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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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곽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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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 까를로 오페라 극장(Teatro di San Carlo, 나폴리)



◈ 유투브 영상
산 까를로 오페라 극장 소개 영상
http://youtu.be/4OftMJHAGys

부르봉 왕조 시대엔 <산 까를로 왕립 극장, Real Teatro di San Carlo>이라고
불리다가 현대에 와서는 산 까를로 오페라 극장이라고 불려지며, 로마 오페라
극장, 라 스칼라와 더불어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크고 화려한 극장이다. 나폴리
왕국의 궁전으로 이어지는 플레비시토 광장 중앙부에 자리 잡고 있다. 1737년에
개관한 이래 밀라노의 라 스칼라, 베네치아의 라 페니체 극장과 더불어 이탈리아
오페라의 역사가 기록된 유서 깊은 현장이기도 하다.  

◈ 역사
부르봉 왕조에 속한 나폴리의 왕 까를로 7세에 의해서 이 극장이 건설되었다.
까를로 7세는 1621년에 지어진 산 바르톨로메오 극장을 대신할만한 크고 화려
한 오페라 극장을 세우기로 결심하고 이 극장을 건설했다고 한다. 실제로 극장
이 세워진 이후 명실상부한 이탈리아 오페라의 중심적 역할을 담당했다.

1737년 11월 4일, 왕의 명명축일에 맞춰서 개관했고, 개관 작품은 도메니코 사
로(Domenico Sarro)의 <스칠로의 아킬레스, Achille in Sciro>였다. 지휘는 작
곡자 자신이 했고, 막간엔 2개의 발레음악도 연주되었다.

18세기 후반, 글룩(Christoph Willibald Gluck)이 초청되어 그의 오페라 <티토
의 자비, Clemenza di Tito>를 지휘했고, 요한 크리스티안 바흐는 1761년과
1762년에 이 극장에서 자신의 오페라 <우티카의 카토네, Catone in Utica>와
Alessandro nell'Indie를 지휘했다.

◈ 극장의 구조
설계는 군대에서 설계를 하던 메드라노(Giovanni Antonio Medrano)와 산 바르
톨로메오 극장의 감독인 안젤로 카라살레(Angelo Carasale)가 했다. 홀은 18.6
미터 길이에 22,5 미터의 폭이며, 로열 박스 석, 184개의 박스 석, 일반석 1,379
석, 스탠딩 룸 등 모두 3천명을 수용하는 매우 큰 규모로 설계되었다. 이러한
극장을 두고 1817년에 바이올리니스트 루이 스포어(Louis Spohr)는 “발레, 판
토마임, 기병대나 보병이 등장하는 군대행사 등은 음향에 전혀 문제가 없지만,
오페라를 공연하기에는 너무 크다. 큰 음량을 내는 아자벨라 코르브란
(Isabella Colbran, 산 까를로의 프리마 돈나로 나중에 로시니의 부인이 되는 가
수)이나 노짜리(Nozzari), 베네데티(Benedetti) 정도면 모를까 다른 가수들의
소리는 전달에 문제가 있다”고 진단하는 리뷰를 발표했다.  

극장 내부는 화려한 금장식과 푸른 빛깔의 가구를 배치해서 호화로움의 극치
를 보여준다. 금색과 푸른색은 부르봉 왕조의 상징적 컬러이기도 했다.

◈ 재건축
1816년에 화재로 극장이 전소했다. 극히 일부의 벽면만이 남았다. 당시의 왕 페
르디난트 4세는 재건축을 명령했고, 안토니오 니콜리니(Antonio Niccolini)가
설계를 맡았다. 호화로운 로열박스에서부터 6층에 걸친 넓은 관람석 등 찬란
한 건축양식이 장관이고, 중앙부 천장엔 안토니오, 주제페 에 지오반니 캄마라
노가 그린 아폴로가 미네르바에게 유명시인을 소개하는 프레스코화가 매우 아
름답다.

1817년 2월 12일에 요한 시몬 마일(Johann Simon Mayr)의 오페라 <파르테노
페의 꿈, Il sogno di Partenope>을 올리면서 재개관했다. 1,444석의 말편자형
좌석이 33.5 미터의 넓이와 30미터의 높이로 전개되고, 무대는 무려 34.5미터
의 깊이를 갖고 있다. 이같은 규모의 극장은 당시 유럽 어디에도 없었다.

1844년에 니콜리니의 아들 파우스토와 프란체스코 마리아 델 지우디체에 의해
서 실내장식의 대대적인 변경이 시행되었다. 이번엔 금색과 붉은색이 도입되었
다. 이어서 1872년엔 베르디의 의견을 좇아 무대에 전기장치를 시설했다. 이후
에도 부분적인 개보수 작업들이 시행다가 1943년에 연합군의 포격으로 일부
가 파손됐지만 긴급히 복구되어 1943년 12월 16일에 다시 문을 열었다.

2009년 2월 15일엔 또 다시 대대적인 개보수 끝에 재개관을 하며 성대한 기념
공연을 펼쳤다. 이탈리아 대통령 등 수많은 귀빈들이 참석한 이 공연에서 리카
르도 무티의 지휘로 모차르트의 <주피터 교향곡>과 베르디의 <스타바트 마테
르>등이 연주되었다.

◈ 나폴리 오페라의 황금시대
18세기에 왕성한 활동을 했던 나폴리 악파의 뮤지션들 - 페오(Feo), 포르폴라
(Porpora), 피치니, 빈치, 안포시, 듀란테, 조멜리, 치마로자, 파이지엘로, 친가
렐리 -이 이 극장을 중심으로 활약했다. 그로써 나폴리는 유럽 음악의 서울이
되었고, 외국의 수많은 작곡가들이 자신의 작품이 이 극장에서 상연되기를 간
절하게 소망했다. 독일 핫세(Hasse, 그의 작품이 이 극장에서 상연된 것을 계
기로 아예 나폴리로 거주지를 옮겼다), 하이든, 요한 크리스티안 바흐, 글룩 등
이 외국인으로서 이 극장에서 그들의 작품이 상연되거나 연주된 작곡가들이
다.

가수들 역시 이 극장 무대에 서는 것을 최상의 목표로 삼았다. 산 까를로 오페
라 무대에 서면 그것은 곧 최고의 오페라 가수라는 공인을 받는 일이었기 때문
이다. 특히 카스트라토 파리넬리, 지치엘로, 지오반니 만추올리, 지안 바티스
타 벨루티, 카파렐리 등이 이 무대를 통해서 대스타가 되었고, 그 가운데 파리
넬리와 지치엘로는 나폴리 음악원 출신이었다.

◈ 역대 상주 작곡가
▶ 1815-1822 로시니, 로열 오페라 하우스와 산 까를로 오페라 극장의 음악감
독을 겸했다. 이 자리에 있는 기간에 10곡의 오페라를 썼다.
▶ 지오반니 파치니(Giovanni Pacini)
▶ 도니제티(Gaetano Donizetti), 1822-1838, 16곡의 오페라를 이 극장을 위해
서 썼다. 그 가운데 하나가 <람메르무어의 루치아>이다.
▶ 벨리니(Vincenzo Bellini)
▶ 베르디, 1845년에 <산 보니파치오의 오베르토 백작>을 이 극장에서 상연했
고, 그후 <알치라> <루이자 밀러> <가면무도회> 등을 이 극장에서 초연했다.
▶ 19세기 말엔 푸치니, 마스카니 등의 오페라가 이 극장에서 초연되었다.  

◈ 1993년 이래 역대 수석지휘자
Salvatore Accardo (1993–1995), Gabriele Ferro (1999–2004), Gary Bertini (2004–2005)
Jeffrey Tate (2005–2010), Nicola Luisotti (2012– )
Principal guest conductor / Maurizio Benini (2010-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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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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