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르/음악 용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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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곽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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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양음악 약사(중세 및 근세)


** 사진 / 서구 교회음악의 아버지로 불려지는 성 암브로시우스

西洋音樂 略史

◆ 중세
중세 유럽은 서로마 제국의 멸망(5세기)부터 르네상스와 종교 개혁의 시작 사이의
시기를 말한다. 종교 개혁은 1517년 마르틴 루터가 당시 로마 가톨릭 교회의 부패
와 타락을 비판하는 내용의 95개조 반박문을 발표하여 시작된 사건으로, 부패한 교
회를 성서의 권위와 하느님의 은총과 믿음을 강조함으로써 새롭게 변혁시키고자 했
던 운동이다.

◆ 중세의 악기
14세기의 중세 문헌에 피들(fiddle, 현악기)을 연주하는 모습이 있다. 중세에는 어떠
한 악기가 있었고 연주되었는가를 우리는 당시의 많은 회화나 교회의 조각, 조상(彫
像)에 나타나 있는 '주악의 천사'의 모습에서 엿볼 수 있다. 작은·탬버린 등의 타악
기, 트럼펫·새크배트·본발트·코르넷·플루트·튜바·백파이프 등의 취주악기, 그리고 하
프·류트·기타·프살테리움 등의 발현악기(撥絃樂器), 피델·트럼바·비올 등 활로 현을
켜는 것, 소형의 휴대용인 포르타티브 오르간 등과 같은 악기로 천상의 음악을 연주
하였고 또는 모테토의 정선률이 연주되었다. 아르스 노바의 음악에서는 통속성악곡
(通俗聲樂曲)이 악기로 화려하게 반주된다. 기악의 가장 오랜 형식의 하나인 에스탄
피라고 하는 춤곡도 프로방스 지방에서 발생하여 13, 14세기에 번성하였다.

◆ 악보 인쇄와 출판사
악보가 인쇄되기 전까지는 작곡가나 필경사의 손을 거쳐 쓰인 악보로 연주하였다.
15세기에 이르러 서적인쇄에서 악보인쇄의 기술이 발전하였고, 1498년 옥타비아
노 디 페트루치(1466-1539)가 베네치아 공화국 의회로부터 식자인쇄방식에 의한
악보인쇄의 20년간 특허를 받아 1501년에 모테토, 샹송, 미사, 프로틀러 등 대가의
작품 96곡을 포함한 악보를 간행하였다. 이것은 <오데카톤>이라고 불리며 가장 오
래된 악보 인쇄본으로서 귀중한 자료가 되어 있다. 이렇게 해서 이탈리아에서 비롯
된 악보 출판은 1525년경에는 베네치아뿐만 아니라 프랑스의 파리, 안트워프, 뉘른
베르크, 아우크스부르크 등 유럽 각지에서 널리 행하게 되었다. 그 결과 교회나 궁
전 같은 특수한 곳에서부터 시인의 가정이나 지방에 이르기까지 급속히 우수한 음
악이 퍼져서 음악문화를 비약시켰던 것이다. 독일에서는 종교개혁가인 루터가 때
를 맞춰 독일어역 성서와 함께 찬송가집을 인쇄하여 신도들에게 보급시켰다.

◆ 극음악의 탄생
12세기에 루앙의 대성당에서 제3시의 성무일과가 끝난 다음 그리스도의 탄생에 연
유한 '세 사람의 동방박사' 이야기가 주교좌 성당(主敎座聖堂)의 세 사람의 상급 참
사회원에 의하여 연출되었다고 한다.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의 일생에 관한 이야기
는 참으로 극적이며, 탄생, 수난, 부활의 제례(祭禮)는 전례극(典禮劇)의 모체가 되
었다. 합창대가 번갈아 부르는 안티포나(交唱)나 사제와 성가대가 응답하는 레스폰
소리움(應唱)은 그 자체가 하나의 음악극의 형태를 지니고 있었다. 이리하여 전례극
은 교회에서 벗어나 민중극으로의 발전을 도모하게 된다.    ** 출처 / Wikipedia 등

◆ 르네상스
르네상스는 유럽 문명사에서 14세기부터 16세기 사이에 일어난 문예부흥 운동을 말한다.
과학혁명의 토대가 만들어져 중세를 근대와 이어주는 시기가 되었다. 여기서 문예부흥
이란 구체적으로 14세기에서 시작하여 16세기 말에 유럽에서 일어난 문화, 예술 전반에
걸친 고대 그리스와 로마 문명의 재인식과 재수용을 의미한다. 이 점에서 르네상스는
일종의 시대적 정신운동이라고 말할 수 있다. 역사적인 측면에서 유럽은 르네상스의
시작과 더불어 긴나긴 중세시대의 막을 내렸으며, 동시에 르네상스를 거쳐서 근세시대로
접어들게 되었다. 르네상스의 정신, 혹은 운동은 이탈리아에서 비롯되었으며, 얼마안가
알프스를 넘어 유럽의 다른 국가, 프랑스, 네덜란드, 영국, 독일, 스페인 등지로 퍼져나갔다

◆ 바로크(영어 및 프랑스어: baroque, 이탈리아어: barocco, 독일어: Barock)
바로크 음악이란 17, 18세기의 유럽 음악을 말한다. 원래 바로크란 17, 18세기의 미
술양식을 말하는 것이었으나, 일반적으로 1600년경부터 1750년경의 음악에 대해서
도 이 명칭으로 부르고 있다. 그러나 바로크 시대를 좀 더 세분한다면 다음과 같이
셋으로 구분할 수 있다.
1.초기 바로크: 1580년-1630년
2.중기 바로크: 1630년-1680년
3.후기 바로크: 1680년-1750년

바로크 음악의 역사적 배경을 보면 정치적으로는 절대주의 왕정으로부터 계몽주의
로의 이행을 볼 수 있으며, 경제적으로는 重商主義, 정신사적으로는 합리주의적·계
몽주의적인 사조의 흐름 속에서 볼 수 있는데, 이러한 여러 사회적 상황이 몇 겹으
로 겹쳐서 궁정, 도시, 교회 등 세 활동범위를 기초로 하여 바로크 음악을 형성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 시대의 음악은 통주저음의 기법을 사용했기 때문에 바로크 음악
의 시대를 '통주저음의 시대'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다. 그리고 바로크 음악은 '정서
론' 즉 '음악의 궁극목적은 음과 음의 리듬, 멜로디, 하모니, 음정 등으로 모든 정서
를 자아내는 데 있다'고 하는 독특한 타율적 미학관으로 뒷받침되고 있다.

◆ 통주저음이란?
17-18세기의 유럽에서 널리 행해진 것으로서, 건반악기 주자가 주어진 저음 위에
즉흥으로 화음을 보충하면서 반주성부를 완성시키는 방법 및 그 저음 부분을 가리
킨다. 독주 파트가 쉬는 때에도 저음은 악곡을 일관해서 연주되는 데에서 `통주-
continuo`(이)라 불리며, 저음 위에 구성되는 화음이 일정한 약속 아래 숫자로 지시
된 데에서 `숫자가 달린-figured`(영)란 이름이 있다. 독일어의 Generalbass를 직역
한 `총저음`이 사용되는 적도 있다. 더구나 이탈리아어의 bass continuo의 bass는
자주 생략되어, 악보에도 그저 continuo라 적히는 일이 많으며, 또한 모음악보에는
tutti bassi(전저음)라 적힌 것도 있지만, 실제로는 continuo와 같은 뜻이다.

◆ 고전주의
서양 문화사에서 1750년부터 1825년까지는 고전주의 시대로 분류된다.고전주의 시
대는 18세기 후반의 독특한 시대적 상황 속에서 시작되었다. 18세기 후반은 구체제
(프랑스 혁명 이전의 유럽 사회 체제)의 몰락과 새로운 정치.경제 체제의 확립으로
특정지워지는 시기였으며 특히 귀족으로부터 중산층으로의 힘의 전환이 이루어졌
던 때였다. 이 시기의 지적 생활 양식의 향상과 과학의 진보는 특히 눈부신 것이었
다.

7년 전쟁(1756-63)과 미국의 독립선언(1775), 프랑스 혁명(1789-99), 노불전쟁
(1812) 등은 유럽 여러 나라의 급격한 사회 정치적 변화를 촉구하였고, 칸트철학,
볼테르, 루소, 스미스 등의 문학 작품들, 고야, 레이놀즈 등의 예술 작품들은 사람들
의 지적인 삶의 질을 향상시켰으며, 종두의 개발(1796)과 산소 및 수소의 발견
(1774), 자외선 및 자기 유도의 발견 등을 과학을 크게 발달시켰다. 그 밖에도 증기
기관의 발명과 방적기, 전동기, 씨아 발전기 등의 발명이 산업 혁명을 유도하였다.

고전주의 시대는 이러한 개혁과 계몽, 합리, 과학, 산업의 시대와 함께 그 문을 열었
다. 라틴어의 "Classicus"는 원래 "납세자 계급에 속하는 사람"이라는 뜻이었고 , 후
에 "모범적"이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고전주의"라는 말이 사용된 이래 그것
은 일반적으로 다음의 두 가지 의미로 정의되어 왔다. 문학과 예술에서의 가장 우수
한 상태를 일컫는 일반적인 의미와 고대 그리스 및 고대 로마의 문화와 관련된 상태
를 일컫는 특정한 의미가 그것이다. 그래서 고전주의라는 말 속에는 우수한 것의 극
치를 지향하고자 하는 의욕을 담고 있고, 그와 동시에 그 우수한 것의 극치는 과거
에 이미 성립되어 계속 존재해 왔으며, 그것은 전통을 계승함으로써 다시 도달될
수 있는 것이라는 인식을 담고 있다.

전통을 계승한다는 것은 자신이 외부와의 관계를 유지한다는 것을 뜻한다. 고전주
의자들은 타인들로부터 분리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고 자신의 개성이나 개인적인
경험을 예술 작품의 자아를 확대하고 구현하는 작업이라고 보는 것이 아니라, 작품
자체의 당위로 인하여 존재한다고 여겼으며, 예술 작품에 관련된 사고의 명료성과
형식의 아름다움에 관심을 쏟았다. 결과적으로 고전주의자들은 매우 객관적인 태도
로 예술 작품을 다루고 있었던 것이다.

고전주의는 예술 활동을 하는데 있어서의 적절한 통제 및 자제, 논리적 표현과 정교
한 기교의 가능성, 이상적인 아름다움에 대한 통찰력 등을 중요하게 여겼다. 이러
한 견해는 예술가들로 하여금 작품 속에서 정연한 질서와 안정성, 화성적 조화를 추
구하도록 고무하였다. 그래서 고전주의 예술은 "단순 명료하고 법칙에 따른 외적 상
태"와 "자연적이고 유기적이며 긴장에 찬 내적 체험"을 결합함으써 "형식과 내용의
이상적인 결합"과 "육체와 정신의 조화"를, 그리고 더 나아가 "아름다운 영혼의 이
상"을 실현하고자 하였던 것이다.

◆ 고전주의의 음악적 특징
고전주의 음악은 일반적으로 하이든과 모차르트, 베토벤 등을 중심으로 형성되었
던 1770년부터 1825년까지의 음악을 말한다. 그것은 위대한 음악적 실험 정신이 성
취한 인류사적인 업적이었다. 당시의 음악가들은 장.단음계 체계의 가능성을 폭 넓
게 탐색하였고, 절대 음악적인 기악 작품을 위한 대규모 형식을 확립 발전시켰으
며, 반복 형태의 이상적인 소나타 형식을 발견하는 한편, 독주 및 2중주 소나타, 3중
주와 4중주, 여러 가지 실내 악곡, 협주곡, 교향곡 등의 갖가지 연주 형태를 확립하
였다.

만약 고전주의라는 말을 "당시의 전통적인 형태의 고수"라는 의미로 해석한다면 그
말은 비엔나 악파의 작곡가들(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에게는 적용할 수 없을 것
이다. 그들은 전통을 고수하는 데에 집착한 것이 아니라, 새로운 음악 형태를 찾아
내기 위해 대담한 시도를 시작하였던 것이다. 하이든의 초기 교향곡과 현악 4중주
곡들은 후기의 그것들과 크게 달라졌고 그러한 경향은 모차르트와 베토벤의 작품들
에게서도 마찬가지였다. 만약 그들이 18세기 중엽의 시인들과 미술가들처럼 정서
적 표현에는 무관심한 채 형식적 규칙에만 열중하였다면 사람들은 그들을 고전주
의 음악가들이라고 부르지 않았을 것이다. 인간의 가장 깊고도 고귀한 정서가 하이
든과 모차르트의 작품을 서서히 채워가고 있었고, 베토벤에 이르렀을 때 그것은 깊
은 감동과 열정으로까지 진전되어 있었다. 요컨데 그들은 각기 자신의 고귀한 음악
적인 상념의 표현에 가장 적합한 음악 형태를 만드는 데에 열중하고 있었던 것이다.

시간적인 관점에서 보면 고전주의라는 말은 그들의 음악에 잘 어울리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사실 문학과 미술의 경우 고전주의 시대는 18세기 중엽 훨씬 이전에 시
작되었으나, 음악에서의 고전주의는 몇 십년 후에 나타났을 뿐만 아니라 고전주의
음악이 계속되고 있던 19세기 초기에 다른 분야에서는 이미 낭만주의 경향이 나타
나고 있었으며, 하이든과 모차르트, 베토벤의 후기 작품들 속에는 이미 낭만주의적
인 특성이 보이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래서 음악에 있어서 고전주의라는 말은 "질적으로 가장 우수한 상태"를 지칭하는
의미로서 이들 비엔나 악파에 적용된다. 그들이 남긴 작품들, 특히 교향곡과 협주
곡, 피아노 소나타, 2중주곡, 3중주곡, 4중주곡 등은 그 후의 작곡가들이 능가할 수
없을 만큼 완벽하였으며 그들이 기악 작품들에서 사용했던 역동적인 작곡 기법은
주제의 전개 과정과 완전하게 일치하였다. 그들이 완성한 광대한 악곡 구조들은 논
리적이고 타당한 것일 뿐만 아니라 다양한 정서를 표현하는 데에 충분할 만큼의 융
통성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그 속에서 음악적 사고와 음향의 새로운 세계를 창조
하였던 것이다.

◆ 낭만주의
낭만주의 음악(Romantic music)은 일반적으로 빈 고전파 이후의 19세기 전체가 해
당된다. 독일 낭만파로 슈베르트에서 슈만까지, 동기(同期)의 낭만파군(浪漫派群)
으로는 주로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오페라 작곡가들과 쇼팽을 든다. 그리고 낭만파
적 현실주의에서 후기 낭만파에 베를리오즈, 리스트, 바그너가 있고, 그 밖에 그 주
변이나 또는 대립으로서 브람스, 브루크너, 프랑스의 구노, 비제, 이탈리아의 베르
디를 들 수 있다. 또한 스칸디나비아나 슬라브 각국에 대한 낭만파의 영향도 만들어
진다.

낭만파의 음악은 미학이나 다른 예술과의 관련방식이나 대상으로 하는 曲種 등의
측면에서 각각 다른 수단에 의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통의 특성은 개성적
인 작품에 대한 심리의 미묘한 반영을 꾀하고, 조바꿈(轉調)이나 색채의 변화에 관
련되는 화성법, 또는 관현악법에 있었다. 여기서 주목되는 점은 모든 예술 속에서
음악은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하며 기악음악의 가치가 충분히 인정되었다는 사실이
다. 음악은 "무엇인가를 표현하려는" 음의 언어로서 파악되며, 따라서 작곡가는 시
적, 회화적, 설화적, 극적인 세계와 결부된 감정의 움직임을 적극적으로 음악에 나
타냈다. 그러므로 소곡이건 대곡이건 표제가 따른 작품이 많이 만들어지고, 마침내
는 바그너의 오페라에서 볼 수 있듯이 낭만적인 이념과 고전적인 이념의 결합이 이
루어졌다.

그러나 부분적으로는 바그너의 영향을 받으면서도 바그너와는 다른 방향에서 19세
기 후반 음악의 특징을 결정한 작곡가가 있는데, 베르디, 브람스, 브루크너 등의 이
름을 들 수 있다. 특히 브람스는 바흐-베토벤-슈베르트-슈만의 계열에 따라 독일음
악의 전통적인 고전적 경향을 나타내어 글자 그대로 표제음악의 개념에 대립하는
절대적인 음악의 입장을 취하였다. 이토록 음악의 근본적인 견해에 관한 대립은 음
악학에서의 근대적인 사상의 확립에 크게 기여했다. 브루크너는 주관적인 경향을
초월하여 보편적, 즉 종교적인 감정의 표현을 되찾았으며, 카톨릭적 낭만주의 작곡
가로서 근년에 와서 새삼스럽게 주목을 받고 있다. 그리고 전체적으로 1890년대 무
렵부터는 서서히 낭만주의의 쇠퇴가 나타나 현대에의 이행을 뚜렷이 했다.

◆ 초기의 교회 음악
교황 그레고리우스 1세(Papa Gregorio, I604년 사망)에 의하여 성가가 일단 통일되
기 이전에 이미 교회 성가는 몇 세기에 걸친 발전이 있었다. 멀리는 예수 그리스도
와 사도(使徒)의 시대까지 소급되나 그 여러 단계를 살펴보면 헤브라이적 기원과 그
리스적 기원을 원천으로 하여, 로마의 음악과 비잔티움의 영향을 받아 발전하였으
며, 그 가운데에 시리아나 이집트의 요소도 융합하고 있는 일종의 혼합문화였다. 초
기 그리스도 교도들이 노래로 기원하기 시작한 것은 유태의 교회(시나고그)로부터
였다. 중세 초기의 그리스도교 음악이 유대교 예배음악의 여러 형식 가운데에서 자
라왔다는 사실은 구약성서에도 명백히 나타나 있다. 그때 음악만이 다른 예술과는
달리 예배에 채택되어 불가결의 것으로 생각되었다. 초기 그리스도교도의 대부분
은 유태인이었다. 그러나 헤브라이인이 예배에 사용한 음악을 오늘날 실음(實音)으
로서 알 수는 없다. 여러 자료를 연구한 결과 명백해진 것은, 다윗의 시편을 노래한
것이 헤브라이 교회음악의 주요 부분이었다는 점과 초기 그리스도교가 그것을 예
배 속에 채택하였다는 점, 시편의 가창형식(歌唱形式)으로서 사제에 의한 독창, 회
중에 의한 응창, 가창자가 둘로 나뉘어서 번갈아가며 노래하는 교창(交唱)의 세 가
지가 있었다는 점, 시편 이외에 복음서의 송가(頌歌), 초대의 산문적 찬가, 음률적
인 유절(有節)의 찬가가 있었다는 점 등이다. 악기는 대개의 경우 쓰이지 않은 것으
로 생각된다. 그리스음악과의 관계는 주로 그 이론면에 영향을 주고 있다. 고대 그
리스의 선법(旋法)이 비록 완전히 형태를 바꾸고 있기는 하나, 이렇게 하여 교회선
법으로 계승하여 간다.

◆ 성 암브로시우스
'서구 교회음악의 아버지' 등으로 불리는 밀라노의 주교 성 암브로시우스(Sanctus
Ambrosius, 340년?~397년 4월 4일)가 초기 교회음악의 발전에 이바지한 공적은 크
게 두 가지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다. 하나는 이미 서쪽에도 있었던 합창적인 시편
가 이외에 시리아나 히브리 전통에서 유래한 교창적 창법을 채택했다는 점이며, 또
하나는 암브로시우스 찬가를 창작하여 서방 교회음악의 기초를 굳힌 점 등이다. 그
의 작품으로는 <Deus Creator Omnium>(모든 것의 창조자 하느님) 등이 있다. 이러
한 노래는 오늘날까지 카톨릭 교회에서 노래되고 있으며, 그 중에서 몇 개는 루터
등의 종교개혁가에 의하여 개신교 교회에 계승되어 현재도 독일 코랄 속에 들어 있
다. 암브로시우스 찬가의 특징 중 하나는 악센트의 취급에 있다고 하겠다. 고대의
단순한 민요풍의 멜로디를 취함과 동시에 히브리, 시리아계의 악센트에 따른 새로
운 운율해석을 여기에 결부시켜 새로운 종교적 태도를 확립시켰던 것이다.

◆ 그레고리오 성가  <Gregorian chant>
그레고리오 성가는 로마 카톨릭 교회의 대표적 전례양식인 로마 전례의 단성 성가
로서, 6세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쓰이고 있다. 이름은 교황 그레고리우스 1세 때
에 집대성 되었기 때문에 부여되었다. 이 성가는 미사전례와 일신동체를 이루고 있
으므로 전례와 분리시켜서 음악만을 생각할 수는 없다. 기보법(記譜法)은 네우마
(neuma)로 기록한다. 조성(調性)은 8개의 교회선법을 원칙으로 한다. 그레고리우
스 교황은 성가 가수와 합창장을 교육시킨 후 각지의 교회로 파견하여 그레고리오
성가의 보급에 힘썼다.  오늘날 가장 중요한 전례음악으로 가톨릭교회에서 존중되
는 성가이다.

성가의 기원은 그리스도교 이전의 유대교성가에까지 거슬러 올라가게 되며,거기
에 동방 여러 교회의 성가, 유럽 각 지방의 성가 등이 혼합되어 그레고리오성가의
기초가 이루어졌다. 그것을 통일·집대성한 데에는 교황 그레고리우스 1세의 공헌이
컸다고 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레고리오성가 레퍼토리의 대부분이 8세기에서 14
세기경 사이에 유럽에서 점차로 형성되어 간 것으로 생각되며, 서유럽적인 성격이
강하다. 중세 후기 이후 쇠퇴하여 그레고리오성가의 올바른 창법 전통도 상실되었
으나, 19세기 말 프랑스 솔렘 수도원을 중심으로 성가 부흥운동이 일어나 오늘날에
는 솔렘식(式) 창법이 정통파로 규정되었다.

가사는 원칙적으로 라틴어를 사용하며, 로마 가톨릭교회의 전례와 불가분의 관계
로 결부되어 있고 미사나 성무일과(聖務日課) 등의 성가가 다수 준비되어 있다.  그
레고리오성가는 중세에 있어서의 대표적인 음악이었을 뿐만 아니라, 모든 시대의
폴리포니음악(다성부음악) 작품의 중핵이었으며, 정선율(定旋律)로서도 이용되어
왔다. 18~19세기의 음악작품, 예컨대 바흐의《나단조 미사곡》, 베를리오즈의 《환
상교향곡》등에서조차 그레고리오성가를 사용한 것이 적지 않다.

** 교황 그레고리오 1세(라틴어: Sanctus Gregorius Magnus, 이탈리아어: Papa
Gregorio I)는 제64대 로마 교황(재위: 590년 9월 3일 - 604년 3월 12일)이었다. 로
마 가톨릭교회의 성인으로 축일은 9월 3일이다. 서방 교회의 4대 교부 가운데 한 사
람으로 공경을 받으며, 중세 교황직의 아버지로 추앙을 받고 있다. 교황 레오 1세
와 더불어 ‘대교황’이라는 칭호를 받았다.

** 감상 / Gregorian chant :  9세기의 Rabanus Maurus에 의해서 작곡된 전례음악
            veni creator Spiritus(오소서, 창조주의 영이여)
            salve mater(자애로우신 성모여)
            연주 - SCHOLA GREGORIANA MEDIOLANENSIS
** 유투브 / http://youtu.be/cDhYGdK0KQg

◆ 교회선법
그레고리오 성가는 일반적으로 8개의 교회선법을 기초로 하여 만들었는데, 각 선법
의 명칭은 모두 고대 그리스의 선법 이름을 빌려왔다. 8개의 선법은 고대 그리스 종
족의 이름인 도리아, 프리지아, 리디아, 믹소리디아의 4개 정선법과 이 명칭에 히포
(hypo)를 붙인 히포도리아, 히포프리지아, 히포리디아, 히포믹소리디아의 4개 변격
선법으로 구성되어 있다.

◆ 각선법의 음악적 특성
* Dorian- 고요함, 관상적, 평안, 우아함(다양한 작품들이 여기에 해당)
* Hypodorian- 슬픔, 우울함(bond) (거룩하시다- 미사곡 16)
* Phrygian- 영원, 신성함, 감미로움, 격렬함(Fulda),(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 Hypophrygian- 신앙적(bond) 황홀하고 기품(Fluda)(대림3주일 봉헌송)
* Lydian- 즐거움(bond), 환희, 신선함 (성령강림 대축일 영성회송)
* Hypolydian- 경건하고 비관적(bond), 온화함(Fluda) (천주의 어린양 미사곡15)
* Mixolydian- 숭고함(bond), 순수함 (주의 수난 성지주일)
* Hypomixolydian- 장엄, 서술적
* 중심음은(Dominant) 는 라틴어의 (Dominare)에서 유래 다스라다는 뜻이다
* 정격은 종지음과 중심음의 사이가 넓기에 일반적으로 곡의 성격이 매우 생동적인
데 비해 변격은 종지음과 중심음의 사이가 좁기에 대체로 조용하고 잔잔한 느낌을
갖는다. 교회선법은 화성적 필요보다는 선율적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것으로, 선법
이 갖고 있는 철학적인 성격으로 인해 단성성가시대가 지나 다성음악이 작곡된 때
에도 계속 사용되었다.

◆ 네우마
그레고리오 성가의 음표를 네우마라 부른다. 네우마는 1음 또는 2음 이상의 음의 무
리(群)를 말하며, 음의 상대적인 높이나 리듬, 뉘앙스를 나타내는 기보법(記譜法)이
나 그 해독법은 지금도 학자들 사이에서 많은 견해 차이를 보이고 있다. 네우마의
형태는 크게 옛 것과 새 것으로 나뉜다. 옛 네우마는 9~10세기에 이르러 크게 발전
하였으나 12세기부터 실전되어 그 해석이 동일하지 않다가 19세기 말부터 솔렘 수
도원의 복구운동에 의하여 기호학의 연구대상이 되었다. 새 네우마는 옛 네우마를
바탕으로 성장하여 20세기에 고정된 네 줄 체계의 기보법을 가리킨다.

** 950년경 이탈리아의 성직자 귀도 다레쪼는 4선 보표와 음계명을 만들어 계명 창
법을 창안하고, 성가에 네우마(Neuma)라는 기보법을 썼다.

** http://blog.daum.net/cholahn/15942611
** http://blog.daum.net/j-m-ak/556

◆ 아르스 노바(ars nova)와 아르스 안티쿠아(ars antiqua)
14세기의 이론가 필립 드 비트리(1291-1361)가 1323년경 <아르스 노바>라고하는
정량기보에 관한 논문을 썼을 때 13세기 말의 음악을 '아르스 안티쿠아'와 대조시
켜 부르게 되었다. 그 후 14세기에 나타난 새로운 경향, 즉 다성악과 세속적 멜로디
가 결부된 마드리갈레, 발라타, 카치아의 섬세하고 우아한 예술을 창조하게 되었
다. 따라서 프랑스의 기욤 드 마쇼 (Guillaume de Machaut), 이탈리아의 란디노, 부
르군트의 기욤 뒤파이 등도 포함되며 이것은 이탈리아의 초기 르네상스 감각을 예
시한 것이라 하겠다. 그리고 이러한 악곡곡들은 이윽고 정묘한 기악반주로 장식된
다. 오늘날에 와서는 노트르담 악파를 중심으로 하는 13세기의 음악 전체를 아르스
안티쿠아라고 부른다.

** 감상
Guillaume de Machaut(1300-1377) / 노틀담 미사(4성 미사) 중 키리에
** 유투브 / http://youtu.be/Y47JdUI_PhE

◆ 르네상스 시대
중세시대가 지나간 15세기 중반부터 17세기 초까지 시대의 음악을 말한다. 르네상
스시대 음악은 음악이 본격적인 형태를 갖추기 시작해서 이후 바로크 시대에 완전
히 제모습을 갖추었다. 중세세시대가 종교에 많이 치우친 반면 르네상스 시대의 음
악은 점차 종교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중세 시대에는 문맹자가 많아 기록
이 잘 남아있지 못한 반면 르네상스 시대 음악은 기록이 잘 남아 있는 편이다. 그리
고 중세 시대에는 음악이 귀족과 평민의 음악이 구분되어 있었으나 르네상스 시대
음악은 점차 귀족중심의 음악으로 변모 했다. 그리고 건반악기가 등장하기 시작했
고 음악가들도 점차 자신의 일이 직업으로 변모했다. 음악도 점차 오케스트라 적인
경향으로 나아갔고, 아울러 성악도 발전해 나갔다. 그리고 무곡이 더욱 활성화 되었
다. 중세시대에 널리 불려졌던 그레고리안 성가는 점차 사라졌고,  기악곡이 활성
화 되었다. 기타가 등장하기 시작했고, 기타가 중세시대에 많이 사용되었던 류트를
점차 밀어 내었다. 그러나 르네상스 시대까지는 다울랜드를 중심으로 류트음악이
많이 활성화되었다. 르네상스 시대 대표적인 음악가로는 팔레스트리나, 다울랜드,
조스캥, 버즈, 몬테베르디 등이다.

르네상스(Renaissance)의 '재생'이라는 의미는 고대 그리스인들과 로마인들이 추구
한 학문, 문화, 예술에 대한 이념적 복귀라고 해석될 수 있다. 고대(古代)로의 이러
한 이념적 복귀는 인본주의적 사상을 기초로 하고 있으며 과학과 문학, 예술 분야
등에 큰 변화를 가져오게 하였다. 르네상스를 시작하는 15세기 후반의 음악은 부르
고뉴 악파와 더불어 플랑드르 악파(Flemish school)로 불리는 오케겜(Ockeghem),
오브레히트(Obrecht), 조스캥(Josquin)과 같은 국제적인 작곡가들에 의해 확립되고
발전되었다. 구텐베르크(Gutenberg)의 금속활자 발명으로 이들의 음악은 인쇄되어
서 전유럽으로 소개되었다. 이에 따라 15세기를 주도한 네덜란드 작곡가들은 다른
유럽 국가에 초빙되는 사례가 잦았다. 빌라르트(Willaert)는 이탈리아의 베네치아에
서 , 클레멘트(Clement)와 공베르(Gombert)는 독일 지역으로 진출하여 활동하였다.
그들은 자신들이 머무르며 활동한 국가에서, 네덜란드 음악에 기초하지만 각 국가
들의 민족적 특성을 반영한 음악들을 창작하여 새로운 경향의 음악을 이끌어 나갔
다.

이 시대의 중요한 음악형식은 여전히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미사, 모테트, 샹송 등
이었다. 특히 작곡가들은 가사의 선택이 자유로운 모테트에 더욱 큰 흥미를 가졌으
므로 모테트가 많이 작곡되었다. 16세기 초반에 이르러 모테트는 가장 인기있는 종
교음악 형식이 되었다. 그러나 모테트의 창작기법은 기본적으로 미사의 창작기법
과 동일하였다. 미사와 마찬가지로 정선율로 사용하기 위해 기존하는 선율을 차용
하거나 그 밖의 다른 음악 재료들은 빌려서 인용하거나 장식하는 일이 흔하였다. 미
사는 샹송을 이용한 패러디(parody) 기법을 자주 사용하였다. 인용 기법과 패러디
는 16세기 미사에서 가장 유행했던 창작기법이다.

** 감상
Ockeghem- Ave Maria
  연주- Josef-Stefan Kindler & Andreas Otto Grimminger
** 유투브 / http://youtu.be/2-16DhStO0M

◆ 고딕(Gothic) 음악
그레고리오 성가로 대표되는 로마네스크 음악을 중세음악의 제1단계라 하면 복음
악, 즉 폴리포니로 대표되는 고딕 음악은 중세음악의 제2단계를 가리킨다고 하겠
다. 고딕 대성당의 위풍당당한 외관이나 스콜라 철학의 위대한 체계와 흡사한 정신
력은 새로운 多聲의 모테토에 단적으로 나타나 있다.

◆ 다성 음악(polyphonie, 복음악, 폴리포니)의 기원
고딕 시대는 서양음악사상 가장 큰 사건이 일어난 시기라고 할 수 있겠다. 즉 다성
음악의 발생이 그것이다. 현존하는 가장 초기의 폴리포니 형태의 실례는 9세기 말
의 이론서 <무지카 엔키리아디스, Musica enchiriadis, 음악안내서>에서 볼 수 있는
오르가눔으로서, 그레고리오 성가를 상성정선률(上聲定旋律)로 하여 5도 또는 4도
의 병행진행을 곁들인 것이다. 또 디스칸투스 스프라 리브룸이라는 것은, 그레고리
오 성가의 성가본에 적힌 멜로디를 테너로 하여 거기에 즉흥적으로 대위성부(對位
聖部)를 노래하는 중세의 가창법도 이 시기에 만들어졌다.

** 오르가눔(Organum)이란 중세 초기의 다성음악이다.
9-13세기경의 가장 초기의 다성음악으로, 그레고리오 성가의 가락에 하나 또는 그
이상의 대성부를 붙여 동시에 부른다. 9-10세기의 가장 오랜 것은 병행 오르가눔이
라 하며, 그레고리오 성가의 가락(정한가락)과 제2의 성부(오르가눔 성부)가 1음표
대 1음표의 스타일로 되어 5도 또는 4도의 음정으로 엄격하게 병행하여 진행한다.
이와 같은 기계적인 같이가기에서 벗어난 11-12세기의 자유 오르가눔에서는 1음표
에 다음표(多音符)의 것도 보이고, 비껴가기, 갈려가기, 윗소리, 아랫소리의 교차도
때때로 하게 된다. 12세기에는 정한가락의 각 음은 아랫소리에서 길게 연장되고 대
성부는 이와 같이 지속된 아랫소리에서 가늘게 움직이는 멜리스마적 오르가눔이 나
타난다. 이처럼 오르가눔은 초기의 단순한 것에서부터 점차 발전하여 뒤에 복잡한
대위법 음악의 모태가 되었다.

◆ 모테트(motet)
모테트(Motet)는 중세의 르네상스 시대를 전성기로 한 중요한 성악곡의 한 분류이
다. '언어'를 뜻하는 프랑스어 'mot'에서 유래하며, 처음에는 '언어를 가진 성부
(motetus)'만을 가리켰는데, 지금은 악곡 전체를 가리키는 명칭이 되었다. 13세기
에 정착되었고, 오늘날까지도 불리고 있는 양식이지만, 바로크 시대의 모테트는 르
네상스 시대의 모테트를 이어받아 2중합창, 코랄편곡, 엄격한 성악 푸가 등의 양식
에 통주저음 반주와 다른 악기로 덧붙여 반주를 첨가한 양식으로 독일어 가사를 갖
는 종교적 다성합창곡이었다.

◆  중세의 모테트
중세의 모테트는 13세기 초기의 노트르담 악파에 의하여 정형화되었으나, 그 전형
적 타입은 그레고리오 성가를 정선률로 하였고, 각기 다른 가사를 갖는 2성부가 함
께 노래되었다. 이것을 2중 모테트라 한다. 상성부의 가사는 처음에는 그레고리오
성가의 가사내용을 설명하는 것이었으나, 곧 각기 그 내용이 다른 별도의 언어로 작
사되는 일이 종종 있었다. 즉 예를 들면 그레고리오 성가를 정선률로 하고, 제2성부
는 프랑스어의 종교시를, 제3성부는 프랑스어로 쓴 연애시를 동시에 노래하는 것
도 생겼다. 이와 같은 경우 정선률은 말로 노래하지 않고 다만 악기만으로 연주되었
을 것으로 생각된다. 14-15세기에는 세속적인 가락이 정선률로 선택되는 일도 종
종 있었다. 14세기 모테트의 작곡가로는 프랑스의 기욤 드 마쇼가 뛰어났다.

◆ 르네상스 시대의 모테트
르네상스 시대의 모테트는 미사와 마찬가지로 15-16세기의 가장 중요한 교회 합창
음악이다. 보통 라틴어 가사로 된 4-6성부의 무반주 합창곡이며, 가톨릭 교회의 전
례를 위하여 만들어졌다. 그 밖에 영국의 작곡가 던스터블이나 부르고뉴의 뒤파이
등이 쓴 기악반주부의 독창 모테트나 16세기 중엽에 영어를 가사로 한 앤섬anthem)
이라 하는 특수한 타입의 모테트도 나타났다. 르네상스의 모테트는, 오케겜, 오브레
히트, 죠스캥 데 프레, 이자크, 피에르 드 라 류 등의 플랑드르 악파의 작곡가에 의
하여 확립되었고, 16세기 후반 오를란두스 라수스의 작품으로 정점에 이르렀다. 이
시대의 모테트는 중세 모테트의 큰 특색이었던 다가사성과 정선률 지배는 모두 버
리고 대신 각 성부가 평등하게 모방되는 모방양식으로 쓰였다. 그 후 모테트는 기악
곡에 전용되어 리체르카레를 낳고, 푸가의 중요한 모태가 되었다.

** 감상
Johann Pachelbel(1653-1706)- 2개의 합창단과 통주저음을 위한 모테트
   Jauchzet dem Herrn(야훼는 하느님이시다, 시편100편)
    연주- La Capella Ducale, Musica Fiata, Roland Wilson
** 유투브 / http://youtu.be/wvE2L_-LuXE

◆ 대위법
둘 이상의 독립된 성부(聲部)를 결합하는 작곡기법은 초기의 다성악, 오르가눔에서
는 테너에 중점을 두고 대성부(對聲部)는 매우 종속적이어서 4도, 5도의 병행으로
나아갔다. 14세기 아르스 노바에 이르러 4도, 5도의 완전 협화음의 병행진행은 금지
되고 3도, 6도가 우위를 차지하게 되며 각 성부가 독립적으로 움직이는 모방양식(模
倣樣式)이 확립된다. 이 대위법의 전형적인 작곡기법 악종은 모테토이다. 테너의 정
선률에 각기 다른 가사가 있는 2성부를 동시에 부르는 2중 모테토가 전형적이며 테
너와 다른 성부가 동일 리듬형을 반복하는 형태로 작곡되어 있다. 아르스 노바의 거
장인 마쇼는, 3성의 모테토를 많이 썼다. 부르고뉴 악파에서는 4성의 모테토가 표준
이 되고 각 성부는 공통의 가사를 지니며 중세 모테토의 2대 특징이었던 다가사성
(多歌詞性)과 정선률의 지배가 상실된다. 영국의 단스타블이나 부르고뉴 악파의 뒤
파이에게서 기악반주가 있는 독창 모테토도 볼 수 있다. 계속되는 플랑드르 악파에
서는 모테토가 4에서 6성부로 되며, 미사와 더불어 중요 악곡형식이었다. 각 성부
가 평등하게 모방에 참가하는 통모방양식(通模倣樣式)이 성립되고 죠스캥 데 프레
에 의하여 완성되었다.

** 감상
Josquin de Pres- Missa Pange Lingua 중 Gloria (4성)
   연주 - the hilliard ensemble
** 유투브 / http://youtu.be/o1wlcC_cn-c

  ** 출처 / Wikipedia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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