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르/음악 용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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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곽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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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판소리



** 유투브 감상
박록주 바디 박송희류, 재미있는 '흥보가' 완창 실황영상, 소리 김명자
http://youtu.be/YrAq0u0vTGY


** 판소리의 탄생
영화 [서편제]가 외국의 이름 있는 영화제에서 작품성을 높이 인정받고, 그로
써 한국 영화의 위상이 한 계단 올라 선 것은 흐뭇한 일입니다. 아울러서 이 영
화는 우리 국민의 마음속에 잠재해 있었던 한국적 얼을 일깨우는 역할도 해서
우리 전통음악, 특히 판소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것도 반가운 현상입니다.
그런데 정작 서편제라는 영화를 보고 나서도 서편제(西便制)라는 말이 어떤 뜻
인지를 모르는 분들도 상상보다는 많다고 합니다.

우선, 판소리라는 말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여기엔 두 가지 학설이 있습니
다. 한 가지는 육당(六堂) 최남선(崔南善)의 견해인데 "시작이 있고 끝이 있고
그런 한마당(판)이 짜인 소리"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소설로 치면 '소설 한
권'을 쓰듯이 어떤 노래의 한 묶음을 짠것이 판이고, 그것을 노래하는 소리가
모여서 판소리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또 한 가지 설은, '판'을 마당(장소)의 개
념으로 보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모인 자리', 즉 마당을 판이라고 하고, '소
리'는 노래라는 뜻이니, 이 둘을 합치면 '마당에서 하는 소리', 즉 판소리가 된
다는 설명입니다. 그런가하면 판소리의 다른 이름도 많아서 타령(打令)·잡가
(雜歌)·판놀음·광대소리·남도소리·창악·본사가(本事歌) 따위가 있습니다.

판소리는 지역에 따라서 노래하는 방법이 다소 차이가 나기 마련입니다. 지방
마다 그곳의 고유한 사투리가 쓰여지는 현상과 같은 이치인 것입니다. 때문에
판소리가 발생한 전라도 지역 중에서 지리산을 분기점으로 삼아서 동쪽의 판
소리는 동편제(東便制), 서쪽의 소리는 서편제라고 구분하는 것입니다. 동편제
가 불려지는 지역은 운봉·구례·순창·흥덕 등이고, 서편제의 지역은 광주·나주·
보성 등입니다.

동편제의 특징은 우조(羽調)가 중심을 이루기 때문에 꿋꿋하고 남성적이며 잔
가락이나 꾸밈이 적습니다. 이에 비해서 서편제는 계면조(界面調)가 중심을 이
루기 때문에 애잔한 느낌이 강하고 여성적인 성격인데다 잔가락과 꾸밈이 많
은 것을 특징으로 삼습니다. 전라도 지방의 판소리는 이렇듯 동편과 서편으로
나뉘지만, 서울의 상류층이 즐긴 판소리는 경제(京制), 충청지방의 판소리는
중고제(中高制)라고 부릅니다. 소리를 낼 때 평평하게 시작해서 중간을 높이
는 창법을 쓴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중고제의 성격은 가락이 맑고 담담
한 것을 특징으로 삼고 있는데 유감스럽게도 중고제의 판소리는 오늘에 전해
지는 것이 거의 없는 실정입니다. 그러나 오늘에 와서는 동편제니 서편제니 하
는 구분이 점차 희미해지고 있다고 합니다. 원활한 교통이 사람의 교류를 예전
보다는 훨씬 수월하게 만들어준 탓입니다.

** 판소리 12 마당

판소리가 언제부터 불려졌는가? 하는 판소리의 기원에 관한 명쾌한 답이 아직
은 없습니다. 단지 여러 가지 문헌에 단편적으로 판소리에 관해 기술되어 있
는 자료를 종합해서 추정할 뿐인데, 대체로 두 가지 학설이 있습니다.

함화진(咸和鎭)의 [조선 음악 통론]에서는 "판소리를 부르는 계층이 주로 광대
였는데, 광대는 신라 초부터 있었으니 결과적으로 판소리의 발생은 신라 초까
지 거슬러 올라간다"고 설명합니다.

[한국 음악사]의 저자 장사훈(張師勛)은 "판소리의 성립은 이조 숙종 이후 영
조 무렵으로 소급되며 초기의 판소리는 무악(巫樂)과 관련이 있다"고 해서 함
화진과는 견해를 달리하고 있습니다. 대체로 관련 학자들 사이에서 통용되는
판소리의 기원론은 장사훈의 주장에 근접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원래의 판소리는 12마당이나 됐다고 합니다.
1. 암꿩의 말을 듣지 않고 덫에 치인 장끼 이야기인 [장끼 타령]
2. 천하 잡놈 변강쇠가 장승을 업어다 불 땐 벌로 장승 송장이 된다는 [변강쇠
타령]
3. 내용이 자세하게 전해지지 않은 [무숙이타령]
4. 제주 목사를 따라가 기생 애랑에게 망신당하는 [배비장 타령]
5. 효녀 이야기 [심청가]
6. 흥부 놀부의 이야기 [흥부가]
7. 자라와 토끼의 이야기 [수궁가]
8. 춘향과 이도령의 사랑 이야기 [춘향가]
9. 강릉 기생 매화의 설화인 듯 한 [매화전]
10. 숙영 낭자의 이야기 [숙영낭자전]
11. 고집 센 옹고집의 이야기 [옹고집타령]
12. 삼국지에서 가져온 적벽대전의 [화용도](赤壁歌)

그런데 이 가운데서 오늘날에 전해지는 판소리는 춘향가·심청가·화용도·수궁가
·흥부가 등 다섯 마당에 불과 합니다. 나머지 일곱 마당이 없어진 이유에 대해
서 송만재(宋晩載)의 관우희(觀優戱)에 "나머지는 모두 경정(經庭)하여 정을
가까이 할 수 없다"고 기록되고 있습니다. 내용이 외설적이거나 황당한 것은
자연 도태되었던 것입니다. 또한, 학자에 따라서는 12마당 중에서 숙영낭자전
대신에 [가짜 신선타령]을 넣고, 숙영낭자전은 최근에 복원된 것으로 보는 경
우도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지금까지 전해지는 판소리 다섯 마당은 삼강오륜(三綱五倫)에 가
까운 내용을 지니고 있어서 신재효(申在孝)를 비롯한 선비들이 건전하고 유식
한 말로 윤색하여 즐겨 노래했고, 그것이 오늘에 전해졌던 것입니다.

** 판소리의 3 요소

판소리를 구성하는 세 가지 요소가 있습니다. 소리, 아니리(白), 발림(科)이 판
소리의 3요소인 것입니다. 판소리는 처음부터 끝까지 전부를 소리로만 하는 것
은 아닙니다. 소리를 하다보면 어떤 상황이나, 오고 가는 대화, 또는 어떤 장면
을 설명할 필요가 발생하게 되는데 이런 경우엔 소리로 하지 않고 말하듯이 하
게됩니다. 이것을 '아니리'라고 합니다. 모차르트의 오페라 [요술 피리]를 들
어보면 가수들이 노래를 하다가 어떤 장면에서는 말 체로 하는 부분이 등장합
니다. 이런 식의 오페라를 [징시필(singspiel)]이라고 합니다. 이를테면 독일
식 판소리이자, 독일식 아니리인 셈이죠.

'발림'은 소리를 하면서 동시에 몸짓으로 대사의 내용을 연기하는 것을 이르
는 것입니다. 따라서 판소리 꾼, 즉 창곡자(唱曲者)는 뛰어난 배우의 소양(素
養)도 지녀야 하는 것입니다.

세상사가 다 그렇듯이 판소리를 연창(演唱)하는데 있어서도 어느 한 편에 치우
치면 볼쌍 사나운 결과가 되기 십상입니다. 어떤 사람은 아니리에 너무 치우쳐
서 판을 장황하게 만들어 버리는데 이렇게되면 긴장감이 옅어져서 듣기에 딱
딱하고 지루해지기 마련입니다. 이런 소리꾼을 '아니리 광대'라고 불렀다 합니
다.

판소리에서는 고수(鼓手)의 역할이 대단히 큽니다. 단순히 북만치는 것이 아니
고 노래하는 사람(唱者)의 노래가 너무 차 오르면 짐짓 늦추어 주고, 너무 비
워 있으면 채워주어야 하고, 이를 위해서 '조오타' '조오치' '으이!' '얼씨구!'하
는 추임새를 넣어주는 것입니다. 그런가하면 우스운 대목에서는 웃어 주어야
하고, 슬픈 대목에서는 우는 시늉도 해야 하니 고수의 역할은 오히려 소리꾼
의 그것을 능가할 정도인 것입니다. 그래서 예로부터 일고수 이명창(一鼓手 二
名唱)이라고 해서 고수를 제일로 치고 그 다음에 명창을 쳤던 것입니다. 그뿐
이 아닙니다. 서양음악이 연주되는 공연장에서 청중이 지켜야 할 첫 번째의 덕
목은 정숙(靜肅) 입니다. 객석이 소란스러우면 서양음악의 연주는 불가능하다
고 말해도 좋을 정도인 것입니다. 그러나 판소리를 감상하는 청중들이 정숙을
지킨다면 그 공연은 참으로 김 빠진 맥주 꼴이 되기 십상입니다. 청중도 고수
와 마찬가지로 추임새를 넣어서 분위기 조성에 한 몫을 거들어야 비로소 제법
수준 있는 청중으로 대접을 받을 수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판소리 공연의 3대
요소가 존재하게 됩니다. 일고수 이명창 삼청중(一鼓手 二名唱 三聽衆), 즉 첫
째는 고수요, 둘째는 명창이며, 셋째는 청중인 것입니다.

** 판소리 10 마당

판소리의 레퍼토리는 본래 12 마당이었는데 그 가운데서 오늘날에 전해지는
판소리는 춘향가·심청가·화용도(적벽가)·수궁가·흥부가(흥보가) 등 다섯 마당
에 불과 합니다. 그러나 오늘날에 와서는 소멸된 나머지 판소리의 복원 작업
이 진행되어서 상당한 부분들이 재구성되어 불려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리
고 이러한 복원 작업은 명창 박동진(朴東鎭)의 개인적 노력에 거의 전적으로
의존되고 있는 실정이기도 합니다. 신재효의 사설에 소리를 붙여 부르고 있는
[변강쇠가]를 비롯해서 역시 박동진이 곡을 붙여서 노래하고 있는 [배비장 타
령] [숙영낭자전] [장끼 타령] [옹고집타령] 등 다섯 마당의 판소리가 복원되
거나 재구성된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오늘에 불려지고 있는 판소리는 열 마당
에 이르는 것입니다.

송만재의 주장에 따르면 7 마당의 판소리들이 소멸된 이유가 외설적인 내용이
거나 공경하는(敬呈) 내용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했는데, 오늘에 전해지는 다
섯 마당의 판소리 가운데서 [춘향전]이나 [심청전] 같은 경우도 의외로 노골
적인 외설적 표현이 많아서 실제의 이유는 차라리 다른 곳에서 찾아야 한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판소리 예술 미학]의 저자 이국자는 그의 저서에서 "변강쇠가는 70여년 전부
터 자취를 감추었고, 현대에 와서 박동진이 그것을 다시 부활시켜 부르고 있
는 이상한 작품이다. 이 작품이 자취를 감추게 된 까닭은 음남음녀(淫男淫女)
의 이야기라는 점과 사설이 음란 조잡하다는 점을 든다. 그러나 심청가·춘향가
는 이보다 훨씬 에로틱한 부분이 많아 변강쇠가 정도는 사실 문제가 되지 않는
다. 그렇다면 문제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그것은 변강쇠가 장승을 패서 땐 신
성모독의 징벌로 장승죽음을 당하고 그 송장을 치러간 사람마다 죽어 여덟 송
장이 연발한다는 희극과 비극의 이해에 있어 '주제의 오해'가 생긴 것이 분명
하다"고 설명하면서 변강쇠가의 주제인, 놀이·폭력·성(性)·금기·쾌락·신성모독
등 당시의 시대적 도덕율이 터부로 삼던 것이기 때문에 대중 속에 뿌리를 내리
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판소리의 발전이 양반이나 토호의
보호 아래서 진행되었다는 그간의 사정을 상기한다면 이러한 주장은 상당한
설득력을 갖는 것입니다.

일찍이 변강쇠가는 전설적 명창인 송흥록(宋興祿)이 즐겨 노래했고, 판소리의
기록에 큰 공을 남긴 신재효가 생애의 마지막 순간에 사설을 정리했으며, 후대
에 와서 박동진이 곡을 재구성하여 열심으로 소리하고 있어서 부활의 전기(轉
機)를 맞이하게 된 것입니다.

** 판소리의 발성

판소리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이 의아하게 생각하는 한가지 의문이 있습니
다. 판소리 명창들의 목소리가 서양음악을 노래하는 가수들처럼 고운 것이 아
니고 왠지 텁텁하고 껄끄럽고 탁하게 느껴진다는 사실입니다.

명창(名唱)을 가늠하는 기준, 즉 아름다운 음성을 판별하는 미학적(美學的) 기
준에서 서양음악과 우리음악은 커다란 차이를 보이고 있습니다. 서양음악에
서 제일로 치는 발성법을 벨 칸토(bel canto) 창법(唱法)이라고 하는데, 복식
(腹式)호흡을 통해서 호흡을 안정시키는 한편 성대는 이상적으로 이완(弛緩)
시킨 상태에서 소리를 공명(共鳴)시켜 아름답고 맑게 발성하는 방법입니다. 이
에 반해서 판소리 창법은 성대와 목구멍(咽喉)을 직접적으로 긴장시키고 배에
서 곧장 소리를 만드는 발성법을 사용합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텁텁하고 껄끄
럽게 느껴지는 소리가 나오게 됩니다. 이런 소리를 '통성'이라고 부릅니다. 물
론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어려운 독특한 발성법입니다.

서양음악을 하는 성악가들도 벨칸토 창법을 익히는데 상당한 어려움을 겪습니
다만 판소리를 배우는 사람들이 겪는 득음(得音)의 과정은 그야말로 가시밭 같
은 길이라고 합니다. 영화 '서편제'에서도 그러한 상황들이 눈물겹게 묘사되
고 있었고, 그것이 관객들을 감동 시켰습니다만 실제로, 이름난 명창들의 생애
를 살펴보면 득음을 위해서 그들이 겪어야했던 고난은 영화보다도 몇 배로 눈
물겨운 것입니다. 문자 그대로 초인적인 공력(功力)을 기울여서 득음의 세계
에 이르고 그래서 명창의 칭호를 얻었습니다만, 이 과정에서 좌절하고 소리를
버리는 경우도 허다하다고 합니다.

예전엔 깊은 산 속에 들어가서 '산 공부'를 하고, 요란스럽게 쏟아지는 폭포수
를 마주하고 목이 터져라 소리를 연마하는 일은 소리꾼들이 반드시 거치는 과
정이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연습 과정에서 목이 쉬고, 터지고, 목구멍에서 피
가 터지는 처절한 자기와의 싸움을 통해서 비로소 득음의 경지에 이르렀던 것
입니다. 명창 임방울의 애인이 득음을 위해 밤낮으로 정진하던 임방울을 찾아
갔지만 연습에 방해가 된다고 해서 끝내 만나주지 않았고, 이에 상심한 애인
이 상사병으로 죽고 말았다는 소설 같은 이야기에서 득음의 세계가 얼마나 들
어서기 어려운 곳인가를 실감할 수 있습니다.

판소리가 서양음악과 다른 또 하나는 음역(音域)의 구분이 없다는 사실입니
다. 판소리에는 소프라노도 알토도, 테너도 베이스도 없습니다. 심지어는 남성
과 여성의 구분도 판소리에서는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음질(音
質)입니다. 목소리의 색깔과 성질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일러서 '성
음' 또는 '목'이라고 부릅니다.

판소리의 발성법은 두개의 큰 줄기로 구분됩니다. 즉, 우조(羽調)창법과 계면
(界面)창법으로 구분합니다. 우조 창법은 남성적이고 꿋꿋한 소리, 계면 창법
은 여성적이고 애조 띤 소리라고 설명되는데, 이국자는 "승전(勝戰)의 전쟁터
에서 바람과 비를 부르고 천병만마(千兵萬馬)를 뒤끓게 하는 우조 창법과, 꽃
을 피우는 봄바람과 같은 소리, 심금을 울리는 단장곡(斷腸谷)의 계면 창법" 이
라는 비교법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조 창법과 계면 창법은 서로 상
당한 특징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이 두 가지 창법을 다 잘하는 명창이 드물다
고 합니다. 즐겁고 밝은 소리를 잘하면 슬프고 한스러운 소리가 잘 안되고, 밝
은 소리를 잘하면 어두운 소리가 잘 안 된다고 합니다. 역사에 기록되고 있는
명창들 중에서 우조와 계면뿐만이 아니고 상·중·하청을 자유자재로 했던 인물
이 있는데, 송흥록이 바로 그분입니다.

한편, 판소리에서 소리의 성질이나 색깔을 일러서 성음, 또는 '목'이라고 부르
고 있는데 목에는 의외로 많은 종류가 있습니다. 언뜻 듣기에 쉰 소리처럼 껄
껄하게 들리기는 하지만 시원하게 쭉쭉 내뻗는 목을 '수리성'이라고합니다. 판
소리 마당에서 으뜸가는 음질로 쳐주는 목입니다. 서양음악에서도 타고난 소
리를 중요하게 여깁니다만 판소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명창들 가운데는 타고
난 좋은 목을 가진 분들이 있습니다. 탁한 듯 들리지만 아주 맑은 소리결인데
이런 목을 일러서 '천구성'이라고 합니다. 쇳소리처럼 아주 단단한 느낌을 주
는 목을 철성(鐵聲), 즉 '쇠목'이라고 합니다.

판소리에서는 이상과 같은 3가지 목, 즉 수리성·천구성·철성을 좋은 소리로 여
기고 이 밖의 다른 음질은 나쁜 소리, 즉 악성(惡聲)으로 분류해서 소리꾼의 소
리를 평가합니다. 나쁜 소리는 다음과 같은 것이 있습니다.

답답하고 빡빡한 '떡목', 서양음악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소리지만 판소리에
서는 아예 악성으로 분류되는 지나치게 되바라지고 맑은 소리를 '겉소리(양
성)', 콧소리가 심한 '비성(鼻聲)', 기교는 좋지만 극적인 긴장감이 없는 '노랑
목', 입안에서만 뱅뱅 돌고 분명치 못한 '함성(含聲)', 목이 전혀 트이지 못
한 '생목', 고음(高音), 즉 윗소리가 잘 발성되지 않는 '눅은 목', 메마르기 짝
이 없는 '마른 목', 도무지 기복이 없이 밋밋한 '굳은 목', 비브라토가 지나쳐
서 발발 떠는 '발발성(顫聲)' 따위가 있습니다.

한편, 판소리를 하는 사람들의 성역(聲域)은 약 3 옥타브 절반 이상이고, 특히
남성의 경우엔 거의 4 옥타브에 가까운 경이로울 만큼 넓은 폭(幅)을 들려줍니
다. 서양음악을 노래하는 성악가들로서는 상상도 못할 놀라운 성역이라 하겠
습니다.

** 판소리 명창들

지리산을 경계로 해서 동쪽에서 불려진 판소리를 동편제, 서쪽에서 불려진 것
을 서편제라고 부른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서울에서 불려진 경
제(京制)와 경기도와 충청도에서 불려진 중고제(中高制)에 비해서 동편제와
서편제의 세력이 크다는 사실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판소리의 발생지가 전라
도 지방이기에 어쩌면 당연한 귀결인 듯도 싶습니다.

일반적으로 동편제는 꿋꿋하고 장엄하며 남성적인 소리, 서편제는 한(恨)스럽
고 여성적인 소리라고 구별합니다만, 창법에서 느껴지는 차이를 두고 본다면,
동편제는 소리의 끝을 마치 절벽처럼 끊어 버리는 창법이고, 서편제는 소리의
꼬리를 길게 늘여서 기교를 붙이는 창법을 사용한다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동
편제가 '타고 난 소리'를 쓰는 판소리라고 한다면 서편제는 고도의 기교(技巧)
를 요구하는 소리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서편제의 창시자는 이조 고종 때의 광대 박유전 이라고 합니다. 이 분은 특히
대원군의 총애를 받았던 인물로 알려져 있는데 한쪽 눈이 곪은 것을 본 대원군
이 까만 안경을 하사했을 정도로 특별한 환대를 받았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한쪽 눈이 곪아 있으면서도 소리를 해야했던 그의 아픔이 난세에 어렵고 어려
운 처세(處世)를 하고 있었던 대원군의 가슴에 와 닿았을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겠습니다.

한편, 서편제의 황금시대를 이룩한 명창 임방울(1904∼1961)은 구한말(舊韓
末)의 혼란스럽고 가난한 시대를 사는 민중에게 삶의 희망을 잃지 않도록 커다
란 위로와 힘을 주었던 인물이기도 합니다. 그의 인기가 얼마나 높았던지 춘향
가 중의 한 대목인 '쑥대머리'를 수록한 음반이 무려 120만장이나 팔렸다고 합
니다. 오늘날의 레코드 시장에서 100만장이 팔리면 '골든 디스크'라고 부르고
있습니다만, 1930년대에 120만장의 레코드가 팔렸다는 사실은 놀라운 일이 아
닐 수 없습니다.

만첩청산 늙은 범이 살찐 암캐를 물어다 놓고
이는 다 덥쑥 빠져 먹진 못하고
으르르르르르르 어헝 넘노는 듯
단산 봉황이 난초를 물고 채운간을 넘노는 듯
북해 흑룡이 여의주를 물고 세류간을 넘노는 듯
내 사랑 내 알뜰 내 간간지야
오호어 둥둥 니가 내 사랑이지야 * 동편제 '김세종제'

판소리 춘향가 중에서 '사랑가'의 한 대목이었습니다.

** 판소리의 장단

일고수 이명창(一鼓手二名唱), 즉 첫째가 고수요, 둘째가 명창이라는 말은 고
수의 중요성, 다시 말해서 장단의 중요성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표현이라고
여겨집니다. 동양음악 가운데서도 우리의 음악이 우수한 까닭은 '장단'에 있습
니다. 중국에도 일본에도 이러한 장단이 없다는 것입니다.

판소리의 장단은 기악을 위한 '산조'와 같습니다. 산조음악의 토양이 바로 판
소리이기 때문입니다. 판소리 장단의 가장 느린 것은 '진양조'이고 제일 빠른
것은 '휘몰이'입니다. 서양음악의 개념으로는 라르고(largo)에서 비바치시모
(vivacissimo)에 해당되는 것입니다.

진양조라는 말은 '긴조'라는 말이 변한 것이라고 합니다. 전라도 사투리에서
는 'ㄱ'을 'ㅈ'으로 발음하는 경우가 많은데(예: 기름→지름), '긴조'라는 단어
에서 '긴'이 '진'으로 변화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진양조'라는 단어의 중
간에 들어있는 '양'은 와전된 것이라고 합니다. 판소리가 시작될 때 첫 장단
이 '진양조'인데, 결과적으로 이 말은 '긴-조', 즉 '느린 장단'이라는 뜻입니다.
서양음악의 라르고에 해당되는 템포인 것입니다. 다음은 '늦은 중몰이'인데 중
몰이보다 느린 장단으로 서양음악의 안단테(andante) 정도의 속도이며, 그 다
음이 '중몰이'로 모데라토(moderato)의 빠르기, 이보다 더 빠른 것은 '중중몰
이'인데 서양음악의 알레그로(allegro)에 해당되는 템포입니다. 프레스토
(presto)에 상당한 빠르기가 '잦은몰이'이고 가장 빠른 템포는 '휘몰이'입니
다. 문자 그대로 질풍노도처럼 휘몰아치는 빠르기인 것입니다. 서양음악의 비
바치시모인 것이죠.

이러한 기본 장단 말고도 '엇중몰이'라는 것이 있는데 정상적인 장단이 아니라
는 뜻의 용어입니다. 중중몰이와 잦은몰이 사이에 배치되는 것이 관례인데 이
처럼 엇박자가 등장하는 것도 이 지구상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운 아주 독특하
고 독창적인 리듬이라고 합니다. 엇박자의 장단은 요즘 대중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는 '사물놀이'에서도 최고의 매력으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 춘향가

판소리 12마당 중에서도 '춘향가'를 으뜸으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신재효가 여
러 판소리를 꾸밀 때 춘향가만은 남창조(男唱調)·여창조(女唱調)·동창조(童唱
調), 즉 남성을 위한 소리, 여성을 위한 소리, 어린이를 위한 소리로 별개의 3
가지 소리를 꾸몄기 때문에 소리에 입문할 때 춘향가부터 배우는 것이 전통으
로 자리를 잡았다고 합니다. 특히 어린이를 위한 소리가 따로 있었으니 레슨용
으로는 제격이었던 것입니다.

춘향가는 전라남도 남원에 사는 퇴기(退技) 월매의 딸 성 춘향이 남원 부사의
아들 이 몽룡과 정혼(定婚)했지만 부사의 전근(轉勤)으로 인해 이별한 뒤 신
임 사또의 수청을 거절하여 옥에 갇히자 암행어사가 된 이 몽룡이 구출한다는
이야기를 판소리로 짠것입니다. 문학성에 있어서나 음악성에 있어서나 또는
연극적인 짜임새에 있어서 춘향가는 참으로 뛰어난 예술성을 지니고 있는데,
송만제의 관우희(觀優戱)에서도 "춘향가를 제한 다른 판소리 열한 마당은 인정
에 맞지 않고 치졸해서 들을 수 없다"고 춘향전을 극찬하고 있습니다. 춘향가
의 기원에 대해서는 대단히 많은 학설이 있지만 그 어느 것 하나도 확정적인
것은 없는 형편입니다. 단지, 박 문수·노 정 등 역사상 유명한 암행어사에 관
한 이야기들이 이 몽령 어사로 윤색되어 이것을 토대로 어떤 가객(歌客)이 소
리로 짠것이 아니겠냐는 설에 많은 사람들이 동의하고 있을 뿐입니다.

춘향가 중에서 특히 두드러진 대목은 진양조로 불려지는 호탕한 성격의 '적성
가(赤城歌)', 춘향과 이 도령의 질탕한 '사랑가', 춘향과 몽룡이 이별하는 '이별
가', 이별 후에 춘향이 부르는 '망부사(望夫詞)', 남원 사또의 호방이 관기(官
妓) 한 명 한 명을 호명하는 '기생 점고', 쑥대머리로 유명한 '옥중가(獄中
歌)', 사또의 생일 잔치에 들이닥치는 '어사출두' 따위가 있습니다.

판소리 춘향가는 이조 숙종 무렵부터 불려지기 시작했을 것으로 추측되는데,
역대 명창들 중에서 춘향가를 특히 잘 불렀던 사람은 순조 때의 가왕(歌王) 송
흥록을 비롯해서 염 계달, 모 흥갑, 송 광록, 고 수관 등이고, 철종 때는 박유
전, 이 석순, 박 만순, 김 세종, 이 날치, 고종 때의 장 자백, 유 공열, 송 만갑,
정 정렬, 일제 때의 임 방울, 해방 이후의 김 연수, 오 정숙, 박 동진 등입니다.

오늘날에 와서도 김 여란, 김 소희, 정 광수, 박 봉술, 정 권진, 성 우향, 조 상
현, 성 창순 등 춘향가를 썩 잘 부르는 명창들이 많습니다.

춘향가는 ①춘향과 몽룡이 광한루에서 만나는 대목 ②천자풀이에서 사랑가까
지의 대목 ③이별하는 대목 ④신년맞이에서 옥중가 까지의 대목 ⑤어사가 된
몽룡이 남원에 내려와 춘향 모와 함께 옥중의 춘향을 만나는 대목 ⑥변사또의
생일 잔치가 벌어지는 대목부터 뒤풀이까지의 대목 등 여섯 대목으로 구분됩
니다. 약 20여개의 유사한 바디가 전해지는 춘향가이긴 하지만 언제 들어도 시
원스런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하는 명작 중의 명작입니다.

판소리에서 사용하는 용어 가운데 '바디'와 '더늠'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바디
라는 말은 영어의 '바디(body)와 발음이 흡사해서 인상적입니다. 잘 아시는 것
처럼 판소리는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구두전승(口頭傳承)의 예술이고, 입으
로 전하고 마음으로 배우는 구전심수(口傳心授)의 예술이기 때문에 같은 마당
의 판소리라고 할지라도 부분적으로는 내용이 서로 다른 소리나 아니리가 만
들어지기 마련입니다. 이런 것을 일러서 '바디'라고 하는데 서양음악으로 치
면 일종의 '악파(樂派)'라고 여겨지는 것입니다. 동편제니 서편제니 하는 것도
바디가 오랜 세월을 지나면서 큰 가닥으로 자리를 잡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바
디보다 한 계단 작은 개념이 '더늠'입니다. 판소리 명창들은 자신만의 독특한
아이디어를 살려서 어떤 대목을 소리하기를 즐겼는데, 일제 시대에 임방울이
크게 히트시켰던 춘향가의 '쑥대머리'가 좋은 예 입니다. 따라서 쑥대머리
는 '임방울의 더늠'이 되는 것입니다.

춘향가에서 불려지는 유명한 대목들 가운데 하나인 '옥중가(獄中歌)'에도 다양
한 종류의 더늠이 있습니다. 춘향이 변사또의 수청을 거절하고 심한 매를 맞
은 후 옥에 갇혀 있을 때 이몽룡을 그리워하며 부르는 대목을 옥중가라고 하는
데, 이 대목의 첫 머리에 등장하는 사설에 따라서 '쑥대머리' '동풍가' '천지삼
겨' '황릉묘' 등의 더늠으로 구분되는 것입니다.

그 많은 옥중가의 더늠 중에서 동편제의 명창 송만갑(宋萬甲)이 '니포노폰
(Nipponophone)' 레코드 회사에서 1913년에 녹음한 SP 음반을 통해 노래한
대목을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송만갑의 더늠은 '동풍가'로 불려지는데 "동풍
이 눈을 녹여"라는 사설이 첫 머리에 오기 때문입니다. 화창한 봄이 왔지만 볼
수 없는 임을 생각하니 춘향의 가슴은 찢어질 듯 합니다. 따라서 이 대목은 느
린 중몰이 속도처럼 느껴지는 세마치 장단(자진 진양)에 슬픈 계면조로 노래됩
니다.

옥방(獄房)형상 살펴보니 앞문으로 난 살만 남고 뒷벽의 난 외만 남아 동지섣
달 찬바람은 시르르 듸려부니 백설이 침질 헌다. 동풍이 눈을 녹여 가지가지
꽃이 퓌었으니, 작작하다 두견화는 나부 보고 웃난 모양은 반갑고도 설거워
라, 눌과 함께 보잔 말이냐, 꽃이 지고 잎이 피니 녹음방초 시절이라, 꾀꼬리
는 북이 되야서 유상세지 늘어진듸 구십춘광을 짢는 소리는 아름답고 설거워
라 눌과 함께 듣자는 거나, 단옥장춘은 연년이 푸르렀고, 추풍혼백은 설운 마
음 자어내야 공산으 두견이난 은은한 삼경 밤의 피가 나그 슬피 울어서 님의
귀으 들리고저.  ** 주석은 배연형씨의 것을 따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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