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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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곽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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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네기 홀(Carnegie Hall)



◈ 사진
위 : 외관, 아래 : 메인 홀(아이작 스턴 홀)

◈ 유투브
My Favorite Broadway : The Leading Ladies 1998년 9월 28일, Carnegie Hall
http://youtu.be/VlBM1ZUBGBg

지구상에 카네기홀만큼 권위와 명성으로 빛나는 클래식 콘서트 홀이 있을까? 뉴욕 센트럴파크
에서 두 블록 떨어진 카네기홀은 1891년 철강 왕 앤드류 카네기(Andrew Carnegie)의 열정
으로 문을 열었다.

카네기홀은 안팎이 완벽한 콘서트홀이다. 테라코타와 적갈색 사암(砂巖)을 사용한 고전적인 건
축미가 일품일 뿐만 아니라 음향시설도 흠잡을 데 없다. 링컨센터의 에버리피셔 홀이 음향 문
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것을 상기할 때, 카네기홀의 자부심은 당연한 것이다. 그렇다고 카
네기홀이 클래식음악 전용 홀은 아니다. 이곳은 클래식은 물론 팝, 재즈, 포크 그리고 월드뮤
직까지 동서고금의 모든 장르를 수용하고 있으며, 앤드류 카네기가 꿈꾸었던 ‘한 지붕 아래
세 개의 콘서트홀’에서 크고 작은 연주회가 열린다. 메인 홀인 아이작 스턴 오디토리움, 중간
사이즈의 잰켈 홀, 그리고 아담한 와일 리사이틀 홀은 오케스트라에서 실내악, 솔로 리사이틀
까지 다양한 음악의 메카로서 그 기능을 발휘하고 있다.

◈ 카네기홀이 걸어온 길
“홀 자체가 악기다. 당신이 무대에서 무엇을 하건 그것을 전설로 만든다.” 1950년대 카네기홀
의 보전을 위해 고군분투했던 바이올리니스트 아이작 스턴은 카네기홀을 두고 이렇게 칭송했
다. 메인 홀 아이작 스턴 오디토리움의 원래 이름은 단순히 ‘뮤직 홀’이었지만, 개관 2년 후
이사진의 요청에 따라 카네기홀로 개명됐다. 카네기홀의 건축가 윌리엄 버넷 투실(William
Burnet Tuthill)은 아마추어 첼리스트였다. 음악에 조예가 깊은 투실은 벽돌과 적갈색 사암을
사용하여 이탈리아 르네상스 스타일로 홀을 디자인했다. 아이작 스턴 오디토리움은 5층으로
총 2,804석의 대형 홀이다. 입장권 가격이 가장 싼 발코니 석으로 가려면 무려 137개의 계단
을 걸어 올라가야 한다. 로비에서 상층으로 올라가는 노후한 엘리베이터가 수용할 수 있는 인
원은 10여 명에 불과하다.

1960년 뉴욕 필하모닉이 그 동안 주 무대였던 카네기홀을 떠나 링컨센터에 정착한다. 가장
안정적인 세입자를 잃게 된 카네기홀은 상업건물로 재개발되며 붕괴할 위기에 처해 있었다.
이 때 아이작 스턴과 많은 뉴욕의 예술가들이 구명 운동을 벌였고 뉴욕시가 5백만 달러에 건
물을 매입하기에 이른다. 그해 5월 비영리 조직인 Carnegie Hall Cooperation이 설립되고,
1962년 카네기홀의 건물은 역사 유적으로 지정됐다. 아이작 스턴은 1960년부터 2001년 사망
할 때까지 카네기홀의 회장직을 맡았다. 2003년 뉴욕 필이 카네기홀과 합병될 것이라는 소문
이 떠돌았지만, 클래식음악의 ‘환상적 결혼’은 수포로 돌아갔다.

현재 카네기홀의 단장 겸 예술감독은 전 런던 교향악단의 단장이었던 클라이브 길린슨 경이
다. 길린슨은 2004년 47세에 심장마비로 요절한 로버트 하스 단장의 후임으로 카네기홀의 사
령관이 됐다. 하지만 아직도 잰켈 홀을 개관하며 동분서주했던 하스의 열정을 기억하는 이들
이 많다.

카네기홀은 다른 비영리 공연단체와 마찬가지로 티켓 판매 수입보다 공연장 대관과 후원금에
철저히 의존한다. 카네기홀은 2천5백 달러에서 5백만 달러까지 희사하는 개인과 회사 명단을
명시하고 있다. 마이클 블룸버그 뉴욕 시장은 지난 수년간 카네기홀에 익명으로 연 5백만에서
2천만 달러씩 기부하는 선행을 해오다가 뉴욕 타임스가 이를 밝히기도 했다. 블룸버그 통신사
를 소유한 블룸버그 시장은 2007년 포브스 잡지가 선정한 세계 부자 142위에 오르기도 했다.

한편, 2006년 카네기홀 무대에 카네기홀의 이사이자 레블롱 화장품 회장인 로널드 페렐만의
이름이 붙여졌는데 ‘페렐만 스테이지’의 이름을 위해 그가 희사한 금액은 2천만 달러이다.

◈ 한 지붕 아래 세 개의 연주홀
피아니스트 아르투르 루빈스타인이 생전에 카네기홀 주변을 걷고 있었다. 누군가 그에게 “실
례합니다, 선생님. 카네기홀에 어떻게 갈 수 있지요?”라고 물었다. 루빈스타인은 “연습, 또 연
습, 그리고 또 연습이지.”라고 대답했다(저명한 바이올리니스트 얏샤 하이페츠가 한 말이라는
주장도 있고, 역시 바이올리니스트인 미샤 엘만의 일화라는 주장도 있다).

과거 최근 100여 년간 역사상 위대한 음악인들은 거의 카네기홀 무대에 섰다. 구스타프 말러에서
레너드 번스타인, 뮤지컬 ‘오즈의 마법사’의 주디 갈란드(Judy Garland)에서 중국계 피아니스
트 랑랑까지 음악계의 내노라하는 연주자들은 한번쯤 이 무대에 올랐다.


카네기홀의 콘서트는 자체의 기획 콘서트와 대관으로 나뉘어진다. 카네기홀의 시즌 프로그램
에 초대되었다면 이제 스타덤에 올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휘자 정명훈, 바이올리니스
트 정경화, 사라 장, 첼리스트 장한나, 전자거문고 연주자 김진희, 작곡가 김지영 등 카네기홀
에 초빙된 우리나라 아티스트들은 생각보다 많지 않지만, 카네기홀에서 연주하는 것이 실현
불가능한 꿈은 아니다. 대관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소프라노 조수미를 비롯해 가수 조용필, 윤
형주, 패션디자이너 이영희 등 많은 한국의 아티스트들이 메인 홀을 대여해 ‘카네기홀 입성’이
라는 화려한 경력을 보탤 수 있었다.

카네기홀 제2의 연주 홀은 599석의 젠켈 홀(Zankel Hall)이다. 지하에 위치한 이 연주 홀은
오랫동안 영화관으로 운영되어오다가 2003년 중간 규모의 체임버 콘서트홀로 재탄생했다. 기
부자 주디와 아서 잰켈의 이름을 딴 이 홀은 실내악에 적합하며 무대를 중앙으로 이동할 수
있는 탄력적인 콘서트홀이지만, 지하철이 지나다닐 때 발생하는 진동으로 음향의 결함이 있다
는 문제점을 갖고 있다.

이제까지 요요마와 실크로드 앙상블, 소프라노 르네 플레밍, 지휘자이자 피아니스트인 제임스
레바인, 피아니스트 임마누엘 엑스, 소프라노 오드라 맥도날드,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첼로 앙상블, 세네갈의 팝가수 유수 웅두르 등 다양한 장르의 연주자들이 무대에 올랐다. 줄
리아드 음대의 강효 교수가 음악감독으로 있는 인터내셔널 세종 솔로이스츠도 잰켈 홀을 대여
해 ‘자선콘서트’를 열고 있다.

가장 작은 규모의 와일 리사이틀 홀은 268석이다. 원래 체임버 뮤직홀로 불렸지만, 잰켈 홀
개관 이후 카네기 홀 재단 이사장 샌포드 와일(Sanford I. Weill)의 이름을 따서 와일 홀로
부르기 시작했다. 각종 콩쿠르의 입상자들이 무대에 오르기도 하며, 줄리아드나 맨해튼 음대
를 갓 졸업한 음악인들이 프로의 길을 가기 위한 데뷔 리사이틀을 열기도 한다.

2014년, ‘주디스와 버튼 레즈니크 교육(Judith and Burton Resnick Education Wing)’ 건물
이 추가되어 오픈되었다. 크고 작은 24개의 음악실이 있는 이 건물의 건축에 2억3천만 달러
의 비용이 소요되었고, 자금은 와일 가문, 주디스와 버튼 레즈니크, 릴리 사프라 등 수많은 사
람들의 기부금으로 충당되었다. 건축자금 중 5천2백만 달러는 뉴욕 시가 출연했고, 1천1백만
달러는 연방정부, 5천6백만 달러는 뉴욕 문화기금 트러스트가 냈다. 2015-2016년 시즌으로
개관 125주년을 맞는 카네기 홀은 ‘미래를 위한 50’이라는 프로젝트를 확정하고 남녀 각각
25명씩의 작곡가들이 새롭게 작곡한 125개의 신작을 연주할 예정이다.

▶ 참고문헌 : 위키피디어, 박숙희(뉴욕 중앙일보 문화담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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