다.

알마는 스스로를 '남편의 그림자'로 자임했다. 그녀가 남편의 그림자가 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설명할 수 있는 이런 사실도 있다. "우리는 빈에서 살고있
는 기간 중에 다음과 같은 약속을 했다. 그가 없는 오전 중에 만일 무엇인가 기
분 나쁜 일이 일어났다고 하더라도 점심시간 동안은 즐거운 이야기를 해서 그
의 소화에 지장이 없어야 할 것. 그리고 그가 낮잠에서 깨어나 기분도 좋고 원
기가 회복되었을 때에 비로소 그 나쁜 소식을 이야기 할 것이다. --중략-- 또
다른 하나의 약속은 나는 지금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 즉, 오늘 그가 이야기
한 것은 내일엔 통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내가 '하지만, 구스타프. 당
신이 어제는 반대로 말하고 있었는데'라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즉, 앞뒤
가 모순 되어도 상관없다는 것은 그에게만 허락된 특권이었던 것이다. 그의 이
러한 성격은 때로는 나에게는 커다란 쇼크였다. 그가 언제 무엇을 어떻게 느끼
는가를, 나는 기어이 알지 못했다."

알마는 그의 회상기에서 이런 일도 가슴 아프게, 그러나 남편에 대한 지극한
연민을 갖고 쓰고 있다. 말러가 교향곡 제 10번(말러는 제 9번으로 번호를 메
기지 못했다. 정작 제 9번은 '大地의 노래'라는 표제로 대신했다. 9번에 대한
공포 때문이다. 베토벤, 슈베르트, 브루크너가 9번 교향곡을 쓰고 운명했기 때
문이다)을 쓰고있을 무렵의 일이다. "여름 휴가는 오로지 그의 일과 건강과 조
용함을 유지하는데 바쳐졌다. 그것은 바로 숨을 죽이고 사는 생활이었다. 때문
에 두 아이는 큰 소리로 울지도 웃지도 못했다. 우리는 그의 일의 노예와 같았
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으로 좋았던 것이다. 그 이외의 생활은 있을 수가 없기
때문에 결혼하고 나서부터의 최근 5년간, 나는 유스티네의(말러의 여동생) 믿
을 수 없는 방종의 선물인 부채를 계속해서 갚아 온 것이다. 그러나 말러는 지
극히 당연한 것처럼 태연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나의 존재는 바로 그의 그림
자에 불과했다. 빚을 갚고, 숨을 죽이고 사는 생활."

말러의 심장병은 1907년, 딸이 숨진 얼마후 알마가 심장발작을 일으켜 의사가
왔을 때 "나는 어떤지 한번 봐 주세요"라는 농담 끝에 우연히 발견되었다. 그때
부터 의사의 지시에 의해 극도로 조심스런 생활이 지속됐음에도 불구하고 세
균성 심장병은 날로 악화되어 1911년 5월 18일(그날 밤은 굉장한 폭풍우가 지
나가고 있었다)말러는 숨을 거두었다. 알마는 의사의 지시대로 옆방에서 남편
의 마지막 가쁜 호흡을 듣다 끝내 임종을 지키지 못했다. 그녀에게도 심각한
폐질환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알마는 그녀의 회상기 말미에 남편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그의 영원한 가
치가 있는 것을 추구하기 위한 투쟁, 속된 것으로부터의 초월, 진리에 대한 불
퇴진의 헌신 등은 모두가 聖者의 생애를 산 예였다."  아마도 남편을 성자로 표
현한 아내는 알마가 유일한 경우일는지도 모른다. 말러는 그녀에게서 영혼의
안주와 가정의 화락을 얻었다. 너무도 독선적이고 沒我의 습성을 가진 모순 투
성이의 남편을 알마는 거의 모성애와도 같은 보살핌으로 받들었다. 그녀로서
는 고통이었지만 그것은 차라리 행복한 고통이었다. 그녀는 남편의 천재를 꽃
피우기 위해 자기를 완전하게 소모했다. 그녀는 남편의 악보를 수정해 줄만큼
의 높은 재능의 소유자였고 감동적인 문장으로 남편의 전기를 썼을 만큼 뛰어
난 문필가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그녀는 남편을 위해 스스로 그림자가 되었고
자신을 완벽하게 소모시켰다.

*** 말러의 작품목록

1. 젊은 시절의 작품 (미완성 또는 손실됨)
바이올린 소나타
피아노4중주와 피아노5중주
슈바벤의 에른스트 공작 Herzog Ernst von Schwaben (오페라)
배의 승무원들 Die Argonauten
뤼베짤 Rübezahl (오페라)
북극의 교향곡 Nordische Symphonie

2. 피아노반주 가곡
1) 2개의 가곡 (1880)
봄에 Im Lenz (Gustav Mahler)
겨울노래 Winterlied (Gustav Mahler)

2) 14개의 젊은 시절의 가곡 (1880-1892)
1 봄의 아침 Frühlingsmorgen (Richard Leander)
2. 기억 Erinnerung (Richard Leander)
3. 한스와 그레테 Hans und Grete (민속노래)
4. <돈 환>에서의 세레나데 Serenade aus (Tirso de Molina)
5. <돈 환>에서의 환상곡 Phantasie aus (Tirso de Molina)
6. 개구쟁이 아이들을 길들이기 위하여 Um schlimme Kinder artig zu machen (어린이의 마술 뿔피리 Des Knaben Wunderhorn)
7.나는 즐겁게 걸었네 Ich ging mit Lust (어린이의 마술뿔피리)
8. 끝! 끝이네! Aus! Aus! (어린이의 마술뿔피리)
9. 강한 상상역 Starke Einbildungskraft (어린이의 마술뿔피리)
10. 스트라스부르크의 요새에서 Zu Straßburg aus der Schanz'(어린이의 마
술뿔피리)
11. 여름에 새는 바뀌고 Ablösung im Sommer (어린이의 마술뿔피리)
12. 헤어짐과 기피함 Scheiden und Meiden (어린이의 마술뿔피리)
13.다시는 못보리! Nicht wiedersehen (어린이의 마술뿔피리)
14. 자만심 Selbstgefühl (어린이의 마술뿔피리)

3. 오케스트라반주 가곡
1) 방황하는 젊은이의 노래 Lieder eines fahrenden Gesellen(1884)
1. 나의 애인이 결혼을 한다면 Wenn mein Schatz Hochzeit macht
2. 오늘 아침에 들판을 거닐었다 Ging heut' morgen übers Feld
3. 나는 불타오르는 칼을 가지고 있다 Ich hab' ein glühend Messer
4. 나의 애인의 2개의 파란 눈 Die zwei blauen Augen von meinem Schatz

2) ‘어린이의 마술 뿔피리’에 의한 12개의 가곡들 (1892-1895)
1. 파수병의 밤노래 Der Schildwache Nachtlied
2. 헛된 수고 Verlor'ne Müh'
3. 불행중의 위로 Trost im Unglück
4.누가 이 노래를 지었을까? Wer hat dies Liedlein erdacht
5. 현세의 삶 Das irdische Leben
6. 파두아 안토니우스의 물고기를 위한 설교
   Des Antonius von Padua Fischpredigt
7. 라인의 전설 Rheinlegendchen
8. 탑속에서의 도망자의 노래 Lied des Verfolgten Im Turm
9. 아름다운 트럼펫들이 울리는 곳에 Wo die schönen Trompeten blasen
10. 높은 이성의 찬미 Lob des hohen Verstandes
11. 세 천사가 노래를 불렀네 Es sungen drei Engel (제3번교향곡/5악장)
12. 태초의 빛 Urlicht (제2번 교향곡 / 4악장)

3) 죽은 아이를 그리는 노래(Kindertotenlieder)
  Friedrich Rückert(1901-1904)의 시를 텍스트로 삼음.
1. 이제 태양이 밝게 떠오르려 하네
   Nun will die Sonn' so hell aufgeh'n
2. 왜 그렇게 어두운 불꽃인지 이제야 알겠네
   Nun seh' ich wohl, warum so dunkle Flammen
3. 너의 엄마가 들어올 때 Wenn dein Mütterlein
4. 종종 아이들이 외출했을 뿐이라고 생각하네
   Oft denk' ich, sie sind nur usgegangen
5. 이러한 날씨속에 In diesem Wetter

4) 마지막 시절의 7개의 가곡들 (1899-1903)
1. 죽은 고수 Revelge (소년의 마술뿔피리)
2. 소년 고수 Der Tamboursg'sell (소년의 마술뿔피리)
3. 나의 노래를 엿보지 마오 Blicke mir nicht in die Lieder (Rückert)
4. 나는 은은한 향기를 마셨네 Ich atmet' einen linden Duft (Rückert)
5. 나는 세상에 버려졌네
   Ich bin der Welt abhanden gekommen(Rückert)
6. 한밤중에 Um Mitternacht (Rückert)
7. 아름답기에 사랑한다면 Liebst du um Schönheit (Rückert)

4. 합창과 오케스트라를 위한 작품
탄식의 노래 Das klagende Lied
성악 솔로(소프라노, 알토, 테노, 베이스), 합창, 오케스트라를 위한 작품. 텍
스트: 베히스타인(Ludwig Bechstein)과 그림 형제(Brüder Grimm)의 동화 <
노래하는 뼈(Der singende Knochen)>에서 선택. 전체 3부분 구성(제1작곡:
1880, 제2작곡: 1898)
1. 숲의 동화 Waldmärchen (1880년의 제1작곡에서만 있음)
2. 피리부는 사람 Der Spielmann
3. 결혼식곡 Hochzeitsstück

5. 교향곡
제1번 교향곡 D-장조 (1888 작곡, 1889 초연/Budapest)
제2번 교향곡 c-단조 (1894 작곡, 1895 초연/Berlin)
소프라노와 알토솔로, 혼성합창. 텍스트: <어린이의 마술 뿔피리>,
<클롭스톡(Friedrich, Gottlob Klopstock), 말러에 의함.
제3번 교향곡 d-단조 (1896 작곡, 1902 초연/Krefeld)
알토 솔로, 여성과 소년합창. 텍스트: 니체(Friedrich Nietzsche), <어린이의
마술뿔피리>
제4번 교향곡 G-장조 (1900 작곡, 1901 초연/München)
소프라노 솔로. 텍스트: <어린이의 마술 뿔피리>
제5번 교향곡 c#-단조 (1902 작곡, 1904 초연/Köln)
제6번 교향곡 a-단조 (1904 작곡, 1906 초연/Essen)
제7번 교향곡 e-단조 (1905 작곡, 1908 초연/Prag)
제8번 교향곡 Eb-장조 (1906 작곡, 1910 초연/München)
성악 솔로(3 소프라노, 2 엘토, 테노, 바리톤, 베이스), 소년합창, 2 혼성합창,
대편성 오케스트라
대지의 노래(Das Lied von der Erde) (1908 작곡, 1911 초연/München) 테너
와 알토(또는 바리톤)솔로, 오케스트를 위한 일종의 교향곡.
텍스트: 베트게(Hans Bethge)가 번역한 중국시 <중국의 피리 Die
chinesische Flöte>.
제9번 교향곡 D-장조 (1909 작곡, 1912 초연/Wien)
제10번 교향곡 (미완성)

** 유투브 감상 /
Who Is Gustav Mahler - Young People's Concert - Bernstein & NY Philharmonic
http://www.youtube.com/watch?feature=player_detailpage&v=CJeRlfibzcs

** 퍼 가는 것은 좋습니다. 그러나 반드시 출처를 밝히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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