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으로 <바그너 튜바>라고 불려지지만 독일에서는 <바이로이트 투벤> 또는 <투
벤>으로 불려진다. 바그너는 금관악기를 다루는 데 그 어느 작곡가보다도 능숙했다. 그는
악극 <니벨룽의 반지>의 공연을 위해 각각 다른 음색을 갖는 금관군을 4개의 그룹으로
구성했다. 호른 파트에서는 프렌치 호른을 8개까지 늘렸고 트럼펫에는 베이스 트럼펫을,
트롬본에는 더블베이스 트롬본을, 튜바엔 베이스 튜바를 부가하여 각 악기군을 완성시켰
다. 아울러 특수한 튜바를 고안했다. 호른의 음질을 최저음까지 확대하기 위해서였다.
바그너가 이 악기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1853년 파리에서 색소폰의 발명자인 아
돌프 색스(Adolphe Sax)의 악기점을 방문했을 때였다. 색스는 1849년부터 소프라노에서
콘트라바스에 이르는 색소폰을 비롯해서 색소 튜바, 색소 트롬바 등 금관 악기군을 고안
해서 보급하고 있었다. 그 가운데서도 색소 호른의 음색이 자기가 원하는 것에 아주 가깝
게 느껴졌고 여기서 힌트를 얻어 새로운 튜바를 고안했다. <니벨룽의 반지>에서 발할라
의 모티프를 트롬본처럼 둔중하면서도 호른처럼 부드러운 사운드로 표현할 수 있는 악기
를 원했고 결과적으로 바그너 튜바는 프렌치 호른보다 굵고 베이스 튜바보다는 좁은 원뿔
형의 관을 가지는 형태로 고안되었다.
마우스 피스는 튜바에서 쓰는 큰 컵 모양이 아니고 호른에서 사용되는 샴페인 잔 모양의 깊
고 작은 컵을 사용한다. 호른 연주자가 연주하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에 다른 금관
악기와는 달리 오른손이 아닌 왼손으로 로터리 밸브를 조작하는 것도 바그너 튜바의 특징이
다. 바그너 튜바가 내는 소리는 호른보다 부드럽고 풍부하며 그윽하다. 아울러 호른보다 조
용하고 먼 곳에서 울려오는 소리처럼 들리면서도 선명하게 울리는 것이 특징이다. 니벨룽의
반지가 바이로이트 에서 초연되기 한 해 전인 1875년까지 독일의 카를 빌헬름 모리츠(C.
W. Moritz)가 이 악기를 제작했다.
이후 다른 작곡가들도 이 악기를 편성한 곡을 썼다. 브루크너는 교향곡 제7번을 작곡하던
1883년, 평소 존경하던 바그너의 서거 소식을 듣고 곧 바로 제2악장에 4개의 바그너 튜바
를 사용해 애도의 뜻을 표했다. 그의 교향곡 제8번과 9번에도 바그너 튜바가 등장 한다. 브
루크너는 피아노에서 피아니시모에 이르는 아주 여린 다이내믹의 악구에서 수심어린 생각에
잠겨있는 듯한 느낌을 부여할 때 바그너 튜바를 사용했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알프스 교향곡>과 오페라 <엘렉트라>, <그림자 없는 여인>, 스
트라빈스키의 <불새>, 쇤베르크의 <구레의 노래>에서도 이 악기가 사용된다. 영국 작곡가
앤드류 다운스는 2005년 <8개의 바그너 튜바를 위한 다섯 개의 극적인 소품(5 Dramatic
Pices)>을 작곡했다. 펠릭스 드래제케, 소피아 구바이둘리나, 마이클 니만, 라우타바라, 에
사 페카 살로넨, 에드가 바레즈, 존 윌리엄스 등이 바그너 튜바를 사용한 곡을 발표했다.
바그너 튜바는 프렌치 호른과 트럼본을 합쳐 놓은 것 같은 음색을 갖고 있지만 악기의 외양
은 로타리 식 벨브를 장착하고 있는 등 프렌치 호른에 더 가깝다. 이런 연유로 켄트 케넌은
“바그너 튜바는 튜바라기보다는 변형 호른이다”라고 말했는데, 실제로 바그너 튜바는 튜바
보다는 호른에 더 가까운 악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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