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가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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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곽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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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도 치콜리니(Aldo Ciccolini, 피아니스트, 1925-2015)


◈ 유투브 영상
Gymnopedie n.1 (Satie)
http://youtu.be/0peXnOnDgQ8

1925년 이탈리아의 나폴리에서 태어났다. 양친이 음악을 좋아해서 4세 때부터 피아
노를 익혀 대단히 빠른 발전을 보였다. 1934년 불과 9세의 나이로 나폴리 음악원 입
학이 허락되었다. 당시 나폴리 음악원 규정은 13세 미만은 입학이 불가능했지만 원
장인 작곡가 프란체스코 칠레아에게 인정을 받아 치콜리니는 신동으로써 특별대접
을 받은 것이다.

나폴리 음악원에서 피아노와 작곡을 전공했는데, 피아노는 파올로 단자(Paolo
Danza)를 사사했다. 1940년 피아노과를 수석으로 졸업하였고, 1941년 나폴리 가극
장에서 쇼팽의 피아노 협주곡을 협연하면서 데뷔했다. 1943년엔 작곡과를 수석으
로 졸업했고, 1947년 모교인 나폴리 음악원의 피아노과 교수로 취임했다.

1949년 파리에서 열린 롱-티보 국제 콩쿠르에 출전함으로써 그의 운명은 큰 전기
를 맞게된다. 그는 이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이로써 그의 이름이 알려지게 되
었고, 이듬해엔 미트로풀로스의 지휘로 카네기 홀에 데뷔하여 큰 성공을 거두었다.
콩쿠르 우승을 계기로 파리로 거주지를 옮겼고, 이후 2015년 2월 1일에 세상을 떠
날 때까지 파리에서 살았다. 콩쿠르 이후  샤를르 뮌시가 지휘하는 보스톤 교향악단
과의 협연에서도 절찬받으면서 국제적인 명성을 얻게 되었고 그로부터 그의 활발
한 연주생활이 세계 각지에서 펼쳐지게 되었다.

1970년대에는 프랑스 아카데미 음반상, 샤를 크로 아카데미상 등을 수상했으며,
2012년 프랑스 최고 권위의 훈장인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았다.

치콜리니의 연주는 경쾌하고도 빛이 나는 음색으로 거침없이 표현해 가는 데에 특
징이 있다. 따라서 디스코그라피에서도 그러한 특성에 맞는 것이 선택된다. 그가 남
긴 레코드로는 세르주 보도 지휘와 파리 관현악단 연주에 의한 생상스의 피아노 협
주곡 전곡 음반, 역시 생상의 피아노 협주곡으로 앙드레 클뤼탕스기 지휘한 제2번
과 제4번, 조르주 프레트르가 지휘한 생상스의 모음곡 ‘동물의 사육제’가 있다.

그밖에 에릭 사티의 ‘피아노 독주곡 전집’, ‘로시니 피아노곡집’ 등이 그의 연주 스타
일에 잘 맞는 뛰어난 연주다. 후기 낭만파의 녹음에도 출중한 음반을 남겼으나, 역
시 그의 이름은 언제나 에릭 사티와 함께 붙어 다닌다. 그의 연주는 에릭 사티의 미
묘한 세계를 잘 살려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3개의 짐노페디’나 ‘6개의 그노시엔느’,
‘바싹 마른 태아(Embryons Desseches)’ 등 사티의 음반이 유명하다. 치콜리니는 드
뷔시, 라벨 등 프랑스 작곡가의 스페셜리스트로도 유명하다.

치콜리니가 남긴 음반은 백여종이 넘는 방대한 분량인데, 모차르트와 베토벤의 소
나타 전곡 앨범, 드뷔시와 에릭 사티의 피아노 독주곡 전곡 앨범이 가장 큰 그의 음
악적 수확물로 평가되고 있다. 2002년에 야나체크의 피아노 작품 앨범으로 디아파
종 음반상을 받았고, 베토벤의 소나타 전곡 음반은 2006년에 제발매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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