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가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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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곽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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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푸르트벵글러(Wilhelm Furtwängler, 지휘자, 1886-1954)


◈ 유투브 감상 /
WILHELM FURTWÄNGLER THE MOLDAU (Smetana)
http://www.youtube.com/watch?feature=player_detailpage&v=5-F42vkGuAc
  
1886년 1월25일, 베를린 출생.

푸르트벵글러는 남부 독일의 농민으로서 프라이부르크 교외 푸르트벵글러村
출신이다. 祖父는 김나지움(중, 고교 과정 7-8年制)의 교장을 지냈고, 아버지
는 베를린 대학의 고고학 강사를 지냈으며, 1894년 이후엔 뮌헨대학 교수로
일했다. 때문에 빌헬름이 베를린에서 태어나긴 했으나 실제로는 뮌헨에서 교
육받았다. 빌헬름의 엄격한 성격은 아버지의 영향이라고 전해진다. 어머니 가
계는 북부 독일 지식 계급 출신으로 음악가를 많이 배출시켰고 어머니는 그림
에 특별한 조예가 있었다. 초등 교육만 학교에서 지냈고 중학과정 부터는 집에
서 가정교사로부터 교육받았다(당시 상류가정에서 보편화됨).

피아노는 어렸을 때부터 배웠으나 어머니의 영향으로 화가가 될 것을 꿈꿨다.
그러던 중 점차 음악에 흥미를 갖게 되어 작곡가가 되기로 결심한다. 7세 때
피아노용으로 '동물의 소품'을 작곡했고 9살 때는 '흐르는 눈물'이라는 감상적
인 작품을 쓰기도 했다. 11세 때엔 오라토리오를 작곡하는 한편 스포츠에도 만
능이어서 스키, 스케이트, 테니스를 즐겼고 피크닉 때는 어린이를 모아놓고 지
휘자 역할을 하여 지도자로서의 소질을 보였다. 문학에도 정진하여 고전과 시
를 탐독했고 12살 때 가정교사와 함께 이탈리아로 여행했을 때는 미켈란젤로
의 조각을 보고 충격을 받기도 했는가 하면 이 때의 느낌을 즉석에서 작곡하기
도 했다. 한편, 오페라 등 음악회에도 적극적으로 참가하여 듣는 귀를 훈련했
고 베토벤, 바흐, 하이든, 모차르트, 슈베르트, 브람스를 존경하고, 반면에 멘
델스존과 슈만의 음악은 감상적이고 달콤하다고 하며 경원했다. 이탈리아 여
행 이후 작품의 수효가 늘어나는 한편 스케일이 커지기도 했다.

빌헬름은 작곡을 거의 독학으로 공부했으며 그의 D장조의 교향곡이 브레슬라
우 가극장의 지휘자로 있던 어머니의 숙부 게오르그 토른에 의해 연주됐으나
좋은 평을 얻지는 못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1905년, 토른은 빌헬름의 생계를
돕는 한편 실제로 음악을 접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그에게 합창 지휘자 자리
를 준다. 이로써 지휘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고, 1906년 2월, 처음으로 청중 앞
에 나서서 부르크너의 교향곡 9번과 자신의 G단조 교향곡의 제1악장을 지휘
하며 성공을 거둔다. 이것이 동기가 되어 취리히 시립극장의 악장으로 초빙 받
았고, 1908년엔 스트라스브르 시립극장의 제4 지휘자가 됐다. 이때부터 여러
곳에서 많은 지휘를 하고 1917년, 베를린 필하모니를 지휘했다. 이후 그의 경
력은 다음과 같다.

1915-20 만하임 가극장 지휘자.
1919-24 빈 톤킨스트라 관현악단 지휘자
1920-22 베를린 국립가극장의 교향곡 연주회 지휘자
1921 빈 Philharmonia Orchestra 지휘자.
1922년-28년, 대지휘자 니키쉬의 후임으로 라이프찌히 게반트하우스 오케
스  트라의 지휘자, 베를린 필하모니 오케스트라의 지휘자
1927년, 하이델베르크 대학에서 명예 철학박사
1928년, 베를린市 음악 총감독
1931년, 바이로이트 음악제 지휘자
1933년, 베를린 국립 가극장 지휘자

1935년 4월2일, 나치스와 대립하여 독일에서의 公的 연주활동 중지함. 이에 대
하여 나치스는 그에게 해외 출국을 금지시키는 한편 추밀원 고문이라는 칭호
를 억지로 주면서 히틀러에게 충성을 서약토록 하고 이를 대대적으로 선전한
다. 빌헬름은 그 대가로 해외여행 허가를 얻어 1936년에 스위스에 갔다. 이때
토스카니니의 추천으로 뉴욕 필하모니의 지휘자로 가게 됐으나 나치스의 방해
로 실현되지 못했고, 미국인은 그를 나치 당원으로 오해하게 되었다.

이 동안 영국과 프랑스에서 지휘하고 1937년엔 잘츠부르크에서도 지휘하였
다. 그러던 가운데 1937년, 오스트리아가 독일에 병합돼 빈 필하모니의 지휘자
가 되었다. 나치는 역시 이 사실도 선전자료로 사용했으나 빌헬름은 개의치 않
았다.

독일이 패망하자 스위스에 있던 빌헬름은 나치스의 협력자로서 지목되어 연주
활동을 할 수 없었다. 결국 재판에 회부되어 비로소 명예를 회복할 수 있었다.
1947년, 독일의 재판에서도 나치스에의 동조가 인정되지 않아 그해 5월 그는
베를린의 지휘대에 다시 올라섰고 연주회장을 메운 청중들은 그에게 열광적
인 환호를 보냈다. 그날의 연주곡목은 베토벤의 에그몬트 서곡, 전원 교향곡,
운명 교향곡이었고, 감동에 겨운 청중들은 연주가 끝난 뒤에도 홀을 떠날 줄
몰랐다고 한다. 이후 루체른, 라이프찌히, 잘츠부르크, 파리, 런던의 지휘대에
도 섰다. 그는 베를린 필과 빈 필의 지휘자를 겸했고 창설 당시의 런던 필의 지
휘자로도 활동했다. 과로로 인한 폐렴으로 1954년 11월 30일, 바덴바덴에서
향년 68세를 일기로 별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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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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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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