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르/음악 용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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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곽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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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하임 악파(Manheim School)


** 사진 : 선제후 카를 테오도르 

** 유투브 감상 /
Christian Cannabich - Symphony No.63 in D-major
Orchestra: Lukas Consort, Conductor: Viktor Lukas
http://www.youtube.com/watch?feature=player_detailpage&v=hEBrac-J9-Q
 

18세기 중엽에서 말엽까지 독일의 파르쓰 선제후(選帝候)領의 主都인 만하임을 중
심으로 폭 넓은 활동을 펼친 악파를 일러서 [만하임 악파]라고 한다. 선제후 카를
테오도르(Carl Theodor, 1724∼1799)는 예술과 철학 등 지적(知的) 활동에 깊은 흥
미를 갖고있는 인물로 유명하며, 만하임에 재임(1743∼78)하는 기간 중에 예술활동
을 장려하고, 또한 이를 촉진시키는데 많은 재정적 출자를 함으로써 당시의 예술가
들로부터 칭송을 받았다. 그는 박물관과 도서관을 지어 이들 시설을 충실하게 운영
하였으며, 이로써 만하임의 문화적 수준을 이끌어 올리는데 크게 기여하였을 뿐만
아니라 만하임을 독일에서 가장 중요한 문화의 중심지로 만들었다.

테오도르는 그 자신이 음악가이기도하여 플루트(flute)와 클라리넷(clarinet), 첼로를
연주하였다. 또한 유능한 음악가를 선발하여 궁정에 초대하여 봉직하게 함으로써
그들의 생활을 보장하고 이로써 예술을 진작케 했던 것이다. 테오도르는 오페라 분
야에도 눈부신 기여를 했는데, 시인 맛티아(Mattia Verazi)를 대본 작가로 등용했고,
핫세 , 트라엣타, 욘메리, 핏체니, 살리에리 등의 오페라 세리아(正歌劇), 페르골레
지, 카치니, 안폿츠, 파이지엘로 등의 오페라 부파(喜歌劇), 그레트리의 프랑스 풍
희가극인 오페라 코미크 등 다양한 장르의 오페라 작품을 소개하였다. 이들 오페라
의 소개를 위해 1752년, 離宮 쉬벳쉬켄에 [로코코 극장](Rokokotheater)을 완성하
고 매년 여름 기간에 이 극장에서 오페라를 상연하였다.

또한 당대의 명가수들을 이 공연에 초청하여 작품 내용의 완성도를 높이는데도 각
별한 배려를 하였는데 그러한 명가수들 중엔 모차르트와의 교분으로 유명한 안톤
라프(Anton Raaff, 1714∼97)가 포함되어 있었다. 1741년과 1742년, 카를 테오도르
는 보헤미아의 바이얼리니스트 요한 시타미츠(1717∼1757, 뵈멘生)의 연주를 듣고
크게 감명 받고 그를 궁정악단에 초청하여 1743년에 제 바이올리니스트, 1745∼
1746년엔 악장으로 임명하였다. 시타미츠의 지도로 만하임 궁정악단은 비약적인 발
전을 이룰 수 있었고 그들의 연주기량은 명실상부한 유럽 최고의 수준을 자랑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유럽의 명연주자들이 만하임으로 집결하는 현상이 나타나게 되
었고, 그 결과 만하임은 관현악의 중심지로 부상하였다.

이 당시 만하임에서 활동한 저명한 연주자들 중엔 F. X.리히터(1747년, 만하임 착
임), 피르츠(1754, 착임)<이상 보헤미아 인>, 호르츠바우어(1752년 착임, 오스트리
아 인), 토에츠키(1752년 着任), 단찌(1754년 착임)<이상 이탈리아 인)등이 있는데
그 중에서도 시타미츠(Stamitz)는 만하임 악파 최초의 세대(世代)라는 점에서 특별
히 기억되어야 하리라 생각된다.

요한 시타미츠의 제자 크리스티안 칸나비히(Christian Cannabich, 1731∼1798)는 스
승의 뒤를 이어 오케스트라의 연주기량을 높이는데 헌신했다. 칸나비히는 만하임
악파의 제2세대를 대표하는 인물이며 이밖에 F.베크, 카를 시타미츠와 안톤 시타미
츠(요한 시타미츠의 아들들), 에른스트 아이히너(Ernst Eichner, 1740∼77)등의 음악
가들이 활약하였다. 이후 세대로는 W.크라머, 페테르 리터(Peter Ritter, 1763∼
1846), 빈터(Winter), 베르츠브르크 生의 포글러 등도 주요 작곡가들이다.

칸나비히의 철저한 지도와 훈련을 받은 만하임 궁정 오케스트라의 상황은 그곳을
방문한 영국의 음악사가 (音樂史家)버니에 의해 유럽 각지의 음악가들에게 전해진
다. 버니의 기록에 따르면 "그들은 긴밀하고 완벽한 단원들의 협동에 의해서 정확하
고 일치된 보잉(bowing, 운궁법)과 프레이징을 들려주었고, 강약의 대조효과를 활
용하여 표정이 풍부한 연주를 하였다."고 되어 있다.

만하임 궁정 오케스트라는 칸나비히를 비롯하여 프렌씨르, 토에스키, 카를 시타미
츠, 안톤 시타미츠, 토에스키의 제자 지오반니 밧티스타(Giovanni Battista Toeschi,
ca.1727∼1800), 야코프, 빌헤름 크라머 父子 등 기라성 같은 현악기의 명연주자들
을 포진시키고 있었다. 한편, 관악기 부문에서도 명인기적인 기량을 갖추고 있는 비
르투오조들이 즐비했는데 플루트의 벤틀링, 오보에의 람(Friedrich Ramm,1744∼
1808), 파곳의 리터(Georg Wenzel Ritter, 1748∼1808), 모차르트와의 관계로 유명
한 호른의 딤러(Franz Anton Dimler)와 랑 父子(Martin Lang, Franz Lang), 오보에의
레브룬(Ludwig August Lebrunn, 1752∼90)등이 있다. 당시 만하임 궁정 오케스트라
엔 평균 60명 내외의 단원이 확보되어 있었다고 하니 유럽의 다른 악단들이 얼마나
이 악단을 동경했었는지 추측할 수 있을 것이다.

만하임 궁정 오케스트라의 명연주는 당시 파리에서 개최되고 있었던 콩세르 스피리
추에르(Concert Spirituel) 에  조차 찬탄의 대상이었는데, 이러한 것은 작곡가들에게
도 큰 자극이 되어서 만하임의 창작 분야에도 큰 성과를 거두게 하였다. 대체로 지
금까지 학자들 사이에서 공인되고 있는 만하임 악파의 작품들이 갖고있는 특징은
다음과 같이 정리된다.

1. 메뉴에트(menuet)의 도입 / 만하임 악파에 의해서 allegro-andante-menuet-
presto의 4악장 제도가 확립되었다.

2. 대조적인 주제를 동일 악장에 배치하였다(역동적인 제1주제와 서정적인 제2 주
제). 이러한 새로운 형식은 음악의 대비(對比, Contrast)를 강조하는데 큰 효과를 나
타냈으며 이후 서양음악의 거의 기본적인 틀이 되었다. 동시에 그때까지 서양음악
의 중요한 골격의 하나였던 푸가(fuga)형식을 버렸다. 관현악에 있어서는 바이얼린
이 중심을 이루었고, 바이얼린 선율 우월의 호모포닉한 대위법이 사용되었다.

3. 통주저음의 사용을 가급적 지양하고 호모포닉한 것으로 이행하였다.

4. 관악기를 중시하였다. 특히 클라리넷을 관현악에 제일 처음으로 채택하여 색채
적인 울림을 표현하였다.

5. 크레센도, 디미뉴엔도(diminuendo, 점점 여리게), 폭발적인 포르테와 포르티시모
를 사용하여 관현악의 다이내믹한 표현에 크게 성공하였다.

6. 큰 쉼표를 사용하였다.

7. [만하임 메니어]로 불려지는 오케스트라의 표현 수법을 사용하였다. 즉 분산화음
과 상승음을 사용함으로써 표현의 극대화를 꾀했다. 오늘날의 오케스트라가 흔히
사용하고 있는 여러 기법(技法)들이 이미 만하임의 궁정 오케스트라에 의해서 대부
분 확립 됐다는 사실만으로도 이 악단이 당시의 유럽 음악계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
쳤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8세기에 들어가게 되면 만하임
악파의 이름은 서양 음악사의 큰 흐름에서 슬그머니 사라지게 된다.

지금까지 여기에 소개한 만하임 악파의 그 눈부신 업적들은 분명히 음악사상 커다
란 의미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지만, 그러나 이러한 새로운 시도들이 만하임 이외
의 지역에서--- 베를린, 파리, 암스테르담, 로마 등--- 거의 동시에 많은 음악가들
에 의해 추진되고 있었다는 사실을 상기한다면 만하임 악파의 상대적 중요성이 18
세기부터 서서히 퇴색되기 시작하게 된 상황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18세기에 들어서서 다시 만하임 악파에 관한 이야기들이 등장하게 되는데 그것은
주로 관현악단의 연주 기량과 단원의 연주 기술을 언급할 때  국한된 느낌이다. 그
러나 20세기에 이르자 리만(K.Riemann, 만하임 악파의 재발견자로 불려진다)은 만
하임 악파가 거둔 음악적 성과를 창작부문에 오히려 더 큰 비중을 주면서 재조명 하
게된다. 리만은 만하임 악파가 고전파 음악의 완성에 크게 공헌했다고 주장하였다.
물론 그의 주장이 터무니없는 것은 아니나 위에서 밝힌 것처럼 만하임 악파의 음악
역시, 당시 유럽의 많은 악파들의 음악적 성과와 같은 맥락에서 보는 것이 보다 합
리적일 듯 싶다. 이를테면 [前古典派]를 이루고 있는 각 악파의 한 부분으로서 조명
하자는 것이다.

만하임 악파의 음악이 이토록 번성했던 것은 지리적으로 이탈리아와 보헤미아의 음
악을 흡수하기에 유리했다는 사실과 유력한 음악의 옹호자를 가졌다는 측면에서 분
석될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만하임 악파에 속한 음악가들의 진취적인 기질도 한
몫을 단단히 한 셈이다. 그 결과 그들의 음악은 런던, 파리 등지로 널리 알려지게 되
었고 만하임은 국제적인 음악시장(音樂市場)이 되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들의
음악은 수많은 다른 지역의 음악가들에게 영향을 끼치게 되는데, 그 중에서도 특히
요한 시타미츠의 영향을 받은 작곡가로는 보케리니, 크리스티안 바하, 디터스돌프,
모차르트 등이 있다. 특히 모차르트는 여러번 이 도시를 방문하고 관현악단 혹은 명
연주자들로 부터 감명을 받아 그의 작품에 반영시켰다. 또한 베토벤이 만하임 악파
의 작품과 접촉이 있었다는 사실도 주목된다.

** 퍼 가는 것은 좋습니다. 그러나 반드시 출처를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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