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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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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곽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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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러(Mahler) - 교향곡 "大地의 노래, Das Lied von der Erde"


▣ 유투브 감상
제1악장 현세의 불행에 대한 주가(酒歌), The Drinking Song of Earth's Sorrow
지휘 : Leonard Bernstein, Christa Ludwig, contralto, René Kollo, tenor, Israel Philharmonic Orchestra
http://youtu.be/Ypf4kGQ1IGQ

제6악장 이별 Der Abschied
Anna Larsson, alto, Robert Dean Smith, tenor,
Royal Concertgebouw Orchestra, 지휘 : Fabio Luisi
http://youtu.be/_pxPYWJqaPI

전곡(全曲)
Janet Baker, mezzo-soprano, Ludovic Spiess, tenor, BBC Symphony Orchestra
Rudolf Kempe
http://youtu.be/B4hoaUPEMLk

▶ 작곡 배경
1907년과 1908년, 2년에 걸쳐 작곡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곡이 대체 왜 이토록
염세적이고 때로는 고통스러운 지에 대해서는 단순히 이 곡이 한 작곡가의 말년에
쓰여 졌다는 사실보다 자의식이 누구보다 강한 말러의 개인 역사를 들추어보는 것
이 더 넓은 이해를 가능하게 하리라고 생각한다.

1907년 6월, 말러는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의 감독 하인리히 콘리트로부터 지휘
자 제의를 받았다. 때마침 말러는 1897년부터 11년 동안 몸담아 왔던 빈(Wien) 오
페라와 숱한 마찰을 겪어오면서 이미 사임을 고려하던 중이었다. 6월 말 말러는 빈
오페라에 사임의 의사를 밝혔고 이 요청은 바로 받아들여졌다. 이 해 여름, 어느
해와 마찬가지로 말러 가족은 휴가를 위해 마이에르니히로 떠났다. 그 곳에서 큰딸
마리아가 성홍열에 걸리고 말았는데, 수술까지 받았지만 결국 7월 중순 그녀는 세
상을 떠났다. 나이 다섯 살이었고 말러는 큰딸을 ''푸치'라는 애칭으로 부르며 사랑
해 왔다. 큰딸이 죽은 지 며칠이 지나자 말러는 심장에 문제가 있음을 느꼈고 의사
불루멘탈이 이를 확인했다. 말러는 바로 빈으로 가서 코바치 교수에게 진찰을 받
고 그가 태어날 때부터 심장 격벽(隔璧) 좌우에 결함을 가지고 있었다는 진단을 받
았다.

이 모든 일을 겪은 말러는 결국 마이에르니히를 떠났다. 제4번 교향곡에서 제8번 교
향곡까지 5개의 교향곡과 '죽은 아이를 그리는 노래'를 비롯해 수 많은 가곡을 7년
동안 작곡했고, '푸치'를 잃었던 마이에르니히의 별장을 내놓은 이후 말러는 그곳으
로 다시는 돌아가지 않았다. 대신 나머지 여름을 티롤의 실루더바흐에서 보내게 된
다. 한스 베트게가 중국 시를 독일 시로(단순히 독일어가 아니라 운율이 맞는 독일
시로) 번안한 시집 <중국의 피리>에 말러가 몰두하게 된 것도 이 곳에서였다. 이 시
집이 담고 있는 어두움과 초월, 세상에 대한 무관심과 아름다움과 고별은 모든 일
에 지친 말러를 사로잡은 것으로 보인다. 말러가 언제부터 이 시집을 가지고 있었는
지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지만, 대체적으로 이 해에 친구 테오발트 폴락
으로부터 얻었다고 알려지고 있다. 천성이 작곡가였던 말러는 이 시집의 몇 가사에
곡을 붙이기 시작했고 그 다음 해의 여름에는 보다 적극적으로 작곡에 몰두해 '대지
의 노래'라는 특이한 교향곡을 완성할 수 있었다. 그러나 여기에서 짚고 넘어갈 만
한 사실도 있는데, 베트게의 '중국의 피리'가 7월에 발간될 것이라는 라이프치히 발
행의 전단이 있고, 일부의 추측에 따르면 이 시집이 9월까지도  발간되지 못했다고
도 하는데, 만일 정말 그러하다면 이는 1907년부터 '대지의 노래'가 쓰여졌다는 일
반적인 설을 뒤집는 것이 된다. 이 주장에 의하면 '대지의 노래'는 말러가 1908년의
여름에서부터 시작해서 1909년에 완성시켰다는 것이다. 실제로 말러가 남긴 마지
막 악장의 스케치에는 1908년 9월 1일이라고 쓰여져 있다. 어느 주장이 맞는 지는
조금 더 시간이 흘러봐야 할 것이다.

말러는 이 곡을 작곡하면서 그가 시에서 느꼈던 이국적 정서를 음악에서도 함께 나
타내려고 했다. 그가 동양의 5음계를 이 곡의 여러 군데에서 시도하고 있다는 것은
학자들에 의해서 여러 번 지적되어 온 바 있다. 이미 극동의 음악은 19세기 말에 유
럽에 소개되었기 때문에 말러가 모를 리는 없었고, 1907년 10월 31일 푸치니의 오
페라 '나비 부인'의 빈 초연을 가진 지휘자도 말러였다. 그러나 역시 5음계는 이
음악의 중심조성을 지배하지는 않으며, 이러한 이국적인 느낌도 하나의 수단과 일
부를 이를 뿐이다.

'대지의 노래' 이후에 작곡된 곡에 대해서 말러는 살아서 연주되는 것을 보지 못했
다. 20세기의 진보와 쓰러져 가는 낭만주의를 조화시킬 줄 알았던 그는, 그의 세계
가 새로운 세대의 빈의 작가들에게 교과서가 되어 가는 것을 확인하지 못했던 것
이다. '대지의 노래'는 1911년 5월 말러가 죽은 후 바로 7월 16일에 초연을 가지는
것으로 빌렘 멩겔베르크에게 제안되었으나, 출판인인 에밀 헤르츠카가 개입되어 결
국 1911년 12월 브루노 발터의 지휘에 의해 뮌헨에서(다른 기록에 의하면 11월 20
일)이루어지게 되었다. 안톤 베베른과 알반 베르크는 순전히 이 곡을 듣기 위해서
뮌헨까지 여행했으며, 브루노 발터가 마지막 악장에서 눈물을 참지 못했다는 것은
잘 아려진 일화이다. 이후 발터의 연주 생애에 있어 이 곡은 매우 중요한 일부분이
되었다.

▶ 중국의 피리
한스 베트게(Hans Bethge)는 말러를 그토록 사로잡았던 중국의 시를 몸소 독일어
로 옮겼을까? 절대 그렇지 않다. 한스 베트게가 <중국의 피리>를 쓰면서 사용한 텍
스트는 중국의 原詩가 아니었으며, 심지어 한스 베트게가 중국어를 알기나 했는지
조차 의심스럽다. 그의 시집에 담긴 83개의 시 중에서 말러가 사용한 시는 모두 700
년대 당나라 동시대인들의 시 일곱 편(마지막 6악장은 두 개의 시로 이루어져 있다)
이다. 하지만 <중국의 피리>에 담긴 시의 시대는 방대하여 19세기까지 이른다. 19
세기의 중국 시에 대해서 베트게는 영어 번역 텍스트를 사용했으며, 고시(古詩)에
대해서는 3가지의 텍스트를 사용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 3가지는 1905년에 출판된
한스 하일만의 독일판 <중국의 서정시, Chinesische Lyrik>, 1867년에 처음 출판된
주디트 고티에르의 불어판 <玉의 책, Le livre de Jade>, 1862년에 출판된 에르베
이-생-드니의 불어판 <당나라 시대의 시, Poesies de l'epoque des Thang> 등이
다. 이 저자들 중 한스 하일만 또한 중국 원시를 번안한 것은 아니고 고티에르와 에
르베이-생-드니의 두 불어 텍스트와 영어 번역 텍스트를 사용했다고 하니 레퍼런스
의 혼동이 일어날 만도 하다. 다행히 고티에르와 에르베이-생-드니는 중국어에 능
통하여 중국 원시(原詩)를 그대로 사용했다. 그래도 베트게나 하일만의 시집을 표절
이라고 부를 수 없는 것은 이들이 같은 시를 쓸 때에도 저마다의 감각을 담아 서로
다른 문장과 느낌으로 표현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복잡한 배경을 안고 발표된 한스 베트게의 <중국의 피리>는 발매되자마자
상당한 성공을 거두었다. 1919년에 이미 10쇄가 나올 정도였다. 이 성공의 이면에
는 당연히 세기의 전환과정에서 유럽문화가 가진 아시아에 대한 관심이 있었다. 베
트게가 이런저런 텍스트를 모델로 사용하긴 했지만 독특한 자기만의 표현도 담고
있어서, 이를테면 1악장에서 인상적으로 반복되는 구절 '삶도 어둡고 죽음도 어둡
다'는 어느 텍스트에도 없는 베트게의 문장이다. 게다가 베트게는 이 모든 번안가
들 중에서 중국의 시를 유럽 정형시의 형태로 가장 완전하게 바꾸어 놓은 인물이기
도 하다.

말러가 읽고 매혹된 것은 중국의 원시도, 하일만이나 고티에르 등에 의한 텍스트도
아니고 베트게의 <중국의 피리>에 담긴 것이다. 당연히 그가 이 시들을 글자 하나
고치지 않고 그대로 곡에 사용했을 거라고 생각되지는 않으리라. 말러는 '대지의 노
래'를 위해, 이미 불어로 영어로, 또 독일어로 여러 번의 번역과정을 거쳐온 시의 문
장을 또 바꾸거나 빼고, 새로운 문장을 삽입하는 등 또 다른 많은 수정을 가했다. 내
용은 물론 시의 제목도 말러에 의해 수정되었다. 하지만 말러가 가한 수정을 가만
히 살펴보면 단순히 음악에 필요한 가사를 끼워 맞추기 위한 것이 아니라 세계와 인
류에 대한 자신의 표현 방식에 맞게 재작업한 것이라는 것이 알관 되게 드러난다.
이 고대 중국의 시들은 유럽의 언어로 옮겨지면서 외면과 내면의 풍경화를 유유히
그리는 듯한 한시 특유의 매력이 많이 사라지고 허무와 어두움, 아름다움에 대한 서
양적 개념으로 채색되었는데, 말러는 한스 베트게의 다소 직설적인 언어를 또 고쳐
서 시적 문어(文語)를 많이 사용했고 허무보다는 고통스러움을 더 형상화하려고 했
다. 몇 가지 예를 들자면 제5악장에서 "몸과 목이 차, 더 이상 마실 수 없을 때"라고
쓰여진 것을 "목과 마음이 차, ...."로 수정한 것이라든지, 제6악장에서 원시에는 있
지도 않는 "아름다움이여! 영원한 사랑과 삶으로 취한 세계여!" 라는 구절을 느닷없
이 격앙되게 부르짖는다든가 하는 것을 예로 들 수 있을 것이다. 이는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앞 뒤 문장들과 연결시킬 때 시의 느낌은 근본적으로 달라진다.

선택한 일곱 시에 대한 말러의 배치를 살펴보면 이 곡이 말러의 교향곡 제7번처럼
묘하게 대칭구조를 이루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말러는 첫 악장에서 봄이 피
어나는 대지와 삶의 하찮음과 허무를 노래하고,  마지막 악장에서 삶에 대한 이별
과 역시 봄이 피어나는 대지를 그린다. 제2악장은 가을에 대한 노래이며, 제5악장
은 봄에 대한 노래다. 제3, 4악장에서 말러는 '젊음'과 '아름다움'이라는 밝은 주제
로 목가적인 곡을 만들어 놓았다. 제목에 관해서 라면 말러는 곡을 이미 어느 정도
완성시킨 후 각 악장의 제목을 변경시킨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말러의 자필 악보에
서는 시의 각 제목들이 베트게의 것 그대로이지만 이 제목들은 나중에 수정된 악보
에서 변경되어 있고, 이 악보에 '뉴욕 호텔 사보이'라고 적혀있는 것으로 보아 적어
도 이 제목은 곡이 완성된 후에나 수정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 곡의 형식과 정의
교향곡인가 가곡집인가?
이 곡을 교향곡과 가곡집이 가진 정의의 틀 속에서 판단하기란 쉬운 일은 아니다.
객관적으로 이 곡이 가곡집이 아니라 교향곡이라고 판단할 수 있는 근거는 크게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흔히 가곡이라는 장르적 정의를 내리는 곡에 비해 이 곡은
스케일이 커도 너무 크다는 것과 다른 하나는 어쨌든 작곡가가 자신의 작품을 교향
곡이라고 불렀다는 것이다.

6악장으로 이루어져 있는 이 곡 중에서 중간 악장들만 살핀다면 이 곡을 단순한 가
곡집이라고 부른다고 해도 큰 무리는 없을 것이다. 시에 딸린 성악은 확실한 멜로
디 라인을 이루고 있으며, 제2악장이나 제5악장은 유절(有節) 가곡이다. 그러나 첫
번째 악장이나 마지막 악장은 가곡이라고 부르기에는 무리가 따르는데, 시가 중요
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기는 하지만 시가 곡을 지배한다고 보기는 어려운 것이 관현
악에 대한 배려가 시에 대한 배려와 거의 동등하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이 두 악장
에 삽입된 오케스트라 간주는 길고 독립적이며, 게다가 발전한다. 이 두 악장에 대
해서는 모두 소나타 형식으로 간주할 수 있을 정도이다. 콘스탄틴 플로로스 같은 학
자는 이 곡이 교향곡일 수밖에 없는 이유에 대해 소나타 형식을 갖춘 큰 규모의  첫
악장과 마지막 악장을 두고 있고, 느린 악장(제2악장)과 세 중간 악장 중에는 스케
르찬도(제3악장)까지 있다는 것을 들고 있다.

그러나 굳이 우리가 이 곡을 교향곡이라고 인정하기 위해 이런 전통적인 교향곡의
틀에 이 곡을 끼워 맞출 필요는 없을 것이다. 말러가 이 작품을 작곡하기까지 여덟
개의 교향곡을 통해 이 독일 절대음악 형식을 다루어 온 것을 본다면 특별한 경우
를 제외하고는(제4번이나 제6번 교향곡 같은) 굳이 정형화된 교향곡의 틀을 의식하
지 않았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물론 언제나 말러는 첫 악장에서 소나타 형식을
소중하게(물론 동시에 급진적으로) 다루고 있었지만 그 뒤의 악장에 대해서는 크게
교향곡이라는 형식에 구애받지 않았다. 이를테면 제2번 교향곡이나 제3번 교향곡들
에서 제1악장 이후에 전개되는 모습들이 독일음악사에서 구축되어 온 교향곡의 틀
에 맞추어져 있다고 생각하기는 어렵다. 말러가 전에 남긴 교향곡 중에서 '대지의
노래'와 가장 비슷한 형태를 갖추고 있는 곳을 고르라면 아마 제2번 교향곡이 될 것
이다. 모두 첫 악장이 소나타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마지막 악장에 대한 비중
이 크고, 중간 악장들의 배치도 비슷하다. 도널드 미첼 같은 학자는 교향곡이란 개
념에서 더욱 벗어나, '대지의 노래'가 교향곡으로 발전된 가곡집이라는 것에 관심
을 가지기보다는 말러의 가곡집이 얼마나 교향곡적인가에 시선을 맞추고 있다. 그
는 '대지의 노래'가 1901년과 1904년의 여름에 작곡된 '죽은 아이를 그리는 노
래'와 배치, 그리고 첫 곡과 마지막 곡의 의미가 비슷하다는 것을 지적한다. 이 두
곡은 모두 마지막 곡에 가장 큰 비중을 두고 있으며, 마지막 곡은 상징적 감정적 해
결을 이루는 것이다. 그러니 좀 더 자유롭게 말러의 교향곡에 대한 개념을 생각한다
면 굳이 가곡집과 교향곡 사이의 틀에 대해 고민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그러나 곡의 제목인 '대지의 노래'에 대해서는 잠깐 주제넘게 덧붙이고 싶다. 흔히
우리는 일본을 따라 이 곡을 '대지의 노래'라고 부르고 있기는 하지만, 단순히 '대지
(大地)''라는 단어가 이 곡에서 'Erde'가 의미하는 것을 정확히 나타낸다고 생각되지
는 않는다. 물론 'die Erde'는 영어의 'the Earth'로서 우리가 사는 이 땅, 지구, 흙 등
을 가리키는 말이며, '대지'란 '우주 삼총사'의 주제가에 나오는 데로 '엄마 지구' 혹
은 '지구 엄마', 어머니로서의 이 땅의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하늘에 대하여 땅을
일컫는 단어이다. '대지'는 주지하다시피 보다 물질적인 것을 의미하는데, 과연 말
러가 'die Erde'를 가지고 단순히 땅을 의미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평론가 유윤종 씨
에 따르면(그는 필자의 형편없는 독일어의 지식에 많은 도움을 주기도 한 분으로
서) 어쨌든 이 교향곡이 '농부의 노래'는 아닌 것이다. 독일어에서 'die Erde'의 상대
가 되는 단어는 'der Himmel'이다. 이 단어가 쓰이는 말러의 곡이 한 곡이 있는데, 바
로 제4번 교향곡의 마지막 악장에 등장하는 가곡 'Des himmilsche Leben'이다. 이
곡은 'der Himmel', 즉 '하늘' 혹은 '천상'의 삶을 그리는 곡이며 아마 이 곡은 말러
가 쓴 곡 중에서 가장 행복한 음악일 것이다. 말러는 천사들이 빵을 굽는 이 곡을 작
곡한 후 먹을 것이 없어 굶주리고 죽어 가는 '지상의 삶(Das irdischen Leben)'을 곧
쓰고선 가곡집 '어린아이의 이상한 뿔피리'에 포함시켰다. 'irdisch'란 '속세의', '현
세의'란 뜻인데, 이 시들은 말러가 가지고 있었던 세계관과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
으로 보인다. 말러가 '대지의 노래'를 발표한 후 그와 가까웠던 알마, 브루노 발터,
슈페흐트 등은 모두 말러가 그의 심장 문제로 괴로워했고 이 문제는 새로운 곡에 많
은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그들은 말러가 '세계에 대한 이별'을
노래하고 싶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특히 슈페흐트는 말러에 관한 글에서 말러의 '대지의 노래'는 '속세의 노래(Das
Lied vom Irdischem)'라고도 불리울 수 있을 것이라고 했으며, 발터는 이 곡을 '유한
종(有限種)의 창조'라고 불렀다. 즉, 말러는 대지에 관한, 대지의 노래가 아니라 대
지에서의 삶에 관한 노래, 현세의 삶의 노래를 만들고 싶었던 것으로 보인다. 곡을
듣고 가사를 보아도 이것은 삶에 관한 노래이지, 자연에 관한 노래는 아닌 것이다.

실제로 말러가 삶이 결여된 자연의 아름다움에 관해 관심을 가졌을 리도 만무하다.
하지만 또 다시 이 '대지'로 돌아가서 딱히 이 곡을 다른 식으로 번역하기도 애매하
기 그지없다. 이를테면 '지상의 노래'라는 멍한 제목은 더 이상한 느낌이 나는 것이
다. 그래서 필자가 하는 무료하고 무책임한 해석은 '대지의 노래'에 담겨 잇는 것이
단순히 언어적 정의대로 자연을 노래하고자 함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의 아홉 번째 교향곡?
말러는 작곡이 진행되면서 이 곡이 점차 교향곡의 형태를 갖추어 가고 잇다는 것을
깨달으면서도 이 곡을 교향곡이라고 부르는 것을 주저했다. 그의 말을 빌자면 '그
어떤 위대한(!) 교향곡 작곡가도 제9번 교향곡 이후 살아남지 못했다는 것'이다.
1907년 그 충격적인 일들을 겪은 말러였기에, 그리고 자신의 심장이 가진 문제가 점
차 삶의 문을 닫아 가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기에 말러가 이런 두려움을 가진
것은 당연한 것이다. 동시에 그의 말은 은근히 자신이 '위대한' 교향곡 작곡가라는
것을 드러내기도 한다. 결국 그는 이 곡이 교향곡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았고,
그래서인지 그가 마지막 악장으로 선택한 것은(좀 과장된 해석일지도 모르지만), 말
러가 이미 삶에 대한 이별을 준비하고 잇다는 느낌이 들게 만든다. 하지만 말러는
끝가지 이 곡을 교향곡 제9번이라고 명명하지 않았다. 그의 고민에 대해서라면 브
루노 발터에게 보낸 편지에서 잘 드러난다(이 편지는 다른 교향곡과는 달리 말러
가 '대지의 노래'에 대해 글로 남긴 유일한 자료이다). 처음에 곡 전체의 제목에 대
해, 제1악장의 제목인 '현세의 불행에 대한 주가(Das Trinklied vom Jammer der
Erde)'에서 따온 것으로 보이는 '현세의 불행에 대한 노래(Das Lied fon Jammer der
Erde)'를 고려했고, '테너, 알토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교향곡'이라는 부제를 붙였
다. 나중에 이 부제는 '테너, 알토 혹은 바리톤과 오케스트라를 위한 교향곡'으로 개
정되기는 했지만, 브루노 발터에 의하면 말러가 계속 저성부의 목소리 선택에 대해
고민했다고 한다.

1. 현세의 불행에 대한 주가(酒歌) <Dsa Trinklied von Jammer der Erde>

이 시는 이백(李白)에 의해 쓰여진 작품으로 원래는 비가행(悲歌行)이라는 제목을
가지고 있다. 제목이 많이 달라진 만큼 여러 번안가들을 거치면서 내용도 이백의 시
로부터 많이 벗어나게 되었다. 시가 말하는 것은 100년밖에 되지 않는 삶에서 무엇
을 가지려고 아등바등 거리느냐, 삶도 어둡고 죽음도 어둡다는 것이다. 말러는 이
시의 많은 부분을 서로 바꾸고 고쳐 놓았다. 전체 분위기를 설명할 만한 예를 들자
면 '원숭이가 으르렁거리고 울고 저녁의 감미로운 향기를 흩뜨려 놓고 있다'라는 문
장에서 '저녁'이라는 단어를 '삶'이라는 단어로 대체시킨 것을 들 수 있겠다. 여기에
서 잠깐 짚고 넘어가자면 원숭이라는 동물에 대한 베트게의 견해가 끼여든다. 이백
은 이 시에서 '외로운 원숭이가 앉아서 무덤 위의 달을 향해 울고 있다'고 썼지만,
베트게는 '무덤 위에 쪼그리고 앉아 있는 미친 유령 같은 물체'가 무엇이냐고 먼저
묻는다. 원숭이에 대해 무슨 안 좋은 기억이 있는지 베트게는 이 동물을 상당히 미
워한 모양이다. 주목할 만한 말러의 또 다른 수정은 다음과 같은 3연의 마지막 세
줄을 곡에서 뺐다는 것이다.

한가지 확실히 (이 세상에서) 소유할 수 있는 것도 있다.
마지막의 무덤, 히죽거리는 바로 그것.
삶도 어둡고 죽음도 그러하다.

말러가 이 부분을 빼버린 것에 대해 대체적으로는 3, 4연을 축약시켜 소나타 형식
을 위해 한 연으로 만들려는 것과 죽음에 대해 말러가 이런 비관적인 내용은 피하
고 싶었기 때문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말러는 이 악장을 소나타 형식으로 구성했는데, 그는 1연과 2연으로 2개의 제시부
를 만들었으며, 이 제시부는 2개의 주제로 이루어져 있다. 세 번째 연의 첫 두 줄이
발전부를 형성하고 있으며, 나머지 줄이 재현부를 이루고 있다고 여기면 된다. 재현
부는 제시부의 주제 순서를 그대로 따르지는 않고 제시부의 두 주제를 역순으로 배
치하고 있다.  

2. 가을의 외로운 자 <Der Einsame im Herbst>

이 시는 전기(錢起)에 의한 것이다. 호수 위에 가을 안개가 내려앉고, 지친 마음은
휴식이 필요함, 마음속의 가을은 너무 길어 고독 속에 눈물을 마르게 해 줄 희망의
태양을 갈구하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시는 쓸쓸함에 푹 빠져서 헤어날 길이 없
는 것처럼 보인다. 빌헬름 뮐러의 '겨울 나그네'에 비교할 수 있을 정도이다. 이 시
에 대해서만 말러는 마지막 태양에 '부드러운(mild)'라는 단어를 삽입하는 정도의 수
정만을 가했다. 제2악장의 음악은 쓸쓸한 시정만큼이나 고독하다. 특히 성악이 등
장하기 전까지 오보에 솔로로 시작되어 클라리넷, 오보에의 앙상블로 이어지는 멜
로디는 말러가 남긴 음악 중에서도 가장 쓸쓸하게 마음을 파고 들어간다. 말러는
이 악장의 관현악을 특별히 실내악적으로 고안했는데, 느낌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
라 물리적인 얘기로서 여기에서 연주되는 악기는 몇 되지 않는다.

3. 젊음에 대하여 <Von der Jugend>

역시 이백에 의한 시로서, 앞의 악장과는 대조적으로 유유자적한 분위기를 가지고
있다. 연못 한 가운데에 정자가 있고, 그곳에서 잘 차려입은 유생들이 한가롭게 술
을 마시고 시를 쓰며 잡담을 나눈다. 반달처럼 흰 다리가 놓여 선을 그리고 있으며,
물 위로는 모든 것이 이상한 모양으로 거꾸로 비친다. 이 악장에서도 말러는 베트게
의 시에 대해 마지막 두 연의 위치를 서로 바꾸는 것 이에는 큰 수정을 가하지 않았
지만 베트게의 제목은 원래 '자기 정자(Der Pavillon aus Porzellan)'이다(서양인들
이 여기에서 말하는 '자기'란 뜻의 'Porzellan'이나 'porcelain'이 기와를 의미하는 건
지 어떤지 정확히 모르겠다). 이 악장에서도 말러는 여러 무거운 악기를 거의 사용
하지 않고 한가롭고 여유로운 분위기를 담아냈다.

4. 아름다움에 대하여 <Von der Schoenheit>
이백에 의해 쓰여졌다. 베트게의 제목은 '해변에서(Am Ufer)'로서 청춘 남녀의 밝음
과 역동성을 묘사하고 있다. 처녀들은 연못에서 연을 따고 소리를 지르며, 미풍은
이들의 옷자락을 들어 올려 향기를 대기에 싣는다. 소년들은 거친 말을 몰아 사납
게 달려간다. 말의 갈기는 기쁨에 나부낀다. 한 아름다운 처녀가 소년에게 동정의
눈길을 보낸다. 이 커다란 눈의 불꽃 속에서는 마음의 흥분이 호소하듯 흔들린다.

젊은이들이 가진 삶의 환희를 그리는 이 시에 말러는 상당한 양을 덧붙였다. 특히 4
연으로 이루어져 있는 이 시에서 세 번째 연을 길게 늘여 두 연으로 구성해 5연의
시로 만들어 놓았다. 그가 주로 덧붙인 것은 소년들이 말을 달리는 부분이다. 그들
은 햇빛과 버드나무 사이에서 희열을 가지고 움직이며, 말은 뜨겁게 숨을 내쉰다.

오케스트라도 이 부분에서는 거칠고 역동적이다. 이 부분의 오케스트라 간주에서
는 곡 전체 중에서 타악기가 가장 활발하게 움직이는 부분이기도 하다. 이 질주하
는 부분의 가사는 상상을 초월하게 빨라서 독일어가 모국어인 성악가들도 이 부분
에서는 단어의 정확한 발음은 일단 놓아두고 결사적으로 템포를 쫓아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소년과 처녀의 주제는 무척 대조되는 모습으로 이 악장의 주제군을 구성
한다.

5. 붐에 취한 자 <Der Trunkene im Fruehling>

또 다시 이백의 시로서, 그의 시를 네 편이나 선택한 것을 보면 아무래도 말러는 그
의 세계관에(원본으로부터는 많이 바뀌어졌겠지만) 많이 동화된 모양이다. 83개나
되는 시가 담긴 '중국의 피리'에 이백과 함께 시종(詩宗)이라 불리는 두보의 시가 없
을 리 만무하지만, '대지의 노래'에 수록된 같은 시대의 시인들 중 두보가 빠져 있
는 것을 보면 우리에게나 시종이지 말러에게는 별로 감명을 주지 못한 모양이다. 일
반적으로 알려진 이 곡의 번역된 제목이 조금 혼동을 줄 것도 같은데, 시는 봄에 취
한 것이 아니라 술에 취한 사람의 이야기로서, 봄이라는 것은 이 시의 시간적 배경
일 뿐이다.

이 시가 말러의 곡에서 발견되는 바와 같이 베트게에 의해 서늘할 만큼 냉소적이고
허무적인 것으로 변모된 것을 알 수 있다. 한 마디로 삶이 하나의 꿈에 지나지 않는
데, 무엇 때문에 애쓰고 고생하는가. 봄이야 와라, 나와는 무슨 관계인가. 나는 술이
나 마실란다 라는 것이 시의 골자이다. 말러는 베트게의 시를 거의 바꾸지 않았다.
베트게의 시는 원본으로부터 어느 정도는 전체 느낌이 변하여 거의 독일 민요의 느
낌이 나기도 하는데, 특히 새가 등장하는 부분은 완연히 말러의 '방황하는 젊은이
의 노래'를 떠올리게 할 정도이다. 혹자는 이 시를 해학적이라고도 평가하고 말러
의 음악 또한 이 시를 가볍고 장난스러운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 글쎄, 그러나 베트
게의 시에서 예민한 냉소와 고통을 발견하는 것은 필자만인가?

6. 이별 <Der Abschied>

송별(送別)
말에서 내려 한잔하게나.
자네는 어디로 가려하는가?
자네는 아무것도 얻은 것이 없다고,
남쪽의 산에서 홀로 살고자 한다고 대답하는군.
가기고 결정을 한 것이라면, 내 더 묻지는 않으리.
그러나 우리의 우정은 하늘의 한 구름처럼 영원할 것이네.

가장 길고(나머지 다섯 악장을 합한 만큼 길다) 비중이 큰 이 악장을 위해 말러는 베
트게의 시에서 '친구를 기다리며(Im Erwartung des Freundes)'와 '친구와의 이별
(Der Abschied des Freundes)'이 두 시를 연결하였다. 이 두시는 각각 맹호연(孟浩
然)의 '숙업사산방대정대부지(宿業師山房待丁大不至')와 위에서 소개한 왕유의 '송
별(送別)'을 번안한 것이다. 왕유의 시에 대한 베트게의 시가 송별이 아니라 이별인
것은 당연하다. 베트게의 시에서, 그리고 사실은 한스 하일만의 시(Abschied vom
einem Freunde)에서는, 왕유의 1인칭과 2인칭이 바뀌어서 시의 화자(話者)가 친구
의 배웅을 받고 떠나는 사람으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말러가 이 두 시를 엮은 것이
단순히 이들의 분위기가 비슷해서는 아니다. 베트게에 의하면 이  두 시는 서로 연
관이 있는 것으로서 시에서 맹호연이 기다리는 것은 왕유라고 한다. 왕유가 앞서 그
의 시를 맹호연에게 건넸고, 맹호연은 이에 다른 시로서 답했다. 말러는 이 두 시를
엮으면서 엄청나게 많은 부분들을 고치고 삽입했다.

이 모든 부분을 언급한다는 것이 한정된 지면에서는 거의 불가능할 정도다. 그 중에
서 제2연에 말러가 삽입한 '지친 사람들은 집으로 돌아가, 잠 속에서 기쁨과 젊을
되찾는다'라는 문장은 말러가 젊었을 때 쓴 시(1884년에 쓰여져 1912년에 출판되었
다) 중에서 가져온 것이다.

곡은 소나타 형식으로 해석될 수 있으며 오케스트라 간주는 유례없이 길어 성악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은 하나의 수단만으로 느껴지도록 만들기도 한다. 내용은 강렬
하여 차이콥스키의 '비창' 교향곡, 말러 자신의 제9번 교향곡과 제10번 교향곡처럼
레퀴엠과도 같은 마지막 악장을 구성하고 있다. 특히 '영원히(ewig)'을 반복하며
서서히 사라지는 마지막은 곡기 끝난 후에도 한참 동안이나 듣는 이에게 여운을 남
긴다. 이 마지막 구절 역시 순전히 말러 자신의 생각이다. 왕유가 쓴 시는 위에서 소
개된 바와 같고, 베트게의 버전에서는 이 마지막 부분이 다음과 같다.

지친 것은 내 발과 내 마음이다.
대지는 모든 곳이 다르지 않으며,
영원한, 영원한 것은 흰 구름이다.
이와 비교하여 그 유명한 말러의 마지막 가사는 다음과 같다.

내 마음은 잔잔하게 그 때를 기다린다.
봄이 오면 사랑하는 대지의 모든 곳은 피어나고 새롭게 초록이 되리라.
모든 곳에서 푸른 지평성은 눈부시게 영원히 빛나리라.
영원히....  영원히...

이 '영원히'란 단어가 '미-레-레-도'로 몇 번 반복되다가 나중에는 목이 메이듯이
으뜸음으로 더 나아가지 못하고 종국에는 '미-레' 만으로 반복되는데, 이 동기를 바
탕으로 관현악은 꺼져 들어가듯이 세상에 이별을 고하며, 하프와 첼레스타는 다른
세상으로 인도하듯이 살랑거린다.

● 출처 http://mahler.nayes.net/index.htm
                   (Mahler’s record gu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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