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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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곽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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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열 오페라 하우스(Royal Opera House)




◈ 유투브 영상
Nabucco - The Royal Opera Chorus on their day job
http://youtu.be/QT7QK0Kfp6A

영국 오페라의 중심인 로열 오페라 하우스는 1732년에 개관했다가 1808년에
화재로 무너졌고, 1809년에 신고전주의 양식의 건물로 재개관했다. 이 건물
은 런던의 거주 지역인 코번트 가든에 위치한 이후 “코번트 가든”으로 불리며
, 로열 오페라단, 로열 발레단과 로열 오페라 하우스의 교향악단의 본거지이
다. 1949년에 빅토리아 양식으로 리모델링한 이 건물은 라파엘레 몬티가 디자
인 한 것으로 크림색, 금색, 빨강색이 주조를 이루며, 돔 천장은 스카이 블루
로 제대로 된 극장이 없던 시절 하늘을 지붕 삼아 공연하던 야외극장 시절에
대한 추억을 담고 있다. 무대 전면에는 라파엘 몬티의 부조 ‘음악과 시’와 빅토
리아 여왕의 왕실 문양이 새겨져 있으며, 세계 오페라사에서 대단한 지위를 누
리고 있다. 로열 오페라 하우스는 2,268석과 4층의 박스석, 발코니석, 극장의
정면 관람석 갤러리로 구성된다. 프로시니엄은 12.20 미터 넓이와 14.80 미터
높이이다.

1743년 국왕 조지2세가 참관한 가운데 헨델이 ‘메시아’의 초연을 지휘했고, 곡
이 ‘할렐루야 코러스’에 이르렀을 때 국왕은 너무나 감격한 나머지 일어서서
박수를 친 것이 그 뒤로 음악회에서 기립 박수를 치는 관행이 생겨났다는 일화
를 가지고 있는 로열 오페라 하우스는 영국을 대표하는 오페라 작곡가 벤자민
브리튼의 작품들이 특히 자주 공연된다. 브리튼, 헨체, 홀스트, 마스네, 티페
트, 베버 등의 오페라가 초연된 장소이기도 한 이 극장은 로열 발레의 공연이
전체 오페라 하우스 공연일정의 절반 정도를 차지하기 때문에 발레 애호가들
의 관심을 모으는 극장이기도 하며, 2,098석 규모의 대극장이다.

코번트 가든에 처음 극장이 들어선 것은 1732년 12월 7일. 1728년 배우 겸 매
니저인 존 리치(John Rich)가 작곡가 존 게이(John Gay)에게 ‘거지 오페라’를
위촉해 무대에 올렸고 그 공연 수익금으로 극장을 지은 것이다. 에드워드 셰퍼
드가 설계한 Theatre Royal Covent Garden이다. 1735년부터 1759년 사이에
헨델의 오페라가 상연됐던 곳이다. 1743년 ‘메시아’의 런던 초연도 이곳에서
이뤄졌다. 하지만 이 극장은 1808년 화재로 소실됐다. 1809년 9월 18일 로버
트 스머크가 설계한 두 번째 극장도 불에 타고 말았다. 개관 당시 갤러리석에
서 발생한 소동 때문에 ‘맥베스’의 대사가 한 마디도 들리지 않을 정도였다. 티
켓 가격이 비싸다며  “Old Prices”를 외치면서 벌인 소동은 무려 61일간 계속
되었다. 이것이 저 유명한 ‘옛 가격 소동, Old Price Riots’이다. 건축비 18만 파
운드를 충당하기 위해 갤러리석 티켓 값을 인상했기 때문이다. 극장은 결국 청
중의 요구를 들어주었다.

에드워드 배리가 지은 현재의 극장은 1858년 5월 15일 마이어베어의 ‘위그노
교도’로 개막했다. 에드워드 배리는 웨스트민스터 사원과 영국 국회의사당을
지은 찰스 배리의 아들이다. 처음엔 로비에서 객석까지 찾아 들어가기 위해 오
랜 시간이 걸렸다. 개관 당시 이름은 ‘Royal Italian Opera House’였다. 이름에
서 보듯 처음부터 이탈리아 오페라에 대한 애착이 많았다. 이탈리아 작품은 물
론이고 독일, 프랑스, 러시아 등 원작과는 상관없이 모든 작품은 이탈리아어
로 번역돼 불려졌다. 이같은 관습은 1888년 말러 지휘로 바그너의 ‘니벨룽의
반지’ 4부작 전곡이 독일어로 상연된 이후 1892년에 없어졌다. 그때부터
'Royal Opera House'로 불리면서 원어로 오페라를 상연하고 있다.

제1차 세계대전 때는 가구 창고로 사용됐다. 1919년 다시 문을 열었지만 오페
라, 발레뿐만 아니라 카바레 공연과 영화 상영을 위해 사용됐다. 1939년에 제2
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장교들을 위한 ‘메카 댄스홀’로 바뀌었다.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 음악 출판사 부지 앤 혹스의 노력으로 음악인들이 극장 운영권
을 되찾았다. 새들러스 웰스 발레단이 상주단체로 들어왔고 코번트가든 오페
라단은 1946년에 창단되었다. 1968년 영국 왕실의 배려로 ‘로열 오페라단’으
로 이름을 바꾸었다.

1950년대부터 오페라 티켓을 구입하기 위한 관객들이 장사진을 이뤘다. 각 시
즌의 8주간 간격으로 오전 8시까지 줄을 선 사람에 한해 오전 10시부터 티켓
을 발매했다. 그러다보니 전날 밤부터 대기하는 관객도 많았다.

1996년 여름부터 2억 1400만 파운드의 예산을 들여 대대적인 개보수 공사에
돌입했다. 이 공사로 객석은 입석 65석을 포함해 2,166석에서 2,257석으로 늘
어났고 TV 생중계 시설도 갖췄다. 에어컨 시설을 처음으로 갖췄고 잔향시간도
약간 늘렸다. 무대기계나 전기, 무대 장치에서 나오는 소음도 줄였다. 높이
38m짜리 무대 타워도 새로 설치했다. 재개관과 함께 입장료도 대폭 낮췄다.
하루 종일 공연장을 실험과 교육의 장으로 개방해 시민들에게 친숙하게 다가
가고 있다. 30개의 무대 세트를 동시에 보관할 수 있는 백스테이지 설비 덕분
에 마티니(낮공연)도 가능하게 됐다. 420석짜리 스튜디오 극장에서는 점심 시
간을 이용한 무료 공연이 열린다. 발레 연습실을 겸한 200석짜리 스튜디오에
서도 실내악, 독창회 등 소규모 음악회와 워크숍이 열린다.

ROH의 메인 로비는 ‘플로랄 홀’이다. 이 역시 에드워드 배리가 설계했다. 빅토
리아 왕조 풍의 반원형의 유리와 철제 빔으로 된 건물인데 1859년 문을 열었
다. 밤에는 댄스홀, 낮에는 꽃시장으로 쓰였던 런던의 명소였다. 댄스홀로 쓰
기엔 음향이 부적합해 결국 과일과 채소 창고로 사용돼왔다. 1956년 화재로
방치된 후 ROH의 무대 세트 창고로 써왔다. 그러나 Gollins, Melvin, Ward의 설
계로 로비로 개조되었고, 샴페인과 음료를 즐길 수 있는 대형 바가 들어섰고
아래 층에는 매표소, 커피숍, 물품 보관소가 자리잡았다.

◆공식 명칭: Royal Opera House (별칭은 '코번트 가든' '더 가든')
◆개관: 1858년(재개관 1999년 12월 6일)
◆개막 공연: 마이어베어 ‘위그노 교도’ (재개관: 베르디‘팔슈타프’)
◆객석수: 2268석(입석 105석 포함), 린버리 스튜디오 시어터 420석, 발레 스튜
디오 200석 입석 65석을 포함해, 2천1백66석에서 2천2백57석으로
◆건축가: 1858년 E M Barry (개보수 1999년 제레미 딕슨)
◆상주단체: 로열 오페라단, 로열 발레단, 로열 오페라 하우스 오케스트라, 로
열 오페라 합창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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