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가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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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곽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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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놀드 돌메치(Arnold Dolmetsch, 고악기 연주가, 고악기제작가, 1858-1940)


◈ 유투브
돌메치의 하프시코드 연주를 수록한 SP로 바흐의 ‘전주곡과 푸가 제1번 다장조’ 감상
http://www.youtube.com/watch?feature=player_detailpage&v=vm-9hVYQBuE#t=43
  
21세기 연주계의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 잡은 고음악연주의 물꼬를 튼 초창기 인물로 유명한
돌메치는 프랑스 르망(Le Mans)에서 태어났다. 그의 가계는 보헤미아로 알려져 있고, 피아노
제작을 가업으로 삼았다. 이런 연유로 어려서부터 악기를 만드는 일에 익숙했고, 후일 그가
고악기를 전문적으로 제작해서 고음악연주라는 새로운 길을 여는 원동력이 되었다.  

브뤼셀 음악원에서 뷔에탕에게 바이올린을 배웠고, 15살 때 런던으로 가서 왕립 음악대학에서
헨리 홀머스(Henry Holmes)와 프레드릭 브릿지(Frederick Bridge)를 사사했다.

런던 음악대학 졸업 후 잠시 덜위치 대학에서 가르치기도 했지만, 브리티시 뮤지엄에서 본 역
사적 악기 컬렉션을 보고 난 후 시대악기에 대한 흥미를 가지게 되면서 이들 시대악기를 복원
하는 일에 투신하기로 결심하고 1893년(40세)에 첫 작품으로 류트를 제작하는데 성공했다. 아
울러 건반악기의 복원작업에도 착수하게 된다. 때마침 영국의 저명한 시인이자 소설가인 윌리
엄 모리스(William Morris)의 격려를 받으면서 하프시코드를 만드는데도 성공했다. 1905년엔
보스턴으로 가서 클라비코드와 하프시코드를 만들었고, 1911년엔 파리에서 역시 건반악기를
만들었다.

잉글랜드의 헤슬메어(Haslemere)에 악기제작 워크샵을 만들고 15세기에서 18세기에 사용되
었던 비올, 류트, 리코더, 건반악기 등 거의 모든 종류의 시대악기들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
결과 돌메치가 1915년에 저술한 ‘17세기와 18세기 음악해설’은 후일 고음악연주의 태동과 발
전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1925년, 헤슬메어 홀에 ‘국제 돌메치 고음악 페스티벌’을 조직하고 매년 7월에 이 축제를 이
끌면서 고음악연주의 물꼬를 트게 되었다. 이 당시 돌메치는 윌리엄 모리스, 에즈라 파운드,
조지 무어, 가브리엘레 다눈치오, 로저 프라이, 셀윈 이미지, 에블린 이네스 등 런던 문화계의
거장들과 교류했고, 그들 가운데 이네스는 자기 작품에 돌메치의 생애와 작품세계를 반영하기
도 했다.  

특히 존 젠킨스(John Jenkins), 윌리엄 로스(William Lawes) 등 영국 작곡가들이 쓴 비올을
위한 작품 발굴에 적극적이었고, 리코더의 리바이블과 이 악기를 학교에서 가르치게 만드는데
도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러한 공적을 평가한 영국 정부는 1937년에 British Civil list
pension을 그에게 주었고, 프랑스는 레종 도뇌르 훈장을 수여했다.

돌메치가 별세한 이후에도 그의 후손들이 고악기 제작과 고음악 연주 일선에서 활동하고 있
다. 그의 아내 마벨(Mabel)은 비올 연주가였고, 아들 루돌프는 건반악기 연주자로 활동하다 2
차대전 때 사망했고, 딸 나탈리는 비올라 다 감바의 뛰어난 연주자로 활동하고 있다. 막내아
들 칼 프리드릭은 뛰어난 리코더 연주자이자 악기제작자로 활동하고 있다. 막내 딸 세실도 비
올 연주자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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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존 젠킨스(John Jenkins, 작곡가, 1592-1678)

곽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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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리스티네 오폴라이스(Kristīne Opolais, 소프라노, 1979- )

곽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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