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르/음악 용어

0
 147   8   3
  View Articles

Name  
   곽근수 
File #1  
   12419869_113250567466[1].jpg (19.1 KB)   Download : 49
File #2  
   m80325a_99110202230_EMPMariusLeitdorf_445x319[1].jpg (22.7 KB)   Download : 43
Subject  
   선제후(Kurfürst, Elector Counts, 選帝侯)


 

** 사진 . 위-보헤미아 왕국의 지그문트 왕(Zikmund, Sigismund, 1419–1437)
             아래-Marius Leitdorf
 
** 선제후란? / 중세 독일에서 황제 선거의 자격을 가진 제후(諸侯).

서양음악들 가운데는 귀족들의 주문에 의해서 작곡된 작품들이 아주 많다. 
그런 가운데서도 선제후의 의뢰나 명령에 의해서 작곡된 작품들이 많은데,
선제후는 국왕을 선출하는 권리를 가진 제후로서 국왕과 동등한 권위를 인정
받았다. 선거후(選擧侯) 또는 선정후(選定侯)라고도 한다. 유럽 여러 나라의
왕위 계승에는 혈통으로 승계되는 방식과 선거로 왕을 뽑는 두가지 방식이 얽
혀 있었다. 독일 황제의 경우 작센왕조 시기에 혈통에 의한 계승이 정착하는
듯 하였으나 성직서임권투쟁(聖職敍任權鬪爭)을 거친 후에는 선거 방식이 강
세를 보였다.

13세기에는 마인츠·쾰른·트리어의 대주교(大主敎), 라인 궁중백(宮中伯)·작센
공(公)·브란덴부르크 변경백(邊境伯)이 선거의 제후회의에서 주역을 맡았다.
13세기 말부터 위의 6사람과 베멘(보헤미아) 왕이 참가한 7선제후가 선거권을
독점하기에 이르렀다. 렌스 선제후회의(1338)에서는 교황의 확인을 기다리지
않고 선거만으로 황제가 될 수 있게 되었다. 1356년에 신성로마 황제인 카를 4
세(재위 1347~1378)가 제국의회(帝國議會)에서 발표한 제국법(Golden Bull
of Emperor Charles IV)인 금인칙서(金印勅書)는 황제 선거의 수속과 선제후
의 지위를 성문화했다. 그 이전까지의 선거는 원래 전원일치제였으나 금인칙
서에 의해 다수결제가 채택되었다. 그러나 17세기 이후 7선제후 제도는 무너졌
다.

선제후의 영토는 분할할 수 없고 반드시 장남에게 상속되었으며, 그 권력은 국
왕의 대권에 준하였고 그들에 대한 공격은 대역죄로 취급되었다.

註 : 성직서임권투쟁
11세기 후반부터 12세기까지, 가톨릭의 주교와 수도원장 등의 성직 서임권을
둘러싸고 로마 교황과 유럽 각국의 군주 사이에 벌어졌던 싸움이다. 1122년 보
름스 협약에 의하여 교회법에 의한 선거를 인정함으로써 교황의 승리로 끝났
다.

註 : 변경백(Markgraf, 邊境伯)  
프랑크왕국과 중세 독일제국에서 마르크(Mark:邊境區)의 행정을 담당한 지방
관. 변경방위라는 임무의 성격상 많은 권한이 허용되어 일반행정 지방관인 그
라프(Graf:地方伯)보다 지위가 높아 공(公)의 지위와 비슷한 존재로 인정되었
다. 카를 대제 때 처음 임명되었고, 독일제국 작센왕조 때 그 벼슬이 높여졌
다. 12세기 초 브란덴부르크 ·오스트리아의 두 마르크그라프가 제국 제후(諸
侯)의 위치로 승격된 것을 비롯해 점차 제국 직속세력이 되어 중세 말에는 공
에 준하는 세력을 소유하였다. 이 제도는 원래 독일 특유의 제도였으나, 중세
독일 황제가 이 제도를 도입하자 이탈리아 ·프랑스에서는 마르케제
(Marquese)와 마르키(Marquis)라는 귀족의 영예 존칭으로 남았고, 영국에서
도 이 칭호가 주어졌다.

** 사진 : 보헤미아 왕국의 지그문트 왕(Zikmund, Sigismund, 1419–1437)

** 퍼 가는 것은 좋습니다. 그러나 반드시 출처를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Name
Memo
Password
 
     
Prev
   프레이징(phrasing)

곽근수
Next
   디베르티멘토(Divertimento)

곽근수


Copyright 1999-2020 Zeroboard / skin by Zety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