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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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곽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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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르보 페르트(Arvo Pärt) 교향곡 제3번 Symphony No.3



현존하는 현대음악 작곡가 중 가장 널리 알려진 인물이고, 특히 그가 쓴 많은 종교음악들은 중세
의 그레고리우스 성가를 비롯해서 르네상스와 바로크, 현대 등 모든 시대를 아우르는 독특한 경
지를 들려주고 있어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또한 197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그의 미니멀리즘
은 다른 음악가들에게도 큰 영향을 주어서 21세기 현대음악에 미니멀리즘의 유행을 낳기도 했
다. <아리나를 위하여(Für Alina, 1976)> <형제들(Fratres, 1977)> <거울속의 거울(Spiegel im
Spiegel, 1978)>등이 그를 대표하는 미니멀리즘 작품들이다.

1935년 에스토니아 파이데(Paide)에서 태어났다. 아주 어린 나이에 집에 있는 피아노로 레슨을
받기 시작했지만 피아노의 상태가 엉망이어서 사실상 제대로 된 레슨을 받는 것이 어려웠다고 한
다. 따라서 정규적인 교육은 에스토니아 북쪽의 소도시 라크베레의 음악학교에 입학한 7살 때부
터였다고 한다. 19살 때 탈린 음악중학교에 진학했지만 군 입대 때문에 중퇴하고 군악대에서 오
보에와 타악기를 연주했다. 군복무를 마치고 탈린 음악원에 입학해서 에스토니아 출신의 바이올
리니스트이자 작곡가였던 헤이노 엘러(Heino Eller)에게 작곡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이 무렵에
영화와 무대를 위한 부수음악들을 작곡했고, 최초의 성악곡인 어린이 합창과 오케스트라를 위한
칸타타 <우리들의 정원 Meie aed>을 썼다. 음악원은 1963년(28세)에 졸업했다.

음악원 재학 중인 1957년부터 졸업 후 4년 무렵인 1967년까지 전국 네트워크를 갖고 있었던
에스토니아 공영 라디오의 음향 담당 프로듀서로 일했다. 그리고 이 기간 동안(1960년)에 써서
발표한 그의 최초의 12음기법 작품 <사망기사 Nekrolog>를 두고 소련 작곡가 연맹 회장 티콘
크렌니코프(Tikhon Khrennikov)가 “12음기법은 소련의 음악정서에 맞지 않는다. 전위음악은
부르주아의 음악”이라는 비판을 내놨다. 그러나 에스토니아 작곡가 연맹의 몇몇 동료들이 이 작
품을 파시즘에 희생된 사람들에게 헌정하는 게 좋겠다고 제안해서 위기를 피해 갈 수 있었다. 이
일이 있고나서 1962년에 어린이를 위한 칸타타 <우리들의 정원(Meie aed)>과 오라토리오 <세계
의 큰걸음(Maailma samm)>으로 모스크바에서 열린 청소년작곡가연맹 콩쿠르에서 우승했다. 당
시 응모작은 무려 1,200곡이나 됐다고 한다. 그리고 이 무렵에 한 페이지짜리 <솔페지오>를 썼
는데 "사랑스럽고 접근하기 쉬운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이후 1970년대부터 패르트는 본격
적으로 중세와 르네상스 음악을 연구하면서 자신의 창작세계를 여기에 집중하기로 결심했다. 종
교는 루터교에서 정교회로 개종했다.

1980년, 정부 당국의 감시와 압박이 심해지자 부인과 두 아이를 데리고 빈으로 빠져 나갔다. 아
르보의 악보를 출판하고 있었던 출판사의 도움이 컸다. 1년 후, <독일 아카데미 교환>으로부터
장학금을 받고 처음엔 빈에서 시민권을 획득하고 다시 베를린으로 옮겨서 살았다. 베를린에 살면
서 쓴 중요한 작품 가운데, 1990년에 개최된 <가톨릭의 날>을 위해 작곡한 <베를린 미사>가 있
다. 이 미사곡은 실제로 성당에서 올려지는 미사 전례를 위한 음악이다. 이 곡에서 <틴틴나불리>
음악미학이 미사 전례의 고유한 양식에 잘 녹아들고 있다. 1990년 5월 24일 베를린 성 헤드비
히 대성당의 장엄미사에서 연주되었다.

2010년, 오랜 객지생활을 끝내고 조국에 집을 마련하고 돌아가 탈린에서 35km 떨어진 라우라
스마(Laulasmaa)에서 지금까지 살고 있다. 2014년에 데일리 텔레그라프가 페르트를 “살아있는
가장 위대한 세계적 작곡가, 에스토니아의 가장 유명한 수출품”이라는 기사를 냈는데, 정작 페르
트 자신은 어떠한 자기에 대한 평가에도 관심을 나타내지 않기로도 유명하다. 심지어는 에스토니
아의 문화적 영향도 자기와는 별 관계가 없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페르트는 미니멀리즘 악파, 더 구체적으로는 신비 미니멀리즘 또는 거룩한 미니멀리즘 악파의 작
곡가로 언급되고 있다. 특히 현대음악 작곡가인 폴란드의 헨릭 고레츠키(Henryk Górecki)와 영
국의 존 테버너(John Tavener)와 함께 신비 미니멀리즘의 개척자로 평가된다. 세계적으로 그의
이름을 널리 알린 작품은 현악합주와 종을 위한 <벤자민 브리튼의 추억>, 현악5중주곡 <형제들
1, 2, 3곡> <타불라 라사 Tabula Rasa>, <거울속의 거울>과 같은 기악 작품들이었지만 종교적
인 이미지가 강한 합창 작품이 더 그를 유명하게 만들었다.

페르트의 작품은 2개의 카테고리로 나뉜다. 첫 카테고리는 쇼스타코비치, 프로코에프, 버르토크
등 신고전주의 작곡가들의 영향을 받아서 쓴 일련의 작품들이다. 거기에 쇤베르크의 12음기법과
음렬주의까지 보태졌다. 그러나 1968년에 쓴 <크레도(Credo)>에서부터 그의 음악은 돌연 변하기
시작한다. 14세기에서 16세기 프랑스의 작곡가 마쇼, 오케겜, 오브레히트, 조스캥의 코랄 작품을
연구하면서 자연히 이들의 경향을 따르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 결과 1970년대 초, 아르보는 유
럽 다성음악의 음악정신을 도입하기에 이른다. 1971년에 작곡한 교향곡 제3번이 그 좋은 예다.
이 교향곡은 "음악의 즐거움"을 주는 작품이라는 평을 받았다. 그러나 그의 작품들이 소련 당국의
감시와 박해에 부딪치면서 상당한 기간 침묵의 세월을 보내면서 중세와 르네상스 음악 연구에 매
진하게 되고, 이것이 후일 그의 또 다른 작품세계를 열어주는 동력이 되었다. 당시의 상황에 대
해서 페르트의 전기를 쓴 폴 힐러(Paul Hillier)는 "그는 완전한 절망의 위치에 도달했고, 단 하
나의 음표를 쓸 음악적 믿음과 의지력도 부족했다.“고 썼다.

아르보는 침묵의 기간을 가지면서 음악의 여명기에 크게 번창했던 단선음악(plainchant)에 대한
연구에 매달린다. 1976년, 침묵을 깨고 다시 세상에 나온 아르보는 이전에 자기가 쓴 작품들에
대한 냉정한 비판을 하는 등 엄청나게 변모한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무렵에 아르보는 <틴틴
나불리(tintinnabuli, 鐘)>라는 음악적 개념을 창안하고 이렇게 설명했다. "나는 단 하나의 음으
로도 아름다운 연주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하나의 음, 또는 하나의 조용한 박자, 또
는 하나의 소리 없는 순간들이 나를 만족시켰다. 나는 아주 제한된 소재-하나의 소리, 2개의 소
리-로 작곡했다. 아주 기본적인 소재, 즉 3화음, 하나의 명백한 화음으로 곡을 만들었다. 3화음
으로 만든 3개의 음은 마치 종소리와 같았고 그래서 나는 이를 <종>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그
결과 아르보 자신의 말처럼 그의 음악은 <프리즘>을 통해 아름다운 색깔이 퍼지듯 그의 순수하
고 맑은 영혼을 드러내면서 구원과 사랑을 노래하고 있다.

아르보는 이러한 새로운 음악관에 입각한 작품들을 잇달아서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 작품들은 서
방세계에서도 빈번하게 연주되기 시작했고 아르보의 이름도 국제적인 것이 되었다. 조국을 떠난
이후 아르보는 종교음악을 집중적으로 작곡했다. <요한 수난곡>을 비롯해서<테 데움>, <연도(連
禱)>, <마니피카트>, <산상8훈(The Beatitudes)>등은 세계 도처에서 자주 연주되는 그의 대표적
인 종교음악들이다. 신앙심이 돈독해서 아르보는 마치 수도사 같은 인상을 주는 사람이라는 평을
듣는다. 자신을 위한 홍보는 물론 자신의 작품에 대한 세인의 평에 대해서도 그저 묵묵하게 경청
할 뿐 자신을 위한 말을 아주 아끼는 인물이다.

◈ 교향곡 제3번
◈ 작곡 1971년
◈ 초연 1972년 9월 21일, 에스토니아 탈린(Tallinn)의 에스토니아 콘서트 홀. 에스토니아 국립 교향악단.
지휘 네메 예르비
◈ 헌정 네메 예르비(Neeme Järvi)

1968년에 <크레도 Credo>를 발표하고 소련 작곡가연맹으로부터 “12음기법은 소련의 음악정서
에 맞지 않는다. 전위음악은 부르주아의 음악”이라는 비판을 받으면서 당국의 감시가 시작되자
일체의 창작활동을 접고 침묵의 세월을 보내면서 중세 말기의 거장들 작품을 연구하게 되고, 그
결과 그의 작품 세계는 획기적인 변화를 보이게 되었다. 하나 또는 2개의 음, 또는 1개의 화음으
로 곡을 쓰는 <틴티나불라 tintinnabular> 스타일인데, 이 변화 과정에서 완성한 작품이 교향곡
제3번이다. 물론 이 교향곡도 중세와 르네상스 음악 연구의 결과물 가운데 하나다. 다성 양식을
채택하고 있고, 그레고리우스 성가에서 받은 영향도 확연하다. 매우 단순한 주제적 선율이 집요
한 반복을 보이는 대목에선 이미 미니멀리즘의 징후도 나타나고 있다.    

◈ 악장구성
휴지부 없이 연주되는 3개의 악장 구성이다. 14-15세기 다성합창과 모노디의 영향을 확실하게
들려주는 작품이다.

제1악장  
142마디의 짤막한 악곡이다. 오보에와 클라리넷으로 느릿하게 시작되어 점차 악기를 보태며 증
폭된다.

제2악장  
바순과 첼로가 1악장과 다른 선율을 연주하며 시작되고, 정점에 이르렀을 때 팀파니의 인상적인
솔로가 등장한다. 147마디.

제3악장  
페르트는 이 악장을 “즐거운 음악”이라고 설명하면서 “나의 절망과 탐색의 끝은 아니다”라고 강
조했던 악장이다. 275마디의 긴 악곡이다.

◈ 악기편성
2 flutes, piccolo, 3 oboes, 3 clarinetes in B, 1 bass clarinet in B, 2 bassoons, 1
contrabassoon, 4 horns in F, 4 trumpets in B, 4 trombones, tuba, timpani,  
celesta, bells, marimba, tam-tam, 현악기

◉ 음악듣기
아르보 페르트 교향곡 제3번
The Huxford Symphony Orchestra of the University of Alabama
지휘 Dr. Demondrae Thurman
제1악장 http://youtu.be/kd_qChn24ZU
제2악장 http://youtu.be/VWaj9U8fYbc
제3악장 http://youtu.be/-smBD8VT_D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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