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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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곽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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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런던 로열 오페라 하우스(Royal Opera House)



◈ 유투브 영상
로열 오페라 하우스 소개 영상
http://www.youtube.com/watch?v=vaBKWi3qoRU&feature=player_profilepage

로열 오페라 하우스는 17세기부터 1974년까지 영국 최대의 청과물 시장이 있었던
런던 중심가 웨스트민스터의 코번트 가든(Covent Garden)에 세워진 건물로 오페라
와 발레 등 대형 공연이 이루어지고 있다. 흔히 <코번트 가든>이라는 애칭으로도
불려지는 세계 오페라 공연의 또 하나의 중심적인 극장이다. 로열 오페라, 로열 발
레, 로열 오페라 하우스 오케스트라가 상주하고 있는 이 극장은 1732년에 세워졌
고, 첫 개관 이래 백 여 년 동안은 다양한 형태의 공연물을 취급한 왕립 극장
(Theatre Royal)이었다. 발레가 처음 공연된 것은 1734년이었고, 이듬 해에 헨델의
첫 오페라 시즌이 여기서 시작되면서 오페라 공연이 주요 장르로 자리를 잡게 되었
다. 헨델의 오라토리오들도 이 극장에서 초연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이 극장은 두 번의 끔직한 화재를 당했다. 1808년과 1857년의 일이었다. 현
재 우리가 보는 건물의 전면, 로비, 오디토리움은 1858년 이후에 재건된 것이고, 그
밖의 대부분의 시설과 인테리어는 1990년대에 행해진 지속적인 개보수의 결과물이
다. 총 좌석의 수효는 2,256석이고, 4개층의 박스석과 발코니, 원형 갤러리로 설계
되었다. 무대는 12.20미터의 폭과 14.80미터의 높이이다.

◈ 윌리엄 데브넌트 특허(The Davenant Patent)
스코틀랜드, 잉글랜드, 아일랜드를 통일하고 대영제국의 토대를 굳건히 했던 찰스2
세는 공연예술의 활성화와 전문성의 고양을 위해 1660년에 두 명의 전문가에게 극
장을 세우고 그것을 운영하는 특권을 주는 특허장을 내어 준다. 윌리엄 데브넌트
(William Davenant)와 토마스 킬리그루(Thomas Killigrew)가 그들이다. 그 중에 데브
넌트(1606-1668)는 시인이자 극작가로 유명한 인물이었다. 그는 듀크社T(he
Duke's Company)라는 흥행회사를 세웠다. 제1차 대전이 발발하기 이전까지는 특허
장이 듀크사의 소유였다가 대전 직후 특허장이 워싱턴 DC의 아메리칸 대학교 도서
관에 팔려가게 되었다.

◈ 첫 번째 극장
1728년, 듀크 컴퍼니의 배우이자 메니저로 일하던 존 리치(John Rich)가 존 게이
(John Gay)의 <거지 오페라, Beggar's Opera>의 흥행을 맡은 결과 큰 성공을 거두
고 왕립극장을 세울 자금을 확보하게 되었다. 에드워드 세퍼드(Edward Shepherd)
가 설계를 맡았고, 극장의 건립지를 코번트 가든으로 정했다. 그 결과 1732년 12월
7일에 윌리엄 콘그레브(William Congreve)의 <세계의 길, The Way of the World>
을 무대에 올리면서 개관했다.

처음 백여년간은 찰스2세가 내려준 특허장에 명시된 데로 오페라와 연극을 주로 공
연했다. 당시 런던에서 연극을 공연할 수 있는 회사는 코번트 가든과 드루리레인
(Drury Lane) 컴퍼니 등 두 개뿐이었다. 따라서 둘 사이엔 치열한 경쟁이 불가피했
다. 리치가 공연 레퍼토리에 판토마임을 넣은 것도 이러한 사정이 있었기 때문이었
다. 판토마임 공연은 1939년까지 계속되었다.  

1734년에 처음으로 발레가 무대에 올려졌다. 마리 잘레(Marie Salle)의 <피그말리온
>이라는 작품이었다. 그 무렵 헨델은 오페라단의 음악감독을 맡고 있으면서 오페라
에 모든 에너지를 퍼붓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오페라는 1735년에 가서야 비로소 무
대에 올릴 수 있었고, 이후 헨델은 <알치나> <아틀란타>등의 오페라를 잇달아서
상연했다. 1743년엔 메시아의 초연도 이 극장에서 했고, 그 공연이 대성공을 거두면
서 그의 오라토리오 시대가 활짝 열리게 되었고 그가 세상을 떠나는 1759년까지 거
의 모든 작품을 이 무대에 올렸다. 헨델은 자신이 애용하던 오르간을 존 리치에게
유산으로 주었고, 리치는 그 오르간을 무대 뒤의 중심부에 배치했다. 그러나 1808
년 9월 20일에 발생한 대형화재로 귀중한 극장 비품들이 소실되고 말았다. 1792년
엔 헨리 홀랜드(Henry Holland)에 의해서 오디토리움의 개보수 작업이 진행되어 예
정보다 더 깊고 넓게 확장했다.  

◈ 두 번째 극장
화재로 극장이 소실되고서 3개월 후인 1808년 12월에 재건축이 시작되었다. 설계
는 로버트 스말크(Robert Smirke)가 맡았고, 1809년 9월 18일에 <맥베스>를 뮤지
컬 엔터테인먼트 형태로 변형시킨 작품을 올리면서 재개관했다. 그러나 이때부터
티켓 요금이 대폭 인상되었다. 재건축에 소요된 막대한 비용과 베드포드 공작에게
지불하는 토지임대료 등 눈덩이처럼 불어난 재정을 메꾸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다.
그러나 청중들이 들고 일어났다. 이른바 <옛날요금 소동, Old Price Riots>이라고
불려지는 약 2개월에 걸쳐 계속된 청중들의 집단적인 항의 소동이었다. 결국 극장
은 요금을 환원시킬 수밖에 없었다.

그 무렵, 런던의 오락꺼리는 아주 다양한 형태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물론 오페라
와 발레가 여전히 중심을 잡고 있었지만 어릿광대, 세익스피어 전문배우, 어린이를
상대로하는 전문배우, 판토마임 배우 등등 다양한 케릭터의 엔터테이너들이 무대
에 등장했던 시대로 옮겨가고 있었다. 세익스피어 배우 에드문드 킨(Edmund Kean)
은 공연 도중 쓰러져서 두 달 후에 세상을 떠나기도 했다.

◈ 세 번째 극장
1856년 3월 5일, 또 화재가 발생해서 극장이 불탔다. 이번엔 에드워드 베리(Edward
Middleton Barry)가 설계하고 루카스 브라더스(Lucas Brothers)가 공사를 맡았다.
1858년 5월 15일에 재개관했다. 재개관 작품은 마이어베어의 오페라 <위그노 교
도, Les Huguenots>였다. 이때 극장의 이름이 영국 왕실의 배려로 Royal Opera
House(ROH)로 변경되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독일, 프랑스 오페라가 본격적으
로 무대에 오르기 시작했고, 겨울과 여름의 오페라 시즌 이외엔 판토마임, 리사이
틀, 심지어는 정치집회도 열린다. 제1차대전 때는 영국정부에 접수되어서 가구보관
소로 이용되었고, 2차대전 때는 댄스홀로 이용되었다. 전후에도 계속해서 무도장으
로 사용한다는 계획이었지만, 음악 출판사 <부지 앤 혹스, Boosey & Hawkes>의 노
력으로 음악인들이 극장 운영권을 되찾았다. 새들러스 웰스 발레단이 상주단체로
들어왔고 코번트 가든 오페라단은 1946년에 창단되었다. 우여곡절 끝에 The
Covent Garden Opera Trust가 발족되고, 그들에 의해서 이 극장이 런던의 오페라와
발레 공연의 센터가 되어야 한다는 여론을 일으켜 1946년 2월 20일에 <잠자는 숲속
의 미녀>를 무대에 올리면서 극장으로서의 문을 열었다. 재개관 후 처음 무대에 오
른 작품은 비제의 <카르멘>이었다.

◈ 재건축(1980년대-1990년대)
1980년대에 원형객석을 대대적으로 보수하고, 1990년대엔 극장의 후면이 확장되었
다. 아울러 2개의 발레 스튜디오, 사무실, 합창 연습실, 오페라 연습실, 분장실이 새
로 건축되었다. 1996년 여름부터 2억 1400만 파운드의 예산을 들여 대대적인 개보
수 공사에 돌입했다. 이 공사로 객석은 입석 65석을 포함해 2,166석에서 2,257석으
로 늘어났고 TV 생중계 시설도 갖췄다. 에어컨 시설을 갖췄고 잔향시간도 약간 늘렸
다. 무대기계나 전기, 무대 장치에서 나오는 소음도 줄였다. 높이 38m짜리 무대 타
워도 새로 설치했다. 재개관과 함께 입장료도 대폭 낮췄다. 하루 종일 공연장을 실
험과 교육의 장으로 개방해 시민들에게 친숙하게 다가가고 있다. 30개의 무대 세트
를 동시에 보관할 수 있는 백스테이지 설비 덕분에 마티니(낮공연)도 가능하게 됐
다. 420석짜리 스튜디오 극장에서는 점심시간을 이용한 무료 공연이 열린다. 발레
연습실을 겸한 200석짜리 스튜디오에서도 실내악, 독창회 등 소규모 음악회와 워크
숍이 열린다.

ROH의 메인 로비는 ‘플로랄 홀’이다. 이 역시 에드워드 배리가 설계했다. 빅토리아
왕조 풍의 반원형의 유리와 철제 빔으로 된 건물인데 1859년에 문을 열었다. 밤에
는 댄스홀, 낮에는 꽃시장으로 쓰였던 런던의 명소였다. 댄스홀로 쓰기엔 음향이 부
적합해 결국 과일과 채소 창고로 사용돼왔다. 1956년 화재로 방치된 후 ROH의 무
대 세트 창고로 써왔다. Gollins, Melvin, Ward의 설계로 로비로 개조했다. 샴페인과
음료를 즐길 수 있는 대형 바가 들어섰고 아래 층에는 매표소, 커피숍, 물품 보관소
가 자리 잡았다.

◈ 출처 / 위키피디어(번역/곽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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