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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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곽근수 
Subject  
   어디 좀 조용하게 살 곳 없을까요?
  

"듣는 귀 무시한 음악공해"

올 봄, 우연히 지우와 함께 해운대에서 오륙도를 돌아오는 관광 유람선을 탔
다. 미포 선착장을 떠나서 시원한 해풍을 맞으며 해운대의 아름다운 해안선을
바다 쪽에서 바라보는 즐거움에다 아기자기한 오륙도 가까이를 선회하며 갈매
기의 날갯짓을 구경하는 재미는 정말 일품이었다. 부산 생활이 근 20여 년이
되면서도 해운대 유람선 한번 못타본 촌놈 신세를 면하게 된데다, 몇 해전 하
와이의 진주만에서 승선 경험이 있었던'메모리얼 보트'도 언뜻 기억 속에 되살
아나 미포 승선 대기실에서 잠시 기다리는 순간이 그렇게 설레일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런 기대는 유람선에 오르자마자 여지없이 깨지고 말았다. 유람선의
크기나 내부 시설은 크게 나무랄 데가 없었다. 그러나 배가 선착장을 떠나자마
자 틀어대기 시작한 음악 때문에 즐거움은커녕 괴로움이 시작되었다. 요즈음
은 개선이 되어 있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지만, 그날의 유람선은 출항(?)에서
귀향까지 쉬지 않고 음악을 틀어댔는데 음량은 귀가 멍멍할 정도인데다, 스피
커 마저 어쿠스틱 스피커가 아닌 나팔형 혼 스피커, 곡목은 내리 유행가 일색
이었다. 종사원에게 몇 번 "제발 소리라도 적게 틀어달라"고 부탁했지만 소용
없는 일이었다.

대형 백화점, 대형 옷가게의 대부분이 매장에 음악을 온종일 서비스 하는 일
이 이제는 일반화되어 있다. 고객을 위한 당연한 서비스라는 인식이 업주들의
상식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도 문제가 있다. 필자가 다녀본 백
화점, 옷가게, 제과점, 커피숖들 대부분이 오디오 시스템과  선곡에서 상당한
문제를 갖고 있었다. 특히 가장 큰 문제는 선곡에 있다. 그들의 선곡은 대중음
악 일변도, 시도 때도 없이 상당한 음량으로 대중음악을 틀어댄다. 록음악이
오전 시간대에 쾅쾅대는가 하면, 감상적인 노래가 점심 시간도 되기 전부터 매
장에 눈물을 뿌리는 것을 얼마든지 들을 수 있다.

백화점이나 옷가게는 차분한 분위기가 필요한 곳이다. 그래야만 손님들이 차
분하게 물건을 구경하고 원하는 상품을 선택할 수 있다. 그러나 음악의 리듬
이 빠르거나 요란하게 되면 사람의 박동수도 비례적으로 증가하게 되어 마음
이 흥분되고 발걸음은 빨라지게 된다. 음악과 생체리듬은 그만큼 즉시적인 관
련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차분히 물건을 고를 수 없게 되고, 그러
다 보니 이리저리 다니다 그냥 매장을 나가버리는 상황이 벌어진다. 물건 하나
라도 더 팔아야 할 업주로서는 여간 밑지는 장사가 아닐 수 없는 것이다. 고객
을 모은다는 것이 오히려 쫓아내는 형국이 되니 알고 보면 이처럼 낭패가 없
지 않겠는가? 그런데도 여전히 선곡의 내용은 달라지질 않으니 알 수 없는 노
릇이다. 접객업소를 위한 음악 상담소가 필요한 우리네 실정이다.

최근, 취재 때문에 비교적 장기간 일본에 머문 일이 있었다. 일본을 다녀온 사
람이라면 그네들의 친절, 몸에 밴 청결의식을 얘기하기 마련이다. 실제로 일본
의 공항에서 첫 번째로 만나게 되는 것은 코끝에 스치는 향기가 아닐까 싶다.
알고 보면 화학제품인 합성향료 냄새인데 이 냄새는 일본을 벗어날 때까지 어
디에 가건 맡아야 한다. 그 다음엔 일본식 친절과 일본식 청결이다. 가끔은 이
둘 때문에 기가 질리기도 한다.

한데, 요즘의 일본은 또 하나를 보태고 있다. 불과 몇 년 전과 현저하게 달라
진 현상이 있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그네들의 공공장소와 접객업소에서 들
려오는 음악이다.

일본의 문화는 지하문화라고 표현해도 좋을 정도로 지하 시설이 대단히 뛰어
나다. 도시에 사는 일본인들은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면 땅 밑에서 산다고 해
도 과언이 아니다. 지하철로 출퇴근하고 지하상가에서 쇼핑하고 지하에서 식
사하고 지하에서 데이트한다. 그런데 그 지하 공간에 거의 예외 없이 온종일
은은한 클래식 음악이 울려 퍼진다. 물론 오디오 시설의 질도 나무랄 데가 없
을뿐더러, 관심 있게 들어보면 선곡의 센스도 뛰어나다. 그것은 분명히 전문가
에 의한 곡목 선택일 것 같아 일부러 몇 군데 알아보았더니 역시 예상한 대로
였다.

지하상가, 종합 버스터미널, 백화점, 대형 서점, 심지어는 병원이나 약국에서
도 클래식 음악을 온종일 들려주고 있었다. 그것은 일본의 친절과 청결만큼이
나 제자리를 잡고 있었다. 클래식음악이 배경으로 흐르는 장소에서 나는 한번
도 무질서와 소란을 볼 수 없었다. 클래식 음악과 친절과 청결이 참으로 이상
적인 조화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게다가 그 조화는 일본 여인들의 '白色'중심
화장의 톤(Tone)과도 절묘한 하모니를 이루고 있었다. 살인적인 일본의 물가
고에 질린 異國의 나그네에게 그것은 일종의 위안이면서도 한편으로 경이로움
이었다.

하와이의 호놀루루는 러시아워의 엄청난 교통혼잡으로도 유명하다. 호놀루루
시민들은 대부분 교외에 산다. 미국의 도시들이 거의 그렇듯이, 어느 날 아침 8
시 무렵이었다. 그날도 트래픽은 예외가 아니었다. 시원스럽게 뚫린 '카메카메
하'고속도로를 바람을 가르며 달리던 차가 市 입구에서 덜컥 트래픽 잼에 걸
려 자라 걸음이 되기 시작한다. 그때, 앞서 가던 차가 영 움직이질 않는다. 외
길이니 앞지를 수도 없다. 알고 보니 차도 옆을 지나가던 아는 사람을 만나 그
동안의 안부도 묻고 악수도 하고 키스도 하느라고 요지부동. 그런데도 뒤차들
은 조용히 기다린다. 누구 하나 경적을 울리는 차가 없다. 참 신기한 일이다.

과문한 탓인지는 모르되, 우리 나라 도심지는 원칙적으로 차량 경적 금지구역
이다. 그러나 이를 지키는 사람이 오히려 바보가 된다. 잠시만 머뭇거려도 사
방에서 경적이 요란하다. 병원 앞도, 방송국 앞도, 주택가도, 공연장 앞도 소용
없다. 어디 좀 조용하게 살 곳 없을까요?

                               1986년 8월 월간 현장

*** 후기 / 아주 최근에 태종대에 다녀왔다. 그곳에도 테종대 앞바다를 한바
퀴 도는 유람선이 있는데, 역시 음악이 엄청난 공해였다. 볼륨이 너무 커서 태
종대 공원 전체가 찌렁찌렁 울리고 있었다. 아시안 게임 기간이라 외국인들도
그 유람선을 탓을텐데 과연 그들에게 어떤 인상이 남았을까? 세계 어느 바다
엘 가도 이런 형편없는 소리공해를 뿜어대는 유람선은 적어도 필자의 경험으
로는 없다. 어떻게 시정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 2002년 9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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