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가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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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곽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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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힐데가르트 폰 빙엔(Hildegard von Bingen, 1098-1179)


◈ 유투브 감상
Spiritus Sanctus
http://www.youtube.com/watch?feature=player_detailpage&v=LJEfyZSvg5c

◈ 사진출처 / google site

힐데가르트 폰 빙엔은 독일 마인츠 근처의 베르머스하임에서 스폰하임 백작
(counts of Sponheim)가에 시무하던 한 귀족가문의 열 번째 아이로 태어났다.
그는 부모가 십일조로 열 번째 아이를 바치겠다고 맹세함에 따라 8살 때 라인
에 있는 빙엔 근처의 작은 수도원으로 보내졌다.(또 다른 기록에 의하면 그가
몹시 병약하고 신비로운 예지능력을 지녔기 때문에 수도원으로 보내졌다고 한
다). 그곳은 베네딕트회의 계율을 따르는 성 디지보덴베르크(Disibodenberg)
수도원으로 유타(Juta of Sponheim, 스테판2세  백작의 딸)수녀원장의 보호감
독아래 있었다. 그곳에서 힐데가르트는 15살에 수녀가 되어 종교적인 훈련 외
에도 다양한 지적 교육을 받았다. 당시 베네딕트회 수도원은 예술과 과학의 중
심지였다. 따라서 힐데가르트는  신학, 자연, 의학, 우주, 세계와 인류 등에 관
한 지식을 터득하게 되었다. 이는 훗날 그가 수많은 편지와 책, 시, 음악 등을
쓰는 데 기본적인 바탕이 되었음은 두말할 나위 없다.

1136년, 유타 수녀원장이 죽자 힐데가르트는 만장일치로 그의 뒤를 이어 원장
이 되었다. 이어 5년 뒤 그는 일생을 바꿀 만한 결정적인 사건을 경험하게 된
다. 그의 나이 42년 7개월이 되던 때의 일이었다. 이때 죽을 고비를 넘길 만큼
중병을 앓은 그는 <환상, vision>을 경험한다. 어린 시절(3살 때) 이미 환상을
보고 미래를 예지하는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던 그는 이때 <신의 영혼의
불꽃>을 확실하게 감지했다. 그는 자신의 저서 <Scivias, 길의 조명>에 당시
의 경험을 이렇게 적고 있다.

"하늘로부터 매우 밝은 빛이 내 침상에 쏟아져 내렸는데, 그 빛은 마치 타들어
가지는 않으면서 빛나기만 하는 불꽃같았다. 그 불꽃은 태양처럼 내 심장과 가
슴을 따듯하게 해주었다. 갑자기 나는 시편과 복음서, 구약과 신약의 여러 편
들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이 <불꽃>은 힐데가르트에게 보고 들은 것을 기록하라는 계시를 내리는 것처
럼 여겨졌고, 결국 이 계시를 따르기로 마음먹었던 그는 1141년부터 1151년까
지 10여년에 걸쳐서 26개의 계시를 담은 신학서 'scivias'를 완성하게 되었다.
그는 이 책에 대해 개혁주의자였던 버나드 대수도원장에게 의논했다. 이 책을
직접 읽고 검토한 버나드는 힐데가르트에게 용기를 북돋아 주는 한편 1147년
~1148년에 열린 트리에 종교회의에서 힐데가르트의 영적인 계시들을 지지해
주었다. 그 결과 교황 유게니우스 3세와 추기경들은 힐데가르트의 책과 환상
을 승인하기에 이르렀다. 이로써 신비주의자이고, 작가이자 시인이며, 작곡가
인 그녀의 이력이 시작된 것이다.

1147년 힐데가르트는 수녀들과 함께 디지보덴베르크 수도원을 떠나기로 결심
했다. 그가 이러한 결심을 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18명이나 되는 수녀들이 생
활하기에는 수도원의 공간이 너무 좁았기 때문이었다. 힐데가르트는 떠나기에
앞서 또 다시 <환상>을 보게된다. 그의 자서전은 이에 대해 이렇게 적고 있다.
"성스러운 영혼은 힐데가르트에게 어떤 장소를 보여주었는데, 그 곳은 라인강
근처에 있는, 성 루페르트 고해 신부의 이름을 딴 언덕이었다"

그러나 루페르츠베르크로 가는 길은 험난했다. 디지보덴베르크 수사들이 예지
력있는 힐데가르트와 그의 수녀들을 잃어버리는 것을 못마땅해 했기 때문이
다. 힐데가르트는 큰 병을 비롯한 온갖 어려움을 극복하고 1150년 루페르츠베
르크에 새로운 수녀원을 세웠다. 그런 다음 이듬해 힐데가르트와 그의 수녀들
은 새로운 수녀원으로 옮겨갔다. 여기에서 그는 신학서 'Scivias'를 완성했으며
, 이어 2권의 자연과학과 의학 백과사전을 쓰기도 했다.  당시 그는 식물학자
나 병을 치료해주는 사람으로 유명했는데, 그의 시에 식물과 동물, 보석들이
상징적인 의미로 자주 등장하는 것은 다름아닌 그 스스로가 그 방면에 박식한
지식의 소유자였기 떄문일 것이다. 그가 보여주는 기적같은 일과 예지력은 사
람들의 입에 오르내렸으며, 사람들은 그를 <라인의 예언자>로 부르기도 했다.
교황과 황제들, 수도자들, 대주교들도 그와 오랫동안 서신을 왕래하며 크고 작
은 일들을 상의했다고 전해진다. 사실, 여성들이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없었던
중세의 억압적인 상황에서도 그가 음악을 작곡하고 그의 음악이 불려진 것은
아마도 이러한 그의 높은 명성과 권위 덕분이라고 추측된다.

힐데가르트가 생전에 세운 수녀원은 루페르츠베르크 수녀원 외에 또 하나 있
다. 루데스하인에서 멀지 않은 아이빙엔에 수녀원을 세웠는데, 원래 이 수녀원
은 한 귀족부인에 의해서 세워졌으며, 바르바로사 황제가 일으킨 전쟁으로 폐
허가 되었다가 1165년에 힐데가르트에 의해 재건된 것이다. 루페르츠베르크
수녀원이 점점 커짐에 따라 30여명의 수녀들을 이 아이빙엔 수녀원으로 이동
시켰으며, 힐데가르트는 이곳에 가기 위해 1주일에 두 차례씩 라인강을 건너
야만 했다.

빙엔에게 붙어있는 명칭은 너무나도 많다. <축복받은 힐데가르트(Blessed
Hildegard)>, <성 힐데가르트(Saint Hildegard)>,<라인강의 예언자> 등 이다.
그녀는 수녀이자 예술가, 작가, 카운셀러, 언어학자, 자연학자, 과학자, 철학
자, 의사, 약초학자, 시인, 운동가, 예언자, 작곡가였다. 빙엔은 살아있을 때
교회가 공식적으로 성인에 추대하는 과정을 지켜본 최초의 인물이기도 하다.
그러나 시복 단계에서 그친 가운데 오늘에 이르고 있고, 그녀의 축일은 9월17
일이다.

** 출처 / 불로그 <헤니히>, Wikip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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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빙엔의 음악세계 (이하의 글은 <시골의사>라는 필명으로 유명한 박경철씨
의 글입니다)

사랑이  모든 것에 넘쳐흐른다  
저 깊은 바닥에서 샘솟아  
별들의 세계위로 덮어 흐르며  
사랑은 모두에게 기꺼이 함께 한다.  
우리 왕, 가장 높으신 주에게  
평화의 입맞춤을 하였기에.
                     - 빙엔의 힐데가르트

종교적 기준이 곧 삶의 준거가 되고, 종교가 곧 세계이던 11세기말 중세 암흑
기에 독일 라인헤센 알제이 부근의 "빙엔"에 한 사람의 특별한 능력을 가진 수
녀가 있었다. 그녀는 "여자는 공동체에서 침묵해야 한다"고 말했던 사도 바오
로의 유훈이 여전히 살아있는 중세의 교회 공동체에서  수녀원장, 시인, 신비
주의자, 작곡가,미술가,신학자.에언자,의사,설교가,정치가, 치유가, 자연주의
자로서 독립적인 삶을 살았으며, 그뿐 아니라 교황 그레고리 4세와 이노센트 4
세, 그리고 글레멘스 22세로 부터는 성인으로 인정되는 시성절차까지 추천되
는 특별한 사람이었다.

그녀가 활동한 시기는 중세 암흑기의 갈등이 클라이막스를 맞이하기 시작하
던 11세기 말이었다, 11세기는 교회내부의 갈등을 해소하고 세속의 신심을 고
양하기 위한 십자군 원정이 시작되고, 내부에서 허물어지기 시작한 교회의 부
조리는 서서히 세속으로 번져나갔으며, 급기야는 교회마져 교황과, 황제. 로
마 교회와 그리스 교회로 급속히 분열하기 시작했던 분열의 시기이다. 때문에
보지않고 믿으라는 가르침에 회의하는 무리들은 점점 늘어났고, 교회 내부에
서는 이에대한 반작용으로 치열한 성령쇄신 운동이 벌어졌다, 이에따라 일부
수도원을 중심으로 엄격하고 치열한 수행을 강조하는 원리주의가 생겨났고,
이들은 교회가 세속의 권력에 지배받지 않고 교회도 세속을 지배하지 않는다
는 원칙에 따라, 극단적인 금욕, 명상, 계율에 따른 엄격한 삶을 살면서 교회내
부에서 영적 주도권을 장악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대개의 극단적 원리주의가 그러하듯 성령쇄신의 원리주의 역시 최종적
으로는 기독교적 정통성에 반기를 들기 시작하면서 서서히 신비주의화 하기
시작했다. 힐데가르트는 바로 이즈음, 1098년에  지금의 독일 라인헤센 알제
이 근처, 베머스하임이라는 한 작은 마을의 귀족가문에서 10형제 중 막내로 태
어났다. 이때 서구 세계는 십자군 전쟁의 성과로 중근동과의 교류가 빈번해지
면서  이슬람 문화와 수학, 그리이스 철학, 특히 아리스토텔레스의 수 많은 저
작들과 사상이 전해졌고, 이로인해 폐쇄적이고 고답적이던 유럽사회는 과학기
술과 수학, 의학등에서 일대 르네상스를 경험하게 된다,

그러나 이런 역사적 격변기에 일어난 학문의 중흥과 과학기술의 진보도 중세
사람들의 고달픈 삶을 덜어 주지는 못했다. 농노와 소작인들은 장원과 영주의
수탈과 기아에 허덕이고, 귀족의 유모가 되기 위해 갓 출산한 자신의 아이를
굶겨 죽이는 일이 다반사로 벌어졌다. 그들에게 신앙은 더이상 구원이 아니었
다,  

힐데가르트는 여덟 살에 수녀원으로 보내졌지만, 그녀는 그전에 이미 무엇을
듣고 보았으며, 때문에 자신이 나아갈 순명의 길에 차분하게 순응 할 수 있었
다. "세 살 때였다. 나는 하나의 큰 빛을 보았다. 그 빛은 너무도 거대하여 나
의 영혼은 온통 전율하였다. 그러나 그때 나는 너무 어려서 그것에 관해 표현
할 수가 없었다 ... 열다섯 살 때까지 나는 아주 많은 것을 보았다. 그중의 몇몇
에 대해서는 천진스럽게 주위 사람들에게 이야기했는데 이것을 듣는 사람들
이 너무 놀라워하는 바람에 ... 나 또한 두렵고 놀라게 되어 할 수 있는 한 그
일에 관해서는 침묵을 지켜 왔다."  

힐데가르트의 고백에 따르면 신은 그녀가 세상의 빛을 보기 이전부터 그녀의
영혼 안에 신비적 계시를 볼 수 있는 능력을 심어 주었고, 그녀는 이 능력을 통
해 세 살의 어린 나이로 아주 커다란 빛 하나를 보았고, 그 후에도 많은 것들
을 보아 왔다. 그러나 두려움으로 그녀의 스승이신 유타 수녀와 폴마르 수도자
에게만 그 일에 관해 말했을 뿐, 다른 사람들에게는 침묵을 지켜 왔다. 그녀는
이후 사십년간 그 비밀을 안은 채 신앙생활에 주력하지만,  1141년, 그녀 나이
마흔 세살 되던 해에 그녀의 인생을 뒤흔드는 사건이 일어난다, 하느님께서 그
녀에게 "네가 보고들은 것을 쓰라!" 하고 명령하신 것이다.

그러나 고요한 은둔 생활에 한껏 젖어 있던 그녀에게는 사람들 앞에 나서서
아무도 믿지 않을 이야기를 공표 한다는 것이 두렵고 떨리기만 했다. 그래서
그녀는 주저하면서 그 명령에 귀를 막고자 애를 썼지만. 결국 그 후 10년간에
걸쳐 수도자 폴마르의 도움을 받아 지금까지 보아 왔던 모든 것을 인간의 언어
로 표현하는데 심혈을 기울인다. 그러나 인간의 언어로 표현 할 수 없는 신비
하고 성스러운 "모습"들을 말과 문자로 오롯이 표현하는 작업은 힘들고 고통스
러웠다. 그래서 그녀는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10년의 세월을 거쳐, 완성된 것이 바로 " 쉬비아스 - 길의 조명" 이라는
책이다. 이 책은 35개의 그림을 통해 신의 창조와 인간의 구원에 대한 역사를
보여주고 있다,  이 책은 3부로 구성되어 제1부인 천사의 창조와 타락, 그리고
인간의 창조와 타락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데, 이것은 인간-우주-신이라는 "관
계" 자체를 하나의 유기적인 연결고리로 이야기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제2부
는 그리스도의 구원에 대해 3 부는 구원의 비밀과 최후의 심판에 대한 계시를
그렸다,

이후 수도자로서의 힐데가르트에 있어서 세상을 창조하고 또 그 창조의 뜻을
완성하도록 이어가고 구원하는 원리와, 근원은 "사랑"이었다. 그녀에게서 사랑
의 근본은 삼위일체의 신비로 규정되었다 .그녀는 아버지이신 원음향(原音響)
안에, 아들이신 말씀의 음(音) 안에, 그리고 불타는 이성이신 하느님의 숨결 안
에서. 사랑은 모든 것에 넘쳐 흐른다고 말했다.      

사랑은 "아버지의 심장을 호흡하는 가장 내적인 힘"이며 하느님의 아들이 인간
이 되어 오시는 구원의 열매로서 우리에게 나타난다. 사랑의 물줄기는 모든 존
재에 넘쳐 흐른다. 모든 살아있는 존재에, 모든 자연에 사랑의 불, 불과 같은
정신이 부어진다. "저 깊은 심연으로부터 가장 밝은 별에까지"  사랑이 서로 조
화롭게 일치되도록 끓어오르게 한다. 아울러 그녀는 성 아오스딩의 영혼과 -
육체의 이원적 지위보다는 영육간의 조화를 강조하였다.

인간이 되신 분이 자신의 육체를 그렇게 사랑하였듯이 인간의 영혼 또한 자신
의 육체를 그렇게 사랑하며 그린다. 창조의 세계 모든 것에 하느님의 숨결이
닿아 있어 하느님의 모습을 비추어 주듯이 육체는 영혼을 비추어 준다. "그러
므로 창조는 지혜(곧 하느님)의 겉옷이고 ...  육체는 ...  영혼의 겉옷이다." 영
혼과 육신이 하나라는 힐데가르트의 강조는 실제로 자신이 이전에 겪은 심리
적 신체질환에서 새겨져서 더 나아가 근대적인 그리스도교의 틀 안에서 육체
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도록 하는 연결점으로서 기여했다.  

아울러 그녀에게 세계는 음향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존재하는 모든 것이 자
기 고유의 음을 지니고 있고 삶은 무엇보다도 그 음이 끊임없이 진동하며 울리
는 것으로 이해되었다. 그녀에 따르면 누구나 각자 자신의 내부에서 울리는 소
리에 귀기울여 자신의 특별한 음, 자기 고유의 '기본음'을 알아내야 하는 것이
다. 그리고 귀 기울여 자기 고유한 음의 형태를 알게 되면 이들이 각자 일정 자
리에 배치되어 울리는 전체 협주, 더 큰 전체의 질서에 자리잡을 수 있다. 어
떤 음이나 고립해서 홀로 머물지 않고 다른 음들과 조화롭게 함께 울리는 화음
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힐데가르트는 우주를 형성하는 근본요소들의 "기본음악"을 깊이 생각
했다. 아니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귀기울여 들었다. 세계가 소리를 지닌 창조,
음을 울리는 창조라는 것을 자주 언급했다. 힐데가르트의 시각적인 계시의 선
물이 이렇게 분명하게 청각적인 능력으로 보충되었다. 힐데가르트에 따르면
창조된 것들은 모두 각자 웅장한 창조의 교향곡을 울리게 하는데 기여하는 자
기 고유의 음을 지니고 있다. 이로써 구원은 눈으로 볼 수 있을 뿐 아니라 귀
로 들을 수도 있게 된다. 이런 요소들만이 자신의 특정한 소리를 갖는 것이 아
니라 인간도 자기 고유의 음향을 지닌다.  

"인간의 영혼은 내부에 듣기 좋은 음향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이 소리는 스스
로 울린다."  하느님의 소리가 전하기를 "나는 모든 창조물에 찬미하며 울리는
하모니(조화)로 생명의 숨을 불어넣어 주었다." 힐데가르트의 이해에 따르면
이렇게 세상은 조화를 이루는, 하모니를 이루는 전체이다. 어떤 소리도 홀로
자신만을 위해 머물지 않는다. 다른 소리와의 합일을 깊이 바라고 메아리, 반
향이 있기를 바란다. 서로 대화하는 이런 기본구조와 법칙은 태초에 하느님이
이 세상에 부여한 것이다.  

"나는 천둥소리와 같은 소리를 지녔다. 이 소리로 온 세상이 모든 창조물의 살
아있는 소리로, 살아있는 음으로 움직이게 하였다." 게다가 인간에겐 특히 음
악적인 과제가 주어져 있다. "인간의 심장은 교향곡 처럼 정해져 있다, 교향곡
처럼 울리는 인간 정신의 소리는 그가 살아 있는 동안에 달고 아름답다" 그러
나 그것을 혼자서만 누려서는 안된다  "다른 모든 창조된 존재들과 함께 웅장
한 울림이 되도록 불어가게 해야 한다."  

사람이 노래하고 음악을 연주하는 것은 그러므로 개인적인 행위가 아니라 "천
상 화음의 반향"이다. 인간 영혼은 하나 하나를 천상 하모니 전체 안에서, 전체
에 연관해서 세운 창조 계획 안에 자리잡고 있으므로 "이 음악의 일부를 스스
로 지니고 있다." 그러므로 이를 울려 노래해야 한다. 원래의 근원을 기억해서
영혼을 울려 이 전체 안에서 자신을 쇄신하도록 함으로써, "자기 집의 닫힌 문
앞에서 헛되이 문을 두드리고 있던 영혼 안에서 정신이 작용할 수 있도록 그
의 뒤엉킨 상태를 정리해준다. 이제 음악이 강제로 힘을 가하지 않고도 아주
조용하게 영혼의 문을 연다." 이렇듯 힐데가르트의 음악은 그 자체가 신앙이
고 구원이었다.

때문에 그녀는 음악을 아름다운 멜로디로서 "쾌"를 얻는 수단으로 여기지 않았
으며, 오로지 인간의 영혼, 신앙의 신비에서 저절로 울려 나오는 소리를, 성서
를 읽고 ( 시편) , 기도를 하고 ( 성무일도) 교송을 부르는 도구로서, 혹은 신앙
의 신비를 표현하는 언어로서 사용했던 것이다.

그녀의 이러한 영성음악들은 후에 그녀가 집필한  모두 세 편의 저서. 즉
<Scivias』(길의 조명>와 <Liber Vitae meritorum, 책임감 있는 인간>, 그리
고 <Liber Divinorum, 하느님의 창조 작업>와 함께 900년을 걸쳐 전해 내려오
고 있다. 특히 힐데가르트는 자기 자신을 "indoca", 즉 못 배운 여인으로 말했
다. 그 뜻은 그녀는 하느님의 계시를 선포하기 위해 하느님께서 몸소 계시를
부어 넣으신 하나의 깨어지기 쉬운 빈 그릇과 같은 존재라는 의미이다. 즉 그
녀 스스로 자신은 신앙을 해석하거나, 교리를 말하는 자가 아니라, 오로지 신
의 도구로 사용된 빈 그릇 일 뿐이라는 뜻인데, 이것은 당시 중세의 여성관에
비추어 볼 때 그녀가 남긴 무수한 저작들을 교회 내에서 보호하기 위한 나름
의 고육책으로 생각되지만, 힐데가르트는 그런 제약 속에서도 42세 때부터 생
을 마친 82세까지 실로 푸르른 삶의 화신이라 할 만큼 창조적이고 열정적으로
살았다.

오늘날 중세음악 전문가들을 중심으로 힐데가르트가 작곡한 곡들이 다시 발굴
되고 연주되어 CD가 만들어지고, 힐데가르트 음악을 전문적으로 연주하는 앙
상블들과 오페라단이 설립되는데는 1981년 베네딕도 수녀들의 소개로 미국과
유럽에 그녀의 음악이 전해지면서 부터이다. 특히 <Sequentia> 앙상블의 연
주가 Classic-Charts 9위에 오를 정도로 관심을 불러일으키면서 <Ordo
Virtutum, 성덕의 열(列)>이란 뮤지칼이 순회 공연되기도 했는데, 우리나라에
는 1990년대에 그녀의 시가 조금 소개되었고, <비전>과 <Ecstasy>, 두 종류
의 음반이 출반되긴 하였으나 큰 관심을 끌지는 못하였다.

** 빙엔의 음반(아마존 캐털로그)
http://www.amazon.com/s/ref=nb_ss_m/104-9558028-2007161?url=search-alias%3Dpopular&field-keywords=Hildegard+von+Bingen&x=8&y=25

** 퍼 가는 것은 좋습니다. 그러나 반드시 출처를 밝히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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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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