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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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곽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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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소륵스키(Mussorgsky) 보리스 고두노프 Boris Godunov



◈ 사진 :
위 : 무소륵스키
아래 : 보리스 고두노프의 초상화

◈ 유투브 감상
프롤로그 중 대관식 장면(Coronation Scene)
http://youtu.be/UEBq-gsdI58

고드노프의 마지막 기도와 죽음의 장면
Yevgeny Nesterenko(고두노프 역)
http://youtu.be/n_WOOZdVz9Y

전곡 공연실황
Boris-Yevgeny Nesterenko, Grigory-Vladislav Piavko, Marina-Irina Arkhipova
Pimen-Valery Yaroslavtsev, Varlaam-Artur Eisen, Shuisky-Andrei Sokolov
Conductor-Boris Khaikin, Bolshoi Theatre  orchestra & Chorus
http://youtu.be/TpkLq1dR48Q

♠ 개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1868년(29세)부터 1874년(35세) 사이에 작곡했다. 무소륵스키는 <호반시
치나>등 여러 오페라를 구상하고 작곡에 착수했지만 자신에 의해 완성을 본 작품은 <보리스 고
두노프>가 유일하다. 이 오페라는 작곡자의 최대 걸작으로 평가받을 뿐 아니라, 러시아어로 작곡
된 모든 오페라 중에서도 가장 자주 연주된다.

오페라의 주제는 러시아 역사에서 흔히 <고난의 시대>로 불리는 16세기 말엽부터 17세기 초까지
짜르(Tsar, 황제)에 올라 러시아를 통치한 실존 인물, 보리스 고두노프(통치기간 1598–1605)와
참칭자(僭稱者, 가짜 드미트리1세, 통치기간 1605–1606)에 관한 시대극이다. 대본은 알렉산더 푸
시킨의 극적 연대기 <보리스 고두노프>를 기본 텍스트로 삼아 무소륵스키가 직접 썼고 1872년에
개정할 때는 니콜라이 카람친의 <러시아 국가 역사>도 참고했다.

보리스 고두노프는 매우 복잡한 창작과정을 거쳤고, 그래서 다양한 이본(異本)이 존재한다. 무소
륵스키는 두 가지 판본을 만들었는데, 1869년판본은 황실극장 위원회가 연주불가 처분을 했고,
이에 따라 1872년에 개정판을 만들었다. 이 개정판본이 1874년에 상트페테르부르크 마린스키
극장에서 초연되었다. 한동안 이 두 개의 판본을 초기 기획본과 완성본의 관계로 바라보는 관점
이 우세했지만 최근엔 독자적인 컨셉트를 가진 별개의 작품으로 평가하는 입장이 더 강한 지지를
받고 있다.

보리스 고두노프는 작곡가가 남겨 놓은 두 판본 모두 원전의 형태로는 작곡가 사후 거의 1세기
동안 공연되지 못했고, 상당한 부분의 삭제, 순서의 재구성, 편곡, 다른 언어로의 번역본 등등 다
양한 형태의 개정판으로 공연되었다. 개정판본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림스키-코르사코프와 쇼
스타코비치의 것으로 이들은 무소륵스키 원전판본이 가진 기술적 약점을 보완하려는 의도를 가지
고 상당한 부분의 화성과 관현악을 개정해서 독자적인 판본들을 만들었고, 이들 개정판들은
1980년대 초까지 주요 오페라 극장의 표준으로 간주되었다. (림스키-코르사코프의 개정판은 유
럽과 미주에서, 쇼스타코비치의 개정판은 러시아에서 주로 연주되었다.)

그러나, 1975년에 영국의 오페라 전문 지휘자 데이비드 로이드-존스(David Lloyd-Jones)가
1869년판과 1872년판을 종합해서 정리한 비판적 원전판이 출판되고, 폴란드 지휘자 제르지 셈
코프(Jerzy Semkow, EMI), 블라디미르 페도세예프(Vladimir Fedoseyev, Philips), 키타엔코
(Dmitri Kitaienko, Kontrapunkt) 등의 무소륵스키 원전판본 음반들이 등장한 이후 점점 무소
륵스키만의 화성과 관현악법이 가진 독창성을 높이 평가하는 흐름이 대세를 이루게 되었고, 현재
는 작곡자 자신의 원전판본으로 상연하는 것이 새로운 표준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최근에는 대
부분 무소륵스키의 1869년판과 1872년판의 합본 형태(1872년판에다 1869년판의 바실리 대성당
장면을 추가하고 삭제장면들을 모두 복원한 판본)로 공연되는 경우가 많고, 흔하지는 않지만
1869년판을 선택하는 지휘자와 연출가들도 존재한다.  

♠ 보리스 고두노프는 누구?
보리스 표도로비치 고두노프(Boris Fyodorovich Godunov, 1551년~1605년)는 러시아 고난의
시대에 실존했던 황제(1598~1605)다. 이반 4세의 최고고문으로 활약했고, 1571년 모스크바 귀
족 마리아 그리고리예브나 스쿠라토바-벨스카야와 결혼했다. 1580년에 여동생 이리나 고두노바
를 이반 4세의 아들 표도르(Feodor Ivanovich)에게 시집보냈다. 1584년 이반 4세가 사망하자,
표도르가 뒤를 이었으나 나이가 어린데다가 심약해서 표도르의 삼촌과 보리스가 공동섭정으로 통
치했다.

1586년에 표도르의 삼촌이 죽은 후 단독섭정이 되자 비밀경찰을 이용해서 자기를 반대하는 사람
들을 고문하거나 죽이는 공포정치를 펼쳤다. 1598년 표도르 1세가 죽자 러시아 정교회는 보리스
고두노프에게 황제 자리에 오르기를 청했다. 그는 국회가 소집되어서 자신을 짜르로 추대해야만
수락하겠다고 요구했고, 국회가 소집되자 정식으로 황제 자리에 올랐다.

황제가 되자마자 로마노프 왕가를 추방하고 귀족들의 힘을 제한해서 자신의 지배력을 강화했다.
그러나 1601년 러시아에 기근이 몰아닥쳐 10만 명이 넘는 백성들이 굶어 죽고, 1604년에 코사
크 족과 폴란드 군대가 남부 러시아를 침입하자 고두노프의 군대가 모스크바로 포진했지만 고두
노프는 자신의 군대가 패하기 전인 1605년 4월 23일에 사망했다.

♠ 역사적 배경
보리스 고두노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고난의 시대’, 류리크 왕조(Ryurik dynasty)의 단절(1598
년)과 로마노프 왕조(Romanov Dynasty)의 등장 사이의 공백기에 관련된 역사적 배경을 파악하
는 것이 도움이 된다. 중요사건들을 연대순으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 1584년 – 통일 러시아를 세운 최초의 짜르(Tsar) 모스크바 공국의 대공 이반4세(雷帝 이반)가
타계하자 그의 후계자였던 아들 표도르 1세의 처남 보리스 고두노프가 섭정을 맡게 된다.

▶ 1591년 – 이반 4세의 또 다른 아들, 드미트리(표도르 1세의 이복형제)가 유배되었던 우글리
치에서 사인이 알려지지 않은 채로 사망. 고두노프는 이 사건 조사를 바실리 슈이스키 공에게 맡
겼다. 조사 결과 드미트리는 칼을 가지고 놀다가 간질발작을 일으켜 칼을 떨어뜨렸고 이에 상처
를 입은 드미트리가 고통에 못이겨 사망한 것으로 처리됨. 드미트리의 어머니 마리아 나가야는
드미트리가 암살되었다고 주장했고, 보리스가 암살 배후에 있다는 소문이 정적들에 의해 유포됨.

▶ 1598년 – 짜르 표도르1세가 사망한다. 그는 7세기 동안 러시아를 통치한 류리크 왕조 최후의
왕이었다. 모스크바의 총대주교 욥은 보리스가 드미트리 시해를 명령했다는 소문이 퍼져 있었음
에도 불구하고 보리스를 표도르1세의 후계자로 지명한다. 이에 보리스는 젬스키 소보르(러시아
의회)의 동의가 있어야만 짜르의 자리에 오르겠다고 천명했고, 젬스키 소보르는 만장일치로 보리
스를 짜르로 추대했고 같은 해 보리스는 짜르의 자리에 오른다.

▶ 1601년부터 1603년까지 러시아에 대기근이 찾아오고 아사자가 속출하자 보리스 고두노프의
인기가 추락하고 통치기반이 흔들린다.

▶ 1604년 - 자신이 짜레비치 드미트리라고 참칭하는 자가 폴란드에서 나타난다. 그는 폴란드의
후원을 받고 로마 가톨릭으로 개종했다. 병사들을 끌어 모은 가짜 드미트리는 모스크바로 쳐들어
간다. 이 행렬에는 슈도프 수도원의 수도사 바를람과 미사일 등도 함께 했다. 러시아에서 코사크
인들까지 합세한 가짜 드리트리 군대는 크고 작은 승리를 거두었지만 최종적으로는 내부 문제들
이 불거지면서 실패하고 폴란드로 퇴각한다.

▶ 1605년 – 보리스가 사망한다. 사인은 불명. 그의 아들 표도르가 차기 짜르의 자리에 올라 표
도르2세가 된다. 보리스가 죽자 가짜 드미트리 세력이 다시 힘을 얻고 모스크바 입성에 성공한
다. 가짜 드미트리는 표도르2세와 그의 어머니를 살해하고 짜르가 된다. 그 사이 바실리 슈이스
키 공이 모반을 꾸민다.

▶ 1606년 – 러시아의 귀족들이 드미트리의 폴란드와 로마 가톨릭과의 연합을 문제 삼는다. 마
리나 므니제치와의 결혼 직후 가짜 드미트리는 살해되고. 바실리 슈이스키가 짜르의 자리에 오른
다(바실리 4세).

▶ 1610년 – 바실리 4세가 퇴위되고 2년 후 폴란드 감옥에서 사망한다. 자신을 드미트리 이바노
비치라고 주장하는 또 다른 참칭자가 출현하는데 가짜 드미트리2세 역시 살해된다.

▶ 1611년 – 세 번째 드미트리 출현. 일 년 뒤 체포 후 처형되었다.

▶ 1613년 – 보리스 통치 시절 박해를 당했던 표도르 로마노프의 아들인 미하일 로마노프가 짜
르에 등극하면서 고난의 시대가 끝난다.

♠ 작품의 개요
1869년판은 총 4부, 7장으로 구분되며, 1872년판은 프롤로그가 있는 4막 구성이다. 작품이 전
개되는 시기는 1598년부터 1605년 사이이고, 장소는 모스크바, 리투아니아 국경, 폴란드 산도
미에시 성, 모스크바 근교 크로뮈 숲 등이다.


♠ 등장인물
보리스 고두노프(Boris Godunov, 러시아 짜르, 베이스-바리톤)
표도르(Fyodor, 보리스의 어린 아들, 메조소프라노)
크세니아(Kseniya, 보리스의 딸, 소프라노)
크세니아의 유모(Kseniya's nurse, 콘트랄토)
슈이스키(Prince Vasiliy Ivanovich Shuysky, 보리스의 고문, 테너)
안들레이 스첼카로프(Andrey Shchelkalov, 국회의 서기, 바리톤)
피멘(Pimen, 수도사이며 연대기 작가, 베이스)
그리고리(Grigoriy, 황태자 디미트리를 사칭, 테너)
마리나 므니셰크(Marina Mniszech, 폴란드 대공의 딸, 메조소프라노)
여관 여주인(메조소프라노)
란고니(Rangoni, 예수회 수사, 베이스 및 바리톤)
경찰관(베이스), 바보(테너),
바를람(Varlaam, 베이스)
미사일(Misail, 테너)

♠ 시놉시스
▶ 1부/프롤로그
▷ 제1장,  모스크바 근교의 노보데비치 수도원의 안뜰
드미트리 모티브가 서두에 짧게 소개된다. 막이 오르면 수도원 안뜰에 군중들이 모여 있다. 수도
원에는 심신이 지친 섭정 보리스 고두노프가 은거하고 있다. 치안 관리자가 군중들에게 무릎을
꿇으라고 명령하고, 보리스에게 왕관을 수락하라고 소리치도록 군중들을 선동한다. 군중들은 간
청의 합창을 부른다(“아버지, 당신은 우리를 누구에게 버리시나이까”).

사람들은 당혹해하고 말다툼하기 시작하지만 치안 관리자가 곤봉으로 위협하자 다시 간청의 합창
을 부른다. 합창이 열광적인 클라이맥스에 다다르자, 러시아 의회의 총비서 안드레이 스첼카로프
가 수도원에서 나와 사람들에게 보리스가 왕관을 거부했다는 사실을 알린다(“정교를 믿는 백성들
이여, 전하는 거부하셨다”). 그리고 보리스가 마음을 돌릴 수 있게 기도해달라고 부탁한다.

때마침 순례행렬이 다가오며 노래 소리가 들린다(“주께 영광, 높은 곳의 주님께 영광”). 순례자들
은 사람들에게 성화를 들고 짜르를 만나러 가라고 노래한다. 사람들이 수도원을 떠나 뿔뿔이 흩
어진다. (1869년 판본, 사람들은 순례자들의 요구에 대해 서로 이야기를 나눈다. 많은 이들이 그
들이 말한 짜르가 도대체 누구인지 혼란스러워한다. 치안 관리인들이 대화에 끼어들고, 내일 크
렘린에 나오라고 명령한다. 사람들이 서서히 무대에서 사라지면서 나지막하게 읊조린다. “소리를
지를 거라면, 크렘린에서 소리치는 게 낫겠어.”)

▷ 제2장, 모스크바 크렘린 광장(1598년)
종의 모티브를 기본으로 한 오케스트라 도입부가 연주된다. 도미시온 성당 입구에서 슈이스키가
사람들에게 짜르를 찬양하라고 소리친다. 군중들이 환호의 대합창을 부르면, 귀족들의 장엄한 행
렬이 대성당에서 나온다(“하늘의 아름다운 태양처럼 영광 있으라”). 보리스가 대성당 입구에 나타
나면 “영광”을 외치는 소리가 고조되었다가 사라진다. 보리스는 짧은 독백으로 불길한 예감을 토
로한다(“내 영혼은 슬프도다”). 그는 신에게 축복을 빌고, 훌륭하고 공정한 통치자가 되겠다고 다
짐 한다. 보리스는 군중들을 성대한 축제에 초대하고, 러시아 선대왕들의 무덤 앞에 무릎 꿇기
위해 미카엘 대천사 성당으로 이동하고, 군중들은 “영광 있기를”이라고 소리친다.

▶ 제2부
▷ 제1막
▷ 제1장, 츄도프 수도원의 방(이 수도원은 모스크바 크렘린 안에 있다.)(1603년)
고승 피멘은 러시아 역사의 연대기를 쓰고 있다(“이제 마지막 이야기”). 젊은 수련수사 그리고리
는 무서운 예지몽에 놀라 잠에서 깬다. 그리고리는 피멘에게 꿈에 대해 이야기한다. 높은 성탑에
오른 그를 사람들이 모욕하고 밑으로 밀어버렸다는 것이다(실제로 가짜 드미트리 1세는 그에게
등을 돌린 귀족들을 피해 도망가다 궁전 옥상에서 뛰어내렸다).

피멘은 그리고리에게 금식하고 기도하라고 충고한다. 그리고리는 수도사가 되기 위해 너무 이른
나이에 수도원에 들어온 것을 후회한다. 피멘은 폭군 이반과 그의 아들 표도르의 위대한 성품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암살을 주도한 보리스를 그들과 비교한다. (1869년판본 : 그리고리가 요구하
자, 피멘은 그가 우글리치에서 목격한 드미트리 아바노비치의 살해 광경을 생생하게 이야기해준
다.)

그리고리는 살해된 드미트리와 자신의 나이가 비슷하다는 것을 깨닫고, 참칭자로 자처하는 아이
디어를 생각해낸다. 피멘이 아침기도를 위해 자리를 비우자, 그리고리는 보리스가 결코 사람들의
심판과 신의 심판 어느 쪽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외친다.

▷ 제2장, 리투아니아 국경 인근의 어느 여인숙 (1603년)
이 장면의 세 가지 주요 테마에 기초한 짧은 오케스트라 도입부가 있다. (1872년판본 추가 : 여
주인이 들어와 ‘들오리의 노래’를 부른다”(“나는 회색 들오리를 잡았네”). 누군가 여인숙에 다가오
는 소리가 들린다.) 그들은 파계승인 부랑자 미사일과 바를람, 그리고 드미트리라는 가명을 쓰고
변장한 그리고리였다.

부랑자 바를람이 포도주를 주문하자 여주인이 술병을 들고 온다. 바를람이 술병을 들고 폭군 이
반이 카잔성을 포위했을 때에 관한 노래를 부른다(“카잔에서 폭군 이반은 주연을 펼치고”). 두 부
랑자들은 곧 취해서 잠이 든다. 그리고리가 여주인에게 조용히 리투아니아 국경의 위치를 물어본
다. 치안관리원들이 때마침 도주한 그리고리를 찾아 여인숙에 들어온다. 그리고리는 자신이 모스
크바에서 짜르가 될 것이라고 선언하고는 츄도프 수도원에서 도주한 상태였다.

바를람의 행색이 수상하다고 느낀 한 치안관리원 우두머리는 바를람이 그리고리라고 확신한다.
하지만 그는 문맹이었기 때문에 그가 가져온 황제의 칙령을 읽을 수 없다. 그리고리가 그것을 읽
어주겠다고 자청하고, 칙령에 적혀있는 인상착의를 바를람의 것으로 바꿔치기 해서 말한다. 바를
람은 치안관리원들에게 붙잡히지만 자기는 결백하다고 주장하면서 자기도 칙령을 읽을 수 있다고
소리친다. 바를람은 용의자의 인상착의를 띄엄띄엄 읽어내려 가고 그것은 그리고리의 것과 일치
했다. 그러자 그리고리는 단검을 꺼내들고 위협한 후 창문으로 도망친다. 사람들이 그를 뒤쫓는
다.

▶3부
▷ 제2막, 모스크바 크렘린 짜르 궁전 내부 (1605년)
크세니아(Xenia)는 얼마 전에 죽은 약혼자 이반 왕자의 초상화를 끌어안고 울면서 짧은 아리아
를 부른다(“내 약혼자여 어디에”). 그 옆에 표도르는 루스 짜르 국(모스크바 짜르 국)의 거대한
지도를 보고 공부하고 있다. (1872년판 추가 : 차임시계가 표도르의 주의를 산만하게 한다.) 크
세니아의 유모는 곧 이반 왕자 일을 잊게 될 것이라고 공주를 달랜다. (1872년판 추가 : 유모와
표도르는 2개의 노래로 크세니아의 기분을 풀어주려고 애쓴다.(“모기의 노래’, “이것저것”)

보리스가 등장하여 딸을 위로하고, 그녀와 그녀의 유모를 물린다. 보리스는 표도르에게 공부를
계속하라고 격려하면서 “나는 절대 권력을 가졌다”는 유명한 아리아를 노래한다. 하지만, 아리아
말미에 보리스는 자비를 구하는 피투성이 어린아이의 환영에 동요한다. (1872년판 추가 : 그의
아이들의 방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리자 보리스는 표도르를 시켜 무슨 일인지 알아보게 한다.
표도르가 돌아와 애완 앵무새 이야기를 한다(“우리의 작은 앵무새가 앉아있어요”).

보리스는 표도르에게 훗날 권좌에 오르면 슈이스키와 같은 아첨꾼들을 조심하라고 충고한다. 슈
이스키가 들어오자 보리스는 그가 모반을 꾸미고 있다고 힐난한다. 하지만 슈이스키는 중대한 소
식을 전한다며 주의를 끈다. 그는 자기를 드미트리라고 칭하는 자가 폴란드의 지원을 받아 리투
아니아 국경으로 군대를 이끌고 쳐들어오고 있다고 말한다. 보리스는 드미트리의 이름을 듣자 표
도르를 물리고, 슈이스키에게 무덤에서 부활한 어린이들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는지 물어본다.
보리스는 슈이스키가 우글리치에서 본 죽은 자가 드미트리였음을 확인받고자 한다.

슈이스키는 아름다운 짧은 아리아를 불러 그러하다고 알려준다(“우글리치의 대성당에서”). 하지만
또한 기적이 일어났다는 뉘앙스의 말을 흘린다. 보리스는 죄책감과 밀려오는 후회에 발작을 일으
키기 시작하고, 슈이스키에게 자리를 뜰 것을 명령한다. (1872년판본 추가 : 다시 차임시계가 작
동하고,) 보리스는 환영을 보게 된다. 죽은 드미트리의 유령이 다가오자, 보리스는 범죄 사실을
부인하며 소리친다(“사라져라, 사라져, 그건 내가 아니야, 인민의 뜻이었어”). 보리스는 신에게 자
비를 내려달라 부탁하고 쓰러진다.

▶ 제3막, 폴란드 장면 (1872년판본)
▷ 제1장, 폴란드 산도미에시 성 내부의 마리나 므니제치의 침실 (1604년)
하녀들이 마리나를 기쁘게 하기 위해 섬세하고 감성적인 노래를 부른다(“푸른 비슬라강”). 마리나
는 기사도에 관한 영웅적인 노래를 더 좋아한다고 말하며 하녀들을 물린다. 홀로 남은 마리나는
그녀의 따분함에 대해 노래하고 모험과 권력, 영광에 대한 갈망에 대한 아리아를 부른다(“얼마나
지루하고 따분한가?”).

예수회 수사 란고니가 들어와 교회의 비참한 현실에 대해 이야기한다. 란고니는 마리나에게 드미
트리를 유혹하도록 종용하고, 그녀가 훗날 러시아의 황후가 되면 러시아 정교회를 로마 가톨릭으
로 개종시킬 것이라는 약속을 받아내려 한다. 마리나는 왜 그리해야 되는지 묻지만, 란고니는 교
회의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고 그녀를 다그친다.

▷ 제2장, 므니제치의 성의 정원, 분수. 달밤 (1604년)
“드미트리 모티브”가 목관과 하프에 의해 조용히 흐른다. 드미트리는 마리나를 향한 마음을 노래
하며 그녀를 기다리고 있는데, 란고니가 나타나 마리나가 그를 연모하며 그와 이야기를 나누기를
원한다고 말한다. 드미트리는 마니라에게 청혼할 결심을 하고 마니라에게 인도해 달라고 부탁한
다. 하지만 란고니는 우선 드미트리에게 자기 자신을 아버지로 대하라고 말하고는 그의 생각에
따라 행동하기를 요구한다. 란고니를 신용하지 않지만 드미트리는 마지못해 그를 따르기로 한다.

란고니는 드미트리에게 폴란드 귀족들이 춤을 출 때 숨어있으리라고 말한다. 폴로네이즈가 연주
된다. 폴란드인들이 모스크바의 왕위를 되찾고, 보리스의 군대를 물리치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는 성으로 들어간다. 숨어있던 드미트리는 란고니를 저주하고 마리나를 떠나 당장 모스크바로 진
격할 결심을 굳힌다. 하지만 그 때 마리나가 나타나 자신은 단지 왕관에 홀렸을 뿐이라고 말한
다. 드미트리가 그녀에게 무릎을 꿇지만 그녀는 그를 하인이라고 모욕한다. 한계에 다다른 드미
트리는 내일 군대를 이끌고 모스크바로 쳐들어가 아버지의 왕위를 되찾고, 짜르로서 그녀를 자신
의 발 앞에 기어오게 만들어 모든 이들의 웃음거리고 만들겠다고 말한다. 이 말에 그녀는 태도를
바꾸어 그녀가 그를 흠모하고 있음을 고백한다. 둘은 사랑의 이중창을 부른다(“오 짜레비치, 당신
을 원해요”).

▶ 제4부
▷ 제4막
▷ 제1장 (1869년판), 모스크바 바실리 대성당 앞 광장 (1605년)
군중들이 붉은 광장에 있는 바실리 대성당 앞에 모여 있다. 대다수는 거지이고 치안경비대들이
가끔씩 보인다. 사람들은 모스크바로 왕위를 되찾기 위해 공격해오는 드미트리에 대해 이야기하
고 고두노프에 대한 불만들을 늘어놓는다. 악동들에게 쫓겨서 어떤 이로지비(yuródivïy , ‘그리스
도를 위한 거룩한 바보’라는 용어다. 한자로는 聖愚로 표기되며, 러시아 정교회에서는 성인의 칭
호로 사용된다)가 들어와 이치에 닿지 않는 노래를 부른다(“달이 뜬다, 고양이가 운다”).

악동들은 그를 괴롭히고 그가 가진 동전을 훔쳐 달아난다. 보리스와 그의 수행원들이 성당에서
나와 구호품들을 사람들에게 나누어준다. 빵을 구하는 사람들의 힘찬 합창이 이어진다(“자애로운
아버지시여, 우리에게 빵을”). 합창이 잦아들자 이로지비의 울음소리가 들리고 보리스는 그에게
우는 이유를 묻는다. 이로지비는 그가 드미트리에게 했던 것처럼 도둑질한 악동들을 죽여 달라고
보리스에게 부탁한다. 슈이스키는 이로지비를 체포하길 원하지만, 보리스는 이로지비에게 자신을
축복하는 기도를 부탁한다. 이로지비는 이를 거부하고 성모 마리아도 이를 허락치 않을 것이라고
한다. 연이어 이로지비는 러시아의 운명에 대해 한탄하는 노래를 부른다(“흘러라, 흘러, 비통한
눈물이여”).

▷ 제2장 (1869년판본)  
제1장 (1872년판본), 크렘린의 다면궁(Palace of Facets) 내부 (1605년)
귀족들이 모여 회의를 하고 있다. (1869년판본, 쉬첼카로프가 참칭자의 침략과 그에 대한 조치를
결정하라는 짜르의 칙령을 읽는다.) 논쟁 끝에 귀족들은 참칭자와 그의 동조자들을 처형해야 한
다고 결의한다. 그러자 슈이스키가 회의장에 들어와서 보리스가 미쳐서 짜레비치의 유령을 쫓아
내려 “사라져, 사라져”라고 소리치는 것을 보았다고 말한다. 귀족들은 슈이스키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그를 비난하지만, 몰골이 말이 아닌 보리스가 들어와 슈이스키가 “사라져, 사라져” 말한
것과 동일하게 말한다.

귀족들은 공포에 휩싸인다. 보리스가 진정하자 슈이스키는 면회인 한 사람을 데리고 들어온다.
노승 피멘이다. 피멘은 눈먼 자가 꿈속에서 짜레비치, 트미트리의 목소리를 들은 이야기를 꺼낸
다. 드미트리는 눈먼 자에게 우글리치로 가서 그의 무덤 앞에서 기도하라 말했고 그 말에 따라
행 했더니 눈이 떠졌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에 정신을 잃은 보리스는 극도로 괴로워하며 그의 아
들 표도르를 부르고는 유명한 독백을 부른다(“보리스의 고별”).

종이 울리고, 보리스의 죽음을 애도하는 합창이 흐르는 가운데 보리스는 숨을 거둔다.(“종!, 장례의 종”)

▷ 제2장 (1872년판), 크로뮈 숲 (1605년)
긴박한 정경묘사 음악이 흐르고 나면, 봉기를 일으킨 군중들이 불잡은 귀족 후르시초프를 끌고
온다. 군중들은 그를 조롱하며 노래한다(“넓은 하늘에 매는 날지 않고, 들에 준마는 달리지 않
네”).

악동들에게 쫓겨서 어떤 이로지비가 들어와 이치에 닿지 않는 노래를 부른다(“달이 뜬다, 고양이
가 운다”). 악동들은 그를 괴롭히고 그가 가진 동전을 훔쳐 달아난다. 이로지비가 구슬피 우는 가
운데 바를람과 미사일이 멀리서 보리스의 범죄에 관해 노래한다(“태양도 달도 빛을 잃고”). 그들
도 무대에 들어오고 군중들은 더욱 격렬하게 보리스를 비난하는 합창을 부른다. 예수회 교도인
라비츠키와 체니코프스키가 와서 신에게 드미트리의 구원을 간구한다. 혼란의 와중에 드미트리와
그의 군대가 도착하고, 바를람과 미사일은 그를 찬양한다(“짜레비치, 그대에게 영광을”).

드미트리는 고두노프에게 박해받은 이는 모두 자신의 편이 되라 말하고 후루시초프를 풀어준다.
사람들이 열광하며 드미트리를 따라 모두 무대에서 나가고 이로지비만 홀로 남는다. 이로지비는
러시아의 운명에 대해 한탄하는 노래를 부른다(“흘러라, 흘러, 비통한 눈물이여”).

♠ 작곡과정
무소륵스키는 1868년까지 두 편의 오페라를 기획했다가 포기했다. 이국적이면서도 낭만적인 비
극 <살람보 Salammbô>와 러시아적이면서 반낭만주의적인 희극 <결혼>을 쓰기 시작했지만 기획
과 스케치로만 그치고 말았다. 그러나 두 작품을 구상하면서 실험한 두 가지 상이한 요소들을 독
창적이면서도 성공적으로 융합해서 <보리스 고두노프>를 창조해냈기 때문에 무소륵스키에게는 값
진 경험이 되었다.

1868년 가을, 러시아 역사와 러시아어 교수로 푸시킨 연구의 권위자였던 블라디미르 니콜스키
(Vladimir Nikolsky)가 무소륵스키에게 푸시킨의 드라마 <보리스 고두노프>를 주제로 오페라를
작곡해볼 것을 제안했다. 푸시킨의 연극은 셰익스피어의 역사극을 모델로 해서 1825년에 완성되
어서 1831년에 출판됐지만 작가의 사후 거의 30년이 지난 1866년까지 러시아 검열당국에 의해
공연이 허가되지 않았고, 공연이 허가된 이후에도 많은 장면들이 삭제되어서 무대에 올려졌다.

무소륵스키가 <보리스>를 오페라로 작곡할 경우에 러시아 짜르를 오페라에서 묘사하는 것을 금지
한 1837년의 황제 칙령-1872년 로마노프 왕조의 짜르로만 제한범위가 축소됨-에 의해 공연이
불가능할 수도 있었지만, 이 희곡에 대한 무소륵스키의 열망이 너무도 컸기 때문에 니콜스키의
제안은 곧바로 실행에 옮겨졌다.

♠ 1869년 판본
글린카의 누이 루드밀라 쉐스타코바는 무소륵스키의 계획을 전해 듣고 드라마에서 빠진 부분들을
채워 넣으라는 의도에서 그에게 푸시킨의 저서를 선물했다. 무소륵스키는 이것을 이용해 1868년
10월 자신이 직접 대본을 작성했는데 푸시킨의 원래 희곡은 총 25개의 장으로 이루어졌지만, 무
소륵스키는 무대 적용에 적합한 장면들을 추려내서 대본을 썼다.

작업은 신속하게 진행되어 작곡에 착수한 지 대략 9개월이 지난 1869년 7월 18일에 첫 번째 보
컬 스코어를 탈고했고 5개월 후에는 총보를 완성했다(1869년 12월 15일). 1870년 무소륵스키는
사전검열을 받기 위해 대본을 국가 검열관에게 제출했고 오페라 총보는 황실극장의 문학과 음악
위원회에 제출했다.

하지만, 1871년 2월 10일, 황실극장위원회는 투표를 통해 여성 주역이 없다는 이유로 공연을 불
허했다. 당시 위원회의 투표 결과는 6대 1이었고 찬성표를 던진 사람은 마린스키 극장의 지휘자
에두아르드 나프라프니크였다. 루드밀라 쉐스타코바는 나프라프니크와 무대 감독 게나디 콘드라
트예프가 <보리스> 상연 여부에 대해 답한 것을 다음과 같이 회상했다. “불가능합니다. 어떻게
여성적 요소가 전무한 오페라가 가능하겠어요? 무소륵스키는 엄청난 재능을 지닌 친구라는 것을
의심하지 않아요. 그러니까 한 장면만 추가하라고 하세요. 그러면 보리스는 상연될 겁니다.” - 루
드밀라 쉐스타코바의 “나의 저녁들” 중에서. 1889년.

이에 비해 근거가 의심스럽긴 하지만, 림스키-코르사코프는 작품의 생경함 같은 요인들이 상연
거부의 원인이라는 주장을 피력했다. “무소륵스키는 보리스 고두노프를 황실극장위원회에 제출했
다. 음악의 신선함과 독창성은 위원회 위원들을 당혹스럽게 만들었고, 때문에 여성주역이 존재하
지 않는다는 점을 들어 작곡가를 몰아세웠던 것이다.” - 니콜라이 림스키-코르사코프, 나의 음악
인생 연대기, 1909년.

“나를 포함한 무소륵스키의 가까운 지인들은, 작품이 가진 장대한 극적 박력과 진실한 민족적 성
격에 열광적으로 끌리긴 했지만, 여러 본질적인 요소들이 부족하며 작품에 넘쳐흐르는 아름다움
에도 불구하고 어떤 관점에서는 불만족스러운 부분들도 존재한다는 점을 끊임없이 지적했다. 한
동안 무소륵스키 역시 모든 아티스트들이 그러하듯 그의 창조물 편이었지만 주역 배역들이 부르
는 분량은 적은 반면 합창과 앙상블은 너무 많다는 이유를 들어 위원회에서 거부당하자 결국 그
도 굴복했다. 이 거부조치는 보리스에겐 매우 유익한 일이었다.” -블라디므로 스타소브(Vladimir
Stasov)

한편, 푸시킨의 희곡 보리스 고두노프가 마침내 마린스키 극장에서 1870년 초연되었다. 이 초연
무대가 있은 후 4년 뒤 같은 장소에서 오페라가 상연되었으며, 마트베이 쉬쉬코프(Matvey
Shishkov)가 제작한 연극 무대는 오페라 공연에서 재활용되었다.

♠ 1872년 판본
1871년, 무소륵스키는 다시 열정적으로 개정 작업에 들어가 여성배역을 확충했는데 황실극장위
원들의 요구사항을 훨씬 뛰어넘는 수준의 개정이었다. 3개의 장면(2개의 산도미에시 장면과 크로
뮈 숲 장면)을 추가하고, 바실리 대성당 장면을 솎아내고, 크렘린 궁전 장면을 새로 추가했다. 프
라마 돈나 역인 마리나 므니제치 역이 추가되고, 기존에 존재하던 여성배역들의 분량이 늘어났
고, 테너 역인 참칭자 드미트리도 확장되었다.

무소륵스키는 푸시킨의 드라마 보리스 고두노프를 헌정 받은 바 있는 카림친(Karamzin)의 역작
<러시아 국가의 역사>를 연구하여 푸시킨의 원작에 공백으로 남아있는 부분들을 보강했다. 개정
판은 1872년(보컬 스코어는 1871년 12월 14일, 총보는 1872년 6월 23일 완성)에 탈고되었고,
그 해 가을 황실극장에 상연 가능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다시 한 번 총보를 보냈다.

대부분의 무소륵스키 전기 작가들은 황실극장 임원들이 또 다시 개정판을 거절했다고 주장하며
심지어 정확한 날짜까지도 제시한 바 있다(칼보코레시는 1872년 5월 6일, 로이드-존스는 1872
년 10월 29일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최근 연구결과는 이들 전기 작가들의 주장을 입증할만한
증거가 충분하지 않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위원회가 개정판을 거절했다고 잘못 알려진 이유는
위원회가 1869년판을 거절했었던 사실을 환기시켜 개정판이 위원회 심의를 통과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과정에서 오해가 발생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어찌되었든 무소륵스키의 친구들은 연출가 겐나디 콘드라트에프(Gennadiy Kondratyev)를 위한
자선연주회 형식으로 1873년 2월 3일 마린스키 극장에서 3개의 장면(여인숙 장면과 2개의 산도
미에시 장면)을 골라내 무대에 올리게 된다. 5인조의 일원이었던 세자르 큐이는 이 날 관객들의
열광적인 반응을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다. “엄청난 성공이었고 완벽했다. 내가 기억하는 한 그
런 환호가 작곡가 무소륵스키에게 쏟아진 적은 결코 없었다.” 이 공연의 성공으로 <보리스 고두
노프>의 피아노 보컬 스코어가 1874년 1월 정식으로 출판되었다.

♠ 초연
1873년에 있었던 3개 장면 공연의 성공은 전체 오페라 공연을 가능하게 만들었고, 그 역사적인
초연은 1874년 1월 27일 마린스키 극장에서 이루어졌다. 표는 매진되었고, 청중들은 엄청난 환
호를 보냈다. 무소륵스키는 20여회 커튼콜을 받았고, 학생들은 거리에서 오페라의 합창을 부르고
다녔다. 하지만, 비평가들의 반응은 극단적으로 냉담했다.

보리스 고두노프는 초연 당시 상당한 분량을 삭제했다. 피멘의 방 장면은 완전히 삭제되었는데,
검열 때문이 아니라 지휘자 나프라프니크가 너무 긴 공연을 피하길 원했고, 효과적이지 못한 에
피소드들은 잘라내자고 했기 때문이었다. 추후의 공연에서는 삭제 분량이 오히려 더 늘어났는데,
크로뮈 숲 장면도 삭제 목록에 포함되었다. 이때는 정치적인 이유가 개입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오페라 상연에 이르기까지 여러 우여곡절을 겪었던 무소륵스키는 나프라프니크의 요구를 수용했
고, 심지어 자신의 조력자들에게 이런 삭제를 변호하기조차 했다.

림스키-코르사코프는 <보리스 고두노프>가 오페라 극장의 레퍼토리에서 사라지지 않기를 원했기
때문에 작품에 대한 가위질을 수용했던 것이라고 당시 상황을 전하고 있다. 보리스 고두노프는
작곡가 생전에 21번 상연되었고, 작곡가 사후에는 5번 더 공연되었다. 1882년 11월 8일 공연을
끝으로 레퍼토리 시스템에서 사라졌다.

♠ 공연사
◈ 발췌공연
▶ 1872년 2월 5일, 대관식 장면만 에두아르드 나프라프니크 지휘로 상트페테르부르크 러시아
음악협회에 의해 초연

▶ 1872년 4월 3일, 3막 폴로네이즈를 발라키레프 지휘로 상트페테르부르크 음악 무료학교에서
공연

▶ 세 장면(여인숙 장면, 두 개의 산도미에시 장면) 발췌 공연, 1873년 2월 5일 나프라프니크
지휘로 마린스키 극장에서 공연

♠ 주요 초연 무대
▶ 1872년판 초연 : 1874년 1월 27일 마린스키 극장에서 초연.
▶ 1872년판의 볼쇼이 가극장 초연 : 1888년 12월 16일 모스크바 볼쇼이 가극장 초연. 칼 발
츠가 무대 디자인을 맡음

▶ 림스키-코르사코프의 1908년판 초연 : 1908년 5월 19일 파리 오페라, 세르게이 디아길레프
가 제작함

▶ 1869년판의 초연 : 1928년 2월 16일 레닌그라드(페테르스부르크)의 오페라 & 발레 국립 아
카데미 극장

▶ 바실리 대성당 장면의 최초 공연 : 볼쇼이 극장은 림스키-코르사코프 편곡판본을 보충하기 위
해 1869년판에는 포함되어 있지만, 1872년판에서는 작곡자 자신이 삭제한 ‘바실리 대성당 장면’
을 부활시켰다. 편곡을 맡은 이폴리토프-이바노프는 바실리 대성당 장면을 새롭게 편곡해서
1872년판에 엮어 넣었다. 카라얀(1970년, Decca) 이후 출시된 거의 모든 음반과 공연물들은 그
것이 림스키-코르사코프의 편곡판본이든, 원전판본이든 간에 바실리 대성당 장면을 부활시키고
있는데, 이폴리토프-이바노프 편곡판본의 시도를 따른 것이다. 이 편곡판본의 초연은 1927년 1
월 18일 볼쇼이 가극장에서 이루어졌다.

♠ 1869년 판본과 1872년 판본 비교
작곡가의 오리지널 버전은 여러 번 언급한대로 1869년판과 1872년판이 있다. 이전의 음악학자
들은 이들을 초판, 개정판, 또는 1판, 2판으로 구분하거나 예비본, 완성본 등등 기본적으로 1872
년판을 완성판이라는 관점에서 판본을 구분했지만, 두 판본의 가치를 동등하게 평가하는 최근 추
세에 따라 간단하게 1869년판과 1872년판으로 구분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일부에서는
1872년판을 1874년판으로 표기하기도 한다.)

1869년판을 실제 연주회를 통해 들을 기회는 그 동안 많지 않았으며 음반이나 영상물도 최근까
지 구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었다. 1997년 게르기에프와 마린스키 극장의 음반(Philips)이 출시
되면서 애호가들에게 1869년판이 본격적으로 알려지게 되었고 빌리 덱커 연출의 리세우 극장공
연이 영상물(TDK)로 출시되면서 실제 공연무대도 볼 수 있게 되었다. 1869년판의 가장 큰 특징
은 푸시킨의 희곡을 매우 충실하게 반영하고 있으며, 중요 여성배역 없이 남성 성악가 위주로 구
성되어 있다는 점이다. 또한 ‘석상 손님’과 ‘결혼’ 등의 작품에서 시도된 낭창 양식(Declamation
Style, opéra dialogué)에 좀 더 근접한 작품으로 선율이 주가 아니라 텍스트 자체가 가지고 있
는 운율과 정서를 마치 낭송하듯 표현하고 있다. 이와 같은 낭창 양식은 작품의 극적 사실성을
높이는 효과를 가지며 오페라 보리스 고두노프의 사실주의적 특성을 도드라지게 만들고 있다.

이 버전은 크렘린 궁전 장면의 오리지널 판본을 담고 있으며, 타이틀 롤의 내적 갈등을 강렬하게
드러내 극적 긴장감을 높이는 바실리 대성당 장면을 포함하고 있다. 또한 작곡가가 개정판을 만
들면서 삭제한 여러 패시지들도 그대로 살아있다. 크렘린 궁전 장면이 보다 간결하고, 바실리 대
성당 장면과 보리스의 죽음 장면으로 이어지는 후반부가 매우 극적이기 때문에 몇몇 평론가들에
게는 1872년판보다 높은 평가를 받기도 하며, 최근 몇몇 지휘자들과 연출가들이 1869년판을 채
택해 무대에 올림으로써 독립적인 하나의 작품으로 공연되는 데에 손색이 없음을 증명하고 있다.

이에 비해 1872년판은 1869년판이 견지하고 있던 사실주의의 이상에서 다소 후퇴한 대신 선율
이 강조되는 관습적인 오페라적 특성이 강화되었다. 이러한 스타일의 변화는 후에 무소륵스키가
미완성으로 남겨놓게 되는 <호반시치나>까지 이어진다. 1872년판은 좀 더 길고 풍부한 음악적,
극장적 요소들이 포함되었으며, 크렘린 궁전 장면에서는 보리스 고두노프에게 좀 더 동정적인 평
가를 내릴 수 있는 여지를 주는 방향으로 내용이 변경되었다. 이런 관점 변화는 푸시킨의 원작과
는 사뭇 다른 방향이고, 마지막 크로뮈 숲 장면의 폭동의 정서 또한 푸시킨과는 거리가 있다. 한
때 림스키-코르사코프의 편곡판에 밀려 거의 연주될 기회가 없었던 작곡가의 1872년판은 20세
기 후반에 이르러 그 가치를 새롭게 인정받아 현재는 보리스 고두노프의 가장 기본이 되는 판본
으로 인정받고 있다.

위의 두 가지 작곡가 자신의 원전판 이외에 1874년에 출판된 피아노 보컬 스코어는 1872년판을
세련되게 다듬은 것으로 독자적인 판본을 구성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일부이기는 하지만, 1872
년판을 1874년판으로 표기하기도 하는데 이는 1970년대 이후 등장한 여러 비판적 원전판들이
1874년의 피아노 보컬 스코어를 작곡가 자신에 의한 최종본으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로이드-존
스가 편집한 원전판에 기초해 녹음된 클라우디오 아바도 버전(Sony)에는 이런 관점에 따라 1874
년판이라고 표기하고 있다. 이후 만들어진 다른 작곡가들의 개정판들도 상당수 1874년판의 변경
된 부분들을 참조하고 있다.

무소륵스키는 오페라를 개정하면서, 바실리 대성당 장면을 크로뮈 숲 장면으로 교체했다. 하지만,
니콜라스키의 제안에 따라 마지막 두 장면의 순서를 바꾸었고, 이에 따라 보리스의 죽음 장면 다
음에 크로뮈 숲 장면이 나오게 되었다. 후에 림스키-코르사코프는 마지막 장면들의 순서를 다시
바꾸어 놓았는데, 이러한 변경은 러시아 민중들의 비극에서 보리스 개인의 비극으로 오페라의 포
커스를 바꾸어 버렸다는 비판을 받았다. 무소르그스키는 또한 1872년판에서 크렘린 궁전 장면을
개정하면서 새로운 노래와 앵무새와 시계 같은 새로운 장치들을 배치해 보리스의 성격을 새롭게
다루었다. 이 과정에서 사실상 전체 장면을 새로 작곡했다.

♠ 1869년판과 1872년판 합본
공연과 녹음에서 1869년판과 1872년판의 합본 형태가 주로 사용되는데, 위에서 언급한 이폴리
토프-이바노프 편곡판처럼 1872년판에다가 1869년판의 바실리 대성당 장면을 보강하는 형태가
일반적이다. 이런 연주 관습은 무소륵스키가 작곡한 음악을 가장 많이 포함시킬 수 있는 방법인
데다가 타이틀 롤이 무대에 한 번 더 등장하여 내적 심리 상태의 변화를 분명하게 보여줄 수 있
다는 장점이 있기 때문에 이폴리토프-이바노프 편곡판의 도입 이후 유행하게 되었고 지금은 거의
표준으로 굳어져버린 상태다. 하지만, 작곡가가 이로지비와 악동들의 에피소드를 1872년판의 크
로뮈 숲 장면에도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바실리 대성당 장면을 복원할 경우 에피소드가 중복되는
문제점이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대부분의 공연에서는 크로뮈 숲 장면에서 이로지비의
약탈 장면을 생략하여 장면의 중복을 피하곤 한다. 대신 이로지비의 탄식장면은 중복해서 공연하
는 것이 일반적이다.

비평가들은 바실리 대성당 장면을 복원하고 무소륵스키가 삭제한 모든 부분들을 살려내는 연주
형태, 이른바 ‘과포화’ 완전판은 1872년판의 대칭구조를 파괴하고 작곡가가 주의 깊게 설정한 라
이트모티브 배치의 기초를 흔들 뿐만 아니라 드미트리 모티브를 지나치게 자주 등장시켜 되려 작
품의 통일성을 해치는 등의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고 비판한다.

♠ 원전판 이외의 판본들
▶ 림스키-코르사코프의 1896년 및 1908년 개정판
무소륵스키가 1881년 타계하자, 그의 친구 림스키-코르사코프는 무소륵스키가 남겨 놓은 악보들
을 정리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미완성으로 남긴 오페라 <호반시치나>를 편곡, 편집하여 완성했고
(1883년), <민둥산의 하룻밤>을 재구성했으며(1886년), 몇몇 가곡들과 합창곡들을 교정하고 오케
스트레이션했다. 이런 작업들이 점차 마무리되자 그의 관심은 보리스 고두노프에 집중되게 된다.
“이 일을 하면 저주받을 거라는 걸 알고 있지만, 그래도 보리스를 개정할 것이다. 셀 수도 없이
많은 화성상의 불일치가 있는데다가 때때로 멜로디도 그렇다.” - 림스키-코르사코프.

림스키-코르사코프는 우선 1889년 바그너가 사용한 대규모 오케스트라용으로 제3막 <폴로네이
즈>를 편곡해보았다. 1892년, 대관식 장면을 개정했으며, 1874년 피아노 보컬 스코어를 사용해
오페라의 나머지 부분들에 대해 상당한 분량을 삭제한 채로 1896년까지 개정을 끝냈다. 1906년
봄, 그는 1896년 개정판에 빠졌던 부분들을 오케스트레이션하고 개정했다. 1908년 림스키-코르
사코프는 새로운 개정판으로 자신의 수정작업을 종합했다. 삭제된 장면들을 복원하고, 대관식 장
면에는 새로운 음악들을 덧붙였다. (제작자 세르게이 디아길레프가 파리 초연을 위해 스펙타클한
장면들을 좀 더 원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제3막의 순서를 변경해 크로뮈 숲 장면을 보리스의 죽
음 장면 앞에 위치시켰다. 그의 개정판은 단순히 오케스트레이션을 변경하는 수준을 넘어서는 것
으로 화성, 멜로디, 셈여림 등등에 걸쳐 상당한 변경이 이루진 것이다. 이 때문에 이 개정판에는
많은 비판이 뒤따랐다.

보리스를 새로이 손보고 화성을 수정하는 것 이외에, 림스키-코르사코프는 독단적인 수정들을 가
했다. 이것들은 작품을 훼손시키는 짓이다. 그는 장면 순서를 뒤바꿈으로써 오페라를 망치기까지
했다. - 발라키에프

“아마도 림스키-코르사코프의 화성법이 좀 더 부드럽고 자연스러울 것이다. 그가 부분부분 손본
것이 원작보다 낫고, 그의 관현악법이 무소륵스키보다 능숙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결과물은 무
소륵스키적이지 못하며 무소륵스키가 목표로 했던 것도 아니다. 그 모든 단점들에도 불구하고 원
래 음악이 더 타당하다. 나는 마린스키 극장 무대에 ‘보리스’가 원래 모습 그대로 재상연되기를
바란다.” - 세자르 큐이

프랑스에서 림스키-코르사코프의 개정판이 상연되자 곧장 논쟁이 불붙었다. 림스키-코르사코프를
지지하던 이들은 그의 노력이 없었다면, 무소륵스키의 오페라는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레퍼토
리에서 사라져 버렸을 것이라고 주장하며 그를 변호했다. 결론적으로 림스키-코르사코프의 개정
판은 작품의 생명력을 유지시켰고, 무소륵스키의 오페라가 간직한 멜로디와 드라마적 천재성을
대중이 인식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는 점에서 정당화될 수 있다.

“처음으로 대규모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보리스 고두노프의 내 개정판을 들었을 때 나는 설명할
길 없은 없지만 너무나도 기뻤다. 무소륵스키의 열렬 팬들은 눈살을 찌푸리고 유감스럽게 생각했
다. 그러나 보리스 고두노프의 개정판을 준비하면서 나는 프레스코화에 영원히 남겨질 덧칠을 하
듯 원작을 훼손한 것이 아니다. 언젠가 무소륵스키의 원전판이 더 훌륭하고 가치가 있다는 결론
에 도달하게 된다면, 나의 개정판은 폐기되고, 원전판을 연주하게 될 것이다. - 림스키-코르사코
프, 나의 음악 인생 연대기, 1909년

림스키-코르사코프의 개정판은 무소륵스키의 1872년판에 밀려 유럽 오페라 하우스에서 거의 연
주되지 않으며, 러시아에서도 점차 그 연주 횟수가 감소하는 추세이다.

▶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의 1940년 개정판
1928년 파벨 람(Pavel Lamm)이 1869년판 1872년판을 편집하여 이의 합본 형태로 피아노 보
컬 스코어를 내놓았고, 같은 해 이에 기초해 람과 보리스 아사프예프가 총보를 만들어냈다. 이
버전에 대한 관심이 놓긴 했지만, 여전히 무소륵스키의 악보가 연주가능한 지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이 존재했고, 볼쇼이 가극장은 이 버전에 바탕한 개정판 제작을 쇼스타코비치에게 의뢰했다.
쇼스타코비치는 1939년부터 40년까지 개정을 마무리 지었지만, 2차 세계대전의 여파로 1959년
에야 쇼스타코비치의 개정판의 초연이 이루어졌다.

쇼스타코비치 개정판의 특징은 무소륵스키 고유의 멜로디와 화성 스타일을 잘 유지하면서 목관과
금관 섹션을 확장한 것에 있다. 거기에다 쇼스타코비치는 오케스트라의 역할을 확대해 단순히 가
수의 반주에서 벗어나 거의 교향악적인 발전을 추구했다. 구소련 시대에 러시아에서 제한적으로
공연되던 쇼스타코비치의 개정판은 현재에 이르러서는 거의 연주되지 않는다.

▶ 미하엘 로트의 비판적 원전판 (2007년 베렌라이터, Bärenreiter)
무소륵스키의 원전판들을 원래 모습 그대로 복원하기 위한 노력도 오랫동안 계속되었다. 1920년
말 파벨 람의 선구적인 시도를 시작으로 몇몇 주목할만한 판본들이 등장했는데, 그 중 결정적인
전환기가 된 판본은 데이비드 로이드-존스가 1869년판과 1872년판을 합쳐 내놓은 비판적 원전
판이다. 1975년 옥스퍼드 출판사에서 출판된 로이드-존스의 이 판본은 당시 기준으로는 다른 편
곡자들의 수정들을 최대한 배제하고 삭제된 장면들을 대부분 복원해낸 “과포화” 원전판의 결정본
으로 평가 받았다. 특히 이 버전은 클라우디오 아바도가 적극적으로 소개하여 유명해졌으며, 셈
코프(EMI), 로스트로포비치(Erato), 아바도(Sony) 등의 음반으로도 출시되어 무소륵그스키의 원
전판을 현재의 위치로 끌어올리는데 결정적인 공헌을 했다.

최근에는 2007년 배렌라이터 사에서 내놓은 미하엘 로트의 에디션이 로이드-존스 등의 무소륵스
키의 원전판을 표방했던 기존 판본들을 대체하고 있다. 로이드-존스의 에디션 등이 림스키-코르
사코프가 수정한 부분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등의 여러 문제들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
한 한 이를 수정 보완한 판본이다. 미하엘 로트는 이용가능한 모든 무소륵스키의 악보들을 검토
하여 작곡자 이외의 사람이 행한 수정은 예외 없이 삭제했고, 작곡가의 원전으로 돌려놓았다.

미하엘 로트의 비판적 원전판은 현재 가장 각광받는 연주회 판본으로 급부상했다. 2007년 2월
볼로냐 테아트로 코뮤날레에서 처음 공연되었고, 2007년 5월 다니엘레 가티가 지휘한 비엔나 국
립가극장의 신연출 공연에서도 사용되었다. 2010년 10월에 있은 토리노의 테아트로 레지오에서
의 지아난드레아 노세다의 지휘로 치루어진 공연은 Opus Arte에서 DVD와 블루레이로 발매될
예정이며, 2010년 10월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에서 스테판 워즈워스의 연출과 발레리 게르기에프
지휘로 올려진 무대에서도 이 원전판이 사용되었다.

▶ 이고르 부케토프(Igor Buketoff) 개정판
미국 출신 지휘자 이고르가 1997년에 림스키-코르사코프 개정판본의 대부분을 삭제하고 다시 오
케스트레이션 작업을 했으며, 이 과정에서 무소륵스키의 오리지널 오케스트레이션을 되살림으로
써 보다 원전판본에 가깝게 만들었다. 이 판본은 1997년에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에서 발레리 게
르기에프(ValeryGergiev)의 지휘로 처음 연주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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