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가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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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곽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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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런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London Philharmonic Orchestra)


◈ 유투브 감상
Mahler: Symphony No. 8, Finale
http://www.youtube.com/watch?feature=player_detailpage&v=y5aRbgr0m9U

런던의 로열 페스티발 홀을 둥지로 삼고 있고, <그라인드본 페스티발,
lyndebourne Festival>의 좌장을 겸하고 있는 영국의 대표적인 메이저 교향악
단이다.  

런던 필하모닉은 1932년, 저명한 지휘자 토마스 비쳠(Thomas Beecham)경
에 의해서 설립되어 그 해 10월 7일에 퀸즈 홀(Queen's Hall)에서 첫 연주회
를 가졌다. 11월엔 당시 16살의 메뉴인(Yehudi Menuhin)이 비챰의 지휘로 바
흐와 모차르트의 협주곡, 엘가의 지휘로 엘가의 협주곡을 협연하기도 했다.
1930년대, 이 오케스트라는 코번트 가든 로열 오페라 하우스의 예술감독으로
있었던 비챰의 리드로 오페라 공연에 적극 참여했다. 비챰과 런던 필은 SP 시
대에 Columbia Records 레이블을 통해서 음반을 발표했고 그 가운데 브람스
의 교향곡 제2번은 평론가들의 극찬을 받은 명반으로 유명하고 LP와 CD로도
재발매 되었다.

1939년, 스폰서가 재정 후원을 끊는 사태가 발생하자 악단은 자체적인 운영체
제로 들어갔다. 게다가 2차대전의 와중이었던 1941년 5월, 퀸즈홀이 독일기의
공습으로 폭격을 당했고 이때 단원들의 악기가 망실되는 사고까지 겹치는 어
려움을 겪었다. 전쟁이 끝나자 비챰이 다시 오케스트라로 돌아와 18개월간 있
었지만 로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를 만들면서 악단을 떠났다. 악단은 객원지
휘 체제로 한동안 운영되었다. 어려운 시기를 극복하고 살아남기 위해서 악단
은 맹렬하게 움직였고, 그 결과 1949년에서 1950년까지 무려 248회의 연주회
를 소화시켰다. 같은 기간에 런던 필은 103회, 필하모니아와 로열 필은 32회의
연주회를 가졌을 뿐이었다.

1947년, 악단은 드디어 객원지휘체제를 끝내고 네덜란드 출신의 지휘자 에두
아르드 반 베이눔(Eduard van Beinum)을 수석지휘자로 맞았다. 베이눔은 1
년에 6개월만 런던에 체재한다는 조건이어서 나머지 기간엔 객원지휘자를 썼
다. 베이눔은 1950년에 병 때문에 사임했다. 그의 후임으로 토마스 러셀
(Thomas Russell)이 왔고, 이어서 아드리안 불트(Adrian Boult)가 취임했다.
러셀이 재임하던 1949년부터 1952년 사이에 악단은 또 한 번의 홍역을 치렀
다. 공산주의자인 러셀이 지휘자로 계속 남아있는 한 런던 필은 로열 페스티
발 홀에서 나가야 한다고 런던 시의회가 결의하는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결
국 악단은 러셀을 해고했다.

러셀의 후임으로 취임한 불트는 악단과 함께 1956년에 소련을 방문했고 1965
년엔 악단의 사장이 되었다. 불트와 악단은 EMI 레이블을 통해서 음반을 발표
했다. 그러나 1950년대의 악단의 재적형편은 거의 최악의 상태였다. 이런 가운
데 1958년에 윌리엄 스타인버그(William Steinberg)가 취임했다. 그는 진정한
오케스트라의 조련사였다. 그로 인해서 악단의 연주기량은 놀라울 만큼 향상
되는 계기를 맞았다.

1962년, 인도, 호주, 극동지방을 여행했다. 지휘는 말콤 써전트와 존 프리차드
가 맡았다. 프리차드(John Pritchard)는 그 해에 수석지휘자로 취임하면서 그
라인드본 페스티발의 예술감독을 겸했다. 그때까지는 페스티발의 메인 오케스
트라는 로열 필이었지만 1964년에 런던 필로 변경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프
리차드의 조처였다.

1967년, 베르나르트 하이팅크(Bernard Haitink)가 새로운 지휘자로 부임했고
이후 12년간 이 악단을 이끌었다. 이 시절에 악단은 재정적 안정을 위한 펀드
콘서트를 자주 가졌다. 미국의 유명한 엔터테이너 데니 케이(Danny Kaye)를
비롯해서 재즈 맨 듀크 엘링톤(Duke Ellington), 토니 베네트(Tony Bennett),
빅터 보르게(Victor Borge), 잭 베니(Jack Benny), 존 댄크워즈(John
Dankworth)등과 협연했고 그 성과는 좋았다.

1970년대에 악단은 미국, 중국, 서유럽, 소련 등을 투어 했다. 에리히 라인스돌
프, 카를로 마리아 줄리니, 게오르그 솔티 등이 이 투어에서 지휘를 맡았다. 솔
티는 1979년에 수석지휘자로 취임했다. 1982년, 악단은 50주년을 맞았다. 이
시기에 악단은 수많은 명지휘자들, 솔로이스트들과 함께 연주했다. 바야흐로
세계악단의 정상에 오른 악단으로서의 위용을 뽐낼 수 있었던 그런 시기였다.

2001년, 블라디미르 야로브스키(Vladimir Jurowski)가 처음 이 악단을 객원지
휘 했고, 2003년엔 수석객원지휘자로 계약했다. 2007년 6월엔 새롭게 단장한
로열 페스티발 홀의 재개관을 축하하는 콘서트를 지휘했고, 그래 11월, LPO
의 제11대 수석지휘자로 취임했다. 아울러 야닉 네제-세갱(Yannick Nézet-
Séguin)을 새로운 수석객원지휘자로 계약했다. 2008년 3월 현재, LPO의 예술
감독은 디모티 워커(Timothy Walker)이며 음반은 자체 레이블로 발표하고 있
다. 클래식 음악만을 고집하지 않고 영화음악, 게임 배경음악, TV 음악, 팝음
악 등 거의 모든 장르를 아우르는 철저한 상업 오케스트라의 모습을 보여주는
악단이기도 하다.

♣ 역대 수석지휘자(Principal conductors)
1932-1939 Sir Thomas Beecham
1947-1950 Eduard van Beinum
1950-1957 Sir Adrian Boult
1958-1960 William Steinberg
1962-1966 Sir John Pritchard
1967-1979 Bernard Haitink
1979-1983 Sir Georg Solti
1983-1990 Klaus Tennstedt
1990-1996 Franz Welser-Möst
2000-2007 Kurt Masur
2007-present Vladimir Jurowski

** 출처 / wikip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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