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이야기

0
 145   8   3
  View Articles

Name  
   곽근수 
File #1  
   800px_Deutsche_Oper_Berlin_1[1].jpg (50.5 KB)   Download : 11
File #2  
   deutscheoper2[1].jpg (83.0 KB)   Download : 41
Subject  
   베를린 도이치 오페라(Deutsche Oper Berlin)



◈ 유투브 영상
베를린 도이치 오페라의 과거와 현재를 축약해서 보여주는 영상.
http://youtu.be/0D1U-qEGDHQ

<베를린 도이치 오페라>는 오페라단의 이름이고, 이들이 상주하고 있는 오페
라 극장은 독일에서 두 번째로 큰 건물이자 오페라 하우스로 베를린 샬로텐부
르크 지역에 위치한다. 이 극장은 베를린 국립 발레단의 안방이기도 하다.
  
◈ 역사
과거 독일 제국시절(1701-1918년)에 베를린에서 가장 부유한 지역으로 알려
진 샬로텐부르크(Charlottenburg)에 오페라 하우스를 짓기로 결정하고 하인리
히 실링(Heinrich Seeling)이 설계를 담당한 가운데 1911년부터 짓기 시작해
서 1912년 11월 7일에 베토벤의 오페라 <피델리오>를 무대에 올리면서 개관
했다. 지휘는 이그나츠 바그할터(Ignatz Waghalter)였다. 그러나 1920년에 시
행된 <그레이트 베를린 계획>에 따라 이 지역이 재개발되면서 베를린 시립
오페라로 이름이 변경되었다.

나치가 정권을 잡으면서 1933년에 실시된 <권력의 압수, Machtergreifung>
정책에 의해서 요제프 괴벨스(Joseph Goebbels)가 장관으로 있었던 <민중
계몽과 선전부>의 통제를 받기 시작했다. 괴벨스는 당시 프로이센의 장관이
면서 베를린 국립 오페라를 장악하고 있던 헤르만 괴링(Hermann Göring)을
항상 라이벌로 생각했고 그 반사작용인지 이 극장의 이름을 시립극장으로 바
꿨다. 1935년에 리모델링 공사를 해서 2,300석이었던 객석을 2,098석으로 줄
였다. 2차대전 이전에 총지배인을 맡았던 카를 에버트(Carl Ebert)는 나치의
음악정책을 반대하는 입장이었고, 결국은 독일을 떠나 영국으로 이민해서 <
그린드본 오페라 페스티발>을 만들었고, 후임엔 막스 폰 쉴링(Max von
Schillings)이 임명되었다.

그는 <진정한 독일적 개성>을 운영방침으로 내걸었고, 이에 반발한 지휘자
프릿츠 스티드리(Fritz Stiedry)와 테너 알렉산더 키프니스(Alexander Kipnis)
는 에버트를 따라서 영국으로 이민했다. 전쟁이 터졌고, 이 극장은 1945년 11
월 23일에 영국 공군전폭기에 의해서 폭탄을 맞아 무너지고 말았다. 그러나
종전이 될 때까지 오페라는 미테(Mitte)에 있는 에드미랄 궁에서 계속되었고,
전쟁이 끝나자 에버트가 다시 극장으로 돌아왔다.

오랫동안 재건축이 미뤄지다가 프릿츠 보르네만(Fritz Bornemann)의 설계로
1961년 9월 24일에 모차르트의 <돈 죠반니>를 무대에 올리면서 재개관을 했
고, 이때 오늘의 이름인 베를린 도이치 오페라가 되었다.

◈ 이도메네오 논쟁 사건
2006년 9월, 이 오페라의 총감독 크리스텐 하름스(Kirsten Harms)는 한스 노
이엔펠스(Hans Neuenfels)가 연출한 모차르트의 오페라 <이도메네오,
Idomeneo>의 공연을 취소시켰다. 이 작품의 마지막 장면에서 연출자는 원작
엔 없는 예수와 석가모니와 무하마드, 포세이돈의 잘린 목을 들고 이도메네오
가 나타나는 장면을 넣었고, 이것이 극장의 보안과 안전에 위해 요소가 될 수
있다는 것이 공연취소의 사유였다. 이런 결정이 내려지자 표현의 자유를 해치
는 결정이라는 비난이 봇물을 이루게 되었다.

일이 커지자 독일 내무장관이 이슬람단체와 협의에 들어갔고, 이슬람 단체는
이 연출 그대로 공연하는데 대해서 이견이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하게 되었다.
메르켈 총리도 “공포에서 비롯된 자기검열은 용납될 수 없다”며 공연을 해야
된다고 강조했다. 다만 독일 내의 터키 커뮤니티는 “우리는 종교에 기대서 예
술을 만들지 않는다. 우리가 중세로 돌아간 셈이다”며 연출에 대해 비판했을
정도였다. 결국 이 작품은 2007년 7월에 공연되었다. 그러나 재공연에 대한 계
약은 없었다.

◈ 역대 음악총감독
브루노 발터(Bruno Walter), 쿠르트 아들러(Kurt Adler), 페렌츠 프리차이
(Ferenc Fricsay), 로린 마젤(Lorin Maazel), 게르트 알브레히트(Gerd
Albrecht), 헤수스 로페즈 코보스(Jesús López-Cobos), 크리스티안 틸레만
(Christian Thielemann). 레나토 팔룸보(Renato Palumbo), 도널드 루니클스
(Donald Runnicles)

◈ 역대 음악감독
Ignatz Waghalter (1912–1923)
Bruno Walter (1925–1929)
Kurt Adler, resident conductor (1932–1933)
Artur Rother (1935–1943, 1953–1958)
Karl Dammer (1937–1943)
Ferenc Fricsay (1949–1952)
Richard Kraus (1954–1961)
Heinrich Hollreiser, chief conductor (1961–1964)
Lorin Maazel (1965–1971)
Gerd Albrecht, resident conductor (1972–74)
Jesús López-Cobos (1981–1990)
Giuseppe Sinopoli (1990)
Rafael Frühbeck de Burgos (1992–1997)
Christian Thielemann (1997–2004)
Renato Palumbo (2006–2008)
Donald Runnicles (2009–present)

2001년 4월, 이탈리아 출신의 명지휘자 주제페 시노폴리(Giuseppe Sinopoli)
가 베르디의 <아이다>를 지휘하던 중에 포디움에서 세상을 떠난 곳이 이 극
장이기도 하다. 당시 그의 나이는 54세 였다.

** 출처 / 위키피디어(번역 및 보완원고 곽근수)


Name
Memo
Password
 
     
Prev
   드레스덴 국립 오페라 하우스(젬퍼 오퍼, Semperoper)

곽근수
Next
   마드리드 왕립 극장(Teatro Real de Madrid)

곽근수


Copyright 1999-2020 Zeroboard / skin by Zety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