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가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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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곽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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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프게니 므라빈스키(Yevgeni Mravinsky,1903∼1988)


** 유투브 감상 /
1957 (Live) Tchaikovsky, Symphony No. 4 in F minor, Op. 36
http://www.youtube.com/watch?v=58dYtD1AkD8&feature=player_detailpage


** 간략하게 정리한 그의 약력

* 출생 : 페테르부르크(St Petersburg), 1903년 6월4일
* 지휘자로서 첫 지위 : 레닌그라드 오페라극장 부지휘자(Leningrad
Opera Theater), 1931년
* 레닌그라드 필하모니 첫 지휘 : 1931년
* 세계 초연 작품들 : 쇼스타코비치(Shostakovich) 교향곡 제5, 6, 8, 9, 10. 12
번(1937년부터 1961년 사이)
* 첫 스튜디오 녹음 :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제5번, 1938년 3월27일~4월3일
* 레닌그라드 필 수석 지휘자 취임 : 1938년
* 수석 지휘자로서 레닌그라드 필 첫 지휘 : 1938년 10월18일
* 두 번째 스튜디오 녹음 :  쇼스타코비치(Shostakovich) 교향곡 제5번 1938~
1939      (발매 1998년)
* 첫 번째 실황녹음 : 하차투리안(Khachaturyan)의 피아노 협주곡(독주/Lev
Oborin,       Czech Philharmonic Orchestra), 1946년 6월1일 (발매 1993)
* 최후의 스튜디오 녹음 :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재12번, 1961년
* 최후의 실황녹음 :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제12번, 1984년 4월29일(또는 30일)
* 마지막 연주회 : Schubert's Symphony No. 8, Brahms's Symphony
No. 4, 1987년 3월6일
* 사망 : 레닌그라드, 1988년 1월19일, 오후 7시30분
* 가장 많이 녹음한 작품 : 차이코프스키의 교향곡 제5번, 11회
* 가장 자주 연주한 작품과 연주자 : 차이코프스키의 피아노 협주곡 제1번
(독주/ 스비아토슬라브 리히터Svyatoslav Richter), 67회

오로지 한 도시(레닌그라드), 한 오케스트라(레닌그라드 필), 한 콘서트홀(레
닌그라드 필 홀)에서 무려 반세기동안 지휘자로서 누구도 넘볼 수 없었던 그만
의 옹골찬 세계를 이룩한 고집스런 카리스마, 므라빈스키. 누가 무어라 해도
20세기에 활동한 가장 존경받는 거장이다. 거장이라는 표현 이외에 어떤 단어
로도 그를 표현할 방법이 없을 정도로 그는 진정한 거장이었다. 허지만 이제
는 어느덧 전설이 되어버린 이름이다.

모스크바 솔로이스트를 창단해서 1981년까지 지휘를 맡았던 레프 마르키츠가
므라빈스키를 회고한다. "므라빈스키는 무시무시한 폭군이었다. 모두가 그를
두려워했다. 오케스트라 단원들은 예정된 리허설보다 한 시간 일찍 나와 악기
를 조율했고, 30분 뒤에는 리허설 준비를 완전히 끝마쳤다. 그리고 므라빈스키
가 건물 입구에 나타나면 단원들은 '포즈두크(Fozduch)'라고 속삭였는데, 이
말은 대략 '적이 온다. 준비해!'와 같은 뉘앙스였다."

  마르키츠가 이야기를 계속한다. "므라빈스키의 리허설은 엿듣는 일이 철저
히 금지돼 있었지만, 나는 언젠가 기둥 뒤에 숨어 그의 리허설을 본 적이 있
다.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는 이미 수없이 브람스의 교향곡 제2번을 연습했
으면서도 아직 여덟 번이나 더 리허설을 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었다! 끊임없
는 연습으로, 그는 악보의 가장 작은 세목(細目)까지도 완벽하게 표현하려는
것이었다."

므라빈스키와 그가 이끄는 레닌그라드 필하모닉의 소리는 광야를 거침없이
질주하는 야생마의 힘과 에너지를 닮아있다. 권투경기에 견주자면 므라빈스키
는 탐색전을 펴지 않는다. 잽도 던지지 않는다. 처음부터 일도양단 하듯 곡의
핵심을 향해 돌진한다. 오케스트라 또한 잘 조련된 정예군처럼 신속하고도 효
율적으로 적을 향해 내닫는데, 그들의 연주는 일견 덜 다듬어진 듯하고 거친
맛을 주지만, 실제로는 치밀하게 정제되어 있어서 '한치의 오차 없는' 일사불
란한 합주력을 과시한다.

차이코프스키, 특히 그의 두 교향곡(제4번, 5번)에 관한 한 므라빈스키는 최고
의 귄위를 자랑한다. 실제로 많은 비평가들이 그의 연주를 차이코프스키 교향
곡 연주의 모델로 삼고 있기도 한다. 므라빈스키는 차이코프스키의 교향곡들
을 통해 '가장 슬라브적인' 해석을 보여준다. 강약의 뚜렷한 대비, 힘차면서도
정밀성을 잃지 않는 현의 앙상블, 생기 넘치는 금관의 약동. 므라빈스키의 차
이코프스키는 뜨겁게 용솟음치는 피의 힘, 슬라브 민족의 기백을 느끼게 한
다. 므라빈스키는 그만이 들려줄 수 있는 '가장 러시아적인' 차이코프스키를
형상화하는 데 성공하고 있다.

  므라빈스키는 페테르부르크에서 태어나 레닌그라드 대학을 중퇴하고 잠시
배우를 꿈꾸었다가 혁명 직후인 1924년에 레닌그라드 음악원에 입학하여 지휘
자의 길을 걸었다. 1932년에 국립 키로프 오페라극장의 부지휘자가 되면서 레
닌그라드에서 지휘를 시작한 그는 35세 때인 1938년에 제1회 소비에트 지휘자
콩쿠르에서 1위를 차지하면서 주목을 받았다. 그 결과 1940년부터 레닌그라드
필의 상임이 되어 47년간을 독보적인 음악을 창조해왔다.

그 공로로 그는 1946년에 레닌상을 받았으며 노동영웅과 소연방 인민예술가
라는 최고 칭호를 받기도 하였다. 소련의 국민적 자랑이자 최고의 예술가로 존
경을 받는 위대한 지휘자가 된 것이다. 이러한 그가 세계에 알려지기 시작한
때는 1960년의 유럽 연주여행 때 일이다. 동서 해빙무드의 문화적 차원에서 전
개된 그의 지휘는 유럽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이후 1978년에는 동유럽과 빈
에 연주여행을 하여 그의 명성을 널리 알렸고, 1970년대에는 세 번에 걸쳐 일
본을 방문하여 일본의 음악 팬들을 매료시켰다.

  러시아 출신 작곡가 이외에도 모차르트, 브루크너, 시벨리우스 등을 즐겨 연
주하였지만 역시 러시아 작곡가의 작품에서 그의 진가가 유감없이 발휘된다.
정치적, 예술적으로 막역한 관계를 맺어온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들은 대개
그의 손으로 초연되어 세계에 알려졌다.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제5번 '혁
명'을 비롯한 대표적인 교향곡들이 그러하다.

므라빈스키는 102종의 음반을 발표했다. 54종은 스튜디오 녹음이고, 48종은
실황음반이다. 1940년대와 1050년대에 스튜디오 레코딩을 집중적으로 하다가
1961년에 스튜디오 녹음을 완전히 중단했다. 아마도 녹음에 대한 신뢰를 그 자
신이 더 이상 가질 수 없었기 때문에 그런 결정을 내렸을 것이라고 추측할 뿐
정확한 이유는 알려져 있지 않다. 게다가 그의 음반들은 녹음이 완료되고 나
서 몇 년이나 지나서야 비로소 발매되곤 했는데 그 사유도 밝혀지지 않고 있
다.

** 퍼 가는 것은 좋습니다. 그러나 반드시 출처를 밝혀주시시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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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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