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가이야기

0
 1881   95   6
  View Articles

Name  
   곽근수 
Homepage  
   http://sound.or.kr
File #2  
   OIP.jpg (42.8 KB)   Download : 0
Subject  
   디터스도르프(Dittersdorf, Karl Ditters von, 작곡가, 1739~1799)


◈ 음악듣기
Double Bass Concerto No.2 in E-flat major, Kr.172
더블베이스  송성훈, 피아노 - 김효준
http://youtu.be/l9BY2wY8law

Dittersdorf - Double bass Concerto
Indi Stivin(solo double bass), Ladislav Glaser(conductor)
Symphony orchestra ESO, ZUS Klapkova
http://youtu.be/2GKz5SYReCU

Sinfonia Concertante for viola & contrabass
Lyda Chen Argerich(viola), Eerico Fagone(contrabbasso)
Orchestra di Psdova e del Veneto, Andrea Dindo(지휘)
http://youtu.be/-zlgQGiMnvA

본명은 카를 디터스(Karl Ditters). 오스트리아 빈에서 태어났다. 6세부터 바이올린을 배웠고, 예
수회가 운영하는 학교에서 프랑스어와 신학, 바이올린을 배웠다. 11세의 나이로 요제프 폰 힐트
부르크하우젠(Joseph von Hildburghausen, 1702-1787)공작의 시동 겸 음악가로 채용되었고,
음악·사회학·어학 등을 배웠다. 이 무렵 트라니(Francesco Trani)에게 바이올린을 사사했는데,
트라니는 제자가 작곡에 재능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이탈리아 출신의 작곡가 주세페 본노
(Giuseppe Bonno)에게 보내 작곡법을 공부하게 했다.    

22살 때인 1761년, 공작은 관현악단을 해체하는 것이 불가피해지자 단원들에게 황실예배당에서
3년간 활동할 수 있게 배려했다. 이 무렵 오페라 <올페오와 에우리디체>의 작곡가로 유명해진 글
루크(Christoph Gluck)와 친교를 맺기 시작했고 그와 함께 이탈리아 볼로냐로 가서 바이올린
연주 실력을 인정받았고, 1765년(26살)엔 하이든의 후계자로 지벤뷔르겐(Siebenbürgen, 루마니
아 영토)에서 아담 파타치크 폰 그로스바이덴(Adam Patachick von Grossweiden) 추기경의
오케스트라 지휘자가 되었다. 거기서 첫 오페라 <음악을 위하여>(Amore in musica)를 작곡했
고, 첫 오라토리오 <이사코>(Isacco)도 썼다. 그러나 추기경의 오케스트라는 해산되었다. 당시 통
치자 마리아 테레지아는 성직자들이 오케스트라를 갖는 것을 금지했다. 다만, 후작의 직위를 갖
는 대주교의 경우에는 예외로 했다. 그리하여 디터스는 브레슬라우 대주교인 필립 고타르트 폰
샤프고츄(Philipp Gotthard von Schaffgotsch)의 오케스트라 지휘자로 자리를 옮겼다.

디터스도르프는 1770년(31살)부터 1794년(56세)까지 24년간 야보르니크(Javorník, 지금은 체코
땅이다)에 있는 요하네스부르크 성에서 브레슬라우 대주교인 샤프고츄 추기경 오케스트라 악장을
지냈다. 샤프코츄는 요하네스부르크 성을 문화의 요람으로 만들겠다는 원대한 계획을 갖고 유능
한 문화예술 인재들을 고용했는데 디터스도르프도 그 계획의 일환으로 영입된 케이스였고 또한
가장 성공한 경우였다. 이 성에서 거주한 20여 년간 교향곡, 현악사중주곡, 다양한 포맷의 실내
악곡, 오페라 부파 등 그의 중요한 작품들의 대부분이 작곡되었다. 이런 작품들이 세상에 알려지
면서 31살 땐 로마교황으로부터 황금박차훈장을 받았다. 백작은 그를 계속해서 자기 사람으로
붙들어 놓기 위해서 1773년에 디터스도르프를 산림감독관과 행정장관 등으로 임명하더니 더 나
아가서 아예 귀족으로 만들면서 이름도 디터스도르프로 바꿔주었다.

1779년경(40세), 7살 연상의 요제프 하이든을 만나 절친이 되었고, 1783년(44세)부터 본격적으
로 빈에서 활동하기 시작해서 약 6년간 하이든, 모차르트, 반할과 더불어 빈을 대표하는 작곡가
로 명성을 얻었다. 특히 그의 현악4중주곡은 빈고전파의 전통을 표현한 작품으로 찬사를 받았다.
이 네 사람은 자주 현악사중주를 연주했는데, 디터스도르프가 제1 바이올린, 하이든이 제2 바이
올린, 모차르트가 비올라, 반할이 첼로를 연주했다.

1790년엔 남부 오스트리아 욀스(Oels, 오늘날 폴란드 올레시니차 Olesnica)에서 뷔르템베르크-
욀스(Carl Christian Erdmann von Württemberg-Oels, 1716-1792)대공 오케스트라의 지휘
자를 겸했다. 여름엔 칼스루에(Carlsruhe)에 있는 대공의 여름궁전에서 생활했다.

1794년, 샤프고츄 백작과 심각하게 다툰 끝에 디터스도르프는 성에서 추방되었다. 다음 해, 이그
나츠 폰 스틸프리트(Ignaz von Stillfried, 1734-1805) 남작의 초대로 체르베나 호타(Červená
Lhota, 체코 남부지방)의 작은 성에 살면서 자신의 작품들을 수정하고 정리하는 작업을 했다. 그
리고 1799년 10월 24일 그곳에서 생을 마쳤다. 죽기 전에 아들에게 자기 삶에 대한 회고담을
구술했는데, 이 자서전은 18세기 유럽음악을 연구하는 사람들에게는 매우 중요한 자료로 여겨진
다.
  
빈 고전악파의 초기 작곡가 중 한 사람이었으며, 그의 교향곡은 흥미진진하고, 바이올린 협주곡
은 연구할 만한 대상이다. 하프·플루트·하프시코드·더블베이스 등의 악기를 위한 협주곡은 많이
연주되고 음반도 많다. 오페라 작곡가로서 경쾌하면서도 때때로 감상적인 징슈필을 주로 썼다.
또한 독주 악기로써 비중이 약했던 더블베이스의 레파토리를 한층 넓힌 인물이고 그가 쓴 2곡의
더블베이스 협주곡은 지금도 많은 사랑을 받는 명곡으로 대접받고 있다.

그의 작품은 쾌활하고 대중친화적인 선율이 특징이며, 오페라 교향곡 협주곡 실내악곡 등 여러
분야에 작품이 많은데, 대표작으로는 빈 스타일의 징슈필 <의사와 약제사>(1786), <오비드의 메
타모르포제에 의한 12곡의 표제적 교향곡>(1785), 비올라와 콘트라베이스를 위한 교향악적 협주
곡, 오페라 <구두쇠 히에로니무스>(1789)등이 있다. <의사와 약제사>는 특히 독일 징슈필의 고전
적인 전범 중 하나가 되었다. 註 : 메타모르포제(Metamorphose)는 <변용 變容>이란 뜻.

그의 음악은 유럽에서 큰 인기를 모았고, 그가 작곡한 교향곡·서곡·미사곡·오라토리오·오페라·칸
타타·협주곡 등이 빈번하게 공연되었다. 1789년(50세)에는 빌헬름 2세의 빈객으로 베를린을 방
문하여 <의사와 약제사> 공연을 직접 지휘했다.

◈ 작품들
교향곡 130, 징슈필 34, 실내악 현악3중주곡 6, 현악4중주곡 6, 현악5중주곡 12, 피아노곡
136, 비올라와 첼로를 위한 듀오, 두 개의 바이올린과 첼로를 위한 디베르티멘토가 있다. 콘트라
베이스협주곡 2, 비올라협주곡 1, 바이올린협주곡 1, 오보에협주곡 5, 하프협주곡 1, 쳄발로협주
곡 1곡. 비올라와 더블베이스를 위한 협주교향곡

그가 활동하던 시대엔 하이든이나 모차르트 못지않은 뛰어난 작곡가였지만 그의 오페라가 대부분
징슈필 스타일이기 때문에 세계화되는데 장애가 되었고(징슈필은 선율이 붙지 않은 독일어 대사
가 대단히 많다), 그래서 그의 이름을 아는 사람이나 알 정도가 되었지만 당시에는 유명한 작곡
가였고 아울러 바이올린의 거장이었다.


uwgprwuifu
 ::: aDrYqKFWkauuiwDWv  

Name
Memo
Password
 
     
Prev
   요한 밥티스트 반할(Johann Baptist Vanhal, 작곡가, 1739–1813)

곽근수
Next
   푸메자 마치키자(Pumeza Matshikiza, 소프라노, 1978- )

곽근수


Copyright 1999-2022 Zeroboard / skin by Zety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