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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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곽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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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페라의 역사


  

◈ 오페라의 탄생 / 이탈리아 피렌체의 바르디바르디(G. Bardi 1534-1612)백작의 궁정
◈ 때 / 1597년, 르네상스의 말기(末期)

오페라의 역사

오페라의 어원은 라틴어 operis의 복수형인 opus에서 유래되었고, ‘일’, ‘작품’이라는 뜻을 가
진 ‘opera'라는 이탈리아어이다.

음악극에 관심을 갖고 있었던 시인 오타비오 리누치니(Ottavio  Rinuccini, 1563-1621)와 작
곡가 야코포 페리(Jacopo Peri, 1561–1633), 캇치니(Giulio Caccini, 1550경~1618)등이 르네
상스의 발원지인 이탈리아의 피렌체에서 카메라타(Camerata)라는 팀을 만들어 1597년에 그
리스 신화에서 취재한 대본으로 <다프네Dafne>라는 음악극을 만들었다. 이것이 서양음악사상
최초의 오페라 작품이다. 그러나 이 곡은 악보가 전해지지 않고 있으며, 악보가 전해지는 가
장 오래된 오페라는 1600년에 공연된 <에우리디체 Euridice>이다. 제작자는 다프네와 같다.
최초의 공연용 오페라 <에우리디체>는 1600년 10월에 열린 메디치 집안의 딸 마리아와 프랑
스 왕 앙리 4세의 결혼식을 축하하기 위해 이 궁전에서 공연되었다. 이 두 작품의 성공으로
오페라는 삽시간에 전 이탈리아로 번져 나갔고 나중엔 중심무대가 피렌체에서 베네치아로 옮
겨진다.
■ 카메라타 : 피렌체의 예술 후원자였던 백작 조반니 데 바르디(Count Giovanni de’ Bardi,
1534-1612)의 살롱에 모이던 학자·시인·음악가들의 모임을 말한다. 방을 의미하는 ‘camera’
에서 유래한 명칭으로 백작의 이름을 따 <바르디 서클>이라고도 한다. 오페라의 창조를 지향
한 이들 피렌체의 문인 귀족 모임인 카메라타의 중심인물에 작곡가 야코포 페리(Jacopo Peri)
와 에밀리오 데 카발리에리(Emilio de Cavalieri), 줄리오 카치니(Giulio Caccini), 시인 오타
비오 리누치니(Ottavio Rinuccini), 가수이자 류트 연주자인 빈센초 갈릴레이 등이 있었다. 이
들은 막간극의 무절제함에 반대하고 좀더 순수하고 절제된 표현방식으로 고대 그리스의 비극
을 재현하기를 열망했는데, 특히 갈릴레이는 오페라의 필수 요소인 레치타티보를 고안해내는
데 크게 기여했다. 카메라타 회원들의 다각적인 노력은 모노디(monody:단선음악)를 탄생시켰
다. 단선 양식의 음악은 17세기 초의 세속음악과 종교음악을 망라한 모든 음악에 급속도로 침
투하여, 1598년 사실상 세계 최초의 오페라인 <다프네 Daphne>가 상연되었다

18세기가 되자 오페라는 나폴리에서 번영하게 됐고 스카를랏티(A. Scarlatti), 페르골레지
(Pergolesi)같은 뛰어난 작곡가가 나타났다. 특히 페르골레지의 <하녀 마님>은 역사적 명곡으
로 기록되고 있다. 로마에서도 번성했으나 교황청의 세속음악 박해 정책 때문에 많은 어려움
을 겪었다. 베네치아에선 오페라의 악기, 나폴리에선 벨 칸토(Bel Canto) 창법, 로마에선 합창
의 표현이 발달됐다. 오페라는 다른 나라에도 옮겨져서 프랑스의 륄리(Lully)와 라모
(Rameau), 영국의 퍼셀(H. Purcell), 독일의 쉬츠(H. Sch tz)등 대작곡가를 낳았다.

오페라 생성의 초기엔 연극적 대사와 노래가 섞인 형태를 지니다가 점차 음악의 비중이 늘어
나면서 연극적 대사는 사라지게 되는 <오페라 세리아 opera seria>가 대세를 이루게 된다.
이 용어는 정가극(正歌劇)이라 번역되기도 하는데, 작품의 제재를 신화나 영웅의 전설에서 구
한 서정적 비극이고, 음악적으로는 중창이나 합창을 포함하기는 하지만 아리아에 중점을 두고
그것을 드라마틱한 레치타티보로 접속해 간다는 방법이 취해진다. 때문에 무엇보다도 소리의
아름다움을 돋보이게 하려는 경향이 뚜렷해져서 벨 칸토 창법이라든가 다 카포 아리아를 낳게
된다. 특히 알레산드로 스카를라티(Alessandro Scarlatti, 1660-1725)가 창안한 다 카포 아
리아는 주역 성악가의 화려한 테크닉을 돋보이게 하는 것으로 처음엔 나폴리를 중심으로 인기
끌다가 곧 이탈리아 전역으로 퍼져서 한동안 이탈리아 오페라의 가장 뚜렷한 특징으로 자리를
잡았다.

서정적인 비극 오페라 세리아와 상대되는 개념으로 오페라 부파(opera buffa)가 있다. 18세기
에 발생한 희극적 오페라를 지칭하는 용어인데, 이탈리아어로 쓰여진 가벼운 내용의 희극적인
오페라를 가리킨다. 초기의 베네치아 오페라에서는 오페라 세리아 막간에 분위기 전환을 위한
익살스러운 내용의 짧은 연극을 끼어 넣고 그것을 <인테르메초 Intermezzo>라고 불렀는데,
이것이 대중들의 인기를 얻게 되자 점차 독립된 오페라가 되어 후일 이것을 <오페라 부파>라
고 불렀다. 제재(題材)는 서민적인 일상생활의 유머를 다루고 있고, 음악은 현악합주의 오케스
트라가 반주하는 독창 ·중창이 중심이다. 서창(叙唱) 부분에서는 쳄발로 등의 건반악기가 반주
를 맡는 것이 특징이다.

이후 오페라는 18세기 전반기인 바로크 후기에 와서 독일 출신 작곡가인 글루크에 의해 양식
이 혁신적으로 변한다. 더 이상 주역 가수를 위해 오페라가 아니라 작품과 드라마의 진행이
중심이 되었다. 글루크(Christoph Willibald Gluck, 1714-1787)의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
체>는 오페라 개혁에 있어 첫 작품이었다.

글루크와 대본작가 칼차비지(Ranieri de' Calzabigi, 1714-1795)는 “음악과 극이 균형 있는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오페라의 개혁의도를 담은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체(Orfeo ed
Euridice)>를 1762년 10월 빈의 부르크 궁정 극장에서 초연했다. 1600년에 공연된 역사상 최
초의 오페라가 <에우리디체>였고, 그로부터 7년 후인 1607년에 오늘날 진정한 오페라의 효시
로 인정받고 있는 몬테베르디(Claudio Monteverdi, 1567-1643)의 오페라가 역시 <오르페오>
였던 점을 기억한다면 주역가수의 테크닉에 목을 매었던 폐단에서 벗어나 오페라의 본질을 추
구하며 초심으로 돌아가고자 했던 글루크와 칼차비지가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체의 이야기를 작
품의 소재로 선택하고 그런 제목을 붙인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닐 것이다. 글루크와 칼차비지는
오페라 <알체스테 Alceste>(1767)의 서문에서 오페라 개혁의 정신을 다음과 같이 명확히 표
명하였다. “오페라에서 음악은 본래의 임무에 충실해야 한다. 음악은 극을 방해하지 말아야
하며 극의 내용(가사)과 음악의 표현은 일치해야 한다.” 이러한 그의 주장은 모차르트(Mozart)
와 살리에리(Salieri)는 물론 베르디(Verdi)와 바그너(Wagner) 등 후대의 오페라 작곡가들에게
도 큰 영향을 끼쳤다. 글루크는 이후 <아울리스의 이피게니아>등의 작품에서도 그의 개혁 오
페라의 틀을 보여 주었다.

글루크의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체>는 1774년, 프랑스어 대본으로 프랑스인들의 취향에 맞게
음악을 손질하고 발레를 추가하여 편곡되어 파리에서도 큰 인기를 끌었고 글루크가 파리에서
활동하는 발판이 되었다. 파리에서 활동하기 시작한 초기엔 당시 파리 오페라계의 거불이었던
이탈리아 작곡가 니콜로 피친니(Niccolo Piccinni, 1728-1800)의 전통적인 이탈리아 스타일
의 오페라를 지지하는 세력들과 글루크의 개혁적 작품을 지지하는 세력들 사이에서 이른바
<글루크-피친니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18세기 후반이 되면서 독일에서는 프랑스의 오페라 코미크와 영국의 발라드 오페라의 영향으
로 독일어로 서로 주고받는 대사에 서정적인 노래가 곁든 민속적인 오페라 <징슈필
Singspiel>이 발생한다. 1743년에 영국의 발라드 오페라 <악마의 복수>가 독일어로 번역, 상
연된 데에 자극받아 요한 아담 힐러(Johann Adam Hiller: 1728-1804)가 대본작가인 크리스
티안 바이세(Christian Felix Weiße, 1726–1804)의 대본으로 1770년에 <사냥 Die Jagd>을
작곡하면서 새로운 징슈필의 형태를 성립시켰다. 그들이 대표하는 북부독일의 징슈필은 전원
적이고 서정적, 공상적인 희극의 형태로서 민요 같은 단순한 멜로디의 음악을 지향했다. 힐러
이후엔 펠릭스 벤다(Georg Anton Benda, 1722–1795)가 대사에 관현악을 붙인 멜로 드라마
형식으로 <낙소스의 아리아도네>를 작곡하였다. 이 형태가 뒤에 베토벤의 <피델리오>나 베버
의 <마탄의 사수> 등에도 영향을 주었다.

남부 독일에서는 1778년, 요제프 2세의 명에 의하여 국민 극장에서 징슈필이 상연되었고, 이
무렵에 디터스돌프(Dittersdorf, Karl Ditters von, 1739~1799)의 <의사와 약사> 등이 작곡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전통이 모차르트의 <후궁에서의 유괴>나 <마술 피리> 등의 명작을 낳
았다. 모차르트(Mozart, 1756-1791) 역시 위대한 오페라 작곡가이다. 형식적으로는 이탈리아
오페라의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내용에서는 독일 정신을 투영시키는 작품을 많이 썼
다. <피가로의 결혼> <돈 죠반니> <코지 판 투테>등 오페라 부파들과 <마술 피리 Magic
Flute>등의 징슈필이 그의 걸작이다. 19세기 독일 오페라는 베토벤의 <피델리오>, 베버의 <오
베론>, <마탄의 사수> 등 낭만적인 오페라가 등장하고 이후 바그너의 음악극으로 이어졌다.

이탈리아에선 바그너와 같은 해(1813)에 태어난 베르디(Giuseppe Fortunino Francesco
Verdi, 1813–190)가 수많은 걸작을 발표했다. <리골레토 Rigoletto> <라 트라비아타 La
Traviata> <아이다 Aida> <오텔로 Otello> <팔스타프 Falstaff> <가면 무도회 Un Ballo in
Maschera>가 그의 명작들이다.

19세기 낭만주의 오페라는 베르디와 바그너, 독일의 리하르트 슈트라우스(Richard Strauss,
1864-1949)의 <살로메>, <엘렉트라>를 통해 중흥기를 맞이하였다. 19세기 중엽부터는 러시아
(Russia)에도 뛰어난 오페라 작품이 나타나서 글린카(Glinka, 1804-1857)의 <루슬란과 루드
밀라> <황제에게 바친 목숨>, 차이콥스키(Tchaikovsky, 1840-1893)의 <에프게니 오네긴>,
보로딘(Alexander Porfiryevich Borodin, 1833–1887)의 <이고르公>, 무소르그스키(Modest
Petrovich Mussorgsky, 1839–1881)의 <보리스 고두노프>, 림스키 콜사코프(R.Korsakoff,
1844-1908)의 <금닭>등이 잇달아 발표되어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다. 체코엔 스메타나
(Bedřich Smetana, 1824–1884)가 <팔려간 신부>로 선풍을 일으켰다.

19세기 후반, 프랑스 오페라는 한때 침체의 늪에 빠졌으나 이를 구제한 이가 비제(Georges Bizet,
1838-1875)이다. 그의 음악은 참신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지극히 세속적 이어서 대중의 환영을
받았다. <카르멘 Carmen> <진주조개잡이>등이 그러한 음악적 속성을 보여주는 대표작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런가하면 우아하고 서정적인 오페라로는 마스네(Massnet, 1842-1912)를 으
뜸으로 여기는데(대표작 : 타이스) 역시 이 무렵 사람이다.

베버(Weber)의 <마탄의 사수>에 의해서 독일 낭만파 오페라의 역사가 시작된다. 멘델스존은
이 곡을 "낭만주의 관현악의 무기고(武器庫)"라고 격찬했는데, 1821년 5월 13일에 완성된 작
품이다. 보헤미아 숲에서 생활하는 사냥꾼들의 생활을 묘사하고 있는 이 작품은 민속적 소재,
노래와 무용의 예술화(민속으로부터), 자연 감정의 표현 등이 오페라의 종합 예술적 가치를 보
다 격상시킨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한편, 이탈리아에선 파이지엘로(Giovanni Paisiello, 1740-1816), 치마로사(Domenico
Cimarosa, 1749-1801) 같은 나폴리악파 사람들이 이름을 떨쳤고, 19세기에 들어와서 로시니
(Gioachino Antonio Rossini, 1792-1868)의 <세비야의 이발사> <알제리의 이탈리아 아가
씨>, 도니제티(Donizetti, 1797-1848)의 <사랑의 묘약> <람메르무어의 루치아>, 벨리니
(Vincenzo Salvatore Carmelo Francesco Bellinii, 1801-1835)의 <노르마 Norma> <몽유
병 여인 La sonnambula>등을 쓴 거장이 등장했다. 이들은 현대로 계승되는 이탈리아 오페
라 양식을 완성 시켰고, 성악가들에게 고도의 벨칸토 창법을 요구하는 양식을 확립 시켰다.

프랑스에서는 19세기 전반부터 그랜드 오페라(grand opera) 양식이 왕성하게 발달했고, <아
프리카의 여인>을 쓴 마이어베어(Giacomo Meyerbee, 1791-1864)가 눈부신 활동을 했으며,
오페라 부파 계열(系列)에 속하는 오페라 코미크(opera comique)가 생겨나서 부아엘디
(François-Adrien Boieldieu, 1775–1834))의 <백의의 부인>, 오베르(Daniel François
Esprit Auber, 1782–1871)의 <왕관의 다이아몬드>등이 이 분야의 작곡가로 활동했다.

독일에서는 로르찡(Lortzing), 니콜라이(Nikolai), 플로토우(Flotow) 등 낭만파 작곡가들이 활
약했고, 이러한 낭만 오페라를 이어받은 바그너(Wagner, 1813-1883)는 악극(樂劇)이라는 새
로운 양식을 개척하고 바이로이트 축제 극장을 지었다. 그는 종래와 같은 번호 오페라를 배제
하고 '무한 선율'을 사용해서 음악의 흐름을 일관시키고 '시도동기'를 사용해서 음악으로 극의
발전을 돕는 방법을 썼다. <방황하는 화란인> <탄 호이저> <로엥그린> <트리스탄과 이졸데>,
4부작 <니벨룽의 반지>가 그러한 작품들이다.

볼프-페라리(Ermanno Wolf-Ferrari, 1876-1948)는 오페라 부파를 근대적으로 부활 시켰고,
독일에선 리하르트 슈트라우스(Richard Strauss, 1864-1949)가 <살로메 Salome> <엘렉트
라> <장미의 기사>를 썼다.

19세기말, 이탈리아에 사실주의(verismo) 경향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마스카니(Pietro
Antonio Stefano Mascagni, 1863–1945)의 <카발렐리아 루스티카나>, 레온카발로(Ruggero
Leoncavallo, 1857/58-1919)의 <팔리아치>, 푸치니(Giacomo Antonio Puccini, 1858–
1924)의 <라 보엠> <토스카> <나비부인>같은 최고의 사실주의 작품들이 발표되었다.

20세기 초 처음 15년간 가장 두드러진 음악은 프랑스에서 시작된 인상주의 음악이다. 이것과
더불어 독일과 오스트리아에서는 후기 낭만주의가 발달했다. 프랑스의 드뷔시와 라벨, 독일의
후기 낭만 작곡가였던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표현주의 대표적인 작곡가 쇤베르크가 있다. 20
세기 전반 오페라는 표현주의적 경향을 갖고 있었지만 1차 세계대전 후 신고전주의가 유행하
면서 독일에서는 <시사오페라>라는 오페라가 등장했다. 시사 오페라는 현대의 평범한 일상생
활과 인간관계를 객관적인 시선에서 바라보는 것을 이른다. 재즈나 카바레의 음악 같은 당시
의 대중음악의 요소도 도입되어 종래의 오페라와는 구분되는 면도 가지고 있다

현대 오페라의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드뷔시(Achille-Claude Debussy, 1862–1918)의 <펠레
아스와 멜리장드>로부터 시작된다. 이 뒤를 라벨(Joseph Maurice Ravel, 1875–1937)의 <스
페인의 때>가 이었고, 뒤카(Paul Abraham Dukas, 1865–1935)의 <아리안느와 파란 수염>도
연이어 나타났다. 독일에선 反낭만주의 오페라 작품을 발표하기 시작했는데, 알반 베르그
(A.Berg, 1885-1935)의 <보쩨크 Wozzeck>와 힌데미트(Paul Hindemith, 1895-1963)의 <화
가 마티스>가 유명하다. 러시아에선 프로코피에프(Prokofiev, 1891-1953)의 <3개의 오렌지
사랑>, 쇼스타코비치(Dmitri Dmitriyevich Shostakovich, 1906–1975)의 <무첸스크의 맥베
스 부인>, 스트라빈스키(Igor Fyodorovich Stravinsky, 1882–1971)의 <난봉꾼>이 발표되었
다.

영국에서는 벤자민 브리튼(Edward Benjamin Britten, 1913–197)이 <피터 그라임스 Peter
Grimes>, 미국에서는 거쉬인(George Jacob Gershwin, 1898–1937)이 <포기와 베스 Porgy
And Bess>를 썼고, 이탈리아에서는 메노티(Gian Carlo Menotti, 1911-2007)에 의해서 <도
둑과 노처녀> <영사> <전화> 등이 발표되었다.

하지만 오페라는 20세기에 들어오면서 영화와 텔레비전과 같은 대중매체의 등장으로 축소되
기 시작하였다. 20세기 전반 버르토크(Bartók Béla, 1881-1945)의 <푸른수염 공작의 성>과
같은 표현주의적인 오페라가, 제1차 세계대전 후에는 신고전주의가 유행하기도 했지만 쇤베르
크, 알반 베르크, 베베른을 통해 12음 기법을 포함하는 현대적인 음악어법으로 작곡된 오페라
가 등장했다. 그리고 1945년 이후 전위적인 오페라가 등장한다.

*** 사진 /  
상단 :최초의 오페라를 탄생시킨 피렌체 카메라타 멤버들
하단 :작곡가 야코포 페리


김현지
 ::: 단성음악은 고대 시대 음악입니다 다성음악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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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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