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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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곽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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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 신포니에타의 예술적 결실



** 사진
리더 김영희교수

1781년 6월 8일,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는 음악 역사상 최초의 독립되
고 자유로운 신분의 음악가로서 첫 걸음을 옮기게 된다. 그에게 메어진 굴종
의 굴레를 과감하게 벗어 던지고 누구에게도 간섭받지 않는 전업 음악가로
서의 독립을 이 날 선언했던 것이다. 14세기 이전까지만 해도 프로와 아마
추어의 구분은 거의 없었다. 수많은 딜레탕트들이 스스로 노래를 짓고 그것
을 노래하거나 연주하였다. 그만큼 음악은 단순하고 자유로웠다.

그러나 음악의 전문화가 이루어지기 시작한 14세기 무렵부터 서양의 음악가
들은 누구에겐가 종속되어 있는 신분이었다. 교회나 궁정에 혹은 귀족에게
속해 있었던 그들의 신분은 사실은 종복(從僕)에 지나지 않았다. 30여 년
간 에스테르하지 家의 악장을 지낸 하이든도 그의 상전과 맺은 계약서엔 한
낱 하인의 신분으로 기록되어 있다.

모차르트는 어린 시절 아버지와 함께 했던 수많은 여행에서 교황, 국왕, 귀
족, 고위 성직자들의 환대를 받았고, 프랑스 국왕 루이 15세와는 식탁을 마
주하는 영광도 누렸다. 그러나 정작 그의 직속 상전인 잘츠부르크 대주교는
철저히 하인으로 모차르트를 대했다. 대주교로서는 그것이 당연한 처사였겠
지만 모차르트에겐 견딜 수 없는 모멸이었다. 쓰고 싶은 곡을 쓰고, 연주하
고 싶은 작품을 연주하고자 했지만 번번이 상전에 의해 차단되거나 좌절되
었다. 대주교가 원하는 작품, 대주교가 원하는 스타일에 자신을 맞출 수밖에
없는 형편이었다. 그의 천재성과 타고난 자유로운 천성은 이러한 속박과 모
멸이 거의 형벌과 같았을 것이다. 그것이 결과적으로 그를 서양음악사상 최
초의 독립된 음악가로 존재케 한 동기가 되기는 했지만, 동시에 엄청난 자기
관리의 책무가 그에게 지어졌다.

모차르트가 자유로운 신분임을 선언했을 때 그는 약관 25세의 청년이었다.
그리고 10년 후, 그는 사망했다. 그가 그렇게 일찍 요절했던 이유들이 여러
각도에서 조명되고 있기는 하지만 그의 단명이 홀로서기를 단행했던 것과도
상당한 연관이 있을 것이라는 견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하인의 신분에 순
명하고 장수를 누렸던 이전의 음악가들과 비교해 보면 모차르트의 요절은
피할 수 없었던 운명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현대의 음악가는 스스로를 어떤 신분으로 생각하는 것일까? 최근 음악계에
서 일고 있는 ‘음악 귀족주의’에 대한 시시비비는 그래서 우리의 관심을 끈
다. 음악귀족주에 관한 담론이 자리를 펴면 가장 먼저 등장하는 대상이 국가
나 자치정부의 보조금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관립(官立) 예술단체에 속
한 연주가들이다. 단체에 따라 다소의 차이는 있겠지만 대다수의 관립연주단
에 속해 있는 연주자들은 정년의 혜택을 받고 있다. ‘신의 직장’인 셈이다.
물론 나이의 많고 적음에 관계없이 일정한 연주기량을 갖추고 있는 단원이
라면 근무연한이 문제될 것은 없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단원들이 자리를 꿰
차고 앉아서 신진들의 진출을 막고 있다면 이건 예사로운 문제가 아닐 터이
다. 그러다보니 새로 부임한 지휘자가 큰마음 먹고 오디션이라도 시도하게
되면 거의 예외 없이 지휘자 퇴진이라는 피켓을 치켜든다. 철밥통을 지키겠
다는 것이다. 관립 예술단체의 운영비 일체를 전적으로 국가나 자치단체가
짊어지는 나라는 이제 우리나라 말고는 찾아보기 어려운 세상이다. 그러면서
도 년 간 수 십 회 정도의 연주회를 소화하는 것으로 제 역할을 다했다고
여기는 풍조가 여전하다. 객석이 비어있어도 그건 기획자들의 몫이지 자기들
과는 관계없다고 공공연히 말하는 단원들이 여전히 존재한다.

이런 의미에서 80회 정기연주회를 가진 부산신포니에타의 활약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이들의 연주사는 30년을 헤아린다(1986년 청단). 그 세월을 뚜렷
한 스폰서도 없이 그야말로 순수한 민간연주단체로 홀로서기를 하면서 연간
4회의 정기연주회와 60여회의 특별연주회를 가져왔다는 사실이 대견스럽다.
그간 수십명의 객원지휘자, 협연자들이 이들과 같이 호흡했고, 다양한 연주
곡목들을 지역사회에 소개함으로써 애호가들의 사랑과 지지를 받는 연주단
체로 튼튼한 뿌리를 내렸다. 결코 녹녹치 않았을 상황에서도 그들이 거둔 이
같은 예술의 열매는 그래서 더 아름답고 달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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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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